이 사태는 우리 모두가 처한 야만 사회를 압축해 보여주는 거대한 원경이기도 하지만, '쌍용자동차'라는 한 사업장, 해고 노동자·투쟁 당사자 한 명 한 명, 그 주변인들 각자에 맞춰 포커스를 좁혀 들어가도 수많은 고민거리를 안고 있는 복잡한 세밀화이기도 하다. 자신을 '작가'가 아닌 '기록 노동자'라 강조하는 이선옥(제18회 전태일문학상 기록 부문 수상자)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쌍용차 문제는 대체 무엇인가, 왜 그렇게 많은 이들이 죽어가는가"를 고민하면서 현장을 취재해 왔다.
이 사태를 기록하고 널리 알리고자 했던 또 다른 한 사람, 작가 공지영은 "대체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란 의문을 가지고 지난 8월 <의자놀이>(휴머니스트 펴냄)를 출간했다. 뒤늦게 사태에 눈을 뜬 만큼 다른 사람들의 기사와 기록에 적잖이 기댔고, 책의 말미 원저자의 이름을 빼곡하게 표기해 고마움을 전했다. 그런데 여러 인용 문장 중 한 부분(22~24쪽)만 유독 본문 내 출처 표기 없이 약간의 수정이 가해진 상태로 공개되었고, 수정 전 대목을 직접 쓴 이선옥과 그것을 칼럼에서 인용했던 노동 운동가 하종강은 출판사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 의문 제기와 공지영 작가의 불만이 트위터에 언급되면서 벌어진 일련의 논쟁을, 트위터에서는 '의자놀이 사태'라고 부른다. 이 과정에서 하종강과 이선옥이 들은 주된 비난은,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가족들에게 도움이 절실한 시점에, 큰 기여를 할 책에 '작은' 문제를 과하게 지적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대의론'을 이해할 수 없었던 이선옥은 다른 문제들도 겹쳐 결국 쌍용차 취재를 접기로 했다.
많은 이들은 '쌍용자동차 사태' 그 자체와 '의자놀이 사태'를 분리되어 다루길 선호했다. 언론은 이를 '트위터 스캔들'로 묘사했고 공 작가는 "소란"이라고 칭했다. 그러나 이선옥은 일견 본질적인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종속적으로 발생한 듯한 두 사태에서 닮아 있는 구석을 봤다. 투쟁을 어떻게 진단하고 기록해야 할지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과 논의의 기회가 사라지고 있는 장면이었다. 불편한 문제제기 앞에서 다수가 침묵을 선택하는 장면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대의'로 모이는 사이 등한시되거나 폄하되는 다른 가치들에 대한 아쉬움을 피력했다. 한편, 자신과 동료들의 정체성인 '현장 기록 노동'에 대한 무시와 몰이해에 대해서도 반박과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난 10월 30일 이선옥과 만나 왜 노동 현장의 기록 노동자로 살게 되었는지부터 물었다. 그가 어떤 노동을 해 왔는지를 통해, 비난을 받으면서도 제기했던 문제의식이 어디까지 맞닿아있는지 알고 싶어서다. 그 과정에서 <의자놀이> 논란과 공지영 작가의 대응에 대한 소견뿐만 아니라, 글 쓰는 노동자들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편집자>
말의 무거움, 기록의 무거움
프레시안 : 글은 언제부터 썼나. 여러 장르 가운데 르포르타주의 길에 들어서고, 그 가운데서도 노동과 노동자라는 주제에 집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이선옥 : 글쓰기를 주된 일로 삼았다고 말할 수 있는 건 2003년 여름 무렵부터다. <작은 책>이란 잡지에서 생활 글을 연재했는데, 어느 날 잡지 쪽으로부터 현대자동차 하청 노동자를 취재해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지속적으로 현장을 다니면서 쓰게 된 건 그 후부터다. 그 전까지는 막연하게 노동 운동 언저리에 있겠구나 싶었지,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 거란 생각을 하진 않았다.
현장을 기록하는 사람으로 살게 된 중요한 계기가 있냐고 누군가 물어볼 때마다 생각나는 게 있다. 하나는 2003년 김주익 열사 장례식에서 40~50대 아저씨들이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들썩이면서 숨죽여 우는 광경이다. 나도 많이 울었지만, 그 모습이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당시 언론은 "역사상 최고의 단협, 한진 노조 완승"이라고 했다. 진보 언론에서도 노조가 원하는 요구가 다 들어간 단협이 타결됐다며 거기에 초점을 맞춰서 기사를 냈다. 이건 정말 아니지 않나 싶었다. 사람이 두 명 죽었고 노동자들이 이렇게 울고 있는데 그게 어떻게 '완승'일 수 있나….
또 하나는 내가 쌍용자동차 파업 직전 공장에 들어갔을 때 썼던 글이다. <프레시안>에도 연재되었던 '질주' 시리즈 중 하나였다. 막 2646명의 정리 해고가 발표된 시기였고, 나는 "2646명을 해고한다는 것은 해고자와 그 가족 만 명이 함께 무너지는 일이다"라고 경고하면서 "어느 가장은 목을 맬 것이다"라는 문장을 썼다. 그런데 진짜 사람이 죽었다.
