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즉 알코올의 위험에 대해서는 매우 익숙하다. 술은 알코올성 간질환과 알코올 의존증과 같은 만성 위험도 있지만 과음으로 인한 사망과 같이 급성 위험도 있어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술이 몸에 나쁘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술에 대한 경계심을 풀게 만들고 있다.
좀 지난 연구이기는 하지만 몇 년 전 필자가 우리나라 여론 주도층을 대상으로 주요 환경 보건 위해 물질에 대한 위험(위해성) 인식도를 조사한 결과, 술에 대해서는 그 위험성을 크게 느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 및 보건 담당 공무원들은 21개 물질 가운데 술을 17번째,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가장 위험성이 없는 것으로 느껴 21번째 위험한 물질로 각각 꼽았다. 상대적으로 언론인(6번째)과 연구원(7번째)은 이들보다 술의 위험성에 대해 더 크게 인식하고 있었지만 유전자변형식품(유전자재조합식품)이나 환경호르몬(내분비계장애물질), 다이옥신, 살충제 등에 견주어서는 그 위험이 낮은 것으로 인식됐다.
보건 측면에서 실제로 많은 인명 손실을 가져오고 있고 국가 차원에서도 심각한 사회경제적 피해를 주고 있는 술의 위험에 대해 이처럼 위험인식이 무딘 것은 술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고 자신이 얼마든지 통제가능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술이 간 등 몸에 나쁘다는 사실 정도만 정확하게 알고 있을 뿐 술이 구체적으로 어떤 위험성을 지니고 있는지는 모르는 사람이 많다.
유명 연예인을 광고 모델로 해 이들 미녀들의 선정적인 모습을 통해 소주 판촉을 하고 있는 주류 광고를 비판하는 포스터. ⓒ안종주 |
알코올은 일단 몸에 흡수되면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따라서 술은 온 몸에 영향을 주는 물질이다. 알코올은 위장과 소장에서 흡수되는데 소장에서 더 빨리 흡수된다. 위 내에서 오래 머물면 그만큼 흡수되는 속도가 느려진다. 빈속에 술을 마시면 흡수가 빨라지고 음식을 먹은 뒤, 특히 기름기 있는 음식(예를 들면 삼겹살)을 먹고 난 뒤 또는 먹으면서 술을 마시면 천천히 흡수된다. 천천히 취하게 되는 것이다.
빨리 핏속 알코올 농도를 높여 중독된 체내 시스템을 유지하려는 알코올 의존증 환자들은 그래서 안주를 잘 먹지 않고 빈속에 술을 벌컥벌컥 들이키게 된다. 안주를 많이 먹거나 기름진 안주를 많이 먹으면서 술을 마시면 술이 취하는 속도나 정도를 줄일 수 있지만 이는 비만 등 다른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고 주량보다 더 많이 먹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모범 답안은 주당들은 실천이 쉽지는 않겠지만 적당히 마시는 것이다.
섭취한 알코올의 2~4%는 콩팥으로 배설되고 4%는 호흡으로 배설된다. 90~98%는 주로 간에서 대사되며 일부는 소변, 땀, 호흡으로 대사되지 않고 바로 배설된다. 간에는 알코올 탈수소효소와 알데히드 탈수소효소라는 알코올 대사와 관련된 효소가 있다.
이런 효소들은 인종에 따라, 사람에 따라, 성별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흔히 술이 세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런 효소들이 많다. 술이 약한 사람은 조금만 마셔도 얼굴이 발개지거나 정신을 못 차린다. 이는 알코올의 유독성 대사물질인 아세트알데히드가 축적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소량의 술이라도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사람들에게 술을 자꾸 권하는 것은 자칫 심각한 위험에 빠트리게 할 수 있는 행위이다. 서양인에 견줘 동양인이 알코올 분해효소가 적다.
술을 마신 후 얼굴이 붉어지는 이유는 체내에서는 알데히드탈수소효소가 있어서 이를 분해하지만 이 효소의 활성이 떨어지는 경우 아세트알데히드가 축적된다. 이런 증상이 있는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술을 마실 경우 조직 손상이 더 클 수 있으므로 조심하는 것이 좋다.
술을 마신 사람의 간세포에 있는 유전자 촉진자는 알코올 분해를 돕는 알코올탈수소효소의 생산성을 높인다. 술을 많이 마실수록 간에서 알코올탈수소효소도 많이 생산된다. 술이 더 들어올 것을 예상함에 따른 생물학적 반응이다. 선천적으로 알코올탈수소효소가 부족한 사람도 자꾸 술을 마실 경우 나중에 주량이 세지는 데 알코올에 대한 내성은 이렇게 해서 생긴다.
