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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옆 '기적의 서점', 당신이 주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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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옆 '기적의 서점', 당신이 주인입니다!

[인터뷰] 세 돌 맞은 '길담서원' 주인장 박성준 교수

얼마 전 <경향신문>이 사고(?)를 쳤다. 2월 18일치 1면 머리기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 표기한 것이다.

신문의 사과로 마무리됐지만, 일부 누리꾼은 염원이 오타에 반영된 것 아니냐며 웃음거리로 삼았다. 블로그에 "대통령 퇴진까지 앞으로 며칠" 따위의 장난스런 시계를 다는 등 그가 진짜 '전 대통령'이길 원하는 이들에겐 오늘, 2월 25일이 어떻게 다가올까. '벌써' 혹은 '아직', 대한민국 17대 대통령 취임 3주년이다.

"2008년 2월 25일에 문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세 돌을 맞았습니다."

같은 날 이곳도 3주년을 맞는다. 청와대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위치한, 책방을 겸한 문화·교육 공간 '길담서원'이다.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만난 이는 직함 대신 '서원지기소년'이라는 풋풋한 닉네임으로 통하는 박성준 성공회대학교 교수다.

평화 운동의 큰 지주이자 한명숙 전 총리의 남편으로도 알려져 있는 그와 생태·환경 서가 앞에서 마주 앉아 있으려니, 이곳과 현 정부의 생일이 같다는 사실이 왜 이리도 공교롭게 느껴질까. 우연 앞에 억지 부리고 싶진 않지만, 같은 질문을 던져본다. 길담서원 3주년 '벌써'입니까, '아직'입니까?

▲ 길담서원 내부. ⓒ프레시안(최형락)

결론부터 말하자면 둘 다다. 구체적인 계획 없이 "책을 사랑하는 시민들을 위한 커다란 빈 그릇 하나 두자"는 생각에 공간을 열어 둔 게 다라는데 이 사람 저 사람 알아서들 찾아와 인문학 교실, 음악회, 미술 전시를 열고 있으니 '벌써' 이렇게 컸나 싶다. 그러나 동시에 '아직'이다.

박 교수는 "의도적으로 '문을 열었다'라고 표현하지 않고 '문을 열기 시작했다'라고 표현했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인간으로 치면, 세 돌 맞은 길담서원은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아이와 같습니다. 겨우 3년을 해보고 '이제 됐다'라든가 '우리는 해냈다'라는 말을 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만 이제는 뭔가가 시작되고 있다는 말을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공간

길담서원은 서울시 종로구 통인동에 위치한 20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다. 박 교수의 아이 이름 '길'과 친한 후배 아이 이름 '담'을 따서 지었다는 이름의 울림처럼 공간도 곱고 멋스럽다. 책이 빽빽이 꽂힌 키 큰 서가가 벽을 둘러싸고, 안쪽엔 탁자 몇 개가 넉넉히 떨어져 있다. 커피 내려오는 향기가 퍼지는 사이 손님들은 조용조용 떠든다.

기자가 방문한 시간엔 책과 차를 파는 정도였지만 공간의 모습은 수시로 변한다. 이 동네 문화예술인·출판인, 교사·학부모들의 사랑방이자 '저자와의 만남'이 이뤄지는 장소도 된다. 정기 프로그램도 다채롭다. 올해 1월 기준으로 월요일 저녁엔 '끄세쥬'라는 프랑스 어문 모임, 화요일엔 어른들을 위한 철학 교실, 수·목요일엔 인문학 서적을 영어로 읽는 '콩글리시 서원', 토요일엔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교실로 책방이 분주해진다.

좀 더 안쪽으로 파고들면 작은 전시 공간도 있다. '한 뼘 미술관'이다. 때마침 전시 기획자 전승보 씨가 도착해 3주년 기념 대형 그림을 걸고 있었다. 입구에 가만히 놓인 피아노도 장식용이 아니다. 지난해 초 우연히 이곳에 들른 피아니스트 한 명이 건반을 만져본 뒤 서원에서 연주를 해보겠다고 제안했단다. 그해 2월부터 '책마음샘'이란 이름의 조촐한 음악회를 열게 되었다. 그렇게 함께 한 피아니스트 몇 명이, 이제는 서원을 벗어나 소외된 지역으로 가 콘서트를 열기도 한다.

"공간이 어떤 구조를 갖고 있는가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책과 서가로 꽉 찬 공간이면 운신하기 어렵지 않습니까. 우리가 앉아있는 테이블을 다 치우면, 약 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객석이 만들어집니다. 그렇기에 여기서 연극, 음악회를 열 수도 있고, 강좌에서 영화 관람까지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 길담서원 내 '한 뼘 미술관'. ⓒ프레시안(최형락)

큰 그릇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이렇게 길담서원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장소가 된 것은, 만들 때 구체적인 청사진이 없었기 때문이다. 박성준 교수는 3년 전 통인동에 둥지를 틀던 당시 "책과 공간이 있으면 자연히 사람들이 모여들 것"이라고 말했다. 태평해 보이는 대답이지만 이러한 태도야말로 '시민'에 대한 그의 평소 철학과도 맞아떨어진다.