그날 밤 잠을 못 잤다. 정말 함부로 쓸 일이 아니다 싶었다. 그건 깊은 고민을 하고 나온 문장이라기보다 사람들이 이렇게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경고였고, 그동안 숱하게 봐왔던 일들을 방지하기 위해 넣은 극적인 표현이었다. 그 말을 쓴 게 그렇게 죄책감으로, 빚으로 남더라. 반드시 쌍용자동차 사태를 기록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프레시안 : 그 이후로 줄곧 노동자들의 삶이나 노동 운동이라는 주제를 벗어나지 않는 글쓰기를 해 왔다. 다른 형식의 글은 써본 적 없는가.
이선옥 : 거기에 주목하는 사람이 정말 몇 명밖에 없고, 나조차 제대로 못 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일에 눈 돌릴 틈이 없었다.
프레시안 : 르포라는 형식상 어떤 현장에 직접 찾아가느냐가 매번 선택 사항이 될 텐데, 주로 어느 곳을 찾아가려고 하는가.
이선옥 : 언론에 한 줄이라도 나오는 곳보다, 되도록 언론이 잘 안 다루는 곳을 가려는 게 나름의 원칙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그 중에서도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장기 투쟁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먼저 들으려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프레시안>이나 <참세상> 같은 인터넷 매체가 고맙다. 소위 '진보 매체'에도 주류와 비주류가 있는데, 주류 매체는 좀처럼 현장에 촉수가 닿아 있지 않다. 그런데 인터넷 언론은 현장에서 써 보내면 대체로 실어주니까. 현장에 가 보면 그 글 한 줄 나가는 데 목매는 분들이 많다.
프레시안 : 그 한 줄에 '효용'이 있는 건가. 그러니까 기록이 현장의 투쟁에 직접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 르포 작가 이선옥. ⓒ프레시안(최형락) |
프레시안 : 주로 예민하고 급박한 상황을 다루다보니, '당사자'들과 기록자들 사이에 갈등도 있을 거라고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많은 곳에서 텍스트 기록 말고도 사진이나 다큐멘터리 작업도 진행될 텐데, 거추장스럽다거나 쓸모없다는 취급을 받는 경우는 없나.
이선옥 : 그런 말을 듣거나 시선을 느껴 본 적은 없다. 대부분 고맙다고 한다. 그건 '우리 얘기를 대신 기록해준다'는 효용적인 차원에서 느끼는 게 아니라, 그냥 조합원 아닌 어떤 사람들이 자신들과 함께 해준다는 데서 오는 고마움이다.
하지만 경계는 분명히 있다. 인터뷰 요청한다고 다 선뜻 응해주는 게 아니다. 이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알지언정 어떻게 처음부터 화목하고 친절할 수 있겠나. 누구나 첫 만남에선 적당한 두려움을 느끼고 갈등을 겪는 법이다. 눈에 자꾸 보여야 그 사람이 자신들과 함께 한다는 믿음이 생기고, 그래야 마음을 열고 얘기할 수 있는 거 아니겠나. 그런 차원에서 딱 한 번 가보고 그 현장과 사람들에 대해 쓰는 것은 되도록 지양하려 한다. 오랫동안 관계를 맺으면서 스스로 자기 이야기를 충분히 할 수 있을 만큼 되었을 때 쓰자고 생각한다.
<의자놀이> 관련 논란에 휘말렸을 때 들었던 표현 중에 '진영 논리'라는 게 있었다. '노동판에 오래 있던 좌파들이 텃세를 부린다'는 거였다. 난 그게 아주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현장에 가면 주변인이고 외부인이니까. 다만 그게 '내 노동'이라고 생각하니까, 환영 여부에 일일이 신경 쓰거나 상처받지 않고 내 일을 하는 거다. 가끔 나한테는 아직 마음을 열지 않은 분이 유명 언론의 일회성 인터뷰에는 응할 때 비주류로서의 소외감이 있긴 하지만, 그게 내 노동 아니겠는가 싶어서 금방 털어버린다.
'무명 작가'? 나는 기록 노동자다
프레시안 : 기록하는 것이 자기 일이란 점을 강조했다. 언제부터 작가라는 직업적 정체성을 가지게 됐는가.
이선옥 : 스스로 나를 작가라고 표현한 적은 없다. 명함이나 바이라인의 '르포 작가'라는 직함은 취재할 때 쉽게 나를 설명하기 위해 쓰는 거지 아직도 그런 표현이 어색하고 불편하다. 난 기록 노동자다. 난 누군가를 만날 때 그 사람의 계급의식을 가장 중요하게 보는데, 마찬가지로 스스로 나를 노동자라고 칭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작가라는 말에 담긴 허영에 경멸을 느끼는 나를 보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웃음) 나를 떠받치는 의식은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이번 논란 때 진중권 씨가 나를 가리켜 '무명작가 이선숙'이라고 했다. 얼마나 무명이면 이름도 틀렸겠나. (웃음) 작가 앞엔 그렇게 '무명'을 붙일 수 있다. 그런데 스스로를 기록 노동자라고 했을 때, 무명이냐 아니냐는 전혀 상관이 없다. 직업으로서의 기록이고, 그래서 굳이 위계를 따질 필요가 없는 거다.
