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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가 '족발'이야? 밥만 먹여주면 다야? 희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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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가 '족발'이야? 밥만 먹여주면 다야? 희망은?

197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을 열광시켰던 애니메이션은 단연 <미래 소년 코난>이다. "서기 2008년(이미 지나갔군!) 지구는 핵전쟁 위기에 처해있었다"는 멘트와 함께 전국의 아이들은 학교 담벼락을 넘어서라도 텔레비전 앞에 모여들었다. 이들에게 <미래 소년 코난>은 생태 문제에 눈을 뜨게 한, 핵전쟁의 위험을 깨닫게 한, 기계 문명과 발전 혹은 개발에 질문을 던지게 한, 최초의 교과서였다.

다른 한편, <코난>은 건국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근대적 대서사시이다.

<코난>이 대서사시인 것은 잘 짜인 이야기 구조 때문이다. '홀로 남은 섬'에서 출발한 코난은 포비와의 '우정'을 쌓아 자신의 '사랑' 나나를 구출하고 하이하바와 인더스트리아에서 억압과 착취에 시달리던 사람과 '봉기'해 낡은 질서를 무너뜨리고 대륙으로 융기한 '(이제는 대륙이 된) 홀로 남은 섬'으로 귀환한다. 하나가 둘을 만나고, 다시 그것이 셋이 돼 압제를 무너뜨리고 마침내 '공동체', 즉 '나라'가 된다.

그렇다면, 이 나라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가? 인류학자 클리퍼드 거츠가 사용한 개념을 좀 더 확장해서 생각해보자. 나라는 동시대인을 동료로 끌어 모아서 만들어진다. 동시대인은 시간은 공유하지만 공간은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더 나아가 동시대인은 같은 시대를 살아가지만 그 시대에 대한 인식은 '아직' 의식적으로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에 반해 동료는 공간을 공유한 사람들이다. 우리가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감각을 공유한 것이 동료이다. 또 동료는 시대에 대한 인식을 공유한다. 동시대인 전부를 끌어 모아 동료로 만드는 것, 그것이 어찌 보면 인류 공동체라는 근대의 이상이었다. 그러나 이 근대의 이상은 현실적으로 '국가'라는 형태로 나타났으며, 국가를 통해 맺어진 동료, 그들이 '국민'이다.

그러나 이 국가는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말처럼 국가란 무덤 위에 만들어진다. 대부분의 건국 신화가 죽음에서 시작하는 것이 증거이다. 국가는 일종의 '애도 공동체'이다. 지금 서남아시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바로 나라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낡은 질서에 의해서 누군가가 죽는다. 그 죽음을 통해 동시대인들은 자신들이 어떤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시대 인식이 공유되면서 동시대인들은 '혁명의 동료/형제자매'로 일어난다. 마침내 이미 우리 것이 아닌 저들의 낡은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탄생시킨다. 나라가 만들어진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파괴한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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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토니 주트 지음, 김일년 옮김, 플래닛 펴냄). ⓒ플래닛
토니 주트의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김일년 옮김, 플래닛 펴냄)에 대한 서평의 서두에서 뜬금없이 <미래 소년 코난>과 건국의 이야기를 한 것은 이 책이 다름 아니라 '나라'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꼬장꼬장한 사회민주주의자/공동체주의자인 주트가 보기에 신자유주의에 의해 파괴된 것은 다름 아니라 '나라'이다.

이때의 나라란 단지 시장을 통제하고 불평등을 조정하는 기구로서의 '국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마거릿 대처가 "사회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남자와 여자, 개인만이 있을 뿐이다"고 선언했을 때 사망 신고를 받은 것은 바로 이 시대 인식과 공간을 공유한 동시대인 동료들의 정치 공동체인 '나라'다.

