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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의 눈물 "구럼비야! 너에게 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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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의 눈물 "구럼비야! 너에게 나를 보낸다"

[85호 크레인에서 보내는 애가] <구럼비를 사랑한 별이의 노래>

몇 년 전, 제주도 올레길을 걷다 '해군 기지 반대' 노란 깃발이 나부끼는 강정 마을에 닿았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저렇게 서 있었던지 깃발은 이미 빛이 바래 있었고, 천막은 무너질 듯 바닷바람에 온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이런 마을에 해군 기지가 들어선다니 말도 안 돼, 하고 생각하며 바닷가로 내려섰고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서 홀로 사람을 기다리던 서명 용지에 반대 서명을 하고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바위는 피가 도는 듯 참 따뜻했으며 갯강구, 작은 게 등이 빨빨 돌아다니고 있었고, 이름 모를 갯풀 등이 바람에 하늘거리며 부지런히 제몫의 삶들을 꾸려가고 있었다.

그 따뜻하고 너른 바위가 구럼비라는 건 크레인 위에 올라와서야 알았다. 한진중공업의 정리 해고 싸움이 급박했듯이 강정의 해군 기지 싸움도 급박했다. 크레인을 포위한 용역들과 시시각각 힘겨운 싸움들이 벌어질 때 강정에서도 하루에도 몇 번 씩 사이렌이 울렸고, 우리 조합원들이 모이기만 하면 연행될 때 강정에서도 매일 사람들이 끌려갔다.

용역들이 한진중공업 크레인을 포위해서 크레인이 완전히 고립됐을 때, 구럼비에도 바리케이드가 쳐지고 구럼비로 들어가는 길은 막혔다. 크레인을 보기 위해 공장 담을 넘던 사람들이 죄인이 되고 구럼비를 보기 위해 철조망을 넘던 사람들이 전과자가 됐다.

21세기. 자본은 신천지가 도래한 듯 '내게 소원을 말해 봐' 하고 속삭였지만, 인간의 삶은 이렇게 곳곳에서 파괴되고 있다. 자본이 말하는 신세계가 결국은 가난하고 소박한 사람들의 삶을 빼앗아 자본의 영역을 넓히는 일임을 용산, 강정,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은 처절히 증명하고 있다.

▲ <구럼비를 사랑한 별이의 노래>(김선우·전석순·이은선 지음, 나미나 그림, 단비 펴냄). ⓒ단비
두발로 서기 시작하던 날부터 구럼비에서 멱을 감으며 부모를 기다리다 이제 부모의 자리에서 구럼비가 삶의 자리가 된 사람들. 김선우, 전석순, 이은선이 같이 쓴 <구럼비를 사랑한 별이의 노래>(나미나 그림, 단비 펴냄)는 그런 사람들의 애끓는 연서다.

한별이는 엄마가 없다. 아니 구럼비가 엄마다. 엄마가 없는 아이들이 엄마는 하늘나라에 있다고 믿듯이 한별이는 엄마가 바다로 갔다고 믿는다. 그리고 엄마가 보고플 때마다 엄마가 못 견디게 그리울 때마다 구럼비에 나가 엄마를 기다린다. 그리고 어른이 되면 멋진 해군이 되어 아빠와 고모를 지키고 민지를 지켜주마 약속한다.

그런데 어느 날 마을에 해군 기지가 들어선다는 소문이 돌고 엄마가 별이 반짝이는 것 같다던 밀감 밭을 밤낮으로 키우던 아빠는 구럼비를 지키기 위해 밤에도 집엘 못 들어오는 날들이 이어진다. 어린 한별이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강정 바다 파도만큼 들뜨게 했던 민지마저 마을을 떠난다.

해군이 되어 구럼비를 지키고 싶어 했던 한별이의 꿈은, 구럼비를 산산이 부수고 아빠와 마을 어른들의 멱살을 잡는 해군을 보며 혼란스럽게 부서진다.

얼마나 부서져야 평화는 오는가.
얼마나 울어야 삶은 지켜지는가.
얼마나 짓밟혀야 우리는 일어서는가.

작년 크레인위에서 309일.
가장 그리운 건 사람이었다.
가장 절박한 건 일상이었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씻고, 자고, 먹고, 옷을 갈아입는 일상.
그 소박한 일상을 되찾기 위해 5년을 싸우는 사람들이 강정에 있다.

"'지더라도 해야 하는 싸움이 있다'는 심정으로 강정앓이를 시작했으나 '져서는 안 되는 싸움이 있다'는 절박한 문장이 어느새 마음속에 자라나" 열일을 제쳐두고 책을 쓴 작가들. 오늘도 평화로운 일상들을 빼앗긴 채 싸우다 짓밟히고 끌려가는 평화 지킴이들 그리고 강정 주민들이 있는 한 강정은 결국 지켜질 것이라 믿는다.

이 책의 글쓴이 중 한 사람인 시인 김선우는 구럼비 같은 작가다. 따뜻하면서도 굳세고 부드러우면서도 뿌리가 깊은.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찾아 춘천에서 부산까지 몇 번이고 달려오던 사람. 조금이라도 가까이에서 나를 보겠다고 담을 넘은 죄로 경찰, 검찰에 차례로 불려 다니면서도 뜨거운 시를 쓰던 사람.

전기도 끊어진 크레인 위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가 아득해지는 새벽이면 긴 문자로 노래하듯 시를 읊듯 희망을 전해주던 사람. 그 간절하고 애틋한 마음이 이제 구럼비를 향하건만 구럼비는 문자를 받을 수도 답장을 할 수도 없다.

그 애끓는 마음을 구럼비가 듣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번 강정 평화 대행진을 다녀오며 썼던 편지를 구럼비에게 보낸다.

기억하니?
몇 년 전 만난 너는 참 따뜻하고 온화했다.
내 몸속으로 너의 생명이 흐르고 맥박이 뛰던 너는 펄떡펄떡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구럼비야.
널 생각하면 그 모질던 85호 크레인이 떠오른다.
철조망에 갇혀 꼼짝도 못하는 구럼비야.
네 몸을 산산이 부수는 포클레인과 온갖 중장비와 폭약이 펑펑 터져도 한 발짝도 못 움직이는 구럼비야.
찢기면서도 울지도 못하는 구럼비야.
혼자 갇혀 얼마나 무섭겠니.
혼자 견뎌야 하는 시간들이 얼마나 두렵겠니.
구럼비야. 조금만 더 견뎌주렴.
네 몸 위에서 살이 여물고 뼈가 자란 사람들은 널 잊은 적이 없단다.
널 지키고자 매일매일 전쟁을 치르는 사람들은 널 오롯이 기억하고 있단다.
존재만으로도 평화였던 구럼비야.
작년 희망 버스를 타고 먼 길을 달려 와 간절히 손을 흔들고 폭력에 맞서 싸우던 사람들이 오늘은 널 위해 노래하고 기도한다.
구럼비야. 우리의 노랫소리가 들리니.
너에게로 가기위해 먼 길을 걷고 또 걷는 우리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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