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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합격 하고 펑펑 울었다. 500만 원이 없어서…"

['강매' 당한 학사모, 대학은 죽었다·④] 빚만 1000만 원, 슬픈 스무 살의 고백

"합격입니다. 축하드립니다. 본교의 등록일자는 어쩌고저쩌고…."

인터넷으로 대학교 합격 통지 글을 보고 울었다. 펑펑 울었다. 나는 그 당시 고3 담임선생님께 전화해서 목 놓아 더 울었다. 나 이거 붙었는데 이제 나는 등록금을 어디서 구해야 하냐고.

수시 합격은 붙으면 무조건 등록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나는 그야말로 패닉 상태였다. '그러게 사립대는 안 된다고 하지 않았냐'고 나를 원망하는 엄마의 끊임없는 질책이 이어졌고, 국가에서 대출해주는 제도가 있는 것 같다며 시청에서 근무했던 친언니는 가장 현실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해주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내가 사는 곳이 '촌구석'이어서 무이자 '혜택'을 받으며 등록금을 전액 대출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고작 스물한 살인데, 내 이름으로 진 빚이 벌써 1000만 원이 넘는다. 내 친구는 그마저도 훌쩍 뛰어넘었다. 4퍼센트 대의 저렴한 이자율로 이자도 올해부터 꼬박꼬박 내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이자를 내주는 대신 용돈을 깎았단다. 올해부터 한 달 용돈이 20만 원이라고 했다. 한 번씩 등록금에 대한 씁쓸함이 밀려올 때는 그 친구를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곤 했다.

그렇지만 매번 등록 기간마다 한 바탕 전쟁을 치러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기간에 맞춰 관련 서류를 제출해야 하고, 이번엔 떨어질까 어떻게 될까 발표 날까지 노심초사 기다려야 한다. 1학년 1학기 등록은 진짜 치열했다. 등록 기간보다 대출금이 훨씬 늦게 나왔기 때문에 나는 어디선가 500만 원가량(입학금까지 합해서 정말 그 정도였다)의 돈을 빌려서 미리 등록을 해야만 했다.

부모님은 이리저리 돈을 구하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고, 결국은 은행 대출을 해서 돈을 마련한 다음, 정부 대출금이 나오면 그걸로 때우는 식으로 일은 마무리가 되었다. 하지만 2학년이 되고 난 지금에도 그런 비슷한 일이 발생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했다. 대출 발표가 늦어지거나 지급일이 연기되면 등록 기간보다 훨씬 뒤에 돈이 입금되는 것이었는데, 학교 측에 문의해봤더니 "그냥 학생, 수업 들으시고 추가 등록 기간에 입금하면 되요. 그렇게 하는 학생 많아요" 하는 말 뿐이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기 전까지는 엄마가 해준 밥 먹고 편하게 공부만 하면 되는 학생일 뿐이었지만, 대학 합격을 기점으로 엄청나게 많은 것이 바뀌어버렸다. 공부할 돈이 없다는 것은 현실이었다. 돈이 많다는 친척, 아는 사람들 모두가 나의 등록금 문제에 대해서는 시선을 회피했다. 그게 현실이었다.

갓 스무 살이 된 그 때의 나에게는 뼈가 시리도록 차가운 현실이었다. 그저 국립대를 못간 것이 한이라면 한이었다. 물론 지금도 나의 친언니는 국립대로의 편입을 종용하곤 한다. 처음에는 한귀로 흘렸는데, 점점 대출금이 마일리지처럼 쌓여가는 걸 보니 그럴 듯한 의견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힘들게 들어온 대학이었는데 환상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부터 깨지기 시작했다. 많은 학생들(특히 남자애들)이 연예인 공연에 침을 흘렸고, 만나면 하는 얘기가 연예인 가십에서부터 패션, 연애에 대한 내용뿐이었다. 그래도 나름 (빼어나진 않았지만) 공부 좀 한다는 애들을 모아놓은 모양이던데, 학력이랑은 별개의 문제인 것 같았다.

다른 대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다. 사실 나의 대학에 대한 로망 중의 하나는 술잔을 기울이면서 사회 비판을 하고 돌아가는 정세에 관한 얘기를 나누며 친구들과 같이 고민하는 모습도 포함되어있었다. 하지만 로망은 산산이 부서져버리라고 있는 건지 그런 고민 속에 술잔을 기울였던 기억은 1학년 내내 한두 번 정도에 불과 했었던 것 같다. 그것도 밤새 그런 것이 아니고, 아주 잠깐. 듣는 이들은 내가 만취했다고 생각할 만큼 무시 받으면서.

