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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 희망 '농부'! 연봉 2400만 원! 꿈이 아냐!

[변방의 사색] 학교의 '교육 불가능'과 그 대안

두 달 전 이 지면에 쓴 "학교의 교육 불가능에 대한 생각"에 대해 몇몇 분들이 '진단은 구체적인데, 대안이 너무 추상적'이라고 지적해 주었다. 교육학 연구자도 정책 입안자도 아닌 현장 교사에게 구체적인 대안까지 요구하는 것은 좀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어쨌든 그만큼 절박한 마음이라고 이해하고 싶다.

그 글을 관통하는 '교육 불가능'이라는 문제의식은 지난 10여 년간 내가 학교 교육 현장에서 체득한 최대한의 실감을 표현한 것이다. 대안으로 이야기한 '기도와 노동의 교육'이란 어쨌든 내게는 아직 총론일 뿐이며, 각론은 앞으로 실천으로써 채워 나갈 것이다.

오늘 이 지면에서는 짧게나마 보론을 제출하고자 한다. 몇 년 사이 내게는 몇 가지 관심사가 생겼다. 하나는 '돈'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농업'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껏 한국 교육의 체제 대안으로 핀란드 교육을 주목하는 흐름에 대해 퍽 비판적이었는데, 최근 몇 가지 계기를 통해 핀란드의 역할 모델이었으면서도 이와는 질적으로 다른 덴마크 교육을 접하게 되었다. 덴마크 이야기는 다음을 기약하고, 오늘 이 자리에서는 앞선 두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나마 풀어놓고 싶다.

충청남도 홍성에는 '풀무학교'로 불리는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가 있고, 이 학교의 자매 학교로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풀무학교 전공부가 있다. 존경하는 선생님과 벗이 이 학교에서 근무하는 이유로 몇 번 방문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첫 방문이었던 3년 전 여름, 짐을 풀기 위해 기숙사에 들어갔을 때 몰려오던 체취를 잊을 수 없다. 그것은 흙냄새이기도 했고, 시큼한 땀 냄새이기도 했다. 빨랫줄에는 흙 묻은 작업복들이 널려 있었고, 작은 도서관에는 종교, 철학, 농업, 환경 관련 서적들이 빽빽했다. 농부를 키우는 학교만이 가질 수 있는 정신적인 기품이 서려 있었다.

나는 우리 교육의 외적 환경을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대략 둘러치는 습속에 반대한다. 식상해서가 아니다. 의식 있는 이들이 만악의 근원으로 지목하는 신자유주의 교육 체제는 사실상 지위 경쟁을 둘러싼 집단 가학 체제와 다름없는 한국 교육이 시절을 좇아 살짝 옷을 갈아입은 것에 불과하다. 교육 부담의 사적 전가, 교육 주체들 간의 경쟁 조장, 자본에 의한 교육의 종속과 상품화, 이들은 한 번도 공공적인 교육 체제를 수립해보지 못했고, 복지 국가의 근처에도 못 가본 우리로서는 별로 새롭지 않은, 익숙한 것들이다.

나는 산업화와 경제 성장이 우리 교육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산업화가 불러온 농업의 죽음, 경제 성장이 낳은 껍데기뿐인 풍요. 이것들이 우리 교육과 아이들의 삶에 끼친 변화를 '어찌할 수 없음'으로 무심하게 괄호 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교육적 견지에서 산업화와 경제 성장은 악몽인 것이다.

박정희 시대 이래 우리는 가난을 박멸해야할 바이러스로 여겼고, 농업은 쪽팔리는 '1차 산업'이었다. 고르게 가난했으므로 나눔과 유대가 숨 쉴 수 있었고, 아직 돈에 오염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적이었던 것이 지난 시대의 '가난'이었다. 그러나 가난은 양극화 시대의 급격한 빈부 격차와 이로 인한 박탈감과 부서진 가족 관계로서 삶을 망가뜨리는 '빈곤'으로 자태 변환했다.

'흙'은 아이들에게 사물과의 진정한 교섭을 가능케 했던 가장 교육적인 조건이었다. 농업의 죽음으로 한국 사회는 재생의 근거지를 잃었다. 그리하여, 아이들은 오직 '안락한 삶'으로만 나 있는 시스템의 상자 속에 유폐되었고, 극악한 지위 경쟁의 트랙을 끝없이 질주해야만 한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한국인의 정신세계에는 '안락'에 대한 희구와 그것을 잃었을 때의 공포밖에 없다.

풀무학교 전공부를 알게 되면서 나는 희망이 생겼다. 3학년 담임이던 나는 대학 진학 대신 농부가 되기를 원하는 아이를 알게 되었고, 풀무학교 전공부를 소개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부모님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부모님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대신, 대학 1학년이 된 졸업생 아이들 여섯 명과 여름방학 때 그 학교에 다녀온 적이 있다.