'나라'가 붕괴되고 그 여파가 어떻게 인간의 삶을 집어 삼켰는가에 대해 주트는 지금까지 그 어느 신자유주의 비판서보다 더 격양되고 울분에 찬 목소리로 가차 없이 폭로하고 비판한다. 사회는 더욱 불평등해졌다. 불평등은 인간 삶의 어쩔 수 없는 조건이라고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저자가 보기에 불평등해진 사회보다 더 큰 문제는 사람들이 불평등이라는 병리학적 현상을 그저 살아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탐닉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 '강하다는 것'은 과거에는 고통을 인내하는 능력으로 이해가 되었지만 이제는 '남을 괴롭히는 능력'으로 전환되었다. 가난한 이가 괴롭힘을 당한다면, 모욕을 당한다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사회에는 사람들 사이의 상호신뢰, 절제, 정직, 공공선처럼 공동체를 존속시킬 수 있는 가치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부를 거머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 체제로부터 얻을 것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사람들 역시 이 '라이프스타일'에 빠져있다. 그 결과 사회는 새로운 '나라'를 건설할 꿈을 꾸지도, 꿀 수도 없게 되었다.

불평등을 조정하고 탈락한 사람들을 세심하게 보살피면서 실패한 사람들의 자존심을 되살리는 것, 그것이 20세기의 진보를 규정짓는 사회 개혁의 핵심이었으며, 그 결과가 복지 국가다. 보편주의에 기초한 복지 국가는 소득과 관계없이 모두 똑같이 사회 부조와 공공 서비스의 혜택을 누렸다. 책에 나온 말을 그대로 인용하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많은 부분들이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충당된 결과, 1960년대에 이르면 유럽의 중산층들은 자신들의 가처분 소득 수준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국가가 나라, 즉 정치 공동체였기 때문이다. 공동체로서의 국가는 공동의 과업을 수행한다. 그리고 이 공동의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신뢰와 협동이 필요하다. 세금이 바로 이런 협동과 신뢰의 상징이다. 세금은 당대에 세금을 내는 사람들 사이에 신뢰가 있을 때에만, 그리고 그 세금을 국가가 올바르게 사용할 것이라는 점에 대해 신뢰가 있을 때에만, 마지막으로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인식이 있을 때에만 가능해진다. 이렇게 신뢰가 바탕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시민 공동체의 일부'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 '우리'의 근대적 최대치가 바로 '국가'이다. 국가를 통해서 그 공간 안에 있는 우리 동시대인들은 동료라는 감각을 확보하고 서로 신뢰하게 된다.

68 세대 탓에 '나라'가 망했다?

주트가 지적하듯이 이 정치 공동체인 국가는 1970년을 시작으로 해서 무너지기 시작한다. 모든 신자유주의 비판서들이 다 거론하고 있는 것을 여기서 다시 거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특이한 것은 저자가 1970년에 들어와 복지국가가 해체되는 것에 큰 공헌을 세운 것으로 '세대'를 거론하고 있다는 점이다.

복지 국가의 혜택을 받으며 성장한 복지의 자식들이 정치 공동체의 일원으로 참여하기보다는 오히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구호를 들고 공적 담론을 잠식했다. 개인과 개인의 권리를 강조하는 신좌파의 흐름은 나름의 정당성이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목표를 공유한다는 의식, 즉 공동의 것에 대한 의식을 명백히 퇴조시켰다. 여기에는 오로지 개인적 주관주의, 즉 순전히 자기 기준에서만 측정한 이해관계와 욕망뿐이었다고 주트는 혹독하게 비판한다. '사적 자유에 대한 열광'과 '공적 구속에 대한 짜증'에 빠진 복지의 자식들이 하이에크와 같은 보수주의, 즉 신자유주의의 귀환을 부채질한 것이다. 젊은 세대에 대한 그의 입장은 대단히 가혹하다.

