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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직', '창업'…원하는 게 정말 '출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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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직', '창업'…원하는 게 정말 '출판'이야?

[프레시안 books] <편집자로 산다는 것> 서평에 답한다

이 글은 '프레시안 books' 91호에 실린 김류미 씨의 서평(☞관련 기사 : 편집자=저자와 사장의 심부름꾼? 그럼 나는?!)에 대한 출판평론가 변정수 씨의 답변입니다. 김 씨가 만든 '가상의 지망생'이 던진 질문에 변 씨가 상세히 답했습니다. 역동적인 출판계를 위한 편집자 지망생, 그리고 신구 세대 편집자 간의 활발한 논의를 기대합니다. <편집자>

<편집자로 산다는 것>(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펴냄)에 대한 김류미의 서평은 독특하다. 가상의 인물을 동원하여 6명의 저자들(강주헌, 변정수, 정은숙, 이홍, 김학원, 정민영)에게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책에는 각 저자의 글마다 질의응답이 붙어있는데, 아예 이 부분을 김류미에게 맡겼더라면, 책이 훨씬 알찼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혹은 그랬다 하더라도 김류미는 또 다른 질문거리들을 만들어냈겠지만….

실은 책은 이렇게 읽는 것이다. 저자에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던져가면서. 그런 점에서 이 서평은, '독서 행위의 연장'으로서가 아닌 '독서 행위의 일부'로서의 서평이라는 내 지론을 가장 잘 실현시킨 사례 중 하나로 손꼽을 만하다.

아무려나, 가상의 편집자 지망생이라도 내게 질문을 던졌으니 대답을 해야겠다.

(그런데 김류미는 소설가가 되었어도 좋았을 것 같다. 허구의 인물이 분명한데도, 질문 내용이 너무나 그럴 듯하다. '리얼리티'가 생생하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런 내용의 질문을 많이 받기도 한다.)

*

문 : 그렇다면, 단순히 출판사에 편집자로 '취직한다는 생각'은 불순한 걸까요?

답 : 불순한 것이 아니라, 비현실적인 것입니다. 저는 지금 한 사람의 '꿈'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가치를 창출하고 그 대가를 받아야 하는' 직업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직업을 가질 방법은 없습니다. 그런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그런 직업이 생겨나도록 노력하는 것도 매우 훌륭한 일입니다.

그래도 그 과정을 걷는 동안에도 먹고는 살아야겠지요. 게다가 그 과정은 어쩌면 현실적으로 자신의 꿈과는 거리가 먼 편집자라는 직업을 감당하는 일보다 훨씬 더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아니 틀림없이 그럴 것입니다. 그래도 당장은 비현실적인 그 꿈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길을 가겠다면 그건 얼마든지 격려해 드리겠습니다. 단, 꼭 편집자가 아니더라도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직업을 통해 제 밥벌이는 제 손으로 해결한다는 전제 아래에서 말입니다.

문 : 남들만큼 공부하고 심지어 책은 더 읽어 왔고, 외국어도 조금 하고 낮은 연봉을 감수할 생각인데도, 왜 신입을 뽑지 않을까요?

