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가 시작하고,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급물살을 타는 모양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6월 미국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 회담에서 한미 FTA 재추진을 공식 언급했다.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측의 반응도 호의적이다. 이런 식이라면 올해 안에 미국, 한국 의회에서 한미 FTA가 통과될 전망이다. 한미 FTA는 최근 미국이 맺은 FTA 중에서 가장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한국 시민의 사회적 권리를 침해하는 조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때문에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를 막론하고 많은 시민이 이를 염려하며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저항했다. 2008년의 촛불 집회는 그 정점이었다. 이제 다시 한미 FTA가 추진되는 상황에서 <프레시안>은 지금 시점에서 한미 FTA의 주요 쟁점을 다시 한 번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이 기획은 남희섭, 박상표, 우석균, 이해영, 정태인, 홍헌호 씨 등 지난 수년간 한미 FTA 문제점을 지적하는데 앞장서왔던 전문가들의 제안으로 성사됐다. 이들은 앞으로 7회에 걸쳐서 한미 FTA의 문제점을 한 번 더 경고한다. <편집자> ① 한미 FTA, 드디어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 이해영 한신대학교 교수 ② 노무현의 뒤늦은 걱정 "한미 FTA, 이대로는 곤란하다" : 경제평론가 정태인 씨 ③ 쇠고기를 보면 안다…"한국은 미국의 식민지구나!" : 박상표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정책국장 ④ 한미 FTA…누리꾼은 고소되고, 포털 사이트는 폐쇄되고! : 남희섭 변리사 |
한 달 전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학생 네댓 명과 함께 내 꿈에 등장했다. 그의 생전 소망대로 밀짚모자를 쓰고 모내기를 하고 있었다. 그가 만든 토론 사이트 테스트 과정에 참여한 것 외에는 그와 직접 대면한 적이 없는데 왜 이 양반이 내 꿈에 나타났을까.
꿈속에서 그는 묵묵히 모내기만 할 뿐 말이 없었다. 2008년에도 그랬다. 한미 FTA에 관해 써놓았던 글을 올리며 그의 입을 열려 했을 때도 그는 말이 없었다. 10~20여 명의 다른 참여자 글에 대해서는 열심히 대꾸하면서도 나의 횡포(?)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결국 나는 그에게 더 이상의 마음의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보름 만에 철수해야만 했다.
주변 사람에게 꿈 이야기를 하니 "그 양반이 당신에게 뭔가 할 이야기가 있었나 보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며칠 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한미 FTA에 관해서 시리즈로 글을 내자는 것이다. 우 실장이 무슨 이유로 그런 말을 하는지 안 들어 보아도 안다. 현 정부가 추진하려는 '의료 민영화'의 논리를 시원하게 논파하자는 것.
의료 민영화 등 서비스업 개방에 목매다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우리나라 서비스업 생산성이 선진국의 절반도 안 된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한미 FTA에 올인하여 대다수 진보 세력을 적으로 돌리고 만 것도 이들의 이런 논리가 그에게 먹혔기 때문이다.
정태인 전 청와대 비서관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이 한미 FTA에 올인한 가장 큰 이유는 '서비스업 생산성 제고와 이 부문 일자리 창출'이었다고 한다. 문제는 한미 FTA로 서비스업이 개방되면 생산성이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느냐 하는 것. 경제 관료들은 그게 가능할 것처럼 노 전 대통령을 속였다. 그러나 그것은 애당초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 글은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노 전 대통령을 위한 변명이다. 물론 그를 위한 변명이라 하여 무작정 그를 비호할 생각은 없다. 그를 속인 사람들만큼이나 속은 그에게도 많은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글이 그에 대한 지나친 과대평가와 지나친 과소평가가 난무하는 상황을 진정시키는데 약간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 노무현 전 대통령. 그는 왜 한미 FTA를 갑작스럽게 추진했을까? ⓒ프레시안 |
서비스업 생산성에 관한 코미디
'(노동) 생산성'을 운위할 때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선진국의 절반 수준인 생산성이 지극히 '정상적'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각국의 생산성 격차가 1인당 GDP 격차만큼 나타나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이기 때문이다.
