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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추종하는 빨갱이? 좌파 살길은 '녹색'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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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추종하는 빨갱이? 좌파 살길은 '녹색'뿐!

[장석준의 '적록 서재'] G. D. H 콜의 <영국 노동 운동사>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미국 정부가 파산 금융사들을 사실상 국유화하는 조치를 단행하자 공화당 진영에서는 "이것은 금융 사회주의"라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대통령(조지 부시)이 네오콘 공화당원이고 재무장관(헨리 폴슨)이 월가의 은행가인데도 이들의 위기 처방에는 "사회주의"라는 딱지가 붙었다. 20년 전 사망을 선고받은 '사회주의'가 투기로 돈을 날린 백만장자들의 생명줄로 참으로 기이하게 부활하는 순간이었다.

미국 정부의 은행 구제 조치를 "사회주의"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염두에 둔 것은 국가의 경제 개입이다. 이들에게는 사적 자본이나 시장 경쟁에 맡겨야 할 일에 국가 기구가 나서는 것이 곧 '사회주의'다. 즉, 이들에게 '사회주의'는 그냥 '국가주의'라고 해도 상관없는 물건이다.

꼭 미국의 골수 공화당원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지구 위 대다수 생활인의 상식 속에서 '사회주의'는 곧 '국가주의'다. '사회주의'라고 하면, 남한 사람은 국가 최고 권력자를 예배 대상으로 삼는 이웃 체제를 떠올릴 것이고, 중국 사람은 공산당 국가 관료의 훈시를 연상할 것이다. 또 동유럽 사람은 20여 년 전 일당 독재 시절을 기억할 것이며, 서유럽 사람은 아직 남아 있는 복지 국가의 여러 법제들을 떠올릴 것이다. 공통의 열쇳말은 결국 '국가'다.

물론 지난 30여 년간 인류 사회의 풍향계가 지나치게 '시장' 쪽으로 쏠려 있었기에 요즘은 이런 식의 '사회주의', 즉 '국가주의'가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서구 신자유주의 비판자 가운데는 과거 한국 박정희 정권의 경제 정책에 박수를 보내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얼마 전부터는 스탈린주의 국가와 신자유주의 시장이 결합된 중국 모델이 비슷한 시각에서 주목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국가주의로 회귀하는 것이 신자유주의 이후의 대안일 수는 없다. 시장주의, 국가주의 모두 우리가 깨어나야 할 악몽들이다. 은행가들이 지배하는 체제만큼이나 정치국원이 지배하는 체제도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사실 신자유주의가 이토록 무소불위의 지배력을 갖게 된 것도 그 전의 중앙 집권형 계획이나 복지 관료제의 경험들이 결코 유쾌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30여 년간 시장주의는 이러한 국가주의에 대한 대중의 환멸을 연료 삼아 전성기를 구가했던 것이다.

'국가'주의가 아닌 '사회'주의 : 길드 사회주의

이 대목에서 우리는 상식에 반하는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사회주의가 과연 국가주의일 뿐인 것인가? 사회주의의 그 '사회'가 '국가'로 대체되거나 환원될 수 있는 것인가? 애당초 사회주의자들이 그렇게 생각했을까? 사회주의 운동이 그런 걸 실현하자고 분투했던 것일까?

정색을 하고 들여다보면, 금세 전혀 다른 그림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마르크스만 하더라도 그렇다. 그가 엥겔스와 함께 쓴 <공산당 선언>에서 궁극적인 이상으로 내세운 것은 '자유인들의 연합'이었다. 이 '연합(association)'은 자본주의 기업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국가 관료 기구도 아니다. 마르크스, 엥겔스가 굳이 '연합'이란 말을 쓴 것은 바로 이 두 지배적인 조직 형태와는 다른, 삶의 조직화 형태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이들을 비롯한 1세대 사회주의자들이 자본주의에 맞선 대안에 '국가주의'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에게 자본주의 이후의 대안은 '사회'주의이든가 아니면 '코뮌(commune)'주의('공산주의'로 불만족스럽게 번역되는)였다. 여기에서 '사회'와 '코뮌'은 모두 <공산당 선언> 속의 '연합'과 비슷한 함의를 지닌다. 미래의 주역은 '사회'나 그 미래형인 '코뮌'이지 '국가'는 아니다. 비록 사회가 때로 국가를 통해 대변되기는 하지만 이것은 엄연히 독자적인 실체다.