문제는 오늘날 그들(노인들을 의미함)이 받는 혜택의 비용을 지불하는 자들이 대공황과 전쟁을 직접 체험해 보지 못한, 즉 복지 국가가 탄생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이유를 알지 못하는 젊은 세대라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부담해야하는 비용에 분노했다. (151쪽)

그 결과가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신자유주의가 망쳐놓은 세계이다. 무엇보다 공동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신자유주의에 따른 공공 부문의 민영화와 같은 정책의 가장 두드러진 결과는 '우리가 다른 시민들과 무엇인가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동시대인을 동료로 끌어 모으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이 그저 동시대인으로 해체되고 있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동시대인은 시간은 공유하지만 공간을 공유하지 않는다. 세계화는 이 흐름을 가속화시켰다. 이제 나의 '동료'는 지구 저편에서 나와 채팅하는 사람이지 우리 동네에 사는 김 씨 아저씨가 아니다. 그러나 정치는 김 씨 아저씨와 하는 것이지 지구 저편의 페르난도와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구화된 동시대인들 사이에는 '정치'가 들어설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저자에 따르면 정치는 특정 공간에서만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는 정치 운동이 없는 시대에 들어섰다. 물론 여기에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애틀에서부터 시작된 저 거대한 반지구화 운동이 있지 않은가? 2년에 한 번씩 전 세계의 사회운동이 모여서 세계사회포럼을 개최하지 않는가. 지금도 지구 어디선가는 세계화에 대항하고 지구 온난화에 대항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 이것에 대해서도 주트는 지극히 비판적이다. 그가 보기에 이것은 "여럿이 모여 감정을 표출하는 것 이상"은 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목표들을 하나로 아우르지 못하는 한 이것은 정치 운동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삶에서 그저 소비자로 살아가는 것에 불과하다. 저자는 이에 대한 한 마디로 응수한다. "이보다는 잘해야 한다."

자, 여기까지다. 그는 '이보다는 잘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 첫 단추는 공적 대화를 재구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더 잘해서 만들어야 하는 그 공적 대화의 공간이자, 결과는 '도로' 복지 국가이다. 그는 책의 맨 마지막에서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마르크스의 말을 인용하였지만, 그 변혁을 통해 복귀해야하는 것은 사회민주주의/복지 국가이다.

주트는 신자유주의가 유럽을 18세기로 돌려놓았다고 흥분하였지만, 그가 변혁을 통해 이루고자하는 것도 짧게 보면 1945년에서 1970년 사이에'만' 존재하던 바로 그 '복지 국가'이다. 그래서 그는 갑자기 신중함을 요구하며 우리는 20세기의 업적들을 다시 상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계화에 맞선 최선의 중재 기구는 다시 '국가'이며, 국가만이 시민에게 응답할 수 있고, 시민만이 국가에 응답할 수 있다고 한다. 철도나 운동장과 같은 공공시설을 만드는 것, 즉 개인의 욕망을 전체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한데 모을 수 있는 것으로 세금보다 더 나은 제도는 아직까지 없다.

사회주의는 실패했다. 사회주의는 그 어떤 외형도, 그 어떤 아류도 실패했다. 반면 사회민주주의는 이미 많은 국가에서 권력을 잡는데 성공했을 뿐 아니라, 최초에 사회민주주의의 기틀을 닦은 사람들이 가졌던 소박한 꿈을 훨씬 뛰어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19세기 중반에는 그저 이상에 불과해 보였던 것들이, 그리고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지나치게 급진적으로 보였던 것들이 많은 자유주의 국가들에서 일상적인 정치가 되었다. (229쪽)

'68 혁명', 자본주의의 구세주

사회주의는 실패했지만 사회민주주의는 성공을 거두었다고 하는 주트의 단언에 조소하는 '사회주의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들이 보기에 신자유주의야말로 사회민주주의가 실패한 결과가 아닌가? 신자유주의와 대결하였다가 굴욕적으로 패배하고 무릎을 꿇은 것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사회민주주의가 아니냐는 사회주의자들이 조소가 들려오는 듯하다.

사회주의자들뿐만이 아니다. 토니 주트는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를 젊은이들을 위해서 썼다고 한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주트는 한국어판 제목으로 말하자면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고 촉구하였지만, 젊은이들이 결국 '도로' 사회민주주의에 불과한 그의 당부에 그리 귀를 기울일 것 같지는 않다.

