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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나게 끔찍한 세상, 하지만 희망은 지켰다!

[에릭 홉스봄, 1917-2012] 홉스봄을 위한 변명

살아있는 최고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로 평가되어온 에릭 홉스봄이 지난 10월 1일 세상을 떠났다. 전 세계 수많은 언론에서 부고 기사들이 쏟아졌고 소셜네트워크에서 애도의 물결이 일렁였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은 마르크스주의자였고 끝까지 공산당원으로 남으려 했던 그의 정치적 신념과 이력에 대한 새삼스런 소개들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데에는 불편함이 없지 않다.

마치 한물간 마르크스주의와 과거 저편으로 사라진 공산주의를 시대착오적으로 붙들고 있던 구시대의 마지막 인물이 결국 사라졌다는, 한마디로 '오래 살았다'는 웃지 못 할 탄식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완고한 마르크스주의자나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면, 그가 역사학에서 더 뛰어난 학문적 성취를 이루고 제도학계에서 높은 성공이 보장되었을 것이라는 뒤집힌 평가들에는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마르크스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신념을 버리지 않고도 제도학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쉽게 폄하하기 어려운 논문들을 쓰기 위해 분투했던 그의 고단한 삶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언사들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홉스봄의 역사학은 마르크스주의와 분리될 수 없으며, 그가 정확히 마르크스주의자였기 때문에 탁월한 연구 성과들을 발표할 수 있었다고 해야 마땅하다.

소통과 연합을 중시하는 역사가

물론 에릭 홉스봄은 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을 중심에 두는 1세대 혁명가들의 막내를 자처했고, 소련 공산당의 온갖 오류와 만행에도 불구하고 1930년대 반파시즘 학생 운동을 경험하며 선택한 정치적 입장을 유지했으며, 1968년 혁명을 전후로 부흥했던 신좌파나 1980년대에 부상한 포스트 담론들에도 비판적이었다.

▲ <미완의 시대>(에릭 홉스봄 지음, 이희재 옮김, 민음사 펴냄). ⓒ민음사
<미완의 시대>(이희재 옮김, 민음사 펴냄)로 국역된 자서전에서 홉스봄은 자본주의 공황과 파시즘을 겪으며 비극과 절망 속에서 혁명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꿈이 생존의 조건 자체이자 인간다운 삶의 버팀목이었으며, 또한 당원임을 포기하면 출세가 쉽다는 세속적인 계산에 휘둘리지 않으려는 학자로서의 자존심도 있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그가 탈당하지 않은 더 큰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지식인과 공산주의'(<혁명가>(김정한·안중철 옮김, 길 펴냄))에서 홉스봄은 냉전 시대에 당 지식인들의 험난했던 여정을 분석하면서 스탈린주의적인 공산당의 정책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실제로 당의 지향을 변화시킨 인물들은 탈당하지 않고 당에 남은 자들이었다는 것이다.

당을 떠난다면 당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치적 영향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었고, 당시 탈당한 이들의 숙명은 반공주의가 아니면 정치적 무능력과 망각이었다. 이는 프랑스의 유명한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인 루이 알튀세가 자신의 자서전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권은미 옮김, 이매진 펴냄)에서 수많은 동료들과 후배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자크 랑시에르가 대표적일 것이다) 관료화된 공산당에 남은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과 일치한다. 당을 떠난 지식인들이 실제로 어떤 유의미한 정치적 실천을 했느냐는 질문의 무게는 만만치 않다.

