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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맥=4000원? 진짜 가격은 '20만 원'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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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맥=4000원? 진짜 가격은 '20만 원' 넘어!

[프레시안 books] 라즈 파텔의 <경제학의 배신>

우리는 지금 배신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적어도 2011년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그렇다.

이제는 '747(7퍼센트 성장, 4만 달러 소득, 세계 7위 경제)'의 약속을 믿는 사람은 없는 것 같고, 뉴타운의 황금빛 약속은 거의 물거품이 되었다. 녹색이라는 이름으로 치장된 이른바 '4대강 살리기'는 이제 슬슬 4대강뿐만 아니라 주변 생태계까지 초토화하고 있으며, 등록금이 반값이 되는 게 아니라 일자리와 소득이 반 토막 나고 있는 중이다.

한국만 그런 것도 아니다. 세계적으로 게임에 참여하는 모두에게 자산의 증식과 높은 성장률을 약속했던 금융 자본주의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진 이후 파산했다. 약속에 대한 배신은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많은 나라에서 규제 완화와 금융화를 추진했던 기존 정치 세력에 대한 거부 혹은 교체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러한 약속의 근저에 깔려있었던 시장 만능에 대한 믿음은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는 듯하며, 그래서 세계 정치 경제는 대안 부재 속에서 갈팡질팡 표류하고 있는 중이다.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신화

본래 시장은 다양한 욕구를 가진 사람들이 상품을 거래하는 장소로서 모든 인류 문명에서 존재해온 개념이다. <거대한 전환>(홍기빈 옮김, 길 펴냄)의 저자 칼 폴라니의 역사적, 인류학적 연구에 따르면, 시장은 인간들이 물자를 생산하고 나눠 갖는 여러 경제 제도 중의 하나로 사회에 "묻어들어(embedded)"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시장은 욕구 충족을 위한 거래가 아니라 이윤 추구를 위한 거래로 특징지어진다는 점에서 과거와 다르며, 시장의 원리가 거의 모든 삶의 영역을 지배하고 있다. 이렇게 시장이 사회로부터 "뽑혀 나와(disembedded)" 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하게 된 것은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라는 새로운 인간관의 탄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태초부터 인간은 개인이었으며, 이기심을 최대한 만족시키고자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러한 인간관은 모든 인간 행위를 경제적 이익 추구로 단순화시켰다. 이러한 인간관에 입각한 현대 경제학은 경제적 삶의 공간을 그 외의 사회적 삶의 공간으로부터 분리할 수 있다는 사고를 확산시켰을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문화적, 사회적 제도의 원리들을 시장의 원리로 치환시켜버렸다.

사회가 제 기능을 다하는 최상의 방식은 시장이 이윤을 추구하도록 놓아두는 것이고, 개입을 최소화할 때 시장은 가장 잘 작동한다는 이러한 믿음은 사람들에게 내면화되었으며 일종의 종교적 원리로까지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우리가 보는 가격은 모든 것을 반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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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학의 배신>(라즈 파텔 지음, 제현주 옮김, 북돋움 펴냄). ⓒ북돋움
라즈 파텔의 <경제학의 배신>(제현주 옮김, 북돋움 펴냄)은 이미 파산했음에도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시장주의 중독증에 대한 아주 효과적인 해독제이다. 파텔은 시장 메커니즘에서 결정되는 가격이 모든 정보를 담고 있으므로 가장 효율적인 가치 평가 체계라는 것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우선 파텔은 권력을 가진 자들에 의해 시장이 작동하는 조건이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경제학 수업에서는 코카콜라나 월마트 같은 독점 기업이나 과점 기업이 예외적 형태라고 가르치지만, 이들 기업은 소비재 시장에서 예외가 아닌 원칙으로 군림한다. 독점 기업은 자신이 얼마만큼 팔 것인지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소비자가 얼마만큼 낼 의향이 있을지에도 영향력을 행사한다.

실제로 우리가 믿고 있는 시장에서의 선택의 자유는 굉장히 제한적이다. 자동차나 전자제품을 고를 때에도, 심지어는 밥이나 빵을 먹고자 할 때에도 몇몇 프랜차이즈 사이에서 선택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시장의 규칙을 쓰고, 이해하고, 고치는 자'는 몇몇 거대 기업이다.

우리가 지불하는 소비자 가격에는 중대한 숨겨진 비용이 존재한다. 파텔이 가격과 가치 사이에 존재하는 불일치를 증명하는 것으로 드는 구체적인 사례 중 하나가 '빅맥'의 판매 가격이다. 실제 우리는 '빅맥'을 사면서 4000원 가량을 지불하지만, 그 안에는 실제로 반영되어야 할 사회적 비용, 생태적 비용이 빠져있다.

빅맥에 들어있는 쇠고기를 사육하기 위한 옥수수 재배에 미국 정부의 엄청난 보조금(2006년 기준 46억 달러)이 들어가며, 거의 최저 임금 수준으로 일하는 맥도날드 매장의 노동자들에게도 그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정부의 많은 공공 서비스와 지원금이 지출되고 있고, 소 사육을 위한 환경 파괴 비용, 과도한 육류 소비로 인한 의료비의 증가 등을 고려하면 실제로 빅맥 한 개의 가격은 20만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기업은 이러한 사회적, 생태적 비용을 부담하지 않지만, 누군가는 이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값싼 햄버거에 들어간 비용을 치르고 있다는 얘기다.