1960~70년대 청년들의 문화 운동과 신좌파 운동에 대한 주트의 이야기를 돌아보자.

사실 <신자유주의 : 간략한 역사>(한울 펴냄)를 쓴 데이비드 하비도 신자유주의가 출현할 수 있었던 문화적, 사회운동적 배경으로 68 혁명을 거론하고 있다는 점에서 토니 주트와 의견을 같이 한다. 요컨대 앞에서 주트가 말한 '사적 자유에 대한 갈망'과 '공적 간섭에 대한 짜증'이 '자유'를 전면에 내세운 신자유주의와 친화력이 상당하였다는 점이다.

68 혁명은 이미 모순에 처해있던 자본주의가 울고 싶은데 뺨때려준 것과 같은, 자본주의의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준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단순하게 정리하면 포디즘 체제의 축적 양식이 위기에 처했으며, 그 위기에 따라 노동을 더욱 심하게 통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더 많은 자유'를 통하여 새로운 축적 양식이 출현해야 하는 때에 자본주의의 방향을 제시한 것이 오히려 68 혁명이라는 이야기이다.

대표적인 것으로 대학을 들 수 있다. 미셸 푸코도 1968년의 혁명은 19세기에 시작된 고등 교육 형태, 즉 소수의 젊은이를 사회적 엘리트로 변환시키는 신기한 제도로서의 대학을 효과적으로 종결시켰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사회가 자신의 지식을 전달하고 지식이란 가면 아래 자신을 전달하는 거대한 메커니즘은 그대로 남아있다. 대표적인 것이 고등학교이다. 이에 반해 오히려 대학은 자신의 낡은 구조를 제거하고 신자본주의의 요구에 실질적으로 적응하였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 68 혁명의 교과서라고 불리는 <일상생활의 혁명>(주형일 옮김, 이후 펴냄)을 쓴 라울 바네겜 역시 다른 혁명과는 달리 수천 년간의 비인간적 행위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볼 수 있는 유일한 혁명인 68 혁명은 억압적 폭력의 회오리 속에서 완성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오히려 1968년에 경제는 자신의 '전성기와 전멸기의 매듭'을 지었다.

자본주의는 생산보다 일반화된 소비에서 더 많은 이익을 얻는 상품 체계로 전환되었다.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역시 스펙터클로 전환하였다. 사회는 권위주의에서 시장의 유혹으로, 저축에서 낭비로, 청교도주의에서 쾌락으로 땅과 인간을 볼모로 만드는 착취에서 환경의 영리적 재구성으로 바뀌었다.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다. 자본은 이제 사람과 사람의 창조력이 더 중요한 자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68 혁명 이후의 자본주의는 '개인보다 소중한 자본'에서 '가장 소중한 자본으로서의 인간'으로 서둘러 넘어갔다. 살아있는 자의 수익성은 더 이상 그의 소진에 기대를 거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재구성에 기대를 걸게 된다.

그 결과는 다품종 소량 생산, 유연 생산 방식의 포스트포디즘이다. '더 많은 자유'와 '더 많은 상상력'이라는 68 혁명의 구호는 자본주의의 구세주가 된 셈이다.

성공한 '복지 국가'가 '삶의 감옥'이 된다면…

그러나 이것이 증명하는 것은 68 혁명의 의도가 아니라 오히려 자본의 괴물과 같은 적응력, 탈영토화하고 재영토화하는 능력이다. 따라서 뒤집어 생각해보면 자본이 젊은 세대의 문화 운동과 신좌파들의 주장을 포섭하는 동안, 구좌파들이 이것을 사적인 것으로 폄훼하면서 적극적으로 포용하지 못한 철저한 무능과 무지의 결과이지 68 혁명 자체의 귀결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들 구좌파는 자본이 이들이 요구하는 것의 자본주의적 의미를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포섭하는 동안 젊은이들의 주장이 무엇인지 파악조차 못했다. 그래서 그것이 사적인 욕망을 분출하는 징징거림 혹은 조직적 당을 파괴하려는 짓거리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하려고 한 것은 바로 이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사이의 이분법, 이미 정치적으로 구획된 그 정치를 해체하려는 가장 '정치적인 시도'였다.

