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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힘? 아프리카에서 "예수 천국 불신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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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힘? 아프리카에서 "예수 천국 불신 지옥!"

[프레시안 books] 엘리자 그리즈월드의 <위도 10도>

얼마 전 서울의 한 고급 호텔에서 몇몇 종교 단체의 공동 주관으로 국제회의가 열렸다. 우리나라의 일부 종교인과 종교 단체 관련자들이 몇몇 아시아권의 종교인과 종교 단체 관련자들을 초빙해 마련한 자리였다. 모임의 주제는 종교를 통한 화해와 평화. "우리 종교인들이 앞장서서 종교가 다른 민족이나 국가들끼리의 전쟁을 막자"는 얘기였다.

전쟁과 평화는 내 관심 분야이기도 해서, 그 모임에 참석하게 됐다. 그런데 뭔가 거북했다. 고급 호텔에서 포크와 나이프로 고기를 썰면서 평화를 이야기한다? 국제회의는 그저 형식적으로 흘렀고 다음날 일정은 외국인 참석자들을 위한 관광이란다. 저 여러 사람들의 왕복 교통비와 호텔 숙박비는? 그리고 지금 내가 먹는 이 비싼 음식 값은 어디서 나오나?

'전쟁의 신'이나 '평화의 신'이 예쁘다고 대신 내줄 리는 없고…. 알아보니 문화체육관광부 지원이란다. 따지고 보면 결국 우리 국민이 낸 세금으로 행사를 치른 셈이다. 종교, 평화라는 감히 시비걸기 어려운 주제를 내세워서 말이다. 그렇게 돈을 써야할 최소한의 명분이 없지는 않을지 모른다. 지금 이 시간에도 종교라는 이름 아래 마구잡이 폭력이 휘둘러지는 지구촌 현실을 떠올리면 말이다.

새로운 십자군 전쟁

다음날 대피처에 들이닥친 기독교 민병대는 빨간 색과 파란 색 페인트로 몸이 얼룩져 있었다. 그들은 보초를 죽인 뒤 두 여성을 비롯한 주민들을 기독교 마을로 데려갔다. (…) 그들은 술과 돼지고기, 개고기를 강제로 먹여 그녀들의 이슬람 신앙을 우롱했다. 괴한은 딘리디가 임신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를 4일 동안이나 강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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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도 10도>(엘리자 그리즈월드 지음, 유지훈 옮김, 시공사 펴냄). ⓒ시공사
위의 섬뜩한 문장은 <위도 10도(Tenth Paralle)>(유지훈 옮김, 시공사 펴냄)에서 다룬 나이지리아 유혈 분쟁에서 한 여성 희생자의 증언을 옮긴 것이다. "종교가 전쟁이 되는 곳"이란 부제를 단 이 책은 미국 여성 엘리자 그리즈월드(미국 '뉴 아메리카 재단' 선임연구원)가 지난 7년 동안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기독교와 이슬람교 신도들의 충돌 현장에 가서 직접 보고 들은 일들을 여성 특유의 섬세한 눈길로 담아냈다.

<위도 10도>에서 다루는 지역은 아프리카 세 지역(나이지리아, 수단, 소말리아), 그리고 아시아의 세 지역(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이들 여섯 지역의 공통점은 지리적으로는 적도에서 북으로 약 1126킬로미터까지의 지역을 가리키는 북위 10도에 걸쳐 있고, 종교적으로는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충돌이 잦은 지역이다.

이 지역에서의 종교적 갈등은 2001년 9·11 테러 뒤 더 예민하게 사람들에게 다가선다. 그래서 저자는 서문에서 말한다. "북위 10도, 새로운 십자군 전쟁이 벌어지다!"

종교는 유일한 탈출구?

이 책 곳곳에는 듣기에 섬뜩한 증언들이 희생자 또는 목격자의 입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해진다. 그런 증언들로 종교적 갈등에 얽힌 사람들의 행동이 얼마나 잔혹한가를 고발한다. 나이지리아에서 기독교인들이 아홉 살짜리 무슬림 소년의 사지를 칼로 마구 내려쳐 몸에서 떨어져 나온 팔과 다리를 불태운 일, 인도네시아에서 이슬람 무장 세력이 4명의 기독교인 10대 소녀들을 납치해 살해한 끔직한 사건들을 담아냈다.

저자는 단순히 기독교와 이슬람교 신도들의 충돌 실태를 기록하는데 그치지 않고 왜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가를 따져보려 했다. 나이지리아는 사하라 남쪽 아프리카에서 최대 산유국이다. 그렇지만 석유 이익은 극소수 지배층과 그에 줄을 댄 외국 기업의 몫이다. 가난한 다수 사람들에겐 그림의 떡일 뿐이다. 여기서 종교가 고단한 삶으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탈출구로 비친다.