다른 누구보다도 이런 맥락에서 '사회'를 강조한 사상가는 칼 폴라니다. 그의 대표작 <거대한 전환>(홍기빈 옮김, 길 펴냄)에서 '자기 조정 시장'이라는 허구의 장막을 뚫고 점차 그 육중한 실체를 드러내는 주인공이 바로 이 '사회'다. 그런데 폴라니는 이러한 '사회'의 발견을 오롯이 한 선구적 사상가이자 실천가의 공적으로 돌린다. 그는 클로드 생시몽, 샤를 푸리에와 함께 흔히 유토피아 사회주의의 세 거장 중 한 사람으로 불리는 로버트 오언이다.

"그 누구보다도 산업 사회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깊이 파고들었던 이는 로버트 오언이었다. 그는 국가와 사회가 다른 것이라는 것을 깊이 의식하고 있었다. 그는 고드윈처럼 국가에 대해서 편견을 품는 일도 없었지만 그것이 수행할 수 있는 것 이상을 기대하는 법도 없었다. 공동체에 끼치는 해악을 피하는 데에 도움이 될 만한 개입이라면 얼마든지 국가에 기대했지만, 사회를 조직하는 일 자체를 국가에 기대하는 법은 결코 없었다. 국가라는 정치적 메커니즘도, 또 기계라는 기술적 도구도 가장 핵심적인 현상이 무엇인지를 꿰뚫어보는 그의 혜안을 가리지는 못했다. 그 핵심적인 현상이란 바로 사회라는 것이었다." (<거대한 전환> 366쪽)

그런데 폴라니만큼이나 이런 측면에서 오언에 주목한 또 다른 위대한 사회주의 사상가가 있다. 그는 영국의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경제학자이고 정치, 사회학자이며 역사가인 (그리고 심지어는 추리 소설 작가이기도 했던) 조지 더글러스 하워드 콜(G. D. H. Cole, 1889~1959년)이다.

▲ 조지 더글러스 하워드 콜(G. D. H. Cole, 1889~1959년). ⓒtheefaction.wordpress.com
콜은 '길드 사회주의'의 주창자였다. 우리에게는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김명환의 <영국의 위기 속에서 나온 민주주의 : 길드 사회주의>(혜안 펴냄)가 유일한 우리말 소개서다!), 길드 사회주의는 폴라니에게도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안토니오 그람시나 에른스트 비그포르스 같은 당대 일급 사회주의자, 노동 운동가에게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었다. 유럽 대륙에서 노동자 평의회를 중심에 놓고 혁명을 바라보던 로자 룩셈부르크, 구스타프 란다우어 등의 흐름을 영국의 풍토에서 전개한 이들이 콜을 비롯한 길드 사회주의자들이었다.

길드 사회주의는 한 마디로 사회가 (국가가 아니라) 길드들(guilds)로 실체화되는 사회주의다. '길드'라고 하면, 우리에게는 좀 낯설다. 아마 인터넷 게임을 즐겨 하는 분들에게나 귀에 익을 것이다. 이것은 본래 서구 중세의 수공업자 조합을 일컫는 말이다. 길드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 기업과 구별되며 또한 우리에게 익숙한 노동조합과도 다른 '생산자 조합'을 가리키기 위해 이 '길드'라는 오래된 단어를 재활용했다.

콜의 경우, 필요한 것은 생산자 조합만이 아니었다. 소비자 조합도 중요했다. 이러한 다양한 형태의 길드들을 통해 대중의 이해가 조직으로 실체화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콜의 길드 사회주의에서 경제 전반을 조절하는 것은 국가 기구가 아니라 이들 길드 사이의 협력과 협상이다. 기존의 국가 기구는 오히려 이제까지의 그 배타적인 권력 중 상당 부분을 길드와 같은 자발적 결사체들에 이양해야만 한다.

콜의 길드 사회주의가 의도한 것은 로버트 오언이 발견한 '사회'의 의미를 가장 충실히 구현한 사회주의였다. 이후의 사회민주주의나 스탈린주의가 지향한 사회주의가 대체로 '국가 중심 사회주의'라 할 수 있다면, 콜의 이상은 '사회 중심 사회주의'였다. 국가 기구라는 단일한 대리 조직이 아니라 다양한 결사체들로 실체화된 역동적 사회 자체가 주역이 된다는 점에서 이것은 또한 '다원적 사회주의'이자 '복합적 사회주의'이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는 마치 시장/국가의 이분법에 갇혀 있는 것만 같다. 하지만 정말 시장주의와 국가주의 사이에서 진자 운동을 반복하는 것이 인류 역사의 숙명인 것일까? 시장주의 아니면 그 대안은 국가주의뿐이며 따라서 불만이 있더라도 시장의 자유에 만족하라는 서구 경제학자의 협박이나 아니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중화 모델을 받아들이라는 중국 공산당 관변 학자의 궤변,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오언과 콜을 비롯한 고전 사회주의자들이 제시하는 '사회 중심 사회주의', 좀 더 정확히 말해 본래의 사회주의는 이 답답한 이분법의 세계를 거부한다. 전복되어야 할 것은 진짜 주인공이 주인공으로 나서지 못하게 하는 시장/국가의 이항 대립 세계 그 자체다. '사회'를 육화(肉化)하라! '사회'의 능력을 배양하라! '사회'에 권력을!―애초 모든 운동의 출발점이었던 메시지, 그리고 다름 아닌 지금의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메시지가 바로 이것이다.