이것을 위에서 이야기한 바네겜의 <일상생활의 혁명>을 통해서 살펴보자. 68 혁명이 일어나기 1년 전에 써진 이 책에서 그는 "일상생활을 지배하던 권태와 그 원인을 고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비주의의 확산과 사회의 스펙터클화에 따라 세상이 안온한 무덤이 되어가는 것 같은 그 순간에 사실 '삶에 대한 열정'이 소비에 대한 자유로 완전히 대체되고, 박탈된 자유에 대한 불만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삶의 열정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더 증가하였다.

그래서 나온 68 혁명의 언어는 "착취자에게 죽음을!"이 아니라 "무엇보다 우선 삶을!"이다. 이것이야말로 68 혁명이 어디에서 출발하여 무엇을 지향하였는지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이들은 생존이 아니라 삶을 위하여 "사회 밖으로!"를 외쳤다.

바네겜은 "우리는 '굶어죽지 않는다는 보장'이 '지겨워 죽을 위험'과 교환되는 세계를 원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일상생활이 주된 걱정거리가 되었다고 말한다. 생존의 풍요로움이 곧 삶의 빈곤으로 이어졌다는 이야기이다. 집단적 생존의 문명은 개인적 삶의 죽은 시간들을 증가시키기만 하였다. 따라서 아무리 스펙터클과 소비 상품들이 넘쳐난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환상은 '신성한 것이든 통속화된 것이든, 집단적인 것이든 개인적인 것이든' 어떤 환상도 일상적 행위들의 빈곤함을 숨길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사람들은 소비를 통하여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으며 모든 욕망을 해방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소비 사회는 소비와 스펙터클에 갇힌, 자유의 이름으로 자유를 감금하는 시스템이라고 고발한다. 따라서 이들의 무기는 화염병만이 아니라 언어였다. 이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창조성이며, 창조성의 존재 양식인 자발성이었다. 따라서 68 혁명이 말과 구호, 아니 시(詩)의 축제인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68 혁명 당시 프랑스가 아니라 알제리에 있었던 푸코조차도 68 혁명이 없었다면 감옥과 섹슈얼리티 등의 것들에 대한 자신의 연구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인정한다. 그는 "5월의 운동은 교육 체제에 종속되었던 반복적인 상황과 보수주의의 가장 구속적인 형태에 종속되었던 개인들이 혁명적 전투를 전개"한 것이며 이로 인해 촉발된 "사유의 위기'는 뿌리가 깊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회민주주의가 안정화되어 있던 스웨덴이나 인민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던 폴란드 그리고 식민주의에 대한 항거가 증폭되고 있던 튀니지에 이르기까지 국가나 다른 제도들 혹은 억압적 집단들이 행했던 일상생활에 대한 계속적 억압, 그리고 이런 불편함을 생산한 권력에 대한 항거가 68 혁명이다.

푸코가 간파했듯이, 68 혁명의 주역들은 국가 권력뿐만이 아니라 대학 당국에서 텔레비전 그리고 길거리 등 사회 속에서 다양한 경로와 제도들을 통해 작동하는 권력을 문제 삼았다. 그들은 사람들이 더 이상 통제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들은 특정한 제도들이 이성이나 정상성의 이름으로 행위, 존재, 실천, 발언의 방식을 확립하고 개인들을 비정상, 광인으로 낙인찍음으로 개인들의 집단에 권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나아갔던 방식을 추적하였다. 68 혁명은 사회의 특정한 계층과 청년 문화에 영향을 발휘하던 권력 형태의 전체 연결망에 대한 반란이었다.

이처럼 푸코는 68 혁명의 독특성은 전통적으로 정치의 공식 영역이 아니던 부분들 전반에 걸쳐 정치를 향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고 본다. 당시에는 마르크스주의와 마오쩌둥주의 언어가 혼재하여 존재하는 모든 문제들을 이들 언어로 적어보려고 하였지만 그 결과는 오히려 마르크스주의가 이런 문제와 직면하는 것에 무기력하다는 것만 입증하였다.