프레시안 : 당신이 쓰고 있는 르포란 글쓰기 형식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영어권에서 통용되는 정의를 보더라도 상당히 광의적인 의미에서 사용되고, 한국에서도 그때그때 의미가 달라지는 것 같다.
이선옥 : 평소에 르포에 대한 나만의 정의를 갖고서 쓰는 건 아니다. 다만 르포에 있어 중요한 걸 꼽으라면 '현장성'이 첫 번째고 단건 기사에는 담기 어려운 심층성이 두 번째, 세 번째는 쓰는 사람의 주관일 것이다. 내가 왜 이 얘기를 쓰는가에 대한 설명이 없다면 르포라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프레시안 : 언젠가 트위터에서 "(다른 르포 작가들보다) 내 얘기를 많이 쓰는 스타일"이라고 밝혔다. 방금 말한 세 번째 요소, 즉 쓰는 사람의 주관을 강조한 대목이다. 이 주관이 기록되는 사람들의 입장이나 자기들이 생각하는 상(像)과 부딪히거나 혼선을 빚는 경우가 종종 있을 것 같은데.
이선옥 : 가끔 있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노동자들도 최대한 자신들이 거룩하고 선하게 묘사되길 원하니까. 그런데 그때 가장 경계해야 될 것은, 그 사람들을 불쌍하고 처참한 사람들로 바라보게 만드는 시각이다. 만에 하나 누군가 어떻게 써 주기를 바란다고 느껴도 내 스스로 수긍이 안 되면 사실 왜곡을 하지 않는 선에서 절대적으로 내 판단에 따라간다.
'어떤 사람으로 보이느냐'보다 큰 문제는 사실 투쟁 내부에 있는 갈등을 굳이 끄집어서 쓸 것인가 말 것인가다. 그건 전적으로 내 판단의 영역이다. 당사자들이 원치 않더라도 그 갈등에 대한 언급이 내가 쓰려는 주제에 필요하다면, 최소한의 선에서라도 반드시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KTX 비정규직 여승무원 노동자들에 대해 쓴 글이 있는데, 그분들이 정규직 한국철도공사 노동조합 사람들과 갈등이 좀 있었다. 정규직 노조가 이들의 투쟁에 무관심하고, 노조 위원장이 농성장에 한 번도 안 왔다든지 하는 거였다. 사실 정규직 철도 노조가 그들을 지원하는 부분도 있고 외면하는 부분도 있는데 두 가지 중에 어떤 것을 부각시킬 것이냐는 내 판단의 영역이고, 나는 비정규직 쪽에 마음이 더 가니까 굳이 빼도 되는 정규직 노조와의 갈등 얘기를 쓴 거다.
그런데 원래 인터뷰에선 글로 옮긴 것보다 그 언급을 할 때 표현 수위가 더 높았고, 그 표현을 완화한 게 일종의 절충이라고 본다. 투쟁 중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노조로부터 생계비를 지원받고 있는 상황이니, 누군가는 "언론에 우리 욕했어? 걔들 생계비 끊어!"라는 말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책임' 부분을 드러내면서도 추후에 일어날 수 있는 갈등은 최소화할 수 있도록 그때그때 고민하고 판단해야 한다.
프레시안 : 당신의 글을 포함해서 한국의 현장 르포가 집중하는 분야의 특성상, 글이 너무 비장하고 심각하다는 느낌을 받는 독자들도 있다.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서 읽게 되기까지의 장벽이 높다는 지적이다. 이런 재미라든가 발랄함을 요구받는 분위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선옥 : '밝게' 쓰는 것과 '쉽게(읽기 쉽도록)' 쓰는 것은 다르다고 얘기하고 싶다. 예전에 이오덕 선생님의 책을 보고, 문학적인 수사가 중시되는 글은 쓰지 않을 거라고 혼자 마음먹은 적이 있다. 아름다운 문장에 욕심을 부리기보다, 독자들에게 노동 이야기를 문턱 없이 전달할 수 있도록 최대한 쉽게 쓰자는 결심이었다.
하지만 '밝게'는 좀 뉘앙스가 다르다. 이런 요구는 최근 운동의 변화와도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촛불부터 시작해 지난해 희망 버스까지 소위 운동 조직 바깥에 있었던 사람들과 섞이는 기회가 많아지면서, 운동권들은 '집회 문화를 바꿔야 한다, 밝고 즐겁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됐다. 하지만 알다시피 조직이 바뀌는 속도는 더디다. 속도를 못 따라간다고 운동권은 어둡고 칙칙하고 후지다는 식으로 발랄함을 강요하는 건 과하다고 생각한다.
운동 현장에도 일상과 마찬가지로 소소한 웃음과 행복이 스미는 순간이 있고, 보편적인 감동 같은 게 있다.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비장한 운동권만의 문제로만 보이지 않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그런 부분들을 최대한 부각해서 쓰려고 노력하지만, 사안들이 워낙에 가볍지 않고 내 능력도 부족해서 한계가 있다.
운동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프레시안 : 노동 르포는 현장에 기반을 두는 글이니 개별 사업장의 문제를 세부적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런 글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원경은 야만적인 신자유주의적 상황일 것이고, 궁극적인 문제의식은 노동자의 보편적인 권리의 확보일 것이다. 이런 가깝고도 먼 상황에 대한 접근법을 어떻게 취하고 있는가.