알튀세의 <마르크스를 위하여>를 영어권에 처음 소개하는 서평을 쓴 사람이 홉스봄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자본의 구조', <혁명가>). 비록 <미완의 시대>에서는 자신의 절친인 에드워드 톰슨과 알튀세의 논쟁을 무익한 것으로 평가절하하고 있지만, 홉스봄은 교조적 마르크스주의에 도전하며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알튀세의 명석하고 독창적인 작업에 박수를 보내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홉스봄이 속류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거나('역사가는 마르크스에게 무엇을 빚지고 있는가', <역사론>(강성호 옮김, 민음사 펴냄)),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자기비판을 시도할 때 알튀세를 직접 인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대화', <혁명가>). 마찬가지로 홉스봄은 1968년 혁명이나 신좌파에 대해서도 고집 센 비난과 배척으로 일관하지는 않았다. 그는 1968년 혁명이 새로운 사회 운동의 희망일 수 있으며, 다만 청년 학생들이 노동자 운동과 결합하면서 뚜렷한 정치적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1968년 5월', <혁명가>).

물론 <미완의 시대>에서는 냉소적인 비판을 서슴지 않지만, 여기에는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와 대결하지 못한 채 1968년 혁명의 힘이 서서히 사라지고 68년 혁명 세대들이 무력하게 투항하거나 좌절한 것에 대한 실망이 스며있을 것이다. 이는 1987년 6월 항쟁을 이끌었던 386 세대들이 제도 정치권에 진출해 전혀 진보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더 보수적으로 부패한 것에 대한 실망과 분노에 비견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신좌파와 관련해서는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포스트마르크스주의의 대표적인 이론가인 에르네스토 라클라우는 어떤 인터뷰에서 자신이 영국으로 유학할 때 홉스봄이 장학금을 주선해주어 큰 도움이 되었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물론 홉스봄은 기억도 못할 것 같다고 덧붙이고 있지만, 이 에피소드는 홉스봄이 결코 교조적이거나 종파적인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다양한 지적인 소통과 교류를 중시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홉스봄의 정치적 지론은 다양한 좌파들이 분열하지 않고 함께 싸우는 '인민 전선'이었다. 이는 1930년대 반파시즘 운동의 교훈이었고, 비록 실패했지만 스페인 내전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그는 혁명적이지 않은 정세에서 혁명가들이 자신들만의 신념과 원칙을 앞세워 대중들과 괴리되고 극소수파로 전락해 정치적 영향력을 상실한 유럽 공산당들의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고 믿었다.

1980년대 초에 홉스봄이 대처의 보수당에 반대하는 좌파 연합을 지지한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노동조합원들의 투표율과 당 가입률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일부 분파(특히 트로츠키주의)가 노동당을 장악해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는 강경 노선을 추구하는 것이 당을 분열시키는 자멸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노선 논쟁은 10여 년 뒤 토니 블레어의 신노동당(제3의 길) 전략으로 귀결하면서 홉스봄이 그 터전을 마련해주었다는 비판이 따라다닌다. 홉스봄은 자신이 원한 것은 노동당의 개혁이었지 '바지 입은 대처'가 아니었다고 주장했지만, 비판자들은 아직도 그의 정치적 실책을 강하게 질타하고 있다.

과연 홉스봄이 제시한 반신자유주의 최대 연합 노선이 당시 정세에서 어느 정도 타당했는지, 또는 그가 10여 년에 걸친 노동당의 우경화에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노동당의 강경 노선이 당시에 적합했는가는 결코 장담할 수 없다.

노동 운동의 쇠퇴 속에서 당 좌파들의 어떤 선택도 위기를 돌파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홉스봄 덕분에 노동당의 실권을 상실하고 물러난 트로츠키 분파에 가까운 페리 앤더슨이나 그레고리 엘리어트가 홉스봄의 신념과 정치적 입장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조롱하는 것은 적어도 공정하지 않다('패배당한 좌파 : 에릭 홉스봄', <현대 사상의 스펙트럼>(안효상 이승우 옮김, 길 펴냄), <홉스봄, 역사와 정치>(그레고리 엘리어트 지음, 신기섭 옮김, 그린비 펴냄). 엘리어트의 책은 앤더슨의 논문에 대한 긴 주석이다).

