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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녀 '위험한' 감정에 빠뜨리는 철학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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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녀 '위험한' 감정에 빠뜨리는 철학책?

[프레시안 books] 알랭 바디우의 <사랑 예찬>

심리학에서도 그렇지만 '사랑'은 철학에서도 가장 적게 연구된 학문 분야의 하나였다. 사랑만큼 모호한 감정을 동반하면서 다양한 행동의 종을 뽐내는 심리 복합체가 또 있을까. 우연한 만남을 운명으로 만드는 힘, 사랑. 68 혁명 이후 각종 사회적 담론과 해체주의의 영향으로 더욱더 가난한 담론으로 치부되어 왔던 '사랑'을 철학적으로 분석한 책이 등장했다. 이 지구상에 사랑에 웃고 사랑에 우는 사람들을 위한 책. 바로, 알랭 바디우의 <사랑 예찬>(조재룡 옮김, 길 펴냄)이다.

먼저 저자인 알랭 바디우에 대해서 알아보자. 바디우는 1937년 모로코에서 태어난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파리고등사범대학의 교수이다. 아버지는 레지스탕스 활동을 한 사회주의자였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툴루즈 시장을 지내기도 했다. 바디우는 젊은 시절에는 사르트르주의자였고, 이후 알튀세르의 충실한 지지자가 되었지만, 1968년 5월 혁명 이후 확고한 마오주의 노선을 취하며 알튀세르와 결별했다.

철저한 좌파 논객인 바디우는 '복수(複數)의 진리'를 내세우며 이주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 직접 팻말을 들고 시위에 나서는, 행동하는 철학자로도 유명하다. 탈근대 철학자들의 '차이의 철학'과는 다른 관점에서 각종 소수자들을 배려하는 철학을 지향하는 그는, 나와 남을 봄에 있어서 '차이'보다는 '같음'을 이해하는 것이 진정 어렵고 중요한 일이라고 설파한다.
 
▲ <사랑 예찬>(알랭 바디우 지음, 조재룡 옮김, 길 펴냄). ⓒ길
약력만 보아도 타협을 모르는 꼬장꼬장한 이상주의자 교수로 보이는 바디우는 일단 <사랑 예찬>의 서두에서 사랑을 통해 누군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진정 존재론적으로 위험하고 매혹적인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사랑의 선택에 위험성을 제거하려는 자본주의 사회의 합리적 노력을 아주 세게 비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를테면 조건이 맞는 짝을 찾아주는 결혼 정보 회사나 만남 알선 사이트 같은 것.

사랑에 안전한 개념을 부각시킬수록, 사랑과 연관된 보험인 이들 결혼 사이트는 승해지고 사랑은 일종의 '증여'가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디우의 시선으로 보면, 모든 사랑의 시작이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되는 일종의 실존적인 시(詩)인 바, 사랑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랭보의 말대로 재발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알랭 바디우가 주장하는 '재발명되어야 하는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랑에 대한 바디우의 담론은 매우 특이하다. 그가 일단 사랑과 섹스는 절대 등가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육체의 결합으로 하나가 된'이란 시적 개념은 바디우에게는 하나의 기만일 뿐이다. 왜냐하면 타자의 몸이 매개하지만 바디우의 입장에서 사랑이란 언제나 제 자신의 쾌락이고, 성적인 것은 결합하지 않고 분리할 따름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바디우는 사랑을, 남녀 간의 사랑을, 진리를 생산하는 절차라고 정의한다. 바디우에게 진리란 혁명이고 기존의 지식 체계의 교란이며, '차이'를 통한 '같음'으로 가는 가장 일상적이고 위대한 진리 체계가 바로 사랑이다. 그의 논리대로 따르면, 남녀가 서로에게 '사랑한다'는 선언을 하는 순간, 수많은 우연이 운명으로 고정된다. 인생의 운명적인 순간에는 늘 사랑이 존재한다.

책을 읽다보면 필자 역시 사랑이, 연애가, 진실하다 못해 숭고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바디우의 사랑 예찬 속 사랑은 역시 철학자의 사랑은 아닌지 의구심도 생긴다. 결혼이란 물적 토대를 이룬 오랫동안 제도권 안에서 사랑이란 감정을 일상으로 녹여내야 하는 필부필녀에게는 잡을 수 없는 파랑새 같은 사랑. "사랑이란 내가 내 살을 도려낼 때 사용되는 칼이 바로 그대"라는 걸 뜻한다는 카프카식 사랑의 상처는 사라지고 사랑의 이상향만 남은 느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디우의 책을 읽다보면 마치 사랑에 빠졌을 때, 서로에게 느꼈던 그 몽롱한 황홀경 같은 것이 다시금 문득문득 느껴져서 호흡을 멈추게 된다. 세상에 붕 떠서 모든 사랑 이야기가 내 이야기 같았던 때. 예를 들면 이런 문장의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여겨졌던 때.

"사랑은 개인인 두 사람의 단순한 만남이나 폐쇄된 관계가 아니라 무언가를 구축해내는 것이고, 더 이상 하나의 관점이 아닌 둘의 관점에서 형성되는 하나의 삶이라 하겠습니다. 최초의 장애물, 최초의 심각한 대립, 최초의 권태와 마주하여 사랑을 포기해 버리는 것은 사랑에 대한 커다란 왜곡일 뿐입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공간과 세계에 시간이 사랑에 부과하는 장애물들을 지속적으로 간혹은 매몰차게 극복하는 그런 사랑일 것입니다."

연극 연출가와 대담 형식으로 이루어진 책을 읽으면 마치 바디우가 내게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고, 이런 이야기를 들은 나는 다시 이런 사랑을 꿈꾸게 된다. <사랑 예찬>을 읽으니 진정한 사랑을 하고픈, 권태마저 매몰차게 극복하고, 이상적이고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순수한 사랑을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아니 이미 있는 남편이란 이름의 친밀한 타인에게서 다시 생경한 감정 파도를 느끼려고 마음에 돌 하나 던져야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싱그러운 사색의 색깔로 사랑을 채색하는 기막힌 염색사-사색가는 파스칼 키냐르의 <은밀한 삶> 이후 알랭 바디우가 처음이다. 소설가인 키냐르는 사랑은 본질적으로 반사회적인 면이 있다고 했는데, 바디우의 철학적 성찰은 더 나아가 '둘'의 모험인 사랑을 적극적으로 권유한다.

그러니 지금 사랑하는 이들이여, 바디우의 <사랑 예찬>을 통해 둘과 하나가 공존하는 "사랑의 지속성, 약속, 충실성, 헌신" 등을 느껴 보시기 바란다. 진정한 사랑이 실종된 시대. 낭만적 사랑을 입에 떠올리기에도 겸연쩍고, 하나의 자본처럼 은밀하게 거래되는 이 시대에, 바디우의 사랑에 대한 사색은 새삼스럽게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그에 따르면 "사랑의 적은 경쟁자가 아닌 바로 이기주의"라니까 말이다. 그러므로 <사랑 예찬>은 비록 바디우의 철학을 모르더라도 '지금 사랑에 빠진 이'들을 위한 최적의 연애 철학서이다.

알랭 바디우의 <사랑예찬>은 사랑을 사랑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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