이선옥 : 노동 문제에는 보편적인 부분도 있고 개별적인 부분도 있다. 진짜 해야 하는 얘기는 좀 더 보편적인 권리, 즉 월 80만 원을 받고 청소 노동을 하건 1억 원을 받고 조종 노동을 하건 노동자라면 누구나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파업을 할 수 있는 고유하고 당연한 권리에 대해서다. 하지만 그건 개인의 힘이나 개별 글로는 불가능하고, 언론에서 끊임없이 환기시켜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장의 기록 노동자들은 그걸 깔고 좀 더 특화된 기획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거고.
하지만 현장에 닥친 문제에 쫓기다보면 그런 고민을 할 만한 여유가 없고, 거기서 가장 쉬운 선택은 '저 불쌍한 노동자들'이라는 감정적인 단위의 프레임이다. 그런 접근 방식은 지양하려고 한다.
프레시안 : 당신은 지난 5월 쌍용차 문제를 보는 접근법에 대한 글을 <프레시안>에 실은 적이 있다. (☞관련 기사 : "22명의 죽음, 미운 놈은 미워하며 살자") 이 글에서 "쌍용차 사태는 적의 실체가 없기 때문에 모던한 측면이 있다"는 공지영 작가의 진단에 아쉬움을 드러내면서 '(쌍용차 사태는) 알면 알수록 적의 이름을 분명하게 호명해야 하는 싸움'이라고 말했다. 다른 작가의 진단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 참 어려운 일이었을 텐데 굳이 그 어려움을 무릅쓴 이유는 뭔가.
이선옥 : 공지영 작가가 연민에서 쌍용차 사태를 바라보기 시작한 건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노동 문제에 대해 쓸 때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계급의식 없이 쓰는 것은 위험성이 크다고 봤다. 일어난 일이 대체 뭐였는가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면 해법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가령 쌍용차 문제의 귀결이 '정권 교체'로 빠져버릴 수 있다는 거다. 마치 '착한' 대통령이 뽑히면 다 해결되는 양. 하지만 쌍용차 문제의 시작이 소위 그 '착한 정권' 10년 동안에 일어난 것이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그러면 이건 뭐지? 착한 정권이 들어서도 문제가 해결될까? 이걸 물어봐야 하고, 그게 내가 말하는 구조적인 관점이고 계급의식이다.
사실 그 글을 쓴 가장 큰 이유는 공 작가가 아니라 해고 노동자 당사자들 때문이었다. 공 작가의 그 발언 이후 그들의 말이 눈에 보이게 바뀌었다. '우리 싸움은 왜 실체가 없지?' '막막하다' '유령과 싸우는 것 같다' 이렇게. 이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선도 투쟁 중인 해고 노동자들이 방향 없이 지쳐 떨어지면 공장 속에 숨죽이고 있는 다른 조합원들도 무기력해질 수 있고, 그게 정말 최악의 상황이라고 봤다. 그래서 조심스러운 문제지만 반드시 써야겠다고 생각했고, 공 작가가 준비하던 책에도 그런 문제의식이 반영되길 바랐다.
프레시안 : '공 작가가 준비하던 책'이 바로 <의자놀이>다. 이 책이 나왔을 때, 투쟁 중인 노동자들이 자신의 운동을 바라보는 데 영향을 줄지 모른다는 우려가 그대로 이어졌나.
이선옥 : 내가 던진 문제의식이 반영된 것 같진 않다. 그런데 사실 진짜 문제는 공 작가의 진단 자체가 아니라, 운동 방식에 대한 자유로운 논의가 안 되고 있는 우리 노동 운동의 현실이다. 그건 쌍용차뿐 아니라 한진중공업, 그 외 사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운동과 투쟁 방식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갖고 있고, 비판이든 옹호든 자유롭게 꺼내는 게 첫 단추 아니겠나. 가령 대선 국면인 지금,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데 주력해야 하느냐를 두고 논쟁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노동 운동과 정치권력 사이의 문제를 '타협도 해야 하지만 굴욕 아닌 타협이 되기 위해선 투쟁력이 전제되어야 하고, 그러므로 연대가 투쟁과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이 얘기를 우리 안에서 제대로 해 볼 여유가 없는 게 현실이고, (그 논의의 가능성이 차단된 것이) 이번 <의자놀이>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이기도 하다. 정당성이나 방향은 둘째 치고, 쌍용차를 돕는 게 좋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가버렸으니까 말이다.
'우리 글 왜 고쳤냐'고 물었더니…
프레시안 : 논란이 있었던 인용구 얘기를 해보고 싶다. 애초에 무엇이 문제였던 건가.
이선옥 : 동의 없이 다른 사람의 글을 고쳤다. 하종강 선생의 글을 고친 건데, 거기엔 내 글도 포함되어 있었다. '무단 인용'이라는 말로 알려졌는데, 사실 관계로 보면 인용 문제라기보다 동의 없는 윤색, 가필의 문제라고 해야 맞다. 그것은 최근 <나·들>과의 인터뷰에서 공 작가가 논란 이후 거의 석 달 만에 처음으로 인정한 바다. 자기 글인 줄 알고 고쳤다는 얘기인데, 나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더 놀라운 건 사람들이 이 대목을 보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는 사실이다.