<영국 노동 운동사>로 읽는 콜의 메시지

안타깝게도 콜의 수많은 저작들 중 우리말로 번역된 것은 얼마 안 된다. 특히 길드 사회주의를 직접 다룬 저작들은 소개된 적이 없다. 다만 그가 만년에 집필한 역사서들 중에 번역된 것이 조금 있다. <영국 노동 운동사>(김철수·김천우 옮김, 광민사 펴냄, 1980년)도 그 중 하나다.

콜은 역사가로서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방대한 분량의 <사회주의 사상사>(국내에는 1권만 번역돼 나왔다. <사회주의 사상사 1>(이방석 옮김, 신서원 펴냄, 1992년))는 제2차 세계 대전 무렵까지 전 세계 사회주의 사상의 전개에 대한 정리로는 독보적인 저작이다. 그밖에도 그는 영국 노동 운동의 역사를, 때로는 노동당을 중심으로, 때로는 노동조합 혹은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여러 저작을 통해 다뤘다. 또 자신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 로버트 오언이나 차티스트 운동가들에 대한 전기도 집필했다.

콜이 자신의 독창적 사상을 직설적으로 풀어낸 저작을 우리말로 볼 수 없다는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아쉬운 대로, 우리는 <영국 노동 운동사>를 통해 그의 문제의식을 접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콜은 단지 냉정한 사가(史家)의 자세만을 취하지는 않는다. 그는 영국 노동 운동의 참여자 중 한 사람으로서 역사 서술 안에 논쟁적 평가를 담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영국 노동 운동사> 안에서 길드 사회주의 시절부터 쭉 이어지는 콜의 사상의 편린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이것은 이 책을 읽는 이중의 즐거움이다. 사실 노동 운동의 발전 정도에 비해 국내에는 외국 노동 운동의 역사가 풍부히 소개되어 있지 못하다. 서점에든 도서관에든 각 국 노동 운동사 관련 책자가 별로 없다. 따라서 콜의 <영국 노동 운동사>는 가장 긴 산업 자본주의의 역사를 지닌 나라의 노동 운동에 대한 거의 유일한 우리말 읽을거리라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독서의 가치를 지닌다. 그런데 이에 더해 영국 노동 운동을 쟁점 삼아 사상가 콜과도 대화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처음 접한 한국의 노동자나 진보적 독자라면 가장 먼저 놀랄 것은 이 책이 '영국 노동 운동사'이되 '영국 노동조합 운동사'는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 사회의 상식에 따른다면, '노동 운동'은 곧 '노동조합 운동'이다. 좁은 의미의 '노동조합 운동', 즉 작업 현장의 노동자 조직화와 경제 투쟁 그리고 단체 협상이다.

그런데 이 책이 다루는 것은 그런 의미의 노동조합 운동의 범위를 넘어선다. 노동자 정치 운동을 다루고, 생산 및 소비 협동조합을 다룬다. 또한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 상호부조 조직들에 대해서도 다룬다. 어떤 역사적 국면에서는 노동조합보다도 정치 운동이나 협동조합이 더 중요한 배역을 맡는다. 실제로 영국 노동 운동이 그렇게 발전해서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발전의 전체상을 애써 강조하려는 콜의 시각이 책 전반에 뚜렷이 새겨져 있는 탓도 크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노동 운동의 여러 부문이 결코 서로 다른 주체들의 분업과 같은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동일한 노동자들이 어떤 때는 노동조합의 투사로 나서기도 했고 어떤 경우는 차티스트 운동의 활동가가 되기도 했으며 협동조합의 선구자로 이름을 남기기도 했다. 이것들은 한 운동의 여러 얼굴들이었다.

영국 노동 운동의 초기 단계에 노동 운동의 이러한 성격을 상징하던 인물이 위에서 언급한 로버트 오언이다. 오언의 평전을 따로 쓰기도 했던 콜은 <영국 노동 운동사>에서도 그를 중요한 비중으로 다룬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영국 노동 운동의 여러 중요한 장면들에 마주하게 된다.

