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 경계를 넘나들긴 하지만 세상에, TV 나오는 가수가 달덩이 같은 얼굴에 배가 가슴보다 더 나왔다. 그 굴곡 있는 몸매에 멋은 엄청 부린다. 옷차림은 엄마 옷 같기도 하고 밤무대 스타일 같기도 한데 또 춤은 막춤이다. 만화 캐릭터 같다. 순두부찌개에 치즈 넣은 꼴인데 먹어보니 맛이 있다. 잘 나갔다.
그런데 그 해가 가기도 전에 대마초 흡입으로 검거된다. 폭행도 아니고 음주 운전도 아니고 대마초다. 2002년 그는 '챔피언'으로 부활하며 죄사함을 받은 듯하더니 2007년엔 병역 특례 부실 복무 문제로 군에 재입대한다. 싸이로선 억울한 게 있었겠지만 세간에 알려지기는 사실상 병역 비리나 다름없었다.
대마초와 병역 비리. 이쯤 되면 연예인 생활은 끝난 거다. 그러나 그는 다시 부활한다.
"대한민국 만세~."
'강남 스타일'이 외국에서 (아, 그렇다. 백인종 국가들에서!) 인기를 얻게 되고, 그냥 외국도 아닌 미국의 주요 방송에 등장해 호응을 얻게 되자 나라가 들썩인다.
한국인이 미국에서 이렇게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아마도 김일성, 김정일을 빼면 없었을 것인데 이들 김 씨 부자들과 달리 미국인들을 즐겁게 해주고 춤까지 추게 했다. 이렇게 되니 한국인들의 '싸이 칭송'이 대한민국의 천정을 뚫어버렸다. 아마 대선 정국이 아니었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싸이의 엉덩이에 짓눌려 있을 게다.
'강남 스타일'이 미국 빌보드 차트 2위에 오르자 모든 언론은 1위 등극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분석 기사를 쏟아냈다. 기다렸다는 듯이 '경제 효과' 기사도 넘친다. 국가도 화답한다. 국무총리 김황식은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세계적 인기를 끄는 만큼 "관광 인프라 확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한 말씀 하셨다.
드디어 언론에서는 월드컵, 올림픽 때나 써먹던 "한국인이라는 게 너무 자랑스러워요~"라는 인터뷰 코멘트가 다시 등장했다. 그러더니 이제는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강제 출국'에 '입국 금지' 주장이 봇물을 이루는 듯하다.
그런데 지난 주 누리꾼 사이에 시끌벅적한 말다툼이 있었다. 싸이가 빌보트 차트 2위에 오른 상태에서 귀국을 하자 미국에 머무르며 열심히 활동을 해 1위에 올라야지 왜 귀국해서 대학 축제'나' 다니느냐는 것이다. 나라를 알려 국위 선양할 기회인데 "왜 조기 축구하러 귀국했냐"며 비난한다.
"세계 정복을 앞둔 중요한 때 돌연 귀국해 대학 축제를 다니고 있다니 참으로 김 빠진다"는 주장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올까요? 제발 강제 출국시키고, 필요하면 당분간 입국 금지라도 시켜야합니다"에 이르면 이게 무슨 소린가 어리둥절해진다. 그런데 여기에 한 술 더 뜨기 경쟁이 붙었다. "이번 열풍은 싸이 개인에게 국한된 문제가 아니고 국가적인 문제"라는 사람이 등장하더니 "이건 국가적인 사건"이라며 "1988년 올림픽이나 2002년 월드컵에 비견될 정도"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국위 선양 '앵벌이' 탄생하다
ⓒ뉴시스 |
"과거에 싸이하고 약속했던 국내의 이해당사자들이 대승적인 차원에서 싸이를 풀어줘야 한다. 싸이가 빌보드 톱10에 올라간 건 천재지변에 준하는 비상사태다. (…) 따라서 국내 행사 다 물리고 싸이를 빨리 '강제 출국'시켜야 한다."
평소 좋아하던 문화평론가인데 그의 주장은 참으로 '국가'스럽고 반문화적인 발언이다. 그리고 싸이의 빌보드 톱10 진입이 '천재지변'이라 했는데 그렇다면 싸이가 빌보드 '넘버원'이라도 하는 날엔 미국의 '멸망'을 걱정해야 할 것인가.
노래 하나 가지고 '국가'와 '국격'을 따지고 '국위 선양'과 '세계 정복'을 주장하는 모습은 사실 우리 스스로에게 익숙한 자화상이다. 하긴 서울시가 후원한 지난 주말의 콘서트 제목도 '글로벌 석권 기념 콘서트' 아니었나. 그렇지만 어딘지 촌스럽다. 보자기로 망토 삼고 장난감 칼, 장난감 총 휘저으며 "두두두두" "쓔웅~" "받아랏" "야 너 죽었어" "으아~"를 외치면서 뛰어다니는 아이들 전쟁놀이 같기도 하다. '말춤'으로 '한국인의 우수성'을 증명했다니 말이다?
'말춤'이 '한국인의 우수성'?