공지영 작가는 <나·들>과의 인터뷰에서 이 '예외적 인용'에 출판사와 더불어 자신의 실수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출판사가 <의자놀이>의 여러 인용 부분이 본문보다 활자 크기를 작게 조절한 것과 달리 유독 이 부분 인용에서만 같은 본문 활자를 쓰는 실수를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지영은 "최종 수정 단계에서 나도 이게 내 글인 줄 알고 문장을 좀 고쳤어요. 활자 크기가 달랐으면 남의 글이라는 긴장감 때문에 (조심했을 텐데). 그건 내 실수죠"라고 했다. (☞관련 기사 : '진정성'으로 매듭을 풀 수 있을까)
그래서 처음에 왜 우리글을 공 작가가 쓴 글처럼 보이도록 고쳤냐고 물어봤다. 당연히 할 수 있는 질문 아닌가. 그런데 엉뚱하게 '너희 이름 빼서 미안해. 이제 이름 넣어줄게'라는 식의 답이 돌아왔다. 나와 하종강 선생은 왜 우리 이름을 넣지 않았냐고 물어본 게 아니다.
프레시안 : 이 일은 초기에 트위터를 통해 크게 번졌다. 매체의 특성상 어떤 발언이 의도치 않게 커지고 왜곡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종강과 당신이 이 문제제기를 철회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었나.
이선옥 : 사실 우리로선 그게 '발언'이 아니라 수세적인 해명이었다. 우리는 출판사에 비공개 메일로 의문을 제기하고 일을 매듭지어가던 상황이었는데, 공 작가가 트위터에서 "언제나 적은 우리 내부에 있다. 시기심에 사로잡혀 있는 그들은 남의 헌신을 믿지 않는다"라고 쓰면서 일이 트위터로 옮겨진 거다. 하종강 선생이 "이거 저한테 하는 말이죠? 잘못을 바로잡자는 요구를 이렇게 받아들이나요?"라는 멘션을 보내면서 다른 트위터리안들도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엄청나게 많은 공격을 받았다. 그러니 우리가 오히려 해명해야 하는 상황이 돼버린 거다.
당시부터 인터뷰 요청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우리는 이 일이 스캔들로 비화되는 걸 원치 않아서 모두 거절하고 최대한 축소시키려고 했다. 그렇게 소강되던 시점이었는데 <한겨레>의 '김두식의 고백' 인터뷰와 <나·들> 인터뷰 동영상이 나온 거다. 트위터뿐만이 아니라 정식 언론 매체를 통해서도 공 작가 일방의 발언으로 사건이 알려지게 됐다.
어쨌든 그 작업을 '해명'이라고 표현했을 때, 내 입장에서 풀어서 밝히고 싶은 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잘못 전달되는 '사실'에 대한 것이고, 하나는 '네가 하는 게 무슨 노동이냐'라는 공격에 대한 것이다.
프레시안 : 사실에 대한 해명은 앞서 이야기했고, 그 공격은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
이선옥 : 중간에 논란을 증폭시켰던 진중권 씨 얘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진 씨는 논란의 프레임을 '표절', '저작권'으로 옮겨버리는 역할을 했다. 인터뷰, 즉 그 노동자의 말에 무슨 저작권이 있냐고 물으면서부터다. 쌍용차 문제를 널리 알려야 할 시점에, 한 개인이 '저작권'을 주장하고 있다고 표현한 거다.
그건 기록 노동에 대한 멸시고 왜곡이다. 할 수만 있다면 더 센 단어를 찾고 싶을 정도다. 인터뷰해서 글 써본 사람들은 그렇게 함부로 말 못한다. 인터뷰이가 내뱉는 말이 곧 인터뷰 글이 되는 게 아니니까. 쓰는 사람이 덜고 빼서 구성하는 거고, 모든 문장이 크고 작은 선택의 결과물이다.
"공공재인 팩트를 사유화한다"는 말도 했다. 노동자들의 발언은 공공재인데, 내가 그걸 사유화해서 저작권을 주장하고 있다고. 만일 집회 중에 나온 노동자의 발언이라면 그 팩트가 공공재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직접 찾아가서 질문을 던지고 그 대답을 자기 문장으로 쓴 경우라면, 설사 그 인터뷰이가 다른 곳에서 비슷한 말을 했다고 하더라도 "공공재인 팩트를 사유화한다"고 얘기할 수 없는 거다. 이에 대해 "그 대목은 원래 여기저기 널려 있는 내용이고, 다른 루트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었다"고 말하는 공지영 작가의 인식 역시 기록 노동에 대한 왜곡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포함한 기록 노동자들과 일부 사람들이 분노했던 지점은 그거였다. 노동 문제에 대해 쓴다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 수고한 노동에 대해서는 존중하지 않았다는 것. 누구보다 앞장서서 글 쓰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말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그걸 짓밟은 셈이다. 그것도 "왜 숭고한 척 하느냐", "당신들의 신파가 지겹다", "내 생각엔 내 글이 더 나은듯 슝==3" 이런 인격적으로 모독을 주는 말을 하면서 말이다. 자기 노동에 대해 정당한 인정과 존중을 요구하는 게 어떻게 신파가 되는가.
공지영의 '첫 르포르타주'가 아니었다면?
프레시안 : 그런 맥락에서 당신이 자기 글에 너무 집착하는 거 아니냐고 비판한 사람들도 있다.