▲ 길담서원 대표 박성준 성공회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길담서원은 처음부터 열려 있었습니다. 길담서원은 이런 거라고 정의를 내리고 여러 가지 일들을 일사불란하게 추진해나가는 방식을 취한 것이 아니라, 빈 그릇을 하나 갖다놓았을 것뿐입니다. 그래서 마음먹고 시작했던 일들이 어떻게 지속되고 있는가하는 것보다 그동안 어떤 예기치 않았던 일들이 일어났는지, 또 앞으로 누가 합류해서 어떤 일을 벌일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열린 공간 속에서 무엇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은 상당히 두근거리는 일입니다.

열려 있으므로 먼저 참여한 사람과 나중에 참여한 사람 간에도 차이가 없습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길담서원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새로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길담서원의 주인으로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모임이 생기면 초창기에 먼저 시작한 사람들이 기득권이 되고 그래서 나중에 오는 사람들이 좀처럼 자유로이 발을 디딜 수 없게 만드는 경우를 왕왕 목격했습니다. 그러면 그 모임의 생명력과 역동성이 사라지더군요. 그래서 아주 작은 모임이긴 하지만 길담서원만은 그런 길을 답습하지 말자고 생각했습니다."

큰 그릇 속에서 벌어진 예기치 않은 '사건'들은 무수히 많다. 위에서 언급한 '책마음샘' 공연도, 화요일 저녁에 진행된다는 '어른들을 위한 철학 교실'도 그 중 하나다.

이 교실의 발단은 <문화방송>의 라디오 프로그램 '타박타박 세계사'였다. 하루는 제작진이 길담서원을 방송 진행 장소로 섭외했고, 이곳에서 진행자인 사회학자 남경태 씨와 서원 회원들의 만남이 이뤄졌다. 남 씨의 강의를 들은 회원들이 그에게 다시 특강을 제안했고, 작년 봄부터 올해 초까지 8번의 역사·철학 강좌로 이어졌다. 철학 강좌라는 커리큘럼이 따로 있었던 게 아니라는 얘기다.

"시민단체의 강좌라면 달랐겠지요. 먼저 기획하는 그룹이 있고, 그들이 커리큘럼을 시민들에게 통보하면 시민들이 수강 신청을 하는 식으로 진행되지요. 하지만 길담서원의 강좌는 우발적인 만남과 시민들의 자발성에 따라 굴러갑니다. 일단 누군가 자기가 하고 싶은 걸 꺼내 놓으면, 마치 작은 눈공을 굴리면 큰 눈공이 되듯 일이 진행됩니다.

시민단체 활동을 하면서 제가 안타깝게 생각했던 건, 시민들이 활동의 주인이 되지 못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언제까지 시민들은 대상이 되고, 전문가나 활동가가 주인이 되어야 합니까.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에 이런 패러다임이 제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이젠 방법을 좀 바꿔야하지 않겠는가, 시민들도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가, 그런 질문들을 가져왔죠. 길담서원은 여러 활동을 통해 그에 대한 확신을 할 수 있게 된 것이고요."


ⓒ프레시안(최형락)

'책방'으로 살아남기

이렇게 의미 있는 실험들을 하고 있는 것은 좋지만, 그래도 '서점 주인'으로서 수험서나 자기 계발서 한 권 들여놓지 않고 괜찮을까. 경제적으로 자립 가능한지가 궁금했다. 우려와는 반대로 박 교수는 이러한 독특한 형태의 운영 방식을 취하고 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책방만 고집했다면 아마 견디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책방과 모임 두 날개이기에 오히려 현상 유지가 가능하죠. 언젠가 유럽 사회에서도 이미 오프라인 책방들도 책방의 기능만으론 살아남기 어려워, 중요한 모임의 장소로 진화해가고 있다는 요지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길담서원도 바로 그런 진화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큰돈을 버는 것은 아니지만 다행히 휘청거리지 않고 달려왔습니다. 안정성이요? 시민단체건 조그만 사업체이건, 대개 3년을 해보면 될성부른지 아닌지를 알고, 5년을 해보면 그제야 기반이 생긴다고 합니다. 다행히 3년째인 지금 '싹수'가 보입니다."

그래도 결코 책방으로서의 기능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좋은 책을 고르고 한 핏줄 책끼리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도록 배치한 세심한 배려가 묻어난다. 입구 앞 가장 잘 보이는 앉은뱅이 서가에도 베스트셀러나 막 나온 신간이 아니라 1~2달 전에 출간돼 어느 정도 평가를 거친 책들을 두었다.