물론 세속의 현실과는 차원이 다른 지적 세상에서 희로애락을 경험하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그러하듯이 홉스봄도 때때로 주어진 정세를 판단하는 데 서투르기는 했다. 대표적으로 칠레의 아옌데 정권에서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하거나, 재즈에 심취해서 비틀스의 음악을 한때의 유행으로 치부하거나 하는, 체계적인 분석보다는 개인적인 희망과 취향이 앞섰던 경우들이 없지 않다.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반역하는가

▲ <극단의 시대>(에릭 홉스봄 지음, 이용우 옮김, 까치글방 펴냄). ⓒ까치글방
19세기 노동사를 전공한 홉스봄의 대표적인 저서는 1789년 혁명 이후의 '장기 19세기'를 다루는 <혁명의 시대>(1962년), <자본의 시대>(1975년), <제국의 시대>(1987년)이고, 여기에 자신이 '참여 관찰자'로서 1914~1991년의 '단기 20세기'를 다루는 <극단의 시대>(1994년)가 손꼽힌다. 이 네 권은 2005년에 '현대 세계의 형성(The Making of the Modern World)'이라는 시리즈로 묶여 한정판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또 '극단의 시대'에 역사가이자 한 개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정리한 <미완의 시대>도 한 시대의 증언으로서 학술적인 가치가 충분하다. 홉스봄은 방대한 사료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분석하는 데 타의 추종을 불허했으며, 빈곤한 자료들을 종합해서 설득력 있는 인과적 설명을 구성하는 데 탁월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는 경제라는 뿌리에서 정치적, 문화적 줄기가 자라 열매가 맺힌다고 하는 느슨하고 유연한 '토대-상부 구조론'에 바탕을 두고 있는 한계가 있고, 봉건주의 사회의 내적 모순과 갈등에서 자본주의가 태동했다는 일종의 '진화주의'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예컨대 이매뉴얼 월러스틴이나 조반니 아리기가 제시한 세계 체제론의 입장에서 보자면 인과 관계나 시대 구분 등에서 오해의 여지가 많다.

특히 자본주의의 기원이 18세기 영국의 산업 혁명에 놓여 있고 프랑스 혁명을 통해 신흥 부르주아가 봉건 귀족을 타파했다는 논변 자체가 유럽 중심주의에 입각한 '만들어진 전통'에 불과하며, 16세기 도시 국가들의 시장 경쟁에 주목해야 하고 대체로 귀족이 부르주아로 변신했다는 세계 체제론의 논리는 보다 탄탄하다. 이런 점에서는 오히려 소련의 몰락으로 큰 충격을 받은 다음에 출간한 <극단의 시대>와 <미완의 시대>를 한 쌍으로 먼저 읽는 것이 덜 지루할 수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자로서 홉스봄의 이론적 문제의식이 잘 들어나는 저술들은 전혀 다르다. 국역된 책들 가운데 그가 최초로 출간한 <시초적 반란>(<원초적 반란>(온누리 펴냄, 1984년))은 마르크스의 <자본>에 나오는 '자본의 시초적 축적'에 빗대어 제목을 구상했다고 여겨지는데, 자본주의의 시초적(primitive) 침투 과정에서 기존의 농민, 빈민, 장인들이 어떻게 저항하고 투쟁했는지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이는 농민들 가운데 일부가 의적(social bandits)이 되고 혁명가가 되는 과정을 추적한 <밴디트>(이수영 옮김, 민음사 펴냄)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 <저항과 반역 그리고 재즈>(에릭 홉스봄 지음, 김정한·정철수·김동택 옮김, 열림카디널 펴냄). ⓒ영림카디널
또한 <보통이 아닌 사람들(uncommon people)>(<저항과 반역 그리고 재즈>(김정한·정철수·김동택 옮김, 열림카디널 펴냄))은 역사의 곁가지에 불과한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평범하지 않은 집단적인 실천에 나서고 사회를 변화시키는지를 탐구한다. 아마 셜록 홈즈라면 사건을 해결하는 데 곤혹스러워 할 '아무 특징 없는 흔해 빠진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사실 홉스봄이 톰슨과 함께 '아래로부터의 역사' 내지 '풀뿌리 역사'를 역사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정립하는 데 크게 기여한 바 있다.