그 반대로 한동안 술을 마시지 않으면 알코올 내성이 떨어진다. 알코올탈수소효소가 정기적으로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면 체내 생산량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원래 주량이 셌는데 한동안 마시지 않다가 술을 마시게 되면 과거보다 적게 마셨는데도 일찍 취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술은 발암물질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딸린 국제암연구소(IARC)는 1998년 알코올을 1군 발암물질, 즉 인간을 대상으로 발암성이 확인된 물질로 규정했다. 이 연구소는 알코올 대사물질인 아세트알데히드를 2군B 물질, 즉 인간에게 발암이 가능한 물질(possibly carcinogenic to humans)로 규정했다. 술이 발암물질이라는 사실은 다시 말해 술에는 안전한 양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술은 간암만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술은 다양한 암 발생과 깊이 관련돼 있다. 일반인보다 음주량이 높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6개의 후향적 코호트(retrospective cohort) 연구(특정 인구 집단을 코호트라고 하는데 코호트 연구는 연구 대상을 선정하고 그 대상으로부터 특정 질병의 발생에 관여하리라 의심되는 어떤 특성, 즉 음주와 흡연 따위와 같이 질병의 원인이라 생각되는 인자에 폭로된 정보를 수집한 후, 특정 질병의 발생을 관찰하는 연구 방법으로 후향적 코호트 연구는 잠복기간이 긴 질병의 경우 연구가 계획되기 훨씬 이전에 이미 폭로여부를 측정한 자료를 이용하게 된다)에서 구강암과 인·후두암의 위험성을 조사하였다.
이 가운데 5개의 연구에서 이들 암의 발생률과 사망률이 2~5배 증가하였다. 구강암과 인두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주류 소비량에 비례하여 발암성이 높아졌다. 이 두 암은 흡연과도 관련이 깊다. 그래서 흡연 인자를 보정했다. 흡연을 보정한 이후에도 이 결과는 그대로 지속되었다. 흡연의 수준과 상관없이 음주를 매일 한 집단에서 위험성이 높았다. 비흡연자의 경우 음주량에 비례하여 발암성이 높았다.
역학적 연구에 의하면 음주는 구강암, 인·후두암, 식도암의 발병과 관련이 있으며 이는 주류의 종류와는 무관하였다. 음주는 위암과도 관련이 있다. 하지만 이 결과는 식사의 영향을 보정하지 않은 것이어서 음주와 위암과의 관계는 명확하지 않다.
음주를 하는 경우 간암의 위험성이 높았다. 특히 B형 간염 항원 보균자의 경우 음주와 간암 사이의 관련성이 매우 높았다. B형 간염바이러스는 간암을 일으키는 인자로 드러났는데 여기에 음주까지 더해지면 그 위험성은 더 높아지는 것으로 보인다.
음주는 유방암 발병과도 관련성이 있다. 음주를 많이 할수록 유방암 발생률이 1.5~2배가량 높았다. 이는 주류의 종류와는 무관하였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서구처럼 여성 음주가 크게 늘고 있고 유방암 발생도 함께 크게 늘고 있다. 유방암 증가에는 서구식 식이 행태 등 다른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여성 음주 증가도 한몫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국가 차원에서 여성음주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실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알코올은 발암성 외에도 유전독성, 생식독성, 면역독성, 신경독성, 발생독성, 내분비계 독성, 심혈관독성, 간독성, 위장관계 독성, 전신독성 등, 혈액독성, 호흡기 독성, 근골격계 독성, 전신독성 등 거의 모든 체내 독성을 보인다. 이밖에도 피부, 눈, 몸무게, 대사 등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호흡기 독성을 보면 심한 중독 이후 호흡부전이 일어날 수 있으며 술에 취해 구토를 하다 구토물을 잘못 들이마셔 호흡기로 들어갈 경우 폐렴 및 폐부종을 일으킬 수 있다. 심혈관계 독성을 보면 알코올을 한꺼번에 과량 마시면 심실세동과 심방차단이 보고되었다. 소아의 경우 심부전이 보고되었다. 심장병 기왕력이 있는 사람의 경우 심박출량이 감소할 수 있다.
이형협심증(variant angina)이 있는 사람은 일상적인 알코올을 섭취 후에도 관상동맥 경련 및 심근 허혈로 인한 흉통을 경험할 수 있다. 만성적인 과음을 하는 사람에게는 갑작스런 심부전, 부정맥, 무증상의 좌심실 기능부전 및 심장의 형태변형이 일어날 수 있다.
알코올 중독증에서는 빈혈, 혈소판감소증이 일어날 수 있다. 또 알코올 중독자의 경우 근골격계 독성을 보여 급만성 골격근병증이 보고되었다. 만성적인 알코올 중독자는 골밀도가 낮으며 높은 혈중 칼슘농도를 나타냈다.
술을 마시면 가장 먼저 식도를 거쳐 위장관으로 알코올이 들어간다. 위장관관계 독성을 보면 음주 후 상부위장관에 알코올의 농도가 높아져서 국소자극을 유발할 수 있고 오심, 구토, 위장관 출혈, 복통이 일반적으로 발생하며 설사가 일어날 수 있다. 술 마신 후 설사를 하는 사람은 음주를 삼가야 한다.
술이 간독성을 지녔다는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익히 알고 있는 터이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은 모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장기간 음주를 하게 되면 지방간, 알코올성 간염, 간세포괴사, 섬유화 및 간경화가 나타날 수 있다.
