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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종말? 거의 모든 것의 최후가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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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종말? 거의 모든 것의 최후가 궁금하다면…

[이명현의 '사이홀릭'] 크리스 임피의 <세상은 어떻게 끝나는가>

주기적으로 서평을 쓰기 시작하면서 내가 책을 읽는 방식도 많이 변했다. 우선 책을 많이 읽지 못하게 되었다. 한 달에 마흔 권 정도를 읽었었는데 요즘은 여섯 권 남짓 읽고 있다. 오랫동안 속독을 해왔는데 요즘은 정독을 한다. 낯선 책들을 주로 읽었었는데 친숙한 대중과학책을 많이 보게 되었다.

시집은 매달 다섯 권을 읽었는데 먼저 쭉 훑어보다가 마음에 드는 시가 나오면 소리를 내어 몇 번이고 낭독하고 하면서 편하게 읽었다. 소설도 열 권 정도를 손에 잡았는데 보통 빠르게 여기저기 훑어보다가 마음에 들면 처음부터 다시 읽는 방식을 택했다. 고전적인 의미에서 '정독'한 것은 두 권 정도였다.

여러 분야의 이런 저런 책들도 열 권가량 읽었다. 주로 그 당시 관심이 새롭게 생긴 분야의 책들이었다. 전체적인 맥락을 잡기 위한 독서를 했다. 두 권 정도를 정독했다. 화집이나 도감도 다섯 권 정도는 꼼꼼하게 챙겨서 봤다. 새로 나온 책은 열 권 정도를 빠른 속도로 살펴보다가 마음에 들면 천천히 읽었다. 대중과학책은 기껏해야 한두 권을 속독으로 살펴보곤 했다.

돌이켜 보면 한 달에 마흔 권을 읽었다고 했지만 대부분 그저 살펴 본 정도였고 사실은 대여섯 권 정도를 완독하고 정독해서 읽은 셈이었다.

서평 에세이를 격주로 연재하면서 책을 완독하고 정독하게 되었다. 자주 반복해서 읽기도 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책을 꼼꼼하게 읽는 것은 지은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다. 정독하고 내재화시킨 후 글을 쓰는 것이 내 서평을 읽을 독자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다른 책들도 정독하는 습관이 들었다. 서평을 쓰기 위해서 읽는 책 세 권, 고르고 골라서 읽는 다른 책 두 권, 되새기면서 천천히 읽는 시집 한 권, 이렇게 여섯 권 정도가 내가 요즘 한 달 동안 정독하는 책의 전부다. 물리적으로 이외에 다른 책을 정독할 시간이 없다. 그리고 서평에서 주로 대중과학책을 다루기 때문에 그동안 던져두었던 과학 분야 책들을 다시 손에 잡게 되었다.

▲ <세상은 어떻게 끝나는가>(크리스 임피 지음, 박병철 옮김, 시공사 펴냄). ⓒ시공사
크리스 임피가 쓴 <세상은 어떻게 끝나는가>(박병철 옮김, 시공사 펴냄)도 그전 같았으면 차례만 훑어보고 그냥 넘어갔을 책이다. 천문학을 전공한 내게는 비교적 친숙한 주제여서 차례만 살펴봐도 어떤 내용이 책에 담겨있을지가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평을 쓰기 위해서 <세상은 어떻게 끝나는가>를 꼼꼼하게 읽기 시작하면서 나는 조금씩 이 책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먼저 <세상은 어떻게 끝나는가>와 함께 세상의 종말을 향해서 달려가 보자.

"당신과 내가 앞으로 죽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어디 보자……. 소수점 다섯 자리를 옮겨서 제곱근을 취하고, 여기에 다시 로그를 취하면…… 거의 끝나 간다…… 오케이, 답이 나왔다. 100퍼센트다!"

'세상은 어떻게 끝나는가', 즉 세상의 종말에 대한 질문을 할 때마다 그 질문의 화살이 제일 먼저 가리킬 곳은 아마도 우리 자신일 것이다. <세상은 어떻게 끝나는가>도 인간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놓으면서 시작된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어떤 형태로든 '죽음'이라는 방식을 통해서 세상과 작별한다. 100퍼센트!

지구에 살고 있는 생명체들은 소행성이나 혜성의 충돌 같은 돌발 상황을 만나거나 지구 자체의 국부적인 변화에 따라서 멸종을 거듭해왔고 그 와중에 살아남은 종은 진화를 계속해서 현재의 생명체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거의 0퍼센트!

"지구에서 바라볼 때 종말에 이른 붉은 태양은 부피가 대책 없이 커지다가 결국은 하늘 전체를 덮어 버릴 것이다.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멀어지고는 있지만, 이보다는 태양이 부풀려지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따라서 지구는 결국 적색 거성에게 잡아먹히면서 파란만장했던 삶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현재 태양의 나이는 50억 살인데 50억 년 정도 더 생존할 것이다. 40억 년 후면 태양은 적색거성이 되어서 팽창과 수축을 거듭하면서 지구를 삼켜버릴 것이다. 지구 생명체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끝장이다. 물론 그 전에 태양계를 탈출할 수 있다면 조금 더 연명할 수는 있을 것이다.

