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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중독자의 고백 "노인 하나 죽은 게 대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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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중독자의 고백 "노인 하나 죽은 게 대수인가?"

[초록發光] 밀양 송전탑의 비극

"故 이치우 어르신의 명복을 빕니다."

극적인 희생을 치르고 난 후, 소위 뉴스'거리'가 된 후라야 사람들의 시야에 확인되는 사건들이 있다(이 땅에 차고 넘친다!). 도대체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르렀나!' 되짚어 가다 보면 세상 사람들의 관심 밖에서 생각보다 긴 시간 동안 고립된 채로 버텨온 약한 존재들을 발견하게 된다. (☞관련 기사 : 74세 노인의 분신 자결, 그곳에 가보니…)

최근엔 밀양의 경우가 그러했다. 한 어르신이 온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산화하셨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그 분의 마지막 말이 "내가 오늘 죽어야 문제가 해결되겠다"라는 외롭고 무서운 말이었다는 기사를 접하고 나서야, 그때가 돼서야 '이치우'라는 이름 옆에 '밀양', '765킬로볼트 송전탑'을 연관 검색어 삼아 찾아보게 되었다.

한 목숨이 희생되자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70대 노인 형제가 90대 노모를 모시고 공들여 가꿔왔던 논밭에 철탑을 꽂아놓는 공사는 '잠시' 중단되었다. 하지만 국책 사업이란 이름의 밀어붙이기에 저항하던 주민들의 싸움이 성공했던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이치우 어르신이 원했던 해결책은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공교롭게 '이치우 열사 분신대책위'가 출범하던 지난 수요일 서울 갈 일이 생겼고, 가는 길에 잠시 밀양을 들렸다 가리라 마음먹었다. 생태주의자로 사는 것이 발랄하고 유쾌한 일이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살기엔 부딪치고 깨져나가고 있는 사람들과 산하의 울음소리에 더욱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법.

구포에서 밀양까지 가는 철로는 낙동강과 나란히 달리는데 반짝이던 낙동강변의 은빛 갈대숲은 온데간데없고 강변은 4대강 마무리 공사로 분주하다. 그 자체로 생태적인 공간을 짓이겨가며 인공의 생태 공원을 짓기 위한 몸부림이라니. 대도시에서 조금만 더 나가도 이렇게 몸살을 앓고 있는 산하를 발견하게 되는데, 70~80대 노인들만 남아 싸우고 있는 산골 마을에서 몇 개월째 벌어진 무간지옥을 그 동안 모른 채 살아왔던 젊은 도시 것의 마음은 무거웠다.

늦게 온 것이 마냥 미안한 나에게, 그날 분향소에서 만났던 밀양시 상동면의 한 어머니가 던진 첫 마디가 그러했다. "젊은 사람이 관심을 가져줘서 고마워요." 그 젊은 것은 겨우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글줄이나 만지작만지작 거리고 있다.

자료를 찾아 인터넷 상을 돌아다니다 '765킬로볼트 북경남 송전선로 계획'이란 제목이 붙은 지도 하나를 발견했다. 이 지도의 동쪽 끝에는 신고리 핵발전소가, 서쪽 끝에는 약 10만 평 부지에 건설 예정이라는 북경남변전소가 놓여있다. 굽이굽이 이 두 곳을 연결하는 총 연장 90킬로미터 정도가 사업 구간이고, 부산 기장군에서 울산시 울주군을 거쳐 양산시, 밀양시, 창녕군까지 건설 계획이 잡힌 송전탑의 수는 무려 162개이다.

76만5000볼트의 전류가 흐르는 초고압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40층 높이 건물에 맞먹는 80~100미터 높이의 철탑을 대략 500미터 간격으로 세워줄 필요가 있다고 한다. 이 전기가 고작 영남에서만 쓰이고 말 것인가. 창녕에서 서경북~신충북을 거쳐 수도권까지 닿는 거리는 어림잡아도 300킬로미터는 되겠다. 그 곳엔 또 얼마나 많은 철탑이 세워질 것인가? 그 구간에서는 이치우 어르신과 한 겨울 움막 생활을 감내하며 화악산을 오르내리던 70~80대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은 이야기가 또 얼마나 많이 발생할 것인가?

ⓒcafe.daum.net/milyanglove

2011년 후쿠시마 핵 재앙 이후 이 지면을 빌려 썼던 글에서 핵발전소의 문제를 공간적 불평등의 문제로 설명한 적이 있다. 그 글에서 나는 핵발전소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공간의 사람들과 핵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있으면서, 전자의 사람들이 핵발전소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상당히 불공정하게 감내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정의롭지 못하다고 말했다.

부끄럽게도 그 때는 핵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도시로 보내기 위해 같이 건설되어야 하는 이렇게 많은 거대한 철탑과 그 유해성이 아직까지 다 밝혀지지도 않은 전자파의 위험성을 지닌 초고압 송전로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핵발전소 건설이 가져올 문제는 핵발전소가 위치한 곳에서 반경 수십 킬로미터의 문제를 넘어선다. 핵발전소에서 수도권을 연결하는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파헤쳐지고 못쓰게 될 산과 농토의 면적과 그 땅을 근거로 살아가고 있는 수없이 많은 이름 없는 사람들의 삶의 한꺼번에 내몰리게 될 것이다.