알코올은 부신수질 분비에 영향을 끼쳐서 비뇨기 아드레날린 및 노르아드레날린의 분비를 증가시킨다. 이는 교감신경 증가작용과 관련이 있다. 알코올 중독으로 나타나는 합병증으로 저혈당 후 경련 혹은 혼절이 있다.
알코올은 면역독성을 나타내 드물게 과민성쇼크(아나필락시스)가 보고되었으며 알레르기 등도 때때로 보고되었다. 술 속의 불순물, 대사물질 혹은 첨가물이 이런 반응의 원인으로 여겨진다.
과학기술부장관, 건설교통부장관 등 장관을 가장 많이 한 인물이며 언론사 사장과 아주대학교 총장, 건국대학교 총장 등 대학 총장도 여럿 거치고 있는 오명 씨는 술을 마시지 않는 인물로 유명하다. 그도 젊었을 때 한 때 술을 즐겨 마셨으나 어느 날 온몸에 음주 후 두드러기가 나 그 뒤 술을 완전 끊었다고 한다. 그가 바로 이런 과민성 반응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알코올의 신경독성은 급성독성과 만성독성으로 나눌 수 있다. 급성독성으로는 혼돈, 운동실조, 정서불안정, 인지 및 감각이상, 운동부조화 등이다. 중추신경계 억제는 혼절로 이어질 수 있다. 저혈당으로 인한 경련이 소아에서 보고되었다. 만성 독성으로는 베르니케 뇌병변, 코사코프 정신병, 의존성 및 금단증상, 만성 소뇌 증후군이 일어날 수 있다.
알코올은 생식독성도 있어 혈중 알코올 농도가 높으면 생식기관의 구조에 영향을 끼치며 태아의 체중감소, 자궁에서의 흡수율 증가 및 태아의 최기형성을 유발할 수 있다. 일부 동물실험에서는 알코올 투여로 태자의 행동발달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임신 중 혹은 수유 중 알코올을 투여한 경우 출생 후 성장 감소로 이어졌다.
임신 중 여성이 음주한 경우 태아 알코올 증후군이 발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임신 중 과음은 태아의 정신적 신체적인 이상을 초래할 수 있으며 중추신경계, 심장, 신장 및 팔다리의 손상을 유발할 수 있다.
알코올은 유전독성도 있어 알코올 중독자의 말초 림프구에서 염색체 이상 등의 발생률이 높았다. 알코올 중독자의 경우 급만성 골격근병증이 보고되었다. 만성적인 알코올 중독자는 골밀도가 낮으며 높은 혈중 칼슘농도를 나타냈다.
술은 이처럼 사람에게 심각하고 다양한 정신적, 신체적 피해를 가져다준다. 술로 인한 가장 심각한 피해는 사망이다. 특히 알코올 의존증(중독증) 환자들은 조기사망할 위험이 높다. 알코올 의존증 환자와 알코올 남용 환자는 우리 주변에 의외로 많다. 이는 보건복지부 최근 조사결과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이들의 문제는 비단 그들과 그 가족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함께 떠안고 해결해야 할 과제이고도 하다.
보건복지부의 의뢰로 조맹제 교수 등이 실시한 2006년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에 따르면 알코올 사용 장애 평생 유병률은 남자 25.5%, 여자 6.9%, 전체 16.2%로 남자의 유병률이 여자에 비하여 3.7배 높았다.
2006년 한 해 동안 알코올 사용 장애에 이환된 사람은 일반 인구의 5.6%였다(표 참조). 알코올 사용 장애 평생 유병률은 16.2%로 2001년 역학 연구(15.9%)와 비슷한 수준이었으나, 알코올 남용(9.2%)은 2001년(7.8%)에 비하여 더 높고, 알코올 의존(7.0%)은 2001년(8.1%)에 비하여 낮았다. 알코올 사용 장애와 동반이환을 보이는 질환들로는 강박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광장공포증, 사회공포증, 특정공포증, 니코틴 사용장애가 유의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2006) |
이러한 술의 위험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술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동은 더욱 중요하다. 알코올 전문가들과 건전 음주 시민단체들은 알코올 폐해를 감소하고 건전 음주를 실천하기 위해서 술잔 돌리기 금지를 비롯해 다음과 같은 것을 실천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 1주일, 1개월 동안의 적정 음주량 및 횟수를 정하고 지킬 것.
○ 음주는 천천히, 충분한 음식과 함께 할 것.
○ 신체, 정신에 이상 증상이 있을 시엔 음주를 삼갈 것.
○ 음주 중 주기적으로 본인의 음주 상태를 체크할 것.
○ 갑자기 취하지 않도록 대화를 하며 천천히 마실 것.
○ 자신의 음주 상태를 살펴 줄 수 있는 가족과 함께 마실 것.
○ 중요한 일을 앞둔 경우 음주를 삼갈 것.
○ 작업 중 또는 운동 중 음주를 삼갈 것.
○ 분노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음주를 삼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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