▲ 길담서원 서가. ⓒ프레시안(최형락)

'안목'을 칭찬하자 그는 몸을 낮춘다. "책을 고르는 것까지 길담서원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안목이라고 한다면 과장일 것"이라며 되레 출판인들과 언론인들에 공을 돌린다.

"우리나라의 출판 생태계가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출판인들이 엄청나게 큰 문화적 공헌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분들이 사명을 갖고 때로는 수지타산이 안 맞을 것 같은 책들도 열심히 펴내 주었기 때문에,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했을 좋은 책들을 우리말로 많이 접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제가 생선 장수라면 그분들은 어부입니다. 그들이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이건 어두운 밤이건 깊은 물에 그물을 던져 펄펄하게 살아 있는 좋은 생선을 잡아주기 때문에 생선장수인 제가 열심히 팔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프레시안>을 포함해서 좋은 신문과 잡지들이 책 소개 코너를 통해 끊임없이 좋은 책을 소개해주기 때문에, 그 도움으로 책 정보를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모든 책을 일일이 다 읽어보고 좋은 책을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렇게 한쪽에 출판하시는 분들, 한쪽엔 출판된 책들 가려서 소개해주는 언론 매체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 책방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만일 길담서원을 열지 않았더라면…'

3년 전 인터뷰에서 그는 "올해부터 '바깥사람'이 돼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1968년 통혁당 사건으로 13년간 옥중 생활을 했다는 의미에서, 이후 한명숙 전 총리의 대외 활동을 도왔다는 의미에서 '안사람'에 가까웠다. 바깥으로 돌아보니 어땠을까. 3년간 사적으론 어떻게 변했을까를 물었다.

ⓒ프레시안(최형락)
"반가운 질문입니다. 세 돌맞이 잔치 때 그간 경험을 토대로 한마디를 하게 되어있는데요. 어젯밤에도 어떤 얘길 할까 궁리하다가 제가 대학교 1학년 시절 영어 교과서에서 본 한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만일 다시 1학년이 된다면(If I were a freshman again)'. 마찬가지로 내가 길담서원을 열지 않았더라면, 그럼 난 어떻게 되어있을까.

'나는 길을 잃었었다'라고, 문을 열던 당시 인터뷰에서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실제로 전 개인적 삶으로서도 사회 속 시민으로서도 나는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길을 잃어버린 것 같은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목마른 자가 스스로 샘을 파는' 심정으로 이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길담서원의 최대 수혜자, 그게 바로 저일 것입니다.

물론, '너만 있냐. 나도다!' 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을 겁니다. (웃음) 길담과 만난 것으로 인해 삶에 변화가 왔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괄목상대(刮目相對)라고 하지요. 다시 대할 때는 눈을 비비고 봐야 할 정도로, 이 만남을 통해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겁니다. 독서가 삶에 주는 변화가 그렇습니다."


동네에도 변화가 있을 것 같았다. 길담서원을 중심으로 책도 나누고 밥도 나누는 '동네 커뮤니티'가 형성되진 않았을까. 문을 열던 당시 행정 기관과 시민단체, 문화 시설이 많고 '인(仁)으로 통(通)한다'는 뜻으로도 해석되는 통인동의 인문 지리학적 특성을 강조하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는 "아직 이 공간이 지역민들과 함께 커뮤니티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솔직히 털어놓는다.

"정직하게 말해 그런 점은 미흡합니다. 다만 이런 공간이 하나의 대안 모델로서 작용하고 있다는 확신은 있습니다. 누가 농담처럼 '길담서원은 전국구다'라고 말했는데, 실제로 이런 작은 문화 공간이 생기 있게 움직이는 것에 대해, 전국에서 상당히 따뜻한 눈으로 관심을 가져주고 있습니다. 자기 동네에도 이런 공간을 하나 만들고 싶다며 많은 분들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요즘 이 '전국구'끼리 뭉치고 있다. 성균관대학교 앞 '풀무질', 대학로의 '이음문고', 서울대학교 앞 '그날이 오면', 서대문 근처 '레드북스' 등 길담서원처럼 문화·교육 기능을 겸하는 서울 시내 책방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갖고 경험과 노하우를 나눈다. 이번 달엔 길담서원에서 모임을 가졌고 박 교수는 무엇으로든 활용 가능한 공간 배치에 대해 조언했다고 한다.

ⓒ프레시안(최형락)

그간의 경험들을 책으로 남기고 싶은 욕심은 없을까. 박 교수는 "기록은 착실하게 해둬야겠지만, 3년 밖에 안됐는데 그런 것부터 생각하는 건 좋은 자세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내실이 있다면, 언젠가는 안으로부터 나오는 기운과 향기가 결국 세상을 향해 나갈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때가 되면 파리의 전설적인 서점에 대한 회고록, <셰익스피어&컴퍼니>(실비아 비치 지음, 박중서 옮김, 뜨인돌 펴냄)와 같은 책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 날이 오려면 "적어도 10년"이란다. 지금은 응원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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