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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략의 원흉' 후쿠자와 유키치, 맨얼굴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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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략의 원흉' 후쿠자와 유키치, 맨얼굴을 본다!

[프레시안 books] <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 사상을 묻는다>

한국 사회에서 "후쿠자와 유키치, 침략의 원흉만은 아니다"라는 글이 아무렇지 않게 떠다니고 있다. 후쿠자와 유키치가 침략의 원흉이 아니라면 조선의 구세주라도 된단 말인가? 이런 건 마치 "이토 히로부미는 한국의 은인일 수도 있다."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식자층에서 왜 모를까? (☞관련 기사 : '탈아론' 후쿠자와 유키치, 침략의 원흉만은 아니다!)

이런 평가에 대해 재일조선인 인권평화운동가 서승이 "후쿠자와에 대한 표피적이고 맹목적인 긍정론을 우려한다"라고 일침을 가하는 가운데, '아시아 침략의 선동가'로서 후쿠자와 유키치를 제대로 들여다 본 야스카와 주노스케의 <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 사상을 묻는다>(이향철 옮김, 역사비평사 펴냄)가 번역 출간되었다.

1만 엔 권의 모델로 일본 사회에서 여전히 사랑받는 '스승님'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를 신격화한 대표적 인물로 도쿄대학교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 1914~1996년)를 꼽는다. <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 사상을 묻는다>는 마루야마의 존경하는 '후쿠자와 님'에 대한 우상 숭배 신화에 정면 도전한 책이다.

▲ <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 사상을 묻는다>(야스카와 주노스케 지음, 이향철 옮김, 역사비평사 펴냄). ⓒ역사비평사
이 책은 2000년 말에 일본에서 출간되자마자 '후쿠자와 님'에 대해 집단 최면에 빠진 일본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독자들이 1만 엔 권의 붙박이 인물인 후쿠자와를 끌어내리자는 운동을 전개할 정도였다. 이 책은 일본에서도 '후쿠자와의 모든 것'을 이해하는 데 있어 논리적이고 실증적인 역사 비평서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아시아 침략을 선동한 후쿠자와 유키치의 음모와 흉계의 전모를 밝혀 온 저자 야스카와 주노스케는 2001년 4월 21일 <아사히신문>에 '후쿠자와 유키치는 아시아 멸시를 확산시킨 사상가'라는 논설을 발표했다. 그러자 다음달 같은 지면에 히라야마 요우 시즈오카 현립대학 국제관계학부 조교수가 '후쿠자와 유키치, 아시아를 멸시 했는가?'라는 글을 게재해 반박했다. 이로써 두 학자는 '야스카와-히라야마 논쟁'을 벌이게 됐다.

이 논쟁을 지켜보면서, 또 야스카와가 이 책을 펴내면서 집단 최면에 빠졌던 일본 사회는 조금씩 야스카와 주노스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야스카와는 이 책을 발간하고 나서 교통비만 받고 일본 전역으로 '공짜 강연'을 다니면서 아시아 침략의 원흉 후쿠자와 유키치의 '가면'을 벗기는 일에 매달렸다.

후쿠자와 유키치! 그는 일본의 전후 사상가들이 전쟁과 패전으로 얼룩진 시대를 뛰어넘어 새로운 희망을 찾으려고 붙잡은 모델이었다. 그에게 '자유주의자'라는 환상을 덮어씌운 전후 사상가들은 그 이미지를 뒤흔들 만한 발언은 외면한 채 오로지 입맛에 맞는 문구들만 나열하며 후쿠자와를 일본 근대화의 최고 스승으로 만들었다.

야스카와는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분칠된 후쿠자와의 껍질을 하나둘씩 벗겨 일본인이든 한국인이든 눈이 있고 귀가 있는 자라면 알 수 있는 '아시아 침략의 선동가'인 그의 면모를 볼 수 있게 해 준다. 그런데 이렇게 늦게 한국에 나타난 이 책 앞에서 우리는 부끄러운 속내를 감출 수 없다. 이런 책은 진작 한국인의 손으로 만들어 냈어야 하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뒤늦게나마 후쿠자와 유키치를 바로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야스카와 주노스케에게 새삼 고마움을 느끼며, 한국인으로서 이 책을 읽으며 찾을 수 있는 세 가지 의미를 살펴보자.

첫째. 후쿠자와는 아시아 멸시와 침략의 선동자다.

