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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독살은 헛소리! 홍삼의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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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독살은 헛소리! 홍삼의 불편한 진실!

[프레시안 books]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낮은 한의학>(사이언스북스 펴냄), 이 책을 펼치면서 나도 모르게 '아' 하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평소 진료를 받으면서 느꼈던 저자 이상곤의 인품이 오롯이 담긴 제목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한의학계에서도 명망 높은 한의사가 전문가적인 오만을 버리고 낮은 자세로 환자와 소통하며 환자의 상태를 세심히 살펴서, 환자의 몸이 말하는 징후를 진실하게 듣고 체질에 맞는 처방을 내려준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나 역시 내 지병으로 수년 동안 진료를 받는 환자의 입장에서 환자의 눈높이에 맞춰 조언해 주는 그에게 늘 감사했고, 여러 모로 많은 것을 배웠다.

더구나 그는 "스님, 의학이 전쟁 때 장군이라면 음식은 평화로운 세상의 재상과 같습니다. 전쟁은 드문 일이고, 일상생활에서 음식이 주는 메시지는 의약보다 더 울림이 큽니다" 하면서 사찰 음식을 전하는 내게 힘을 북돋워 주었다. 그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몸의 지혜인 한의학이 음식처럼 개인의 몸과 마음을 살릴 수 있는 일상생활의 예방법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의학의 본질적인 가르침이 개인의 체질과 상황에 맞는 질병 예방법을 탐구하는 것이라면 사찰 음식은 제철 음식과 개인의 체질에 맞는 음식을 통해 몸과 마음을 살려 궁극적으로 깨달음을 이루는 약으로 먹는 것이다. 이런 공통점 때문에 그와 한의학과 사찰 음식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누면서 의기투합한 적도 많았다.

그와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탄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동서양을 넘나드는 빼어난 인문학적 소양에다가 우리가 어릴 적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께 들었던 자잘한 민간요법, 들판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나물의 약효에 이르기까지 두루 꿰뚫고 있는 그의 해박함에 속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가 펴낸 <낮은 한의학>도 기대대로였다.

"한의학적 사유의 본질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역사적 사실과 일화를 발굴해 한의학적 사유의 인문학적 깊이를 더하고자 했다. (…) 작고 분명한 목표에 예리한 솜씨를 보이는 현대 의학보다, 몸의 지혜를 전체적인 관점에서 접근해 가는 한의학의 가치를, 그 사유의 깊음을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드러낼 수 있기를 바란다."

▲ <낮은 한의학>(이상곤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 ⓒ사이언스북스
그가 머리말에서 밝힌 것처럼 이 책에는 환자와 소통을 추구하는 그의 따뜻한 마음, 인문학적 교양이 녹아 있다. 한의학의 핵심 논리를 수많은 역사적·일상적 임상 사례를 통해 소개하고, 한의학과 현대 의학의 접점을 모색한 이 책은 놀랍게도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는 한의학의 핵심 논리를 드러내고자, 우리를 역사 속으로, 예를 들자면 왕들을 치료하는 임상 현장으로 안내한다. 소현세자와 정조 등 조선 왕 독살설의 비밀을 파헤치고자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처방을 일일이 분석해 낸 점이 특히 흥미로웠는데, 실제로 그는 정조가 노론의 영수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이 발견되기 전에 이미 "정조 독살설은 허구"라고 지적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이 책에서 그의 논리를 따라가 보면, 한의학 지식 없이 조선 왕 독살설을 내놓은 일부 학자나 저술가의 주장이 얼마나 부실한 논거에서 나온 것인지 잘 알 수 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에 딱 들어맞는다고나 할까? 한편으로는 절제, 금욕(禁慾)을 강조하는 잔소리만 늘어놓고 정작 왕의 건강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한 조선 시대 성리학자의 어리석음에 탄식도 저절로 나온다.

이뿐만이 아니다. 도가의 정기신(精氣神) 이론에 기반을 둔 허준의 <동의보감>이 탄생한 사상적 배경을 찾아 서경덕과 박지화로 이어진 경기도 파주 일대 재야 철학자의 서재 속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또 공진단, 경옥고, 우황청심환, 마황 등의 처방에 대한 명쾌한 설명도 들을 수 있다. 그의 설명을 듣고 보면, 이런 처방이 한의학의 지혜와 현대 의학의 지식이 결합된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거의 만병통치약으로 우상화된 홍삼의 부작용, 다이어트 약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었던 마황의 역사, 스트레스와 화병으로 고통을 받았던 조선 시대 왕들이 사랑했던 우황청심환의 감춰진 이야기 등을 읽노라면 왜 이 책이 지금에서야 나왔는지 저자가 원망스러워질 지경이다. 무작정 홍삼을 쌓아두고 먹는 이라면 꼭 이 책을 읽어보길!

이처럼 그는 한의학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잘못된 처방과 치료를 놓고 단호한 일침을 가한다. 사스는 물론 에이즈와 암까지 뜸으로 처방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과 단체의 오류를 한의학의 사유에 기반을 두고 치밀하게 논박한다. 또 기존의 음양오행 이론이나 성리학의 틀에 안주한 채 한의학을 현대적으로 발전시키려 하지 않는 움직임도 철저하게 비판한다.

한의학을 신비화하는 주장이야말로 한의학의 미래를 가로막는 것이라는 그의 신념은 책 전체에 걸쳐서 일관되게 드러난다. 그가 현대 의학이 이해할 수 없다고, 오류라고, 미신이라고 한마디로 무시하는 한의학의 논리, 동양에서 축적된 몸의 지혜를 대중의 눈높이에서 알기 쉽게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월 대보름에 먹는 땅콩, 호두, 잣 등이 부스럼을 예방한다는 이야기나 수험생에게 엿을 먹이는 이유 등의 세시풍속이 사실은 오랜 세월 건강에 대한 고민 끝에 생긴 것임을 명쾌하게 설명한다. 나 역시 얼마 전에 펴낸 책(<선재 스님의 이야기로 버무린 사찰 음식>)에서 세시 음식인 동지 팥죽에 이와 비슷한 내용을 쓴 적이 있기에 더욱 공감이 돼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자연이 선물한 녹내장 치료제 냉이, 탈모를 막는 먹을거리, 다이어트 음식, 강인한 생명력을 비장한 한약재로 재탄생한 국화 이야기, 겨울에 먹어야 제격이라는 메밀냉면의 약성 등 먹을거리에서 한의학의 지혜를 찾는 부분은 내게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 동안 '이 음식이 왜 약이 되나요' 하고 내게 물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대답 대신 이 책을 소개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이 책의 저자 이상곤은 아주 귀한 사람이다. 인품과 소신과 실력을 갖춘 참으로 진실한 의사이다. 그의 사상과 정신이 담긴 이 책을 누구에게라도 자신 있게 추천하면서 이 책에서도 언급한 <수타니파타>의 한 부분을 인용한다. 모쪼록 늘 지금처럼 바른 길을 무소의 뿔처럼 가시라는 축원으로 서평을 마무리한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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