"종교와 정치가 서로를 이용"

도시의 붉은 도로에는 수천 개의 표지판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는데, 교회와 이슬람사원, 그리고 오만 가지 종교 단체가 '고객 유치 경쟁'을 벌이는 것이었다. 생명의 믿음 교회를 비롯하여 오순절파와 무슬림의 장막 부흥 조직인 나스파트가 서로 행인의 관심을 끌려고 안간힘을 썼다. 좀 더 걷자 아동복음회, 그리스도의 부활, 사도의 믿음, 올리브 산, 은혜재단, 그리스도의 대사, 하느님의 총리, 예수재단, 찬양재단 등의 표지판을 볼 수 있었다.

저자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이렇게 많은 종교 단체가 난립한 현상을 두고 "종교와 정치가 서로를 이용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미 제국주의 시절부터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자원을 지배하려 해왔던 서구는 서구대로 현지인을 기독교도로 만드는 것이 여러 모로 이롭다. (이슬람을 내세우는 북수단이나 소말리아의 경우처럼) 서구와 부딪치는 곳의 정치 지도자들은 종교를 체제 유지의 한 유효한 수단으로 여기기 마련이다.

종교인들은 종교인들대로 그들이 처한 정치적 환경을 신자 숫자 확대에 이용하려 들고, 지방 마을 단위에서는 개인적 탐욕과 증오를 종교의 이름으로 합리화 시킨다. 저자는 특히 미국의 그레이엄 목사를 비롯해 '복음주의'로 포장된 기독교(개신교) 근본주의가 공격적인 선교를 펴고 있음을 지적한다. 위도 10도에서 40도에 이르는 지역에 사는 27억 인구를 모두 기독교도로 만든다는 이른바 '10/40 창' 복음화 전략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다. 기독교의 위협이 크다고 느낄수록 '근본주의' 성향을 보이고 과격해진다고 저자는 걱정한다.

문명 충돌론의 허구

이 책에서 저자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분쟁 지역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기독교와 이슬람교 사이의 종교적 갈등이 단순한 문명 간의 충돌이 아님을 지적한다. 종교의 이름으로 분쟁이 벌어지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영토, 석유, 수자원 등 경제적 이해관계와 생존의 문제들이 얽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올바른 지적이다.

많은 사람들은 동서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막을 내린 1990년대 이후 전쟁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종교를 꼽아왔다. 특히 2001년 9·11 테러 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과 급진 이슬람 세력 사이의 갈등 양상으로 미뤄 이른바 새뮤얼 헌팅턴 유의 '문명 충돌론'이 힘을 얻었다.

그렇지만 이는 본질을 흐리는 분석이다. 이른바 신자유주의 세계화 바람 속에서 중동 석유 등 주요 자원과 시장을 지배하려는 서구 세력의 21세기형 신식민주의(neocolonialism)의 침탈에 맞서는 아시아-아프리카 사람들의 저항, 다시 말해 침탈-저항의 충돌 구도를 '문명 충돌론'으로 덮어선 곤란하다. 헌팅턴 유의 분석으로는 침략과 방어의 대치 전선이 희석되기 마련이다.

팔레스타인을 보라

<위도 10도>에선 다루지 않았지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보면 헌팅턴 유의 문명 충돌론이 지닌 허구가 곧 드러난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유대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충돌로 해석하자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가하는 국가 폭력은 뒤로 감춰지고 만다.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 하마스 대원 가운데 상당수는 그들의 가족이나 친구들이 이스라엘 군의 총격에 죽임을 당하는 모습, 또 그들이 살던 집과 농토가 이스라엘군 불도저에 허물어지는 모습, 아버지나 형이 이스라엘 정착민에게 얻어맞거나 모욕을 당하는 모습들을 두 눈으로 봤던 이들이다. 그 자신들이 팔레스타인 곳곳에 설치된 이스라엘군 검문소 앞에서 몇 시간씩 쪼그리고 앉아 통과 허가를 받길 기다리는 모욕을 겪은 이들이다. 그들의 마음속에 담아온 고통과 좌절, 분노의 폭발적인 표현이 곧 이스라엘과 미국이 말하는 '테러'다.