답 : 일반적인 경향에서 이 지적은 옳습니다. 경력자를 원하지만, 신입이 진입하지 않는데 경력자는 하늘에서 떨어지느냐는 흔해빠진 지적도 당연히 옳습니다. 여기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출판 노동력 시장이 과포화 상태라는 겁니다.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는 경력자도 줄을 서 있는데, 굳이 신입을 채용하는 모험을 감내할 메리트가 없다고 보는 건 무리가 아닙니다. 다음으로 제가 다른 글에서 지적했듯이 책을 만들겠다는 사람들이 독자라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고급 독자가 못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주 드물게 정말 제대로 준비된 사람을 만나는 일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그 한 명을 찾아내기 위해 전혀 고려의 여지도 없는 막연한 지원서를 수십 장씩 검토해야 하는 건 현실적으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야 하는' 출판사에서 엄두를 내기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대개 출판사에서 일손을 구할 때는 일하고 있던 사람이 빠진 경우입니다. 가뜩이나 일손이 빠져나가 업무 부담이 가중돼 있는 상태에서 채용 과정이라는 부담까지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고 보면, 어떻게든 가장 손쉽게 그 과정을 치러내고 싶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 두 가지 요인을 어떻게 넘어설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이런 상황 속에서도 신입을 채용하는 모험을 감행하는 회사도 없지 않습니다. 그건 우선 사실 경력자도 믿을 수 없게 된 현실과 관련이 있습니다. 자칫 심각하게 오도된 현장 경험을 '고쳐'쓰느니 백지 상태에서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고 그것을 평소에 충분히 바깥으로 분출해 출판사의 가시권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출판사가 채용 과정에서 떠안아야 하는 부담을 줄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훨씬 유리한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실은 그와 상관없는 한 가지 경우가 더 있기는 한데 지망생들의 주의를 요합니다.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지망생을 별다른 검증도 없이 채용하는 경우는, 막말로 '당장 필요한 일손을 일단 싼 맛에 쓰고 버리겠다'는 무책임의 발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발상에서 사람을 구하는 출판사에서의 경험이 '커리어'에 도움이 될 리도 없고, 더 심하게 말하면 약속된 급여라도 제대로 받을 수 있다면 다행인 경우가 많습니다. ('일을 이 따위로 해놓고 돈 달라는 소리가 나오느냐'는 식으로 오리발을 내밀어 사회 초년병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주는 '허접'들이 출판사 간판만 걸어놓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문 : 왜 출판사는 1~2년차나 10년차가 만든 책의 질은 독자들이 동일하게 느끼길 바라면서 월급은 많은 차이가 나는 걸까요?

답 : 그건 책을 만드는 매무새의 문제가 아니라 철저하게 '흥행 실적'의 문제일 뿐입니다. 신인 감독에게나 베테랑 감독에게나 요구되는 영화의 완성도가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왜 신인 감독의 개런티와 베테랑 감독의 개런티가 차이가 나는 걸까요. 물론 거액의 개런티를 받은 감독도 흥행에서 실패할 수 있을 테고 신인 감독도 대박을 터뜨릴 수 있지만, 그 실적에 따라 다시 몸값에 차이가 생기겠지요. 결국 얼마나 실적을 낼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 역량을 검증할 근거가 많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는 '투자 위험도'에서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제가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경력이 쌓여 가면 급여에 대한 기대 수준이 올라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가령 자신의 경력이라면 연봉 4000만 원은 받아야겠다고 생각하는 편집자가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에 값하는 실적을 못 냅니다. 그러면 자의반 타의반으로 회사를 나오게 될 수도 있겠지요. (영화감독으로 치면 다음 작품의 계약이 어려워지는 셈이지요.)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현실적으로 그 정도 급여를 보장해주는 일자리는 극히 협소하기 때문에 기가 막히게 운이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재취업 자체가 어려워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1년쯤을 일자리를 찾다보면, 결과적으로 4000만 원 받고 1년 일하고 그런 일자리를 찾느라 1년쯤 일손을 놓는 일이 되풀이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 2000만 원 받으면서 그냥 죽 일하는 것과 실제 수입에서는 별반 다를 바 없게 됩니다. 그러니까 경력자라고 해서 꼭 높은 연봉을 받는 건 아닙니다. 제아무리 화려한 경력이라도 그것이 곧바로 실적을 보장하지는 않으니까요.

문 : 그런데 '책임 편집'이 뭔가요? 노동자보다는 자영업자의 성격에 가까운 일이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역시 창업을 하라는 말씀이신지요?

답 : 이 맥락에선 그렇게 보아도 무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말 그대로의 의미는 아닙니다. 창업을 한다고 했을 때 제일 문제가 되는 건 뭐겠습니까. 결국 '자본'입니다. 저는 그런 '창업'이라면 결단코 말리겠습니다. 출판 시장의 독점이 심화되면서 소규모 자본으로는 살아남기가 어렵고 애써 마련한 피눈물 나는 창업 자금을 그냥 고스란히 수업료로 바치고 손을 털어버리기 십상입니다.

