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보다는 '딴따라'로 무시당하고 생계를 위해 미군 클럽을 드나들면서도 한국 재즈의 지평을 열고 명맥을 이었을 이 어르신들의 연주 스타일은 요즘의 취향으로 보면 조금은 투박했다. 그러나 그들의 백발과 어우러진 해맑은 웃음과 열정이 담긴 연주는 어느 콘서트보다도 더욱 큰 감동을 주었다.
이들이 음악을 처음 시작했을 시기에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수많은 한국인이 외국으로 탈출하여 난민(refugee)이 되었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은 한반도를 떠도는 실향민이 되어야 했던 때였다. 그 뿐인가? 곧이어 군사 독재를 지나면서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던 수많은 사람이 독재자의 겁박을 피해 또다시 외국으로 망명길에 떠나야 했고, 20세기 말에 이르러는 기아에 굶주린 북녘의 동포들이 중국과 동남아시아로 탈출하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20세기의 한반도는 그렇게 난민의 세기였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설 즈음부터 그 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각국에서 자신의 생명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한국으로 찾아와 난민 신청을 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은 1992년에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에 가입하고 1994년부터 난민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많은 난민 신청을 모두 거부하다가 2001년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난민을 인정하였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2010년 11월까지 2820여 명이 난민 신청을 했으나 이 가운데 217명만이 난민으로 인정되었고, 131명은 인도적 차원에서 체류가 인정되었다. 그 외에 1583명은 신청이 거부되어 한국의 법원에서 소송을 진행하고 있거나 한국을 떠나 또 다른 도피처를 찾아 어딘가를 헤매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 난민이 있다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생명과 존엄을 지키고자 본국을 탈출하여 한국에 온 이들이 본국에서는 얼마나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었고 한국에서는 또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어려움에 처해 있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난민 신청을 하면 1년 동안은 아무런 일도 할 수 없고 생계나 주거 지원조차 없이 방치될 뿐이고, 외상 후 스트레스나 우울증에 시달리더라도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 없으며, 난민의 자녀로 태어나면 무국적자가 되는 경우도 빈번한데, 그나마 난민으로 인정되는 비율은 채 10%가 되지 못한다는 이 먹먹한 현실을 과연 몇 사람이나 들어 보았겠는가?
난민으로 인정이 되더라도, 본국에서 대학을 나왔건, 정치 지도자였건, 변호사나 고위 관료였건 또 잘 나가는 축구선수였건 상관없이, 결국은 목구멍의 거미줄을 치우기 위해 허름한 공장에서 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치가 떨리는 현실을 누가 알고 있을까? 한국의 난민들이 결국은 버마의 김대중이고, 콩고의 홍세화이며, 아프가니스탄의 윤이상이지 말라는 법은 없는데도 말이다.
이런 척박한 한국 땅에서 조명숙·이호택 부부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난민 보호'라는 분야를 개척한 1세대라고 할 수 있다. 여느 1세대들이 그렇듯이 세련되거나 잘 갖춰진 환경 속에서 시작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 채 정말로 "맨 땅에 헤딩"하듯이 시작했지만, 이들의 활동은 한국에 찾아 온 난민들에게는 마른 땅에 단비와 같았다.
10년 동안 사법 시험을 준비하다가 꿈을 접었다지만 10년 공부의 내공이 어디를 가겠는가? 이호택은 그 내공으로 난민에 대한 법률 지원에 나섰다. 그는 난민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상담에 응하고, 본국 정황에 대해 문헌 조사를 하다가 부족한 것이 느껴지면 직접 현장을 다녀오고, 변호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을 때는 난민들이 직접 소송을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한국 정부의 난민 정책이 개선되도록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조명숙은 난민들에게 때로는 큰누나, 큰언니와 같은 역할을 하면서 또 한 편으로는 자유터학교와 여명학교를 통해 탈북 청소년들을 돌봤다.
▲ <여기가 당신의 피난처입니다 : 한국의 난민 이야기>(이호택·조명숙 지음, 창비 펴냄). ⓒ창비 |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탓이겠지만 정체가 모호한 책이다. 이호택·조명숙 부부가 어쩌다 난민과 탈북 청소년을 돕는 길에 나서게 되었는지 맛깔나게 쓴 에세이인 듯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한국의 난민들이 겪고 있는 가슴 아픈 사연을 두런두런 풀어내다가, 결국 마지막에는 난민이란 어떤 사람들인지 법학 전공자다운 해설에 현장에서 우러나온 생생한 사례를 덧붙여 설명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건 에세이인지, 현장 보고서인지 또는 학술 서적인지 참으로 애매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지난 10년간 난민의 현실에 대해 제대로 된 보고서 한 편, 전문 서적 한 권이 없었던 것이 한국의 현실이었고, 유쾌하기로 유명한 조명숙·이호택 부부는 할 말이 산더미처럼 쌓였을 텐데.
이 책은 결국 이 부부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가를 보여주는 에세이이며, 한국의 난민들이 어떻게 견뎌왔고 고통을 받고 있는가에 대한 증언이고, 난민이란 어떤 사람들인지 알고 싶은데 제대로 된 책 한권이 없어서 고민하던 사람들에게는 부담스럽지 않은 입문서로 평가될 것이다. 참으로 기이한 책이지만 지난 10년간의 한국의 난민 판을 정리하기에는 참으로 적절한 책이다.
국가가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는데 실패했거나 보호할 능력이 없는 국가 실패 상황에서 자신의 생명과 권리를 지키기 위해 외국으로 탈출하여 보호를 요청하는 사람을 난민(refugee)이라고 부른다. 20세기를 지나며 전 세계적으로 난민의 주요 발생지로 주목 받던 한국이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아시아의 난민 보호를 향상시키기 위해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국가 가운데 하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1세대의 헌신과 활약에 힘입어 한국의 난민 보호 제도도 한걸음씩이나마 차츰 나아지고 있고(비록 갈 길이 더 멀지만), 독립된 난민법이 국회에 올라가 통과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피난처의 외로운 투쟁에 함께 하며 무거운 짐을 덜어 줄 다른 단체와 기관들도 생겨나고 있고,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젊은 친구들도 많아지고 있다.
지난 10년은 결코 '잃어버린 10년'은 아닐 것이고, 앞으로의 10년은 더더욱 기대해볼 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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