아이들이 일주일간 했던 것이란 낮에는 논에서 엎드려 일하고, 밤에는 글을 쓰고 이야기 나눈 게 전부였다. 그러나 아이들은 농업의 가치를 일생의 신념으로 실천하는 여러 스승들을 만났고, 풀무학교를 중심으로 홍동면 지역에 펼쳐진 여러 대안적인 삶의 현장을 직접 보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농사일이 의외로 즐겁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 같다. 진지하고 성실한 아이들이어서였겠지만, 이들에게 이 체험은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것이 분명하다. 최소한 이 아이들과는 농업과 시골의 삶에 대해 실감을 바탕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나는 이것이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학교 교육을 통해서 아이들을 농민으로 길러내는 것은 지금 현실 속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공교육 학교의 일부를 농업계로 전환하는 것도, 학교 교육 과정 속에 농적 요소를 결부시키는 것조차 지금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연령이나 학력 인증과 무관한 이런 뜻있는 작은 학교들이 곳곳에 세워진다면, 아이들로 하여금 이런 학교에서 스스로 체험한 것으로 농업과 시골의 삶을 자신들의 인생에서 가능한 하나의 선택항으로 열어줄 수는 있다.

일주일이든, 6개월이든, 1년이든, 공교육 학교에 재학 중인 뜻있는 아이들이, 혹은 인생의 길을 고민하는 청년들이,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중·장년들이 이런 학교에서 생활하게 하는 것이다. 오늘날 학교 교육에서 가르칠 수 없었던 가치, 이를테면 철학, 종교, 문학, 역사에 대한 공부와 농업을 통한 자립적 삶, 마을을 중심으로 펼쳐진 협동적 삶에 대한 체험, 이것이 뿌리내릴 수 있다면, 이것을 지렛대로 하여 교육 불가능으로 허우적거리는 오늘날 학교 교육을 조금씩 천천히 들어 올릴 수 있을 것이다.

▲ '풀무학교' 학생들의 식목일 수업 모습. ⓒpoolmoo.or.kr

뿌리 내리기

그러나 이런 교육적 노력 또한 그 자체로는 절름발이가 될 수밖에 없다. 물질적 삶의 문제를 풀어줄 수 없기 때문이다. '기도와 노동의 교육'은 정당하고 아름다우며, '자발적 가난'이라는 내핍의 가치는 마음 깊은 이들의 영혼을 울릴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 변화의 도도한 흐름을 기약하기에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 맹자의 말씀처럼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생겨나는 것이 본연의 인간임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내 삶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변화는 확실히 '귀향'이다. 도회 생활에 적응할 수 없었고, 세입자로 부초처럼 떠도는 삶이 서글펐다. 아이가 몹시 아플 때, 맞벌이를 하는 우리 부부가 하루라도 마음 편히 맡길 만한 이웃이 없었다.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강박이 자리 잡았을 때, 결국 시골의 삶을 생각하게 되었고 귀향을 결행했다. 그러나 나는 잘 알고 있다. 어쨌든 고향에도 나의 '일자리'가 있었기 때문에 귀향이 가능했다는 사실 말이다.

나는 아이들의 삶에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주제들을 중심으로 수업을 준비한다. 거기에 농업과 식량 위기에 대한 이야기가 빠질 리 없다. 이대로 가면 먹을거리의 4분의 3을 사다 먹는 우리나라는 끔찍한 식량 공황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극히 현실적인 위기의식을 내 수업을 듣는 아이들은 느끼는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 농업이야말로 제법 전망 좋은 일자리가 될 것이라는 현실적인 계산속도 조금은 생각해 보는 것 같다.

이 수업의 끝머리에서 나는 이런 이야기를 던진다. "앞으로 너희 세대의 삶은 '계약과 해지를 반복하는 비정규직의 삶'인가, '고향에 뿌리내린 독립적 소농의 삶'인가, 라는 선택항으로 구성될 것"이라고 말이다. 아무리 찧고 까부는 아이들이라 하더라도 앞으로 자신의 삶이 호락호락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 텔레비전 드라마에 나오듯, 도회에서 좋은 승용차 굴리며 드넓은 아파트에서 폼 나게 살아가는 것이 현실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이 답답한 시골이 그래도 도회에 비하자면 인간적이고 정겹다는 것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도 또한 잘 알고 있다. "일자리가 없잖아요" "농사 지어서 돈 못 벌잖아요." 여기서 모든 이야기는 턱 막히고 만다. 결국 '돈' 문제인 것이다.

사실, 나는 진작부터 이런 딜레마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국가가 혹은 지방자치단체가 이런 '시골의 삶'을, '농업'을 보호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농가 소득의 절반에 가까운 몫을 보조금으로 지급하는 것이 미국을 위시한 이른바 선진국들의 일관된 정책이 아닌가. 통계청에서 발표한 2009년 농가 평균 소득은 월 90만 원 가량이다. 월 90만 원, 누가 이 돈으로 시골 들어와서 살겠다고 하겠는가.

