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books' 송년호(21호)는 '올해의 책' 특집으로 꾸몄습니다. '프레시안 books' 서평위원이 의견을 모아서 선정한 두 권의 '올해의 책'(<삼성을 생각한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외에도 8명의 서평위원이 나름대로 선정한 '나의 올해의 책'을 별도로 소개합니다. 다양한 분야, 다양한 장르의 이 책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오늘날 언론에서 다루어지는 교육 문제는 언제나 공부 잘 하는 아이들과 먹고 살 만한 부모들의 관심사이다. 물론 중학생들이 알몸으로 졸업식 뒤풀이를 했다는 사건처럼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이 관심을 끌 때가 있지만, 잠잠해지면 원래 하던 이야기로 돌아간다.
자신이 겪었고, 자식들이 날마다 겪고 있는 일이므로 사람들은 한국의 교육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잘 알고 있는가. 내가 현장에서 실감하는 바이지만 오늘날 교육 현장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이어붙이면 꽤 놀랄 만한 파노라마가 만들어질 것이다.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교 교사들 중에는 아이들이 전혀 통제가 되지 않으며, 수업 자체가 되지 않는다고 호소하는 이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전문계 고등학교는 이런 현상이 정착된 지 꽤 오래 되었다. 인문계 고등학교는 사정이 조금 다르긴 하다. 거의 모든 시간 아이들이 엎드려 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현실 속에서도 언제나 이야기되는 교육 문제는 수학능력시험, 논술, 입학사정관 따위의 입시 이야기이거나, 외국어고등학교 따위 특목고와 명문 대학들과 관련한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이들이 교육을 둘러싼 사회적 욕구의 전체이기 때문이다. 욕구와 현실이 기이하리만치 어긋나 있다.
▲ <야만적 불평등 : 미국의 공교육은 왜 실패했는가>(조너선 코졸 지음, 김명신 옮김, 문예출판사 펴냄). ⓒ문예출판사 |
첫 장부터 읽는 이들은 충격에 빠질 것이다. 일리노이 주 이스트세인트루이스 지역. 세계적인 생화학 기업 몬샌토의 공장이 자리한 이곳에 거주하는 아이들은 아무런 희망 없이 잿빛으로 시들어가고 있다. 거리에는 오폐수가 질척이며 학교는 깨진 유리창에 바람이 드나들고, 수업 교구조차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으며, 교사들은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무기력한 나날을 보낸다. 인종적으로 완벽하게 분리된 빈민 거주 지역의 흑인 아이들의 절반이 학교를 마치지 못한다. 여학생들의 임신은 일상화되어 있으며, 남학생들의 마약과 범죄는 자연스럽다.
물론 이것은 지역별 재산세로 교육 예산을 충당케 함으로써 이러한 구조를 온존시키는 사회 구조를 탓해야 하지만,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미국이 철저하리만치 야만적인 정글과 다름없는 사회라는 사실이다. 미국 사회의 모순과 약자들의 처절한 삶의 조건은 많은 부분 교육에서 실현되고 교육을 통해 재생산된다.
물론 이 책에서 묘사하는 미국의 상황과 한국 교육은 그 양상 자체가 많이 다르다. 그러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보듯, 중요한 것은 미국을 닮아가기 위해 맹렬히 질주하는 한국 사회에도 이런 현실은 머지않아 다가올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만으로도 우리의 학교들은 큰 몸살을 앓고 있다. 교육을 둘러싼 총력전 속에서 아이들의 심신은 말할 수 없이 황폐화되어 가고 있고, 그 속에서 사회·경제적 격차는 곧장 아이들의 삶 전체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런 현실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의논하는 사회적 담론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미 <위기의 학교>(닉 데이비스 지음, 이병곤 옮김, 우리교육 펴냄)를 통해 신자유주의적 교육 정책으로 망가져버린 영국 교육의 적나라한 속살이 드러났고, <야만적 불평등>을 통해 미국 공교육이 발가벗겨졌다. 이들 나라들과 구체적인 양상은 다르지만 이들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한국 교육의 야만과 비참은 여전히 언어로써 드러나지 못하며, 사회적 담론의 그릇에 담겨지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올해 한국 사회에 던져진 <야만적 불평등>은 더욱 빛난다.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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