▲ <의자놀이>(공지영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휴머니스트 |
다만 다른 사람이 쓴 글을 고친 문제에 대해서는 내 노동과 관련된 부분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대의나 의도의 선함을 떠나 일차적인 문제다. 나에겐 내 이름이 아니라 내 노동과 노동의 정체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였고, 그 부분에 대해선 말해야만 했다.
프레시안 : 논란에도 불구하고 <의자놀이>를 텍스트 자체로 평가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이선옥 : 사건을 전혀 몰랐던 사람으로서 솔직하게 출발선에 서서,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을 사건의 문턱을 넘도록 만드는 역할을 해주고 있다. '나도 당신들처럼 똑같이 이 사건을 잘 몰랐어. 그런데 들여다보니까 이런 일이 있었어'라고 쉽게 이해시켜주는 미덕이 있다.
하지만 이것을 한 편의 르포르타주라고 하기에, 전체 글에 대한 작가의 장악력이 좀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책이 이런 방향으로 나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작가가 직접 취재를 해서 쓰는 줄 알았지, 다른 사람들의 기사나 인터뷰, 자료가 그렇게나 많은 비중으로 실릴 줄 몰랐던 거다.
출판사로부터도 '공지영의 첫 르포르타주'라는 네이밍은 일종의 마케팅 포인트로 이해해주면 좋겠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런 지점에선 작가가 받지 않아도 될 비난을 받게 한 것에 대해 출판사도 잘못이 있다고 생각한다. '공지영이 본 쌍용자동차 사태' 같은 더 적절한 이름 붙이기가 되었더라면 작가에게도 이번 일들이 오점으로 남지 않았을 거라고 본다.
프레시안 : 아까 르포에서 중요한 것 중 첫 번째로 현장성을 꼽았다. 방금 대답을 이어가보면 <의자놀이> 역시 르포로서 현장성 부족이 본질적인 문제였다고 볼 수 있는 건가.
이선옥 : 현장에 가지 않아도 정보는 얼마든지 전달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걸 르포라 이름 붙이긴 어렵다. 사실 <의자놀이>에도 현장 취재가 바탕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들이 있다. 예를 들면 "…두들겨 맞고, 해고되고, 사법 처리되고, "선생님이 우리 아빠보고 빨갱이라고 해"라며 울고 돌아오는 자녀들을 가진 이들은… 희망이 없다"(158쪽) 같은 부분이다. 짧은 부분이지만 글쓴이가 이 상황을 현장에서 직접 들은 사람들과 상당히 다르게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빨갱이'라는 소리를 들은 장면은 이 책 24쪽, 그러니까 논란이 된 인용 부분에 먼저 나온다. ("우리가 놓친 아이들이 있었어요. 아빠가 파업할 때 학교에 다녔던 청소년들이에요. (…) 그러자 선생님이 '다행이다. 지금 공장 안에서 파업하는 사람들은 다 빨갱이다' 그랬다는 거예요.") 이 부분에서 알 수 있듯 '빨갱이'는 엄마들이 완전히 놓치고 있었던 아이들, 그러니까 부모가 집 비울 때 혼자 밥 챙겨먹고, 다 컸으니 알아서 할 줄 알았던 청소년들이 들은 말이다. 나중에 보니까 성장을 통해 치유되는 아이들보다 이미 어른 수준의 사고력을 갖춘 중학생, 고등학생 아이들의 치유 문제가 더 심각했다. 그러니까 학교에서 빨갱이 소리 듣고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뒤에 나오는 ''선생님이 우리 아빠보고 빨갱이라고 해'라며 울고 돌아오는 자녀'란 대목은 어린 아이들에 대한 묘사로 읽히고, 실제 중학생 아이들이 겪었던 고통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말하지 못하는 고통과 그렇게 울면서 표현하는 고통은 다르다. 부모들이 가슴 아팠던 건 아빠를 숨겨야 했던 아이들이 겪었던 '말하지 못한' 고통이었다.
독자들은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장면이지만 상황을 아는 사람으로선 '사실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당사자들을 만나 한 번 더 직접 들었다면 더 좋은 내용이 나왔을 거라는 아쉬움이 있다. 설사 누구나 복기할 수 있는 얘기일지라도 작가가 직접 들으면 더 생생한 자기 얘기로 쓸 수 있었을 것이다. 좀 더 시간을 두고 충실하게 썼어도 되지 않았을까, 혹은 차라리 소설이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프레시안 : 현장 취재를 바탕으로 한 글만 나와야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자료를 재구성하고 분석하는 글도 중요하다. 현장성을 기준으로 글에 위계를 설정해버리는 게 아닌지….
이선옥 : 현장성이 없다고 의미 없는 기록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그리고 거기에 어떤 위계가 있단 얘기도 아니다. 내가 글을 쓸 때 다른 사람의 기록이나 여러 자료들에 의존해야만 하는 것처럼 상호 보완 관계다. 다만 정체성 문제인 거다. 르포라면 르포에 충실한 내용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앞으로를 위해서라도 이러한 장르와 형식에 대한 논의가 자유롭게 이뤄졌어야 하는데, 이번 논란이 스캔들화 되면서 중요한 부분이 가려졌다는 생각이 든다. <의자놀이>가 한국 사회와 노동 현장을 기록한 중요한 선례로 남을 텐데, 당연히 그런 논의까지 풍부하게 나와야 맞는 거 아닐까. 그래야 건질 게 하나라도 있지 않을까.
