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 두 진행자는 다른 진행자들과 차별화 되는 점이 확실히 있다. 진행자라고 다 똑같은 진행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라디오 전화 인터뷰를 몇 번 해보면서 일종의 '노하우'가 쌓였다. 작가들이 질문지를 보낸다. 보통 대여섯에서 열 개에 이르는 질문을 보낸다. 그러면 나는 이를 출력해서 내가 할 이야기를 써나간다. 마지막으로 (이 정권 들어 명예 훼손 소송을 당한 사람들이 하도 많은 관계로) 필요한 경우 인터넷을 통해 사실 확인을 한다.
방송 시간, 전화 연결이 되면 진행자와 인터뷰를 시작한다. 상당수 진행자들은 읽기 시작한다. 말 그대로 '읽는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읽는다. 그런데 그냥 읽는 것도 쉽지는 않다. (사실이 그렇다.) 쭉 읽다가 잘못 읽어 버벅거리고 엉뚱한 부분에서 호흡을 하는 바람에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시다"처럼) 문장 내용이 조금 이상해지기도 한다. 물론 드문 경우지만 이런 경우 나는 이 진행자가 사전에 질문지를 읽어보지도 않았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나 역시 별 걱정이 없다. 나는 나대로 읽으면 된다. 쭉 읽고 나면 진행자는 "아~ 예~ 그렇군요. 그러면 말이죠…" 하면서 다음 질문을 읽으면 나는 그 질문을 받아서 또 읽으면 된다. 사실 우리 시사 프로그램의 인터뷰 방식은 너무 정형화되어 있다. 작가가 써 준 것을 그대로 들고 '누가누가 잘 읽나'로 흐르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들은 질문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런데 이와는 꽤 다른 인터뷰가 있는데 바로 김미화 씨나 손석희 교수와의 인터뷰다. (물론 이 두 사람 외에도 있다.) 이 두 사람은 읽(기만 하)지 않는다. 이들과의 인터뷰는 질문지 내용 외의 것에 대비해야 한다. 바로 예기치 않은 추가 질문.
이것은 이들의 공통점인데 여기엔 진행자의 준비성과 예리함, 그리고 청취자에 대한 배려 등이 묻어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을 받은 인터뷰이들은 때로 난감해진다. 이런 질문에 뜸을 들이거나 더듬거리기도 하고 전문성이 부족한 사람은 엉뚱한 소리를 하기도 한다.
핵심을 짚고 넘어가려는 순발력 있는 질문이 이들의 공통점이지만 이게 또 다르다. 먼저 김미화. 그의 질문은 어찌 보면 부탁 같다. 인터뷰이의 답변을 듣다가 청취자가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은 단어나 내용이 튀어나오면 곧 부탁한다. 예를 들어 "교수님, 지금 말씀하신 ○○, 짧게 좀 설명해 주시겠어요?" 하면서 보충 설명을 요구한다. 다른 시사 프로그램에서는 좀처럼 듣기 힘든 말이다.
보통 기자나 아나운서 등 방송인이나 교수는 많은 경우 엘리트주의에 흠뻑 빠져 있기 때문에 일반 청취자들의 시사 상식 수준을 자기 수준으로 한껏 끌어올리기 마련이다. '이 정도는 알아야지' 이런 식인데, 자신의 프로그램 청취자를 우리나라의 오피니언 리더 집단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예컨대 영문 약자로 된 경제 용어를 함부로, 막 사용한다.
그러나 김미화 씨는 철저하게 청취자의 입장에 맞춘다. 과거 아무리 유식함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코미디언 출신이라 해도 시사 프로그램 8년이면 그 수준이 한껏 올라가게 마련이지만 그의 방송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정말 친절하고 어떨 땐 청취자로서 고마워지기까지 한다. '나'를 배려한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런 김미화 씨가 어제 자신이 가꿔온 프로그램에서 결국 하차하기로 했단다. 우리나라 라디오 방송 역사상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만 두는 진행자를 위로하고 아쉬워하는 경우가 또 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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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화는 가고 이제 손석희는…
이번 정권 들어 김미화 씨와 함께 가장 많은 압력을 받은 방송인이 바로 손석희 교수다. (그는 이미 <100분 토론>에서 논란 끝에 하차했다.) '좌파 적출' 논란 속에 많은 이들이 퇴출당했는데 항상 짝패로 거론되던 두 사람 중 김미화 씨가 스스로 하차하면서 손석희 교수 혼자 남게 됐다.