그러면 어찌할 것인가. '남의 돈'으로 창업을 하는 겁니다. 그런 맥락에서 '출판사에 편집자로 취업'한다는 것은 실은 '출판사의 자금으로 내 출판사를 창업'하는 일이며 취업하려는 사람에게는 그런 자세와 각오, 준비가 필요하다는 의미지요. 그런데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게 투자받아 실적을 내지 못한다고 투자금을 돌려달라고 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일반적으로 '남의 돈'으로 창업하는 일과는 분명 다르지만, 투자에 값하는 실적을 올리지 못하면 더 이상의 투자를 받을 수 없다는 점만큼은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문 : 근데 정말 선생님 말씀대로 저는 책 뭐 하러 만들려고 하는 걸까요?

답 : 그게 문제의 핵심입니다. 스스로 대답해야겠지요.

문 : "책은 생각을 매개로 관계를 만들어내는 물건"이라는 말씀하셨는데 "책을 만들고 있다는 일용할 허위의식"을 한 번이라도 느껴보고 싶습니다.

답 : 그럼 자기 돈으로 하세요. 왜 그 알량한 허위의식에, 가뜩이나 열악한 출판사에서 이미 자신의 삶을 걸고 죽어라 노력하는 사람들이 나누기에도 빠듯한 피 같은 자금을 투자해야 하며, 왜 그 알량한 허위의식에 펄프 1그램도 기름 한 방울도 안 나는 나라에서 종이에 잉크를 묻히는 자원 낭비를 해야 하나요? 자신의 삶을 통째로 걸고 달려들어도 폐지더미가 되기 일쑤인 절망적인 시장 환경에서, 하물며 허위의식으로 폐지가 아닌 '책'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정말 오산입니다. 착각은 자유지만, 그 부담은 자신이 지는 게 옳겠지요.

문 : 동네 소식을 잘 아는 직원을 싫어한다면, 업계 소식은 귀 닫고 세상 돌아가는 일 모르고 살아도 좋으니 역시 취직이 하고 싶습니다.

답 :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취직이 안 되는 겁니다. 그런 수동적인 자세를 가진 사람을 편집자로 채용하는 출판사도 없을뿐더러(있다면 위에서 말한 '허접'들이겠죠.) 운 좋게 취직이 되었다 해도 그런 자세를 유지하는 한, 단언컨대 몇 년 못 가 '무능한 편집자'로 전락하고, 일자리를 잃게 될 겁니다. 왜 다른 사람 아닌 내게, 출판사가 투자할 만한 메리트가 있는지를 효과적으로 설득할 수 없다면, 편집자로 취직하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 <편집자로 산다는 것>(강주헌·변정수·정은숙·이홍·김학원·정민영 지음,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펴냄).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문 :
왜 편집자가 되고 싶냐고요? 책을 좋아해서요. 어떤 출판사를 생각하냐고요? 일단 경험을 쌓아야 하는데 그런 걸 가릴 처지가…. 아, 이건 다음 메일에 쓸게요. 답변해주세요.

답 : '왜 소설가가 되고 싶냐고요? 소설 쓰는 게 좋아서요. 어떤 소설을 쓰고 싶냐고요? 일단 등단부터 해야 하는데 그런 걸 가릴 처지가…' 이런 소설가 지망생이 등단할 수 있을까요? '왜 축구선수가 되고 싶냐고요? 축구가 좋아서요. 어떤 포지션에 자신 있냐고요? 축구를 해봤어야 알지요. 일단 후보 선수라도 돼야 하는데 그런 걸 가릴 처지가…' 이런 사람을 축구선수로 뽑아줄 프로구단 있을까요?

출판사는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을 활용해서 책을 만들어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는 곳이지, 아무 경험도 없는 사람을 데려다가 경험을 쌓게 해주는 곳이 아닙니다. 회사는 학교가 아니지요. 일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 배운 걸 써먹어 가치를 만들어내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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