지금의 싸이 신드롬은 '강남 스타일'이 유튜브 순위에 이어 백인이 지배하는 국가들의 대중음악 순위에 오르면서 '어느 나라에서 몇 등' 그런 식으로 시작됐다. '한국인의 우수성'을 입증하기에 등수보다 좋은 게 없다. 그래서 우리가 영웅시 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외국인을 '무찌른' 운동선수, 금메달을 딴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때문인지 사실 우리는 외국과는 달리 생명을 구한 소방관, 정의를 세우는 경찰관, 아이들의 꿈을 키워주는 교사나 역경을 이겨낸 사람들이 우리들 마음속에 영웅으로 자리하기는 힘든 인식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심지어는 우리가 '내다 버린' 인물조차도 외국에 나가 성공하면 얼굴에 철판 깔고 다시 데려와 영웅으로 숭배한다. 하인즈 워드나 추성훈이 그런 경우다. 그러면서 꼭 하는 말이 '자랑스런 한국인의 피'다. 또 심지어는 외국의 '명품 구단'에서 뛰면 벤치를 지키는 경우가 대부분이어도 '메가 울트라 슈퍼 초특급 스타'가 되기도 한다. 박지성이 그런 경우다. 경기에 출전만 해도 "맨유의 당당한 일원임을 증명했다"고 쓴 기사가 수백 개는 된다. 이럴 때 등장하는 말이 '한국인이라는 게 너무 자랑스러워요'다.
앞에 언급한 유명인 외에도 박찬호, 박세리, 박태환, 김연아 그리고 지금의 손연재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다른 운동선수들에 비해 월등한 관심과 인기를 누리는 데에는 이들이 백인들이 주도하는 종목이나 미국에서 성공한 인물이라는 뚜렷한 이유가 존재한다. 이들의 인기 비결과 지금의 싸이 열풍에는 백인에 대한 콤플렉스, 미국에 대한 동경 그리고 서양에 인정받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뒤섞여 있다.
우리들의 콤플렉스 그리고 자아도취
서구, 특히 미국에 대한 동경과 콤플렉스는 '동전의 양면'도 아니고 '한 몸'이다. 1999년 서울의 강남에서 미국 분유를 먹으면 서양인처럼 늘씬한 다리를 갖게 된다는 소문이 퍼졌다. 곧 강남의 아기 엄마들이 국내 분유보다 무려 50퍼센트나 비싼 고가의 미국 분유 '씨밀락'을 사재기를 해대는 통에 품귀 현상이 벌어졌다. 인종적으로 '숏다리'인 한국의 아기들이 '롱다리'인 미국 아기들이 먹는 미국 분유를 먹으면 다리가 (다리만!) 길어진다는 것이다.
사실 이건 이성적으론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지역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똑똑한 집단일 강남의 젊은 엄마들은 마치 주술에 걸린 듯 이러한 비이성적 행위를 집단적으로 실천에 옮겨 버렸다. 한 학자는 ''롱다리 콤플렉스'에 걸린, 다시 말해 '서양인 되기'라는 편집증적 욕망에 시달리는 한국인들의 '슬픈' 자화상'이라고 표현했다.
미국에 대한 동경은 때론 황당한 일로 연결된다. 2007년 미국 버지니아 주의 한 대학에서 한국계 미국인 조승희가 총으로 서른두 명을 살해한 사건이 벌어져 충격을 주었다. 그런데 당시 한국 주미 대사가 "대사로서 슬픔에 동참하며 한국과 한국인을 대신해 유감과 사죄를 표한다"는 다소 어리둥절한 발언을 하더니 급기야 희생자 수만큼 "32일간 릴레이 단식을 하자"는 제안을 한다. 한국에서는 기독교계가 서울광장에서 '사죄 예배'를 드리기까지 했다.
우리가 동경해 마지않던 미국에서, 성공하려면 조기 교육을 가야 하고 유학도 가야 하고 또 이민도 가야 하는 미국에서 한국(계 미국)인이 미국 사람 수십 명을 죽이자 한국인들은 미국에 사과하지 못해 안달이었다. 한마디로 국가적 사죄 열풍이 불었다. 우리가 극심한 불안 증세를 보이고 전에 없던 호들갑스런 사과를 하자 이러한 과잉반응에 놀란 미국이 오히려 말리고 나서기까지 했다. 미국 언론은 이를 '민족주의적 죄의식'이라고 평했다.
우리에게 미국(또는 백인)은 이런 존재다. 우리의 미국 콤플렉스는 우리로 하여금 이들을 자나 깨나 모방하게 했고 미국에 대한 동경은 이들에 대한 끝없는 구애로 이어졌는데 우리가 혹 잘못이라도 하면 '오버'를 해가면서라도 사죄를 했다. 우리의 인식 구조가 이러한 상황에서 싸이가 미국인들을 즐겁게 해주고 미국 대중음악 순위에 오르자 한국에서는 난리가 난 것이다.
'미국인님'들을 기쁘게 해드렸으니 이 얼마나 기쁘지 아니한가. 그래서인가. 언론도 '강남 스타일'에 대한 '외국의 반응'을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인터넷에서도 다양하고도 엄청나게 많은 '외국인 반응' 동영상이 올라있다. 싸이의 노래를 신나게 듣던 중 외국인들이 좋아한다니 더욱 더 힘을 내 열광하는 꼴이다. 우리가 미국인들에게 인정받았단 말이다!
지난 주 싸이가 서울광장 공연에서 소주를 병나발 불었다. 어린이들도 섞여있을 8만 관중 앞에서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괘념치 않을 것이다. 곧 미국으로 출국할 그는 국위 선양에 나서야 할 몸이니까 말이다. 혹 이러는 국민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거 자꾸 떠드는 거 좋지 않아요. 김장훈과의 갈등도 다 그럴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이번에 출국한다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이번 주 빌보드 1위에 올라 한국인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려 세계 정복을 했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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