더구나 앞서 인용한 <혁명가>에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이고 공산주의 혁명에 뛰어든 학생, 지식인, 노동자들이 직면했던 곤경과 문제점들을 치밀하게 분석한다. 이런 저술들은 홉스봄의 주요 문제의식이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반란과 반역의 주체로 참여하고 변화하는지에 놓여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홉스봄은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사회주의로 이행할 수밖에 없다는 진화주의적 역사관을 견지했지만, 반면에 그 이행 과정은 실증주의에서 주장하는 자연 법칙처럼 이루어지지 않으며, 내세울 것 없는 수많은 익명의 개인들이 집단적인 실천으로 나아가는 조건과 계기들이 필요하며, 이것을 밝히는 것이 역사가의 과제라고 믿었다.

힘없고 가난한 자들과 한 편에 서려고 했던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었다면 홉스봄의 이와 같은 문제의식과 연구 성과들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의 시대적 고민과 과제가 현 체제에 대한 반란, 반역, 봉기가 어떻게 일어나며 일으킬 수 있는가 하는 데 있다면, 홉스봄의 역사학은 소중한 유산이 아닐 수 없다.

홉스봄의 자서전인 <미완의 시대>의 원제는 "흥미로운 시대(interesting times)"이다. 혹자는 고대 중국에서 기원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서양인들이 즐겨 쓰는 속담으로 'may you live in interesting times'가 있다. 일종의 저주라고 하는데, 직역하면 '흥미로운 시대에서 살아봐라'가 되겠지만, '파란만장한 세상에서 뒹굴어봐라'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에게 20세기는 '흥미로운 시대'였고, 자서전에 나오는 표현대로 하자면 "별나게 끔찍한(extraordinary and terrible)" 시대였다. 저주 섞인 속담처럼 그는 '흥미로운 시대'에서 파란만장하게 살았다. 예컨대 <극단의 시대>(김동택 옮김, 까치 펴냄)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1919년 바이에른 소비에트 혁명에 목숨을 걸고 참여했으며 한때 연인이었던 두 명의 독일 젊은이가 있었다. 부유한 변호사의 딸인 올가는 그후 브라질의 반란을 지원하는 활동에 뛰어들었다가 반란 지도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했고, 혁명이 실패한 후 브라질 정부의 손에 히틀러의 독일로 인도되어 정치범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학교 선생이었던 오토는 코민테른의 중국 군사 전문가로 활동하여 유일한 외국인으로 '대장정'에 참여한 후에 모스크바를 거쳐 동독으로 돌아왔다.

이 에피소드를 전하며 홉스봄은 20세기가 아니라면 서로 얽힌 두 인생이 언제 어떻게 이런 모습을 취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홉스봄도 다르지 않다. 1917년 혁명이 일어난 해에 세상에 나와서 세계 전쟁과 대공황을 겪으며 베를린에서 히틀러의 집권을 목격하고, 스탈린이 죽은 다음 해에 이방인으로서는 드물게 소련에 가서 직접 시체까지 돌아보고, 아바나에서 체 게바라에게 통역을 해줬으며, 한때 인류의 미래라고 여겼던 소련이 해체되는 것을 두루 경험한 홉스봄의 삶에는 흔히 볼 수 없을 만큼 파란만장함이 있다.

물론 이 난세에서 그는 페리 앤더슨의 말처럼 결국 패배한 좌파로 남았을지 모르지만, 패배한 것과 굴복한 것은 같지 않다. 그리고 이제 홉스봄은 자신이 즐겨 인용했던 혁명가들의 농담처럼 '죽음으로써 휴식을 얻었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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