가령 오언의 영향 아래 추진된 일반 노동조합 운동이 그러한 사례다. 직업별 노동조합 특유의 분파주의에 찌들었다는 영국 노동 운동에 대한 일반적 평가와는 사뭇 달리 이 당시 영국 노동 운동은 20세기 초의 산업 노동조합처럼 최대 다수 노동자의 조직화를 원칙으로 일반 노동조합(general union)을 건설하려 했다. 그 시도는 1834년 전국노동조합대연합(Grand National Consolidated Trades Union)의 건설로 결실을 맺었다. 아쉽게도 이후 직업별 노동조합의 원심력에 다시 길을 내주기는 했지만 말이다.

노동조합이자 동시에 오언적 사회주의의 실험장이기도 했던 1830년대의 건축노동자조합 역시 흥미로운 사례다. 건축노동자조합은 건설업의 모든 숙련 노동자들을 조직해서 도급을 독점하려 했다. 이를 통해 십장들(현대식으로 말하면, 파견 업체)의 중간 착취를 배체하려 했고 조합원들 사이에서 소득을 함께 나누고자 했다. 여기에서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건설업 방면의 생산자 조합, 즉 '길드'로 발전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런 포부는 분명히 있었다. 역시 채 꽃을 피우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초기 영국 노동 운동에서 노동조합, 협동조합, 공제 조직 그리고 정치 운동은 서로 확연히 구분되지 않은 채로 거대한 앙상블을 이루었다. 이들은 이런 식으로 서로 얽혀가며 노동 계급의 '사회'를 구성하고 실체화해갔던 것이다.

콜이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처럼, 오히려 빅토리아 시대에 들어와 노동조합이 체제 내 시민권을 확보하면서 이런 전통이 다분히 퇴색한 면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영국에서는 한국 노동 운동에 비해 한층 다채로운 모습이 유지된다. 가령 소비 협동조합이 여전히 활기를 띠며 상당한 규모로 지속되고 있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콜과 함께 영국 노동 운동의 역사를 읽어내려 가면서 우리는 노동 운동의 과제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21세기 한국 노동 운동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새롭게 성찰하게 된다. 그것은 단순히 노동조합의 협상력을 높여서 임금을 더 받아내는 것만은 아니다. 또한 노동자 정당의 의석을 늘리거나 제도 권력에 참여하는 것만도 아니다.

이런 것들은 오히려 더 중요한 다른 과제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들일지 모른다. 풀뿌리 노동 대중의 '사회'를 만들고 거기에 형체들을 부여하며 그 지적, 도덕적 헤게모니를 확장하는 일, 이것이 노동 운동의 필생의 과제일 것이다.

노동 운동의 '녹색화'의 의미

1987년 민주화 투쟁과 함께 등장한 민주 노동조합 운동도 이미 장년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민주 노동조합 운동 1세대가 벌써 퇴직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는 아직도 노동 대중의 '사회'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 실체가 모호하다. 존재하는 것은 단지 상층의 교섭이나 가끔의 파업 때에만 눈에 띠는 기업별 노동조합들뿐이다.

이 땅에도 또 다른 형태의 자생적 대중 조직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제 시대부터 협동조합들이 있었고, 전통적인 계에서 발전한 공제 조직들도 있었다. 한데 이것이 1차로는 해방 공간의 좌파 탄압 과정에서, 2차로는 박정희식 산업화 과정에서 박멸되고 말았다. 흔히들 새마을운동이 그 마지막이자 결정적인 계기였다고 한다. 새마을운동으로 그나마 남아 있던 자생적 결사체들마저 국가 권력 망 안에 모두 흡수되었다.

요즘은 주로 생태 운동 쪽에서 협동조합이나 대안 공동체를 이야기한다. 그래서 '노동 운동은 노동조합, 협동조합은 녹색 운동' 식의 도식이 상식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건강한 상식은 아니다. <영국 노동 운동사>가 보여주는 것처럼, 협동조합이나 대안 공동체는 노동 운동의 또 다른 얼굴들이다. 단지, 한국의 노동 운동이 이것을 망각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 노동 운동을 비롯한 전통 좌파 진영은 분명 '녹색화'해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환경 의제를 좀 더 중요시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풀뿌리 '사회'의 재건을 자신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좀 더 근본적인 의미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 노동 운동 태동기의 그 생명력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족

1980년 광주 항쟁이 있던 해에 나온 <영국 노동 운동사> 국역본은 이제는 도서관 한 귀퉁이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이 재교정을 거쳐 곧 다시 서점에 나올 계획이다. 나 자신 이 복각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글은 복각본의 사전 광고로 빈축을 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고전의 필독 이유와 의의를 먼저 알리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 감히 이 글을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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