이것으로 정치적 교의의 틀 안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행위는 종언을 고하고 정치 자체에 대해 다양한 질문들이 던져졌다. 68 혁명이 언어의 혁명일 수 있었던 것은 이 혁명이 그동안 갇혀있던, 혹은 제기되지 않던 질문을 제기하는 행위를 해방시켰다는 점이다. 더 이상 진리와 권위, 그리고 당의 이름으로 의문에 붙여지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이것은 전혀 사적인 징징거림이 아니다. 또 주트가 말하는 것처럼 공동의 것을 추구하지 않고 오로지 욕망에만 충실한 그런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정치의 재구성이다. 사회민주주의/복지 국가가 만개해 있던 상태에서 이런 주장이 나왔다는 것에 대해 지금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더욱 깊게 생각해봐야한다.

주트는 젊은이들이 역사를 다시 돌아보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확히 같은 이유에서 1968~70년대를 다시 돌아봐야하는 것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현실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사회민주주의가 왜 청년에게 감옥으로 느껴졌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들이 왜 생존이 아니라 삶을 이야기했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그 삶에 대한 요구에 당시의 사회민주주의가, 아니 지금의 사회민주주의 역시 마찬가지로 얼마나 무지했는지, 그리고 무관심했는지를 돌아보아야한다.

신자유주의/사회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정치적 상상력

다시 <코난>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인더스트리아에서 나나를 구출하고 구질서를 무너뜨린 코난은 하이하바로 돌아가지 않는다. 코난이 봤던 가장 이상적인 정치 공동체는 하이하바였지만 코난은 동료들과 함께 '홀로 남은 섬'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 '홀로 남은 섬'은 더 이상 '홀로 남은 섬'이 아니다.

코난이 떠나 있는 동안 섬은 융기하여 대륙이 되어 있다. 그 대륙에 코난은 새로운 나라를 건설한다. 왜냐하면 모든 건국은 파스카, 즉 출애굽이다. 출애굽은 모든 옛 것과의 단절과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의 이행을 의미한다. 그것은 하이하바를 품은, 그러나 하이하바보다 더 큰, 그런 정치 공동체이다.

내가 이 서평에서 사회민주주의가 낡은 흘러간 옛 노래라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회주의이건, 사회민주주의건 그것을 재생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돌아보아야한다는 것이다. 보라. 지금 신자유주의가 몰락하고 있는 시점에서 박근혜부터 진보신당에 이르기까지 우리 모두는 '복지주의자'가 되었다.

동구 몰락 이후 모두가 민주주의자가 되었을 때 자신만 민주주의자인 척하다 망해버린 좌파의 전철을 또 밟을 것인가?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만으로, 복지에 대한 주장만으로는 아무런 현실적 차별성을 주장할 수 없다. 복지에 대한 진짜/가짜 논쟁은 장충동 족발 집에 붙어 있는 '진짜 원조', '원조 중의 원조'만큼이나 무의미하다. 어쨌든 모두가 복지주의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민주주의가 지금까지 인류가 실험해왔던 체제 중에서 가장 현실적으로 나은 것이었으니 그리로 돌아가자는 주장만으로는 사람을 움직일 수 없다. 왜냐하면 해방에 대한 요구는 그 때보다 더 많아지고 더 커졌기 때문이다. 사회민주주의는 그 해방의 요구에 무관심하거나 무지하거나 무능해서 신자유주의에 패배한 것이다.

지금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고민해야하는 것은 저 주장들이 신자유주의를 불렀다는 타박이 아니다. '더 나은 삶'은 지금의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것만큼이나 그때의 사회민주주의도 넘어서는, 그런 정치적 상상력을 필요로 하며 그것은 현존하는 모든 해방에 대한 욕구들에 더 선도적으로 응답할 때 출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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