중동 현지에서 만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테러라는 행위 자체가 그가 역사적으로 당해온 국가 폭력에 대한 적극적 반응이자 결과물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단순한 종교적 열정이 폭력의 원인이 아니라는 얘기다. 따라서 이슬람 종교와 기독교 종교의 충돌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풀이하는 것은 미국의 일방적인 친이스라엘 정책과 이스라엘의 독단적인 중동 정책들이 지닌 부도덕성을 은폐할 뿐이다.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시각에선 오사마 빈 라덴을 비롯한 급진 이슬람 세력과의 전쟁이 '테러와의 전쟁' 또는 '전 세계 폭력적 극단주의자들과의 투쟁'이다. 그렇지만 많은 이슬람 사람들의 시각에선 미국의 친이스라엘 일방주의와 중동 지역 패권 확장에 맞선 투쟁은 다름 아닌 지하드(jihad, 성전)다. 흔히 이슬람 저항 세력의 투쟁을 '종교적 광신에 바탕을 둔 테러'라고 여기지만, 이슬람권의 정치 정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측면이 없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공격적 선교도 문제다

지구촌 분쟁 지역을 가보면, 놀랍게도 반드시 한국의 종교인을 만나게 된다. 열이면 열 거의 대부분이 개신교 관련 사람들이다. 지난 2001년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 갔을 때다. 그곳은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잔혹한 내전이 10년 넘게 벌어진 탓에 모든 것이 만신창이였다. 반군인 혁명연합전선(RUF) 병사들은 시민들을 붙잡아 손목을 도끼로 자르곤 했다. 의사나 엔지니어 등 브레인들은 모두 제살 길을 찾아 나라 바깥으로 빠져 나가고, 남은 자들은 반군의 위협에 벌벌 떠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로 그곳에 한국 선교사가 있었다. 그 선교사는 "무지몽매한 이교도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러 왔다"고 했다. 해가 지면 무장 괴한이 날뛰고 언제 총탄이 날아들지 모르는 곳이 시에라리온이다. "바로 이런 불지옥에서 사람을 구하는 것이 선교의 본분"이라며 말하는 그의 눈빛에서 누가 뭐래도 꺾이지 않을 어떤 고집이 읽혀졌다.

이와 관련, 이 책은 한국 교회의 적극적 포교 활동을 언급하고 있다.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한국은 세계 두 번째로 선교사를 많이 내보내는 국가이다. 저자는 "한국이 해마다 해외로 파송하는 선교사는 줄잡아 1만2000명 정도 되며, 4만6000명으로 추정되는 미국 선교사 다음으로 많다"고 적고 있다. 그렇지만 저자는 자국 주민들을 상대로 한 한국 교회의 적극적인 '복음화' 활동이 현지 정부를 불편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음을 지적한다.

9·11 뒤 한국 사람들이 중동 지역에서 펴온 선교 방식은 현지 무슬림들에 눈엔 매우 공세적이고 도발적으로 비쳐졌다. 일부 보수 개신교 사람들이 벌이려던 '2006년도 아프가니스탄 평화 축제' 움직임이 한 보기다.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행사 취소 요청과 강제 출국 조치로 흐지부지되긴 했지만, 만에 하나 그 행사를 밀어붙이는 쪽으로 움직였다면 아마도 별 탈 없이 끝나진 못했을 것이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현지 취재 때 확인한 사실이지만, 이슬람권 지역에선 이교도들이 들어와 선교를 하는 데 대해 커다란 반감을 지니고 있다. 9·11 테러 뒤 미국이 중동 정치 지형을 군사력으로 강제 변형시키는 과정에서 이슬람권에는 9·11 전보다 반미 정서가 훨씬 높아졌다. 2004년 이라크에서 김선일이, 2007년엔 아프가니스탄 샘물교회 신도 두 명이 피살되는 비극이 터진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 정부와 근본주의의 유착 실태는?

결론적으로, 이 책은 지구촌 분쟁을 종교 갈등이라는 잣대로 분석해 독자들에게 생각할 여지를 준 의미 있는 책이라 말할 수 있다. 저자는 '복음주의'로 포장된 미국 기독교(개신교) 근본주의 세력이 아시아-아프리카 지역에서 공격적인 선교를 폄으로써 지역 내 갈등을 키우고 있음을 비판적으로 지적했고, 바로 그 대목에 후한 평점을 주고 싶다.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다. 아시아-아프리카 지역을 겨냥한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의 포교활동을 미국 정부가 어떻게 도왔는가, 그 유착 실태에 대한 구체적인 서술이 없다는 점이다. 9·11 테러 뒤 조지 부시의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 편향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에 대한 언급이 부족하다. 그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종교와 분쟁의 문제를 비교적 열린 시각으로 다루고 있기에 일독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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