"M31은 초속 130킬로미터(시속 46만8000킬로미터)라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우리를 행해 돌진하고 있다. 앞으로 30억 년이 지나면 은하수와 안드로메다은하는 하나로 합쳐지게 된다."

태양이 종말을 고하기 한참 전에 안드로메다은하(M31)와 우리은하가 충돌해서 합쳐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태양계는 안드로메다은하로 튕겨져 나갈 수도 있고 새로 형성된 타원은하의 중심으로 추락할 수도 있다. 지구의 종말이 더 앞당겨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별의 시대는 이것으로 끝이다. 자연은 은하수의 에너지 효율을 서서히 저하시켜서 종말로 몰고 간다. 은하수는 그다지 특별한 은하가 아니기 때문에, 우주에 퍼져 있는 500억 개의 다른 은하들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겪게 될 것이다. 단, 대형 성단에 속해 있는 은하는 예외이다. 이곳의 은하들은 중력에 의한 혼합과 합병을 계속 하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다. 그러나 대형 성단도 늙거나 죽은 별들로 이루어진 거대 은하로 마감될 것이다."

안드로메다은하와 우리은하가 충돌해서 형성될 타원은하 안에서는 시간이 흐르면서 별들이 탄생하고 죽는 과정이 계속 반복된다. 하지만 이 과정도 영원할 수는 없다. 별을 만드는 재료가 다 떨어지면 더 이상 별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은하도 죽어간다. 위의 인용문에서 옮긴이가 사용하고 있는 용어에 다소 어색한 것들이 있다. '은하수'는 '우리은하'로, '성단'은 '은하단'으로 고쳐 써야 의미도 맞고 자연스럽다.

"먼 미래의 우주에 은하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개개의 죽은 별들이 광활한 우주 공간을 외롭게 떠다닐 뿐이다. 그러다 운수 사납게 거대한 블랙홀을 만나면 곧장 빨려 들어간다. 밤하늘은 완전한 어둠에 잠기고, 오로지 중력만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주는 이렇게 '블랙홀의 성장'과 '별의 증발'이라는 말로 대변되는 암흑세계가 되어갈 것이다. 현재 우주는 가속 팽창을 하고 있다. 가속 팽창의 원동력으로 지목되고 있는 암흑 에너지가 시간과 공간에 대해서 변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서 추정할 수 있는 우주는 이렇다.

"가속되는 상황에서 중력은 새로운 천체를 만들어 낼 수 없으므로 현존하는 천체들은 점점 더 고립될 것이다. 은하단과 은하군은 바르게 커져 가는 시공간 속에서 하나의 점으로 남게 되고, 이들은 다른 은하단이나 은하군과 서로 접촉하고 꼬이면서 조그만 '섬 우주'가 될 것이다. 이 고립된 천체 속에 존재하는 질량은 지평선 안에 존재하는 암흑 에너지의 수조 분의 1에 불과하다. 이때가 되면 물질은 거의 있으나 마나 한 존재가 된다."

우주는 그 후에도 계속 가속 팽창을 할 것이고 "모든 은하에서 방출된 빛들마저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서, 섬 우주 안에는 광자가 하나도 남지 않고, 서서히 변하는 전기장만이 유령처럼 주변을 에워싸고 있을 것"이다. 이때까지도 우주에 생명체가 살고 있다면, "그들은 물질과 복사를 모두 빼앗긴 그들만의 시공간 주머니에 갇혀서 극히 제한된 곳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10100년이 지나면 "양성자는 모두 붕괴되고 별들도 사라지고, 블랙홀은 하나도 남지 않고 모두 증발"한다. 결국 남는 것은 "뉴트리노와 전자, 양전자 그리고 관측 가능한 우주보다 파장이 긴 광자들뿐"이다. 우리가 살던 우주는 결국 영원히 암흑 속에 묻힌 존재로 남을 것이다.

현재 우주는 가속 팽창을 하고 있지만 만약 '가속도가 증가하는' 팽창을 한다면 '빅 립' 같은 더 엄청난 일이 생길 것이다. 요즘 유행처럼 회자되고 있는 다중우주로 이루어진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면 주기가 반복되는 우주 속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은 어떻게 끝나는가>에는 여기서는 다하지 못한 이런 이야기들도 담겨 있다.

"마술 같은 사건으로 가득 찬 이 우주에서 마지막에 어떤 일이 일어나건, 그게 무슨 상관인가?"

