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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형을 당할 때도 그는 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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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형을 당할 때도 그는 떨지 않았다!

[한만수의 '백 년 동안의 검열'] 누가 누구를 두려워하는가

소크라테스, 예수, 간디, 단테, 밀턴,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브루노, 토머스 모어, 존 로크, 스피노자, 볼테르, 하이네, 톨스토이, 마르크스, 루소, 토머스 페인, 연암 박지원, 다산 정약용……. 이름은 지면이 부족할 정도로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대개 눈치 챘겠지만, 모두가 검열의 희생자이다. 이들은 자신의 사상과 가르침 때문에 공직에서 떨려나거나 아예 타국으로 추방당하거나 저작이 압수당하거나 투옥되었다. 심지어는 소크라테스, 예수, 브루노, 간디처럼 목숨을 잃어야 했던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이들은 끝내 자신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너무 잘 알려져 있는 사례들은 제외하고, 몇몇 경우만 골라서 어떤 고초를 겪고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간략하게 살피자.

아무래도 존 밀턴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는 영국의회가 출판 허가제를 도입하자 검열에 반대하고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여 <아레오파기티카>을 냈다. 사전 검열제를 의무화한 법률을 정면으로 위반한 채, 검열을 거치지 않았고 출판인 이름 등도 밝히지 않았다(현재까지도 모든 책에는 출판인, 발행인 이름을 명기하도록 되어 있는 바, 이는 유사시에 처벌받을 책임자를 밝히라는 요구이기도 하다). 검열에 반대하는 책이니 검열 제도에 정면 도전하는 방식으로 출판했던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회적 혼란을) 출판 허가제로 방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공원 문을 닫아버림으로써 까마귀들을 가두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용감한' 사람이다."

코페르니쿠스는 자신의 저작 <천체의 회전에 대하여>를 완성 짓고도 13년간 감추어두었다가 1543년, 즉 자신이 숨지던 해에야 출판한다. 죽음에 직면해서야 용기를 낸 것이다. 그것도 친구에게 자기 저작의 개요를 보여준 뒤, 친구가 먼저 비슷한 책을 내고도 처벌받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용기를 냈다. 덕분에 그는 아무 처벌을 받지 않았지만, 그의 후계자들은 이단으로 몰려 수난을 당해야 했다.

▲ 교황청 추기경 위원회로부터 심문을 받는 갈릴레이(오른쪽). ⓒnavercast.naver.com
갈릴레이는 코페르니쿠스를 복권하려다가 시련을 겪는다. 교황청은 물론이요, 루터와 칼뱅 등 프로테스탄트의 핵심 이론가들조차 코페르니쿠스를 비판했다. "여호수아는 지구가 아니라 태양을 향해 멈추라고 명령했다"는 것이다. 스스로가 '항의자(프로테스탄트)'로서 교황청으로부터 온갖 핍박을 받은 사람들이, 자신과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남을 억압하는 형국이라니. 병든 몸을 이끌고 종교재판에 끌려간 갈릴레이는 "곰곰 생각해보니까 내가 잘못 생각했노라" 말한다. 물론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중얼거렸다지만, 그 말을 과연 누가 들었는지 의심스러우니 역시 '신화'에 가깝다.

갈릴레이가 겪었던 공포는 주로 지오다니 브루노를 떠올린 탓이었을 것이다. 갈릴레이가 재판받기 10여 년 전에 브루노는 지동설을 받아들여 신학적으로 해석했다가 이단으로 밀고 당했다. 평생 쫓겨 다니고 투옥 당했던 그는 교황청에 마지막 감금을 당하게 됐다. 7년 동안 불로 온몸을 지지는 등 잔혹한 중세적 고문을 당했지만 믿음을 철회하지 않았고 끝내 로마광장에서 산 채로 불태워졌다.

다산 정약용이나 연암 박지원은 정치적 압박에 못 이겨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고 완화된 처벌을 받았다는 점에서 갈릴레이 쪽에 속한다. '도끼 상소'(내 상소가 옳지 않거든 이 도끼로 내 목을 치시오)에 나섰다가 유배나 죽음을 당한 무수한 조선의 선비들은 브루노 쪽이라고 하겠다. 물론 세상에는 또 한 계열의 인간들이 있으니, '지당 대신'의 계열이다. 즉 "전하의 말씀이 천번 만번 지당하시옵나이다" 만을 외워대는 사람들이다.

'지당 대신'을 넘어서 아예 검열관 노릇을 자임한 언론인의 숫자가 검열당한 사람들보다 훨씬 많다는 점은 우리 언론사의 비극이다. 1980년 광주 학살 때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한 거의 모든 언론인은 '위험한' 기사에는 아예 손대지 않았다. 광주는 고립되었고 처참하게 진압 당했다. 아니 우리 언론은 전두환이 쓴 시나리오 그대로 보도했으니 다른 지역 사람들은 그 시나리오만을 통해서 광주를 구경하는 '관객'에 머물렀다. '광주'는 빨갱이, 과격분자로 인식되었다.

오늘날도 광주에 대한 편견은 그다지 완화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교묘한 방식으로 심화되기까지 했다. 예컨대 호남에는 왜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나오질 않느냐, 이것도 지역감정 아니냐는 식으로 몰아가는 보도 방식. 뜻밖에도 많은 국민들이 여기에 세뇌되어 있다. 아마도 많은 국민이 지니고 있는 광주에 대한 트라우마를 합리화해주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호소력을 지니는 것이리라. 하지만 과연 그런가. 학살 피해자 가족들이 학살자의 계보를 잇는 정당에 표를 주어야 한다고? 주지 않으면 지역 감정이라고? 학살 피해자들에게 반성문까지 요구하는 후안무치를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가. 그들은 무엇을 지키기 위해 저런 궤변을 서슴지 않는가. 아니, 그들은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브루노는 사형 판결을 내린 심문관에게 "사형 판결을 받는 나보다도 판결을 내리는 당신들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 아니오?"라고 물었다. 그의 일갈은 검열 행위의 핵심을 꿰뚫는다. 검열 권력은 투옥과 분서(焚書)와 사형을 통해서 자신의 힘을 과시하지만, 그 권력이야말로 두려워하고 있는 주체이다. '쫄고 있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그들인 것이다. 떳떳한 인간들은 두려움이 없고, 두려움이 없는 권력은 검열하지 않는다. 오늘 대한민국에서 국민, 특히 네티즌의 입을 기를 쓰고 틀어막으려는 자들은 과연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인가.

소크라테스, 예수, 간디, 단테, 밀턴,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브루노, 토머스 모어, 존 로크, 스피노자, 볼테르, 하이네, 톨스토이, 마르크스, 루소, 토머스 페인, 연암 박지원, 다산 정약용……. 이들의 가르침을 빼고 인류의 지성사에 대해 말할 수 없다. 이분들은 아마도 영원할 것이지만, 이들을 검열했던 권력자나 검열관의 이름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인류의 사상사, 그리고 표현 자유를 위한 투쟁이란 피로 점철되어 있고, 그 투쟁에 힘입어 진전되어 왔다. 역사의 흐름이 이러할진대, 결국 두려워하는 것은 그들 검열 권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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