76만5000볼트 급 초고압 송전선로는 밀양과 경남만의 겪게 된 첫 번째 문제는 아니다. 울진 5호기와 6호기의 생산 전력을 수도권에 공급하기 위해 1996년에서 2000년대 초반 신태백 변전소에서 신가평 변전소까지 총 노선 157킬로미터의 거리에 이번에 문제가 된 것과 유사한 100미터 높이의 송전탑이 이미 건설된 바 있다. (그 외에 신안성에서 신가평까지, 그리고 당진에서 신서산을 거쳐 신안성까지의 구간도 765킬로볼트의 송전선로가 지나고 있다.) 그 구간의 마을 주민들이라고 싸우지 않았을까. 그러함에도 초고압 송전선로 건설이 완료되었으므로, 이 북경남 송전선로의 싸움도 결국은 적절한 보상과 마을 발전 기금을 받고 노인들이 농토를 등지고 떠나는 것이 이 싸움의 결론이 되어버릴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송전선로의 건설 시점을 주목해봐야 한다. 핵발전소 짓고, 전기 생산이 개시된 다음에 송전선로가 건설되는 것이 아니다. 송전선로 건설은 핵발전소의 완공 시점보다 앞서야 한다. 그런 점에서 밀양 송전탑을 포함하는 북경남 송전선 건설 사업은 현재 건설 중인 신고리 핵발전소 3,4 호기와 아직 승인도 나지 않은 계획 단계의 신고리 핵발전소 5, 6호기를 염두에 두지 않고서는 건설 이유가 설명이 되지 않는 사업이다.

신고리 1,2 호기 건설 당시에 한국전력공사 측은 송전탑이 없으면 하루 28억 원씩 손해가 난다고 주민들을 몰아붙였다지만, 여기서 만들어진 전기는 이미 세워진 송전탑에 증용량 전선을 교체하는 방식으로 이미 해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경남 송전선로 사업은 이미 2000년에 설비 계획이 완료되고 변전소 부지 및 송전선로 경과지(선로가 지나는 지역)에 대한 선정도 2003년 이전에 이미 결정이 나 있었다. 문제는 주민들이 송전탑 건설을 인지한 시점이 환경영향평가도 다 끝나고 요식적인 주민 설명회가 개최되었던 2005년 8월이었다는 점이다.

7년 넘도록 밀양 시민들이 반대해왔지만, 시장과 지역구 국회의원은 마지막 순간에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지난 해 11월부터는 밀양시 구간 5개면에 중장비와 공사 인력들이 들이닥치면서 70~80대 노인들이 거개인 마을에서 처절하게도 겨울철 맨몸 싸움이 시작되었고, 그렇게 온 겨울을 맨몸으로 버텨내다가 칠순의 할아버지가 그 한 목숨은 불사르고 난 다음에야 '앗 뜨거워!'하며 그나마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바로 가기 : 765KV송전탑반대밀양시민모임)

이치우 할아버지의 분신과 밀양 송전탑 사건을 바라보면서 지난 해 초 읽었던 공선옥의 소설 <꽃같은 시절>(창비 펴냄)이 떠올랐다. 평화롭던 전라남도의 한 시골마을에 불법 쇄석 공장이 들어선 후 밀양에서와 마찬가지로 70~80대 할머니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데모'에 나선 투쟁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이다.

독 공장 독 깨는 소리에 인공이 다시 왔나 겁먹었던 할머니들은 어느새 업무 방해와 도로 교통법 위반의 범법자가 되었다. 할머니들의 투쟁에 가담하게 된 소설 속의 서울 출신 작가가 중앙의 시사지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더니 돌아온 답변이 "시시콜콜한 동네 이야기까지 다룰 만큼 대한민국이 한가한 나라가 아니다"였다. 결국 시시콜콜 동네 이야기가 한 사람의 목숨을 희생하고서야 조금은 쳐다보는 이야기가 된 것인가 가슴 답답하면서도 이 이슈도 금방 묻힐까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오늘만큼은 이 초록發光은 쓰는 일이 정말 어렵다. 절절한 마음 담아 쓰고는 있는데 글재주가 마음을 못 따라와 내내 마음이 무겁다. 내가 오늘 만들어 낸 이 이야기가 후쿠시마 이후로 두려운 마음으로 핵발전소를 바라보게 된 사람들의 마음에 가서 닿았으면. 그래서 이치우 어르신의 희생으로 공사가 잠시 중단된 밀양시 산외면 희곡리 보리마을을 비롯해 송전탑 때문에 싸우고 있는 시골 마을 곳곳으로 이끌 만큼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 마음들이 그 곳에 조금 더 머물려면 송전탑과 핵발전소가 연결시킬 줄 알아야 한다. 객관식 문제풀이를 위해 단기 기억에 저장해 두는 시험용 키워드가 아니라 밀양의 70~80대 노인들의 싸움을 연결시킬 줄 아는 서술형 주관식 문제로 이 사건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할 것이다.

그래야 우리가 매몰 비용이라는 무책임한 말에 더 이상 속지 않고 '잠시' 중단을 영구적 중단으로 나아가 시야를 가리고 산하를 파헤치는 송전탑을 뽑아내는 수준까지 이를 수 있다. "송전탑은 핵발전소의 자식이다." 신규 핵발전소가 없으면 송전탑도 없다. 더 이상 '죽어야 다뤄지는 문제'는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한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이런 시도는 이명박 정부의 '녹색 성장'이 아닌 '초록 대안'을 찾으려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활동의 일부분입니다.

☞바로 가기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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