프레시안 : 논란 초기에는 방금 얘기한 책의 모호한 장르적 정체성에 대한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평가를 결국 다른 사람의 입이 아닌 당사자로부터 듣고 말았다는 거다. 왜 아무도 나서서 말해 주지 않았다고 보나.
이선옥 : 그게 정말 안타깝다. 내가 이 논란의 당사자가 아니었다면 처음부터 하나의 계기로 삼고 진지하게 논의했을 것 같다. 그런데 무슨 말을 하더라도 '시기, 질투'라고 흡수해버리니까 어떤 얘기도 자유롭게 할 수 없었다.
일반인도 아니고 '작가'가 다른 사람의 글을 동의 없이 고쳐 낸 것도, 글 쓰는 사람들이 먼저 문제제기 했어야 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되어 있더라. 오히려 문학을 한다는 사람이 "(공 작가의) 선택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이 점을 되풀이 지적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더라.
옅든 깊든 '쌍용차 대의'에 묻어갔던 사람들이 악한 의도를 갖고 있었던 건 아니라고 본다.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발언하는 거다. 그게 공기처럼 자연스러워지는 게 권력 관계가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이고, 내가 '문화 권력'이라고 표현한 게 그런 거였다.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는 해야 하는데, 아무도 하지 않는 상황 그 자체 말이다. 기득권이 훼손될 게 눈에 빤히 보여서 피하는 상황만을 이르는 게 아니다. 이 일에 말을 보태서 잃을 게 뭐고 얻을 게 무엇인지 굳이 계산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거다. 쌍용차라는 거대한 문제가 있고 거기다 공지영이라는 유명한 작가가 있는데 누가 굳이 미움 받고 척질 일을 나서서 하겠는가.
'문화 권력'은 그런 맥락에서 나온 단어였는데 공 작가는 <나·들> 인터뷰에서 "그런 권력은 문화부 장관이나 갖는 거고"라고 말했더라. 그건 초점이 어긋난 말이지 않나. 인터뷰어 중 한 사람인 손아람 씨가 '문화 권력'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전에, 왜 그런 말을 썼냐고 그 의미를 우리한테 한 번이라도 물어봤다면 좋았을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
쌍용차 노동자는 '왜 죽는가'라는 질문
프레시안 : 그동안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쌍용차 사태를 취재해 왔다. 현재는 어떤 상태인가.
이선옥 : 쌍용차 관련 르포를 한 해 이상 준비하면서 인터뷰를 해왔고, (<나·들>에 연재를 계획했던) 심층 기획은 따로 인터뷰이를 선정하고 취재를 시작했는데 이제는 완전히 접었다. 초점은 '대체 쌍용차 노동자들은 왜 죽음을 선택하는가'에 있었다. 한 2년 전부터 이 질문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느꼈고, 그걸 집요하게 캐보는 1년 이상의 장기 기획을 준비했다. 쌍용차를 포함해 쌍용차와 비슷한 투쟁 경험을 하는 다른 투쟁 사업장 네 군데에서 비슷한 표본을 뽑아, 아주 세세한 접근을 통해 어떤 공통점 사이에서 그 차이가 발생했는지 살펴보려고 했다. 그 과정을 통해 몇 십 년에 걸친 노동자 투쟁의 문화인류학적 보고서도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깊은 분석이 필요하기에 월간지 지면이 적당하다고 봤고, <한겨레>에서 준비하던 <나·들>에 연재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번 공지영 작가의 인터뷰 동영상과 기사를 보고 접겠다고 결심했다.
프레시안 : 다른 매체에서 연재할 가능성은 없나.
이선옥 : 아니, 취재 자체가 중단됐다. 더 이상 쌍용차 노동자들을 만나고 있지 않아서 취재가 불가능하다. 그런 선택이 괴롭긴 하지만, 나 역시도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위치가 됐고 여전히 그 피해의식을 겪는 중이기 때문이다. 쌍용차 관련 행사에 공 작가가 갈 때 나는 갈 수 없다는 이유도 있고…. 이 아픔을 극복하고 다시 취재를 진행하는 시점이 올지 솔직히 지금은 잘 모르겠다.
프레시안 : 시간이 흐르고 지금의 내상이 나아지면 다시 할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이 말한 것처럼 '쌍용차 노동자들은 왜 죽는가'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질문일 텐데.
이선옥 : 지금은 지금에 대해서밖에 이야기할 수 없는데, 솔직히 환멸을 느꼈다. "4억(<의자놀이> 판매 수익금으로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에게 기부된 돈의 액수)이라는 돈이 우리에게 주는 도움이 너무 커서 어쩔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계량화된 물질적 도움 앞에서는 원칙이나 방향, 윤리성에 대한 논의가 사라지는 상황이 환멸스러웠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기록해 온 것은 뭐였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거다. 물질적인 것에는 어떤 검토도 없이 의존할 수밖에 없는 운동 진영에 대한 나약함도 서글프고. 내가 있음으로서 누구도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기록 노동'이 살아야 당신들의 노동도 산다
프레시안 : 르포는 출판 시장에서도 비주류 분야다.