"우리는 무언가를 볼 때 화폐적 가치 측면에서만 사고하도록 사회화되어왔지만, 이런 식의 사고는 우리를 위축시킨다. 우리는 가격이 우리가 믿는 것을 올바른 신호로 전달해주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가격의 능력에 대해 이야기를 꾸며대는 일을 멈춘 다음에야 비로소 회복의 길로 들어설 것이다." (293쪽)

대안적인 가치 평가 체계가 필요하다!

이러한 시장에 의존한 가치 평가 체계의 한계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파텔은 이를 위해서는 이기적인 충동을 제어해줄 사회적 관계망과 세계의 가치를 평가하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사회적 관계망은 '공유지'의 역사적 전통에 묻어들어 있다. 파텔이 얘기하는 '공유지'는 이기심과 욕망이 난무하여 결국 파괴되는 '비극'의 주인공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공유지는 모든 사람이 무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며, 공동체의 협의와 원칙, 생태적 조건에 따라 구체적인 공유의 방식을 결정해 삶을 유지해오던 생존의 수단이었다. 물론 자본주의의 심화에 따라 공유지들은 계속해서 사유화, 상품화되어 왔지만, 이윤 지향적 시장을 넘어선 새로운 가치 평가 방식을 생각해낼 수 있게 도와줄 관행, 사상, 경험은 아직 사라지지 않고 그 사회의 여러 제도 속에 남아있다.

이 책에서 그 구체적인 평가 방식에 대한 논의는 전개되지 않지만, 파텔은 "진정한 가치는 열망, 욕망, 허영심을 충족시킬 능력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위한 필요를 충족시킬 능력에서 온다(268쪽)"는 점을 명확히 한다. 이러한 파텔의 주장은 아마르티아 센의 "잠재 능력(capability)" 개념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센의 잠재 능력 개념은 사람들이 좋은 삶을 목표하면서 그를 추구하고 실현할 수 있는 기능이나 역량을 의미한다. 센에 따르면, 화폐적 소득은 그 자체가 목표가 될 수 없으며 그것은 행복을 얻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사람이 건강하지 못하거나 교육을 받지 못하게 되면,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잠재 능력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

센의 이러한 개념은 이미 소득 수준뿐만 아니라 교육 수준과 보건 수준을 함께 고려하고 있는 '인간 개발 지수(HDI : Human Development Index)'라는 지표로 구현된 바 있다. 센은 최근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함께 국내총생산(GDP)의 한계를 지적하고, 생태 비용, 가사 노동 비용, 삶의 질 등을 고려한 새로운 대안적 지표를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GDP는 틀렸다>(조지프 스티글리츠·아마르티아 센·장 폴 피투시 지음, 박형준 옮김, 동녘 펴냄)를 참고할 수 있다.) 이러한 대안적 사회 회계 방식 개발은 매우 중요한 시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충분한 주목을 받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새로운 대항 운동과 민주주의

이러한 시장 중심적 사고와 시장의 지배에 대해서 모든 사회 세력들이 그냥 당하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편에서 사회 전체를 시장의 자기 조정에 맞춰 재구성하려는 운동이 일어나면, 다른 한편에서는 이러한 흐름으로부터 사회를 자기 보호하려는 운동이 일어난다.

폴라니는 이를 시장 사회의 '이중 운동'이라고 불렀다. 이 이중 운동은 일보 전진, 일보 후퇴와 같은 줄다리기나 시계추 운동이 아니라 한 악장으로부터 다음의 악장으로 이어지는 교향곡에 가까우며, 이 운동의 과정에서 새로운 정치 운동이 생겨나고 새로운 제도가 만들어진다.

파텔이 주목하는 것도 이 대항 운동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정치의 형식과 민주주의다. 파텔은 공유지의 파괴에 저항하여 나타난 국제적인 농민 운동 조직인 '비아 캄페시나(La Via Campesina)', 멕시코의 사파티스타(Zapatista) 등 구체적인 사례들에서 시장으로부터 권력을 찾아오려는 구체적인 운동들을 발견한다.

이러한 운동에서 나타나는 공통점들은 생태적 가치에 대한 성찰, 공유지의 회복, 느리고 지루하지만 많은 사람의 숙의와 토론을 통한 결정 등이다. 하지만 파텔은 이를 성급히 완벽한 하나의 민주주의 모델로 정형화하려 하지 않는다. 보건이나 은행 시스템의 국유화를 건의하면서도 시장의 폐절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민주적인 통제를 통해 시장이 이윤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움직이도록 하여 사회 속으로 돌려놓는 것이 중요한 과제임을 강조한다.

"번영은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일어난다. 우리가 그 사회적 맥락에 참여할 때, 금전적 가치의 지니를 램프 속으로 돌려보내고 인간 본성에 관한 특별한 관점에서 유래하는 가치의 정치학을 발전시키게 된다." (269쪽)

이러한 사회의 대항 운동과 새로운 정치가 남의 나라 얘기만은 아니다. 무상 급식으로 시작된 복지에 대한 요구, 반값 등록금 시위, 두리반에서의 투쟁, 영도조선소 크레인 위의 '소금꽃나무'를 향한 희망 버스…. 한국에서도 이미 사회의 대항 운동은 시작되었다. 이 속에서 우리는 시장 만능의 신화를 넘어서 배신의 시대를 이겨낼 힘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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