국가가 농민들에게 100만 원의 보조금을 주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인간 생존의 물질적 기초를 담당하는 농업의 가치를 인정하고, 이를 공적 개념으로 정립해야 하는 것이다. 월 100만 원의 소득을 보장하고, 자신의 노력으로 90만 원의 평균소득을 거둔다면, 즉 농가당 200만 원 가량의 소득이 보장된다면 농사를 지으며 고향에 남을지를 아이들에게 물어본다. 손을 들게 하면, 적지 않은 아이들이 손을 든다. 결국 돈 문제를 풀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희망의 물적 기초 : 사회 신용론과 시민 배당

이런 생각을 오랫동안 굴려가고 있을 때, <녹색평론>을 통해 사회 신용론과 시민 배당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내게는 신천지의 발견처럼 벅차게 다가왔다. 대학이 이 모양인줄 알면서도 아이들은 왜 대학을 가기 위해 이 난리들인가. 대학을 통과해서 기업에 고용되지 않고서는 '돈'에 접근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업에 고용되는 일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돈은 사실상 '헛것'이 아닌가. 태환되는 금이나 지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은행이 통장에 찍어주는 숫자로서만 존재하는 '신용'일 뿐이다. 이렇게 '신용'으로만 유통되는 헛것의 돈이 전체 통화량의 90%라고 하지 않는가. 은행은 예금자가 맡긴 돈에서 지급준비율이라는 명목으로 중앙은행에 일부만 예치해놓고 그 나머지로 대출을 위시한 여러 금융 기법으로 몇 십 배의 돈(신용)을 새롭게 창조할 수 있다.

오늘날 돈은 분명 과잉인데도, 국가도 기업도 돈이 모자라 끝없이 돈을 빌리고, 빌린 돈을 갚기 위해 몸부림치고, 결국 사람 몫으로 돌아갈 돈을 가로챈다. 시장 경제에서 가장 약한 자리에 있는 농민에게 돌아갈 몫의 돈은 항상 이렇게 모자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돈'의 노예이다. 그러므로 '돈'이 무엇인지, 오늘날 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질문해야 한다. 사회 신용론이 거기에 답을 주고 있다. 신용을 사회화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회화된 신용을 시민들에게 배당해 주자는 것이다. 은행이 아니라 국가가, 지방자치단체가, 혹은 공신력 있는 민간의 어떤 단위가 돈을 발행해서 배당하면 되는 것이다.

'돈'을 모두에게 주는 것이 과연 온당한지 물을 것이다. 대단히 상식적인 답변을 시도해 본다. 누구나 돈에 접근할 권리가 있다. '부'(富)는 자본가와 창의적인 몇 사람이 아니라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협력한 결과물이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으로 벌어들이는 그 어마어마한 돈을 스티브 잡스와 그에게 투자한 인간들만 나누어 가져서는 안 된다.

스티브 잡스는 백지에서 아이폰을 만들어내지 않았다. 멀리보자면 그는 까마득한 옛날부터 지금껏 이어져온 인류 문명의 가장 첨단의 자리에서, 수학과 정보공학, 시각 예술뿐 아니라, 핵심 부품의 원료를 제공한 제3세계 민중들의 고통 위에서 아이폰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부는 근원적으로 자연의 선물이며, 인류의 축적된 유산의 결과물이다. 따라서 예수의 비유처럼 포도원 주인이 아침부터 일한 사람이든, 저녁 무렵에 도착한 일꾼이든 똑같은 한 닢 데나리온을 주는 것은 극히 당연한, 인간적이고 합리적인 분배 방식이다. 한 데나리온은 당시 유대 세계에서는 작은 돈이었다. 모든 돈을 그렇게 똑같이 나눠주자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기본적 필요'를 충당할 권리를 주자는 것이다. 그 나머지를 각자가 스스로 일구어나가는 것이다.

'교육 불가능'이 치유되기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경쟁 시스템이 완화되어야 한다. 누군들 아이들을 이렇게 키우고 싶겠는가. 결국 '돈'으로 향하는 이 길이 갈수록 좁아지는 상황을 풀어주지 못하는 한, 이 모든 교육 개혁 논의는 공허한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나의 희망

그러므로 나의 희망은, '풀무학교 전공부' 같은 학교를 내가 사는 곳에서 소박하게나마 만드는 것이다. 이런 작은 학교가 곳곳에 만들어지고, 뿌리 내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리고 그들의 최소한의 물질적 삶을 보장하기 위해 사회 신용론에 바탕을 둔 공공 통화를 발행할 수 있도록 농업 부흥의 의제를 제기하고 실천하는 것이 또한 나의 꿈이다. 둘 다 그럴 듯하게 들릴지언정, 꿈같은 소리로 치부될 가능성이 높다. 이 글을 읽는 많은 이들 또한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진보 진영에서 한창 이야기되는 '핀란드 교육 모델'이라든지 '복지 국가'보다는 이것이 훨씬 실질적이며 근본적이며 또한 가능성 있는 이야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가까운 벗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고개를 끄덕이면서 또한 갸웃거린다. 그러나 나는 이반 일리치가 말하듯, '기대'(expect)가 아니라 '희망'(hope)을 갖고 있다.

누군가에게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우리가, 직접 해 보자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것 말고는 달리 다른 길이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의 일부는 풀무학교 전공부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지역과 학교>(2011년 3-4월호)에도 실렸습니다.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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