수업은 고등학교의 연장이었다. 누구도 질문하지 않았고, 발표는 교수님께 '잘 보이기 용'으로 변질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따분하고 지루했다. 수많은 지식들을 머리에 우겨넣고 나오는 수업들의 향연이었다. 가끔 내 두뇌를 말랑말랑하게 해주는 참신한 강의도 있었지만, 교양 수업이었고, 많은 학생들이 '쉽게 학점 받기 위한 쉬운 수업'이라는 이유로 함께 듣는지라 그리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나에게 대학 강의는 딱 그 정도였다. 그 때문에 1학년 초에 굉장히 방황을 했었다.

학교 등록 기간에는 그까짓 돈 좀 빌린다고 (무이자로) 이런저런 마음 고생을 하면서도 이렇게 하는 일이 옳은 일인지, 매번 고민스럽고, 조심스럽고, 괴로웠다. 4000만 원 가지고 창업을 하는 게 더 낫지 않을 까 하는 고민을 첫 학기에는 정말 진지하게 하곤 했다. 그 갈등이 상당히 심화될 때는 몇몇 선배나 아는 언니에게 조언을 구해보았지만, 그들도 역시나 나와 같은 학교의 학생이고, 또 사회 초년생이고, 약자이고, 늘 고민을 되풀이하는 심약한 (개인적으로는 참으로 의지되고 믿음직스러운 사람들이지만)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그냥 열심히 공부하고 장학금도 받아서 잘 취직하라고 조언 아닌 조언을 해주었다.

이번 학기 등록금은 동결이었다. 작년에는 입학과 동시에, 우리 학교가 솔선수범하여 이 불황 가운데서도 등록금을 인상했다는 소식을 듣고 씁쓸했었다. 올해는 동결이지만 그 또한 우리 총학에서 애쓴 결과물이 아니라 신촌의 총학생회가 만들어 낸 결과여서 안도하는 와중에 쓴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우리 캠퍼스 안에서는 '등록금 동결' 현수막이 5개는 넘게 덕지덕지 붙어져 있었다. 허허허… 그래 수고들 하십니다. 남의 머리 삭발해서 얻은 동결 홍보하시느라고.

동결은 됐지만 터무니없이 비싼 것은 여전했다. 이화여대를 잇는 환상 등록금의 명맥을 이어주시는 우리 등록금이 아니겠는가. 물론 신촌이 약간 더 높긴 하지만 오히려 우리 입장에서는 부대시설이나 다른 여타 교육의 질 차원에서 느낄 수 있는 신촌과의 차이를 비교하면 우리의 등록금이 더 나가면 나갔지 모자라진 않을 듯하다. 그것은 지방에 살았던 내가 처음 신촌 캠퍼스에 구경 갔을 때 중앙도서관을 보면서 뼈저리게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우리의 중앙도서관은 '중앙에 있기 때문에 중앙도서관'이지만, 여긴 정말 도서관에 책이 많구나, 이정도 규모에 시설이면 중앙도서관이라 할 만하구나. 정도?

▲ ⓒ프레시안(최형락)
동결이 끝이 아니다. 요즘은 반값으로 내려야한다고 아우성이다. 광화문에서는 연일 시위 중이고, 각종 매체에서는 이 상황을 둘러싸고 설왕설래 중이다. 하지만 학교는 조용하다. 송도 캠퍼스의 중복학과 설립에는 그렇게들 고군분투하더니, 지금은 조용하다. 어떤 교수님은 "반값 등록금은 이루어지지 않을 거다. 하지만 장학금 제도가 좀 더 개선 될 모양인데 자네들은 휘둘리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라"라고 말했고, 학생들 역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반값 등록금을 위한 시위가 있을 예정이니 참여하라는 문자는 돌고 돌다 기어이 멈춰 버렸다. (나에게는 오지 않았는데 어떤 친구의 폰을 뒤적거리다가 온 것을 발견하고는, 좀 허탈했다.) 반값 등록금을 이야기 하자는 대자보는 부는 바람에 한 겹 두 겹 뜯어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지방인지라 학생들을 모으고 집회를 여는 것이 상당히 힘에 부치는 모양이었다. 참여하지 못한 내가 할 얘기는 아니지만, 사실 학교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서울만큼 반값 등록금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지방 출신이다. 수도권에서 각종 집회, 시위가 벌어지든 말든 사실 크게 신경 안 쓰는 분위기에 익숙하다. 특히 내가 자라온 도시는 그러한 집회를 추진하는 모습도 전혀 볼 수 없는 '집회의 불모지'였다. 개인적으로는 부모님께 폐 끼치지 않으려고, '나대다가' 정부 대출금 수혜자 명단에서 탈랄 할까봐, 와 같은 이유로 집회에 참여하기를 꺼리는 편이다.