손석희 교수 역시 추가 질문을 자주 날리는데 그 성격은 꽤 다르다. 인터뷰이가 내세우는 주장의 논리와 그 근거(또는 증거)까지 확인하고 파고들어가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인터뷰이의 이야기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여겨질 때 그가 자주 던지는 질문이 바로 "그건 왜 그렇죠?" 읽는 것에 익숙한 인터뷰이는 여기에서 엉뚱하거나 실망스러운 답변을 하기도 하지만 준비된 정치인의 경우엔 바로 여기서부터 서로 치고받는 논쟁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가 끈질기게 질문을 던지는 이들은 대부분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 등 권력자들이다. 물론 브리지트 바르도와의 개고기 논쟁도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고 이른바 어록이란 것도 있지만 그의 방송인으로서의 신뢰는 권력자들에게 물러서지 않고 집요하게 핵심을 파고들어가는 질문 공세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자주 논란이 되어왔던 좌파, 우파의 구분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는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과도 논쟁을 벌였고 박근혜 전 대표와도 팽팽한 긴장을 만들어 내기도 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도 물러서지 않았다. 2006년 있었던 특집 <100분 토론>에서 노 전 대통령은 그가 예민한 현안에 대해 질문 공세의 고삐를 늦추질 않자 끝내 "오늘 대담 형식으로 진행한다고 해 놓고 이렇게 꼬치꼬치 따지는 법이 어디 있느냐"며 따지기도 했다.
손석희 씨는 강자에게 집요했다. 진보와 보수를 달리 대하지 않았다. 사실 나도 <시선집중>에 처음 출연하면서 순진하게 손석희 씨를 '우리 편'이라고 착각(?)하고 나섰다가 "어! 아니잖아!" 하며 내심 당혹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어느 인터뷰이에게나 대단히 '언프렌들리'한 진행자다.
나의 경우 <시선집중>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작가로부터 받은 질문지 순서대로 질문을 받은 적이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1번 질문에서 7번으로 건너뛰었다가 다시 3번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마침 질문지 출력 않고 모니터를 스크롤하며 보려 했는데,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어느 날은 1번 질문을 던지고 나머지는 다 무시하고 자기 방식대로 가기도 했다. (끝나고 "당했다"는 생각뿐이었다.) 방송 직전에라도 필요하면 질문 내용을 바꾸는 모양인데 어쨌든 <시선집중> 출연할 때는 읽을 생각일랑 아예 말아야 한다.
짝퉁 보수가 판치는 세상
ⓒMBC |
사실 두 프로그램은 MBC 라디오 뿐 아니라 '언론 MBC'라는 브랜드의 두 기둥이었다. 더 이상의 조합이 있겠나. 그럼에도 MBC는 라디오 부분 최고의 원투 펀치 중 하나를 스스로 걷어찼다. 김미화 씨가 스스로 하차를 선언하자 MBC는 당혹해 하는 척 하면서 계획대로 가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MBC는 왜 이들을 내몰려 할까. 이들이 좌파라서? 우선 손석희 씨의 경우 머리 가르마가 8대2의 비율로 좌측으로 확 쏠렸다는 점 외엔 그에게서 좌파의 낌새를 찾을 수 없다. 사실 나는 손석희 씨가 우리나라에서 씨가 말라버린 진짜 보수일 것 같다. 자기 관리와 원리 원칙에 충실하다면 그는 보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보수는 왜 그를 싫어할까.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보수가 사실은 짝퉁, 가짜라는 점이다. 한나라당이 어디 보수인가. 기득권 집단이지. 가짜 보수이기에 자신에게 고분고분하지 않고 맞는 말, 바른 말 하는 손석희 씨가 미운 것이다. 그들에겐 균형이나 공정 같은 개념이 통하지 않는다. 남들에게 어떻게 대하든 남들 듣는 데서 조금이라도 자기들에게 난처한 질문을 하는 자는 곧 제거 대상이 된다.