이선옥 : 하나의 분야로 인정받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어떤 노동자들은 르포 작가라고 소개하면 그 옛날 <선데이 서울>의 '성매매 현장 잠입 르포'라는 이미지로 받아들이더라. (웃음) 한국 사회에서 르포 쓰기를 전업으로 삼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나도 그렇고 다른 기록 노동자들도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한다. 그래도 이것만을 좇고 싶다는 욕구가 굉장히 크고, 많은 작가들이 계속 현장에 있을 수 있다면 훨씬 풍부한 글이 나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역시 한국 사회의 노동 문제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런 일을 하면서도 먹고 살 수 있는 사회라면 분야를 막론하고 더 좋은 르포 작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프레시안 : 그런 선순환을 만들기 위해 기록 노동자들 사이에서 일고 있는 집단적인 움직임은 없는가.
이선옥 : 문화예술인 노동조합(준비 위원회)에서 기록 노동자들도 함께 하자고 권유하고 있고, 참여를 고려하고 있다. 그 안에 기록 노동 분과로 들어갈 수도 있고 민주노총 산하 일반 노조로 들어갈 수도 있고, 여러 형태를 생각해 볼 수는 있겠지만 현재로선 (기록 노동자가) 워낙 소수고 공동의 진로를 도모할 만한 구조가 안 된다. 그와 별개로 이번 <의자놀이> 관련 사태에서 진중권 씨의 발언을 '현장 기록에 대한 모욕'이라고 느낀 사람들이, 공동 대응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며 연락을 해 오기도 했다. 내가 논란의 당사자가 돼버려서 직접 주도할 수는 없지만, 그런 움직임이 있으면 참여하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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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사람이 있다>(강곤 외 지음, 삶이보이는창 펴냄). ⓒ삶이보이는창 |
권리와 함께 의무감과 부채감도 있다는 얘길 덧붙이고 싶다. 용산 참사 때 현장 기록자들이 모여서 <여기 사람이 있다>(강곤 외 지음, 삶이보이는창 펴냄)를 펴내면서, 앞으로 중요한 문제가 터질 때마다 확 달라붙어서 최대한 빨리 작업을 하자고 이야기를 했었다. 4대강 때도 그런 시도를 했었는데 의도한 바가 책으로는 나오지 못했고, 쌍용자동차에 대해서도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강했는데 각자 형편이 어렵다보니 결국 공동의 결과물을 내지 못했다. 그래서 요즘 우리 권리를 찾기 위한 얘기와 함께 우리 임무를 충실히 하지 못했다는 부채감과 책임에 대해서도 깊게 논의하고 있다. 현장에 빨리 달려가서 공동의 기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게 또 다른 고민이다.
프레시안 : '의자놀이 스캔들'이라는 표제로 일련의 일들을 중계한 언론에도 불만이 있을 것 같다. 앞서 노동 문제에 대한 관심과 이해 부족에도 아쉬움을 드러냈는데, 언론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선옥 : 일단 노동 문제를 다루는 비중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적다고 생각한다. 극한 상황들이 벌어져야 자주 다룬다. 하지만 사람이 죽기 전에, 그들이 단식을 하거나 철탑에 올라가기 전에 그러지 않도록 막는 역할을 해야 한다. (주요 언론 중에) 노동 섹션이 따로 있는 곳이 하나도 없다. 경제의 하위 분야나 사건 사고로만 다룬다. 나는 부동산 섹션은 따로 있는데 노동 섹션이 없는 상황 자체가 매우 천박하다고 생각한다. 이게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의 현주소 아닐까.
하지만 그렇다고 '언론이 안 쓰니 내가 쓴다'는 식으로 말하는 건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어떻게든 노동 문제를 다루려고 하는 언론인들과 기록자들이 있고, 그들이 떠들지 않았더라면 지금 만큼도 안 됐을 거다. 내가 어느 지면에 한두 문장 쓴 걸 어떻게 알고 연락해 주는 기자들이 있는데, 그들과 사업장을 연결해줄 때마다 흐뭇하다. 그런 경우엔 최선을 다해서 도와준다. 내가 쓰는 것보다 더 큰 반향이 있을 수 있으니까. 이렇게 상호 보완하는 관계가 됐으면 좋겠다.
지면에서도 상호 보완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프레시안> 같은 인터넷 매체에서 현장 기록 노동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늘려주면 좋겠다. 지면이나 취재의 한계로 기사는 '한 줄 사건'으로 나가더라도 우리가 그걸 보완하는 심층적인 르포를 써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또 현장 기록 노동자들은 일단 현장을 알리는 게 다급하고 게재 기회가 아쉬운 입장이라 금전적인 대가를 생각하지 않는데, 그에 대한 대가를 작게나마 꼭 지급했으면 한다. 그래야 상호 보완 발전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선옥 : 쌍용자동차와 같은 죽음은 없지만 그와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장기 투쟁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있다. 8년째 투쟁 중인 코오롱, 6년째인 콜트·콜텍과 재능 노조 그리고 한국쓰리엠 등. 지금은 쌍용차에 가려져 있지만, 쌍용차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한 연대가 이런 곳으로 확산되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나와 같은 기록 노동자들이 먼저 발로 뛰고, 지금보다 더 노력해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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