등록금 인하에 목숨 걸고 제일 먼저 달려들어야 하는 인간이 그 등록금 대출마저도 못할까봐 조마조마하면서 쉽게 나서지 못하는 꼴이라니…. 우습다. 그런데 정말로 현실적으로 쉽게 나서기 힘든 상황이다. 정말로 학교를 더 다닐 수 없을까봐 겁이 나는 것이다. 만약 내가 광화문과 가까운? 거리의 학교를 다녔더라면 혹시 달라 질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렇지도 않은지라, 지금 당장은 몸 사리기에 급급하기만 하다.

하지만 언제나 열심히 시위하는 그들을 응원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이제야 대학생들이 제 할 말을 하는 듯해서 너무나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상대평가가 주를 이루는 학점 체계에서 시험을 뒤로하고 무언가를 하기는 굉장히 힘든 일이다. 하지만 지금 대학생들은 그것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본인들의 권리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기에 하는 행동이긴 하지만, 집회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도 있는 상황에서 하기 쉽지 않은 일인 것이다.

등록금. 쉽지 않은 이름이다. 나에게는 대학을 포기하게 만들 뻔 했던 아찔했던, 또는 앞으로도 예정되어 있지 않은 휴학이라는 놈을 안겨줄지도 모를 이름이다. 어쩌면 어떤 이에게는 과거에 자신에게 좌절을 주었던 이름일지도 모르고, 어떤 이에게는 지금도 힘겹게 버텨나가야만 하는 이유가 되는 이름일지도 모른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등록금, 그래 그거 비싼 건 알겠는데 내 세금에서 떼어내 갈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라고. 물론 나도 그 생각에 동의하긴 하지만 그 생각이 반값 등록금 추진에 대한 극단적인 반대 의견으로 다가와서 마음이 무겁다. 모두의 입장을 반영한 정책은 현실적으로 이뤄지기 힘들지 모르지만, 모두의 입장을 고려한 차선책의 정책은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 '강매' 당한 학사모, 대학은 죽었다

☞<1>"좋은 대학 간 것도 아닌데…'불효자'는 웁니다"
☞<2>"교수 딸 문제지 정리하는 대학원생, 이유인즉슨…"
☞<3>"때 묻은 토슈즈, 무용학도들은 왜 '108 계단'에 올랐나?"

- '대학 안 가도 당당한 사회'

"대학 졸업장 '강매'하는 나라, 행복하십니까?"
"'기름밥' 잘 사는 꼴 못보는 그들, '룸살롱 여대생'엔…"
"교수 월급이 청소부보다 많아야 할 이유, 과연 있나?"
"최저임금 인상이 산업경쟁력 높인다"
"'사람값'이 비싼 사회를 찾아서"
"'좌파'보다 국익에 무관심한 그들, '진짜 우파' 맞나?"

- '직업과 학력·학벌에 따른 차별이 적은 사회'

"명문대? 우리 애가 대학에 갈까봐 걱정"
의사와 벽돌공이 비슷한 대접을 받는 사회
"덴마크도 40년 전에는 '서열 의식'이 견고했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당신들을 공부시켰다"
비정규직 임금이 정규직 임금보다 더 많은 나라
이건희 회장 손자에게도 '무상복지'가 필요한 이유

- 경쟁보다 효율적인 것? 바로 협동!

"평등 교육이 더 '실용'적이다"
"'혼자 똑똑한 사람'을 키우지 않는다"
"'로마'만 배우는 역사 수업"

- '반값 등록금' 바라보는 여러 시각

"대학 졸업장 '강매'하는 나라, 행복하십니까?"
"대학 진학률이 높아서 문제?…'최저임금'부터 올리자"
"너, 대학 안 나와서 뭐 먹고 살래?"
"서울대가 등록금 2000만 원 받는다고 정원 못 채울까"

- '대학주식회사'의 그늘

"'시장의 포로' 대학 캠퍼스…술집 빼고 다들어왔다"
등록금 400만원, 대학교육 '원가'는 도대체 얼마?
"한국의 대학, 이제 시장의 포로가 됐다"
"비참해진 대학, 뭘 가르칠지 목표도 방향도 잃었다"
자살 또 자살, '공짜' 없는 카이스트는 지금…

- '대학의 교육 불가능'

☞ ①
"학부생 인질 잡힌 대학원생 등록금,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 ②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 가난할수록 공부할 수 없는
☞ ③ '스펙 괴물'이 된 대학생의 시한부 인생
☞ ④ "접대 자리엔 인문학 전공자 노래 한 곡이 효과적?"

☞ ⑤ 누가 대학생과 대학을 욕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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