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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난도질한 소설, CSI의 눈으로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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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난도질한 소설, CSI의 눈으로 복원?!

[한만수의 '백 년 동안의 검열'] 80년 만에 부활한 <소금> ①

식민지 시기 단행본이나 잡지에 대한 검열은 여러 단계를 거쳤다. 먼저 원고로 검열한 뒤에 책이 나오면 다시 검열을 거쳐야 판매를 허용했다. 두 번째 검열에서는 주로 수정 및 삭제 지시를 제대로 이행했는지를 확인했다. 물론 원고 검열 이후에 검열 지침이 바뀐 것이 있으면 새 지침에 의해서 검열했고, 1차 검열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걸러내기도 했다.

작가 강경애의 대표작 중 하나인 <소금>(1934년)은 바로 인쇄된 이후의 검열에 의해 결말 부분 약 300자가 삭제되었다. 원칙적으로는 다시 인쇄해야 했지만 너무 번거롭고 자원이 낭비된다는 불만이 높아서 말썽이 된 부분만 삭제하고 판매하는 것을 허용했다. 소위 '분할 할부' 제도이다.

이런 경우 책의 일부를 삭제하는 방식은 두 가지였다. 아예 말썽이 된 지면을 오려내 버리는 것과 일일이 붓으로 먹칠을 하는 것. 잘라내는 편이 작업은 더 쉽지만 그렇게 되면 멀쩡한 뒷면의 내용까지 사라지게 되니 붓질을 한 경우가 많았다. 오려낸 경우는 복원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붓질은 그래도 뭔가가 남아 있긴 하니까 복원을 시도할 언턱거리가 남아있는 셈이다. 그렇게 해서 붓질로 삭제해 버린 글자들을 복원한 이야기를 좀 해보자.

문학 작품의 생명은 그 결말 부분에 있음은 두루 아는 바와 같다. 그런데 바로 그 결말을 삭제 당했으므로, <소금>은 매우 기형적인 텍스트로 남아있었다. 그저 읽을 수 없겠거니 생각해오다가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스쳐갔다. "정말 읽을 수 없는 걸까. 과학이 이렇게 발달했는데, CSI 같은 드라마를 보면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것들을 단서로 삼아서 범인을 잘도 잡아내지 않던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떠올랐다. "밑져야 본전, 한 번 시도해보자."

그러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문서감식실에 소개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 전화를 돌리려던 순간 이런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복원을 했다고 치자. 그 결과를 내가 어떻게 믿지?"

먼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역량을 시험해 보기로 했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방식으로 삭제되었으되, 삭제 이전의 글자들을 알 수 있는 텍스트를 먼저 의뢰해 보자. 그 결과를 믿을 수 있다면, <소금>의 복원을 의뢰하고 그 결과를 믿어도 좋겠지. <조선의 언론과 세상>(1927년)이라는 텍스트를 선정했다. 마침 내가 재직 중인 동국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어서 관외 대출하기가 쉽고, 같은 책이 일본에서 영인되어 나왔는데 그 판본에는 붓질이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니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복원의 신뢰성을 테스트하기에는 더없이 적절했다.

물론 백일몽에 가까웠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는 복원을 도와주겠다는 어떤 약속도 해준 바 없었으니까. 내가 생각해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뚱딴지같은 부탁을 들어줄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으니까. 하지만 해보지도 않고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리저리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양후열 문서감식실장을 소개받아 찾아갔다. 길게 설명하는 동안 흥미를 가지고 들어주는 듯했지만 그의 답변은 역시 부정적이었다.

"교수님 잘 알겠습니다. 또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라는 점도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학문 연구를 돕는 기관이 아니라 범죄 수사를 하는 곳입니다."
"양 실장님. 이 작품은 일제의 검열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인류 문명과 민족에 대한 중대한 범죄 행위 아니겠습니까."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그는 이윽고 대답했다.

"두고 가십시오. 일주일쯤 뒤에 연락드리겠습니다."

역시 민족주의는 힘이 세다.

▲ <조선의 언론과 세상> 317쪽 먹칠 부분. ⓒ한만수
정확하게 11일 뒤에 연락이 왔다. 곧바로 달려가서 해독된 이미지를 볼 수 있었다. 양실장의 설명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인쇄 잉크와 붓질한 먹의 화학적 성분은 카본 블랙(carbon black)으로 같으므로 화학적 방식으로는 분리하기 어렵다. 더구나 귀중본을 함부로 화학적 처리를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요즘의 컴퓨터 인쇄와는 달리 재래식 활판 인쇄에서는 활판이 종이를 누른 자국 즉 압흔(壓痕)이 남는다. 압흔에만 칠해진 카본 블랙(인쇄 먹)과 압흔 이외의 부분에까지 칠해진 카본 블랙(붓질 먹)은 미세하지만 물리적으로는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적외선과 자외선을 쏘여보기도 하고, 책의 뒷장에서 강한 빛을 쏘여보기도 하면서 그 압흔을 추적한 결과, 먹칠되기 이전의 압흔, 즉 활자로 인쇄된 글자들을 복원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해독으로 밝혀진 317쪽 먹칠 부분의 내용. 그 결과는 "慶北大邱府南山町四九 趙 楊 春"이다. 영인본에는 "慶北大邱府南山町四九 趙 楊 春"로 동일하다. ⓒ한만수
뛸 듯이 기뻤다. 양 실장도 자못 감격스러워하면서 앞으로도 복원에도 협조해주겠노라 약속했다. 하지만 아직 검증 작업이 남아 있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을 나오자마자 일본 영인본과 비교해봤다. 붓질된 곳은 모두 네 군데. 붓질이 비교적 흐리게 된 곳은 100퍼센트 해독되었고 100퍼센트 정확했다. 하지만 붓질이 짙은 다른 세 군데는 해독율과 정확도가 다소 떨어졌다. 결국 전체 51자 중에서 36자를 해독했고 일본본과 일치되는 해독은 30자였다. 결국 59퍼센트만을 정확하게 해독한 셈이었다.

조금은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역시 현대 과학으로도 못 해내는 것이 있구나, 말하고 보니 당연한 이치였다. 현대인인 우리는 얼마나 많이 과학에 대한 맹신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공연한 일을 벌였구나 싶기도 했다. 그냥 처음부터 <소금> 복원을 의뢰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복원 결과를 발표했더라도 사람들은 믿어줄 텐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어느 정도 신뢰성은 보장할 수 있었을 텐데. 70여 년 만에 한국 문학의 주요 텍스트의 원본을 복원해냈다는 적지 않은 학문적 성과였을 텐데. 적지 않게 학계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왜 내가 스스로 그 기회를 걷어차 버렸던가.

<소금> 복원은 어찌해야 할 것인가. 59퍼센트라, 이런 정도의 정확성으로도 복원했노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차라리 양 실장에게 결과가 그다지 만족스럽지는 못했노라고 고백하고 차라리 포기하는 게 낫지 않을까. (<소금>복원 이야기는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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