나는 김미화 씨도 보수라고 본다. 고난을 딛고 자수성가해 성공한 사람이다. 더구나 연예계 중에서도 가장 남성적이고 위계질서 엄격한 코미디언 출신이다. 이런 사람이 보수 아니면 우리나라에서 누가 보수이겠는가. 그런데 왜 우리 보수는 그를 싫어할까. 역시 가짜 보수이기에 싫어한다. 자기 것 챙기기에 급급한 그들은 항상 힘없고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챙기고 이들과 함께 하는 사람의 꼴을 못 본다. 권력 집단은 서민들이 좋아하는 사람을 가장 싫어하게 마련이다.
보수를 참칭하는 권력자들에 의해 김미화 씨는 쫓겨났고 손석희 씨는 이제 코너에 몰렸다. MBC 경영진은 자신들의 '충성도'를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부담스럽지만 손석희 씨에게 계속 압박을 가하고 괴롭힐 것이다. "할 만큼 했다"는 증거라도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정권에 따라 다른 곳도 아닌 언론이 이렇게 춤을 춘다는 것에 비애감을 느낀다. 사장이야 코드도 맞추고 자기 사람을 선임할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가장 능력 있고 검증된 진행자, 기자, 피디(PD)까지 내치듯 쫓아내는가.
부시만도 못한…
미국에서 공부할 때다.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대통령이던 아버지 부시가 클린턴 민주당 후보와 붙었다. 선거 운동 기간 미 언론계의 전설이라 해야 할 NBC의 바버라 월터스가 부시 부부와 인터뷰를 했다. 월터스는 낙태 반대를 표방하는 공화당 후보인 부시에게 물었다. 내 귀를 의심케 하는 질문이었다.
"당신은 낙태를 반대한다. 그런데 당신의 딸이 만약 강간을 당해 임신을 하게 됐다면, 그래도 반대할 것인가?"
듣는 순간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현직 대통령에게 당신의 딸이 강간을 당했다고? 아무리 가정이라도 그런 무례한 질문이 이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 그러나 동시에 나는 "딱 걸렸다"고 생각했다. 여기선 그 누구도 못 빠져나갈 것이라고. 완전무결한 질문이다.
그런데 이 질문을 들은 대통령 부부는 미동도 없다. 아버지 부시는 곧 월터스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하기 시작했다.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나는 내 딸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이야기 하고 뱃속 태아가 가진 인간으로서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 할 것이다. 최종 결정은 딸이 한다."
완벽한 탈출이다. 중국 초나라 고사에 등장하는 모와 순이 현실 세계에 등장한 듯했다. 이러한 논쟁이 부딪히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 경험은 인간의 말초적 쾌감의 경험을 뛰어 넘는다. 나는 이러한 수준의 논쟁, 아니라면 읽는 수준을 뛰어넘는 진행자를 보고 싶다. 우리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주는 진행자라면 더욱 좋겠다. 그런 진행자가 지금 몇이나 될까.
하나 더. 그 선거에서 클린턴이 승리해 민주당이 8년간 집권했고 앨 고어를 아들 부시가 나서서 꺾고 대통령에 오른다. 아들이 아버지의 패배를 설욕한 것이다. 그러면 원래 한 성질 하던 아들 부시는 8년 전 자기 아버지를 인터뷰 내내 곤경에 빠뜨리고 있지도 않은 사실을 만들어 자신의 오누이를 능멸하고 가문을 모욕한 바바라 월터스를 찾아내 출연하던 프로그램에서 모두 하차시키고 방송사에서 쫓아내 버렸을까.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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