크리스 임피는 375쪽에 걸쳐서 인간의 죽음부터 우주의 종말까지 온갖 세상의 '종말' 이야기를 늘어놓고서는 책 끝에서는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너스레를 떤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생활인들에게 그게 도대체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세상은 어떻게 끝나는가>가 연속극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속극은 뻔하게 끝나는 경우가 많다. 가끔씩은 깜짝 놀랄 만한 결말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게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는 연속극의 묘미가 끝이 아니라 극이 진행되는 순간순간에 알콩달콩 이어지는 긴장감 있는 이야기와 이를 표현하는 디테일에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어떻게 끝나는가>는 잘 만들어진 연속극 같은 책이다. 그래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책 곳곳에 유쾌한 이야기가 담겨있고 그 이야기들이 재미있고 디테일하게 소개되고 있다. 이 책에서 우주적 스케일로 이야기하고 있는 세상의 종말에 대한 거대 담론은 멋지고 감동스럽다. 하지만 어쩌면 '연속극 같은 재미'에 이 책의 진짜 장점이 있고 이 책을 읽는 진짜 묘미가 숨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유쾌한 웃음 주었던 몇 장면을 옮겨 적으면 이렇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살았던 사람은 장 루이 칼망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1875년 프랑스의 아를에서 태어나 1997년에 122살을 일기로 사망했다. 칼망은 13살 때 빈센트 반 고흐를 보고는 '몸은 더럽고 옷도 엉망이고 불쾌한 사람'이라 평가했다고 한다."

"변화와 영속은 배뿐만 아니라 인간의 몸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몸을 이루는 세포만 놓고 보자면 당신은 10년 전의 단신과 완전히 다른 존재이다. 세포의 평균 수명이 약 10년이기 때문이다. 세포의 수명은 '몸'이라는 전쟁터에서 각자 맡은 역할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위의 세포는 5일밖에 견디지 못하고, 적혈구는 3개월 동안 1600킬로미터를 여행한 후 수명이 끝난다. 간세포의 수명은 약 1년이고, 두개골을 이루는 세포는 뼈를 분해하고 재생하는 세포에 의해 10년마다 새것으로 교체된다. 사람의 수명만큼 사는 세포는 안구의 수정체와 대뇌피질에 있는 뉴런뿐이다."

"장미는 북반구에만 자라는 풍토성 식물로서, 3500만 년 전인 올리고세 지층에서도 장미의 화석이 발견된다. 장미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인류가 지구에 출현하기 훨씬 전부터 지구를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었다."

"평균치보다 밝게 빛나는 유성이 천문학자의 눈에 뜨이면 '파이어볼'이라 하고, 지질학자의 눈에 뜨이면 '볼라이드'가 된다."

이 책에 사용된 몇몇 용어는 고쳐 써야한다. 그래야 의미가 명확해지고 자연스러워질 것 같다. '은하수'라는 용어가 여러 번 사용되고 있는데, 원문을 대조해 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The Milky Way'를 번역한 것 같다. 'The Milky Way', 'Our Galaxy' 그리고 'The Galaxy'는 모두 '우리은하'로 번역해야 그 뜻이 명확하다. 다만 272쪽의 "지난 30년 동안 천문학자들은 은하수의 크기와 질량, 그리고 그 안에 들어 있는 별의 수를 여러 차례 수정해 왔다"에서 쓰인 '은하수'는 말 그대로 밤하늘에 보이는 은하수를 나타내는 것이니 그대로 쓰면 된다.

이 글 중에 인용한 문장 중에 쓰인 '성단'도 '은하단'으로 고쳐야 할 것이다. 254쪽에서는 NASA의 '아메스' 연구 센터라고 표기했는데, 모두들 그렇게 부르고 있기도 하니 '에임즈'로 쓰는 것이 맞다. 272쪽에 사용한 '라디오 망원경'이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고 '전파망원경'이라고 쓰고 있다.

오타도 몇몇 곳에 보인다. 바로잡으면 좋겠다. 304쪽에는 "헐스와 테일러는 1933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라고 적고 있는데, 그들이 노벨 물리학상을 탄 것은 1933년이 아니라 '1993년'이다. 358쪽에 "끈 이론에 의하면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진 진공이 무려 10,500개나 존재한다"라고 적어놓았는데, 원문 대조는 못해 봤지만 아마 10500개의 오타가 아닐까 생각된다. 같은 의미에서 359쪽의 '10,500개'도 '10500개'로 써야할 것 같다.

326쪽에는 "허블이 우주의 나이를 137억 년으로 추정한 지도 어언 한 세기가 흘렀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내용이 좀 이상하다. 허블은 우주의 나이가 137억 년이라고 측정한 적이 없었다. 당시의 허블의 관측 값을 갖고 우주의 나이를 추정하면 훨씬 작은 값이 나온다. 허블이 팽창 우주의 관측적인 증거를 보여주는 논문을 발표한 것이 1929년의 일이니 '어언 한 세기'라는 말도 잘 맞지 않는다.

역시 원문을 대조해 보지 않아서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추측해 보면 '허블 우주 망원경이 관측한 결과를 바탕으로 허블상수 값을 정하고 이로부터 현재 우주의 나이를 137억 년으로 계산한 것이 2000년대 초반의 일이니 벌써 10여 년이 지났다' 정도의 내용이 아닐까 한다. 확인해 보고 좀 더 명확하게 기술하면 좋겠다.

<세상은 어떻게 끝나는가>는 '끝'을 이야기하는 책이지만 한편 다른 '시작'을 유도하는 책이기도 하다. 아마 이 책의 시즌 1이었을 크리스 임피가 쓴 다른 책 이 빨리 번역되었으면 좋겠다. 벌써부터 읽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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