"조선 침략의 목적은 일본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며 남을 위한 게 아니라 일본을 위한 것이다." "조선국은 사지가 마비되어 스스로 움직이는 능력이 없는 병자와 같다." "대만인은 오합지졸 좀 도둑떼" "청국병사는 돼지꼬랑지 새끼" "조선과 중국 이 두 나라는 진보의 길을 모르고 구습에 연연하며 도덕마저 땅에 떨어진데다가 잔혹, 몰염치는 극에 달하고 거기에 오만방자하다."

"조선은 본래 논할 가치가 없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당면의 적은 지나(중국)이기 때문에 우선 병사를 파견해 경성에 주둔 중인 지나 병사를 몰살하고 바다와 육지로 대거 지나에 진입해 곧바로 북경성을 함락시켜라." "눈에 띄는 것은 노획물밖에 없다. 온 북경을 뒤져 금은보화를 긁어모으고 관민 가릴 것 없이 아무것도 남기지 말고 빠뜨리지 말고 '창창 되놈'들의 옷가지라도 벗겨 가져와라."


야스카와는 이 책의 부록 '후쿠자와 유키치 아시아 인식의 궤적'이라는 항목에서 후쿠자와의 국제 관계 인식, 전쟁 구상, 아시아 멸시 발언 등을 낱낱이 적어 놓았다. 이 구절들은 일본인이 후쿠자와를 '대 스승님'으로 받들어 모시기에는 너무나도 부끄러운 모습이다. 이런 자가 위대한 선각자로 분칠된 채 최고액권 1만 엔 권의 인물로 일본인들의 품에 아직까지 안겨 있다는 게 불가사의하다.

낯 뜨거워 읽을 수 없는 아시아 멸시 발언을 두고 야스카와는 이러한 발언이야말로 청일전쟁을 위시한 일본이 일으킨 숱한 전쟁에서 일본군의 죄의식을 마비시키게 한 원인이었다고 역설한다. 이런 인식을 가진 후쿠자와는 '조선이 문명국이 되지 못한 것은 썩은 조선 왕조를 무너뜨리지 않은 탓'이라며 철없는 서른 살 조선 청년 김옥균에게 돈 몇 푼을 건네며 조선 왕조 타도를 부추겼다.

"일본이 조선을 독차지하는 것은 일본의 권리이고 의무이다"라는 망발을 내뱉는 후쿠자와의 오만방자함은 새삼 거론할 가치도 없지만 이런 인물과 놀아난 개화기의 조선인들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청일전쟁은 문야(문명과 야만, 文野)의 전쟁"이라며 일본을 문명국가의 최고에 놓는 모습은 '문명 인식'이라기보다 미치광이의 자기도취였다.

둘째, 후쿠자와는 말썽 많은 천황제의 중심에 있었다.

후쿠자와는 천황제를 누구보다도 열렬히 뒷받침한 사람으로 "개인의 재산과 목숨은 천황을 위해 바칠 때 그 가치를 발한다"고 평생 주장했다. 야스카와는 주저 없이 후쿠자와를 이중인격자로 규정한다. 후쿠자와는 <제실론(帝室論)>에서 "천황제는 어리석은 백성을 농락하는 사기술"이라고 간파했음에도 일생동안 천황에 대한 맹세로 일관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후쿠자와는 "개전 이래 천황 폐하께서는 대본영을 히로시마로 옮겨 친히 전쟁 관련 업무를 보시고 주야로 침식조차 편안하지 못했다"고 들먹이며 천황도 이러할진대 일반 병사의 목숨쯤이야 천황을 위해서라면 초개처럼 버려도 되는 양 호도하는데 앞장섰다. 또 이들의 영혼은 야스쿠니가 책임진다는 궤변으로 전쟁 미화를 부추겼다.

더 나아가 후쿠자와는 "국가를 위해서라면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내던져도 아깝지 않다" "압제도 내가 당하면 싫지만 남을 압제하는 것은 몹시 유쾌하다"라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로 전쟁을 찬양하고 국민을 선동하고 나서, "천황은 야스쿠니 신사 제사에 참석하여 유족에게 금품을 지급하여 죽은 자의 공로에 보답하라"며 천황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전략도 구사했다.

셋째, 야스카와는 후쿠자와 유키치의 실종된 저널리스트 정신과 진실 은폐·왜곡을 통렬히 꼬집는다.

흔히 후쿠자와를 일본 개화기의 계몽사상가, 교육가, 언론인 등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명성황후를 시해한 사건을 두고 후쿠자와는 조선의 궁궐을 짓밟은 일본의 의도가 "조선의 국사 개혁을 촉구하고 조선이 스스로 자립하도록 돕는 데 있었다"라고 말한다. 야스카와는 이런 망언을 놓고 후쿠자와를 "사건의 진실에 눈감고 은폐로 일관한 몰염치한 언론인"이라며 질타한다.

또 다른 예도 있다. 1894년 11월 25일 중국 여순에서 발생한 야마가타 아리토모 제1군사령관이 저지른 '여순 학살' 사건을 놓고 당시 <뉴욕월드>는 "일본은 문명의 가면을 둘러쓰고 야만의 근육과 골격을 가진 괴수"라고 보도했다. 이에 후쿠자와는 "일본 군대는 문명화된 공명정대한 일을 했으므로 한 점의 비난을 받을 것이 없다"라고 반박해 세계 언론으로부터 비웃음을 당했다.

이런 사실을 세심히 짚으며 야스카와는 "허풍이라면 후쿠자와, 거짓말이라면 유키치"라는 유행어가 돌아다닐 만큼 형편없는 인물이었던 후쿠자와가 어떻게 근대 일본에서 "원칙 있는 체계적인 사상가"로 자리매김했는지 의아해 한다. 그는 책을 마무리하면서 일본의 시민에게 다음과 같이 간곡히 호소한다.

"지금 일본은 전쟁으로 지샌 어두운 쇼와 시대를 털어내지 못하고 역사의 시계바늘을 메이지 시대로 돌려놓은 채 그릇된 '스승님' 후쿠자와 모델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밝은 메이지 시대의 큰 스승으로 추앙받는 후쿠자와야말로 전쟁으로 얼룩진 쇼와 시대를 끌어낸 장본인임을 깨닫고, 일본인들은 과거의 집단 최면에서 벗어난 상태에서 아시아 평화를 말해야 한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야스카와는 이어서 "후쿠자와에 대한 오랜 최면에서 깨어나는 길이야말로 메이지 시대에 싹 틔웠던 일본의 아시아 침략사상에 대해 속죄하는 길이며 아시아 여러 나라에 입힌 전쟁 책임을 절감하는 작업의 시초"라고 역설한다. 이런 시각을 가진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도 이렇게 제안한다.

"이 책의 출간을 계기로 제국주의 시대에 잘못된 '탈아입구(脫亞入歐)' 노선을 선택하여 아시아와 일본의 근대사에 불행한 균열과 분열을 만들어 낸 후쿠자와 유키치 사상을 극복하는 공동 연구의 제안과 함께 피해자와 가해자 역사 인식의 차이를 좁혀가 진실된 역사적 언어를 만들어 나가자!"

거듭 강조하지만 이 책은 제국주의 침략을 당한 한국인의 손에 의해서 먼저 나왔어야 할 책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그간 나온 <후쿠자와 유키치 자서전>(허호 옮김, 이산 펴냄)과 최근 임종원이 쓴 <후쿠자와 유키치>(한길사 펴냄)는 주체적 역사관 없이 그저 후쿠자와 유키치를 계몽사상가, 교육가, 저술가로 일본의 근대화를 이끌었던 뛰어난 인물로 묘사했다.

이러한 한국인의 후쿠자와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 견주어 이 책 <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 사상을 묻는다>는 아시아를 불행에 떨어뜨리고도 영웅시되었던 후쿠자와란 인물에 대한 깊은 성찰을 주는 책이다. 학자의 양심을 걸고 후쿠자와 신화의 모순에 도전한 이 책은 일본 제국주의 아래 고통과 시련을 겪고도 그 실상을 파악하지 못하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꼭 읽어야 한다.

한국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나온 지 10여 년이나 된 이 책의 난해한 메이지 시대의 문장과 한국어화하기 어려운 일본말을 매끄럽게 번역해 낸 광운대학교 교수 이향철의 노고도 엿보인다. 다만, 제3장 '조선 왕궁 점령, 민비 살해' 편에서 "민비"라는 말이 거슬린다. 비록 원문을 충실하게 따랐다 하더라도 '명성황후'로 표기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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