사례를 하나 들어보겠다. 동일한 모내기 능력을 가진 한국의 농업 근로자 A와 베트남의 농업 근로자 B가 있다고 하자. A는 한국에서 하루에 50달러를 받고, B는 베트남에서 5달러를 받는다고 가정하자. 두 사람의 생산성 격차는 어느 정도로 나타날까. 모내기 능력에 차이가 없으니 생산성 격차도 차이가 없는 것일까. 아니면 두 사람의 임금 격차가 10배이니 생산성 격차도 10배만큼 나타나는 것일까.
한국생산성본부는 이 의문에 후자가 정답이라고 주장한다. 두 사람의 임금 격차가 10배이니 생산성 격차도 10배라는 것이다. 이 기관에 따르면 각국의 생산성 격차는 근로자들의 근로능력 격차와 상관없이 1인당 GDP 격차만큼 나타난다.
또 하나의 예로 핀란드 노키아 근로자와 삼성전자 근로자의 생산성과 임금을 비교해 볼 수도 있다. 두 기업 근로자의 근로 능력은 유사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생산성본부에 따르면 이들의 생산성과 임금은 두 배만큼 차이가 난다.
각국의 생산성 격차가 1인당 GDP 격차만큼 나타나는 것은 한국생산성본부가 산출하는 1인당 생산성과 1인당 GDP 산출 공식이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 1인당 생산성=(부가가치 총액)/취업자 수
* 1인당 GDP=(부가가치 총액+α)/인구
몇 가지 사소한 가정을 추가하고, 또 양국의 고용률(=취업자 수/15세 이상 인구)이 같다고 가정하면, 위의 두 가지 공식에서 각국의 1인당 생산성 격차는 정확하게 1인당 GDP 격차와 일치한다.
따라서 선진국과 우리나라 1인당 GDP 격차가 두 배만큼 나타날 때, 1인당 생산성의 격차가 두 배만큼 나타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보수 진영은 물론 진보 진영의 학자까지 이런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는 것.
보수와 진보 모든 학자들이 선진국의 절반 수준인 서비스업 생산성이 매우 비정상적이라 합창하는 것을 보고, 노 전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가 보기에 필자와 같은 한미 FTA 반대파들은 비정상적인 서비스업 생산성도 괜찮다고 우기는 구태의연한 세력으로 비추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기대와 달리 한미 FTA를 통해 서비스업 생산성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 올리겠다는 꿈은 애당초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1인당 GDP 격차가 줄어들지 않는 한 서비스업 생산성 격차는 쉽게 줄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서비스업 생산성을 현 수준보다 끌어 올려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서비스업 개방을 한다고 그것이 바로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격차가 쉽사리 좁혀지는 것도 아니다.
그에게 누군가 1996년 김영삼 정부에 의해 이루어진 유통업 개방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동시에 분석해 놓은 보고서를 주었더라면 그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자신의 생각을 바꾸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의 주변에는 그만한 일을 해줄 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의 오랜 친구들은 대부분 자리를 비웠고 새로운 사람들이 권력을 장악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국민계정에 따르면 1996년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유통업 개방은 추가적인 경제 성장에 전혀 기여하지 못했다. 1990년대 전반기 6.9퍼센트로 나타났던 도·소매업 경제 성장 기여율은 2000년대에는 연평균 3.7퍼센트로 주저앉았다. 전체 일자리에서 도·소매업 일자리가 차지하는 비중도 1995년 18.5퍼센트에서 2007년 15.7퍼센트로 내려앉았다. 수많은 중소상인들이 일자리를 잃은 결과다.
무역 의존도 70~80퍼센트라는 코미디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 하여금 한미 FTA에 올인하게 한 경제 관료가 연출한 또 하나의 코미디는 '무역 의존도'에 관한 것이다.
한미 FTA를 추진하는 관료들은 무역 의존도라는 지표를 근거로 무역 의존도 70퍼센트, 80퍼센트 운운하며, 우리는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라고 떠들어댔다. 이 말은 우리나라 경제 성장의 70~80퍼센트를 무역(혹은 수출)이 담당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겼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이 개념은 국제적으로 통용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산출하는 공식도 매우 조잡한 것이다. 한미 FTA 논쟁 과정에서 어느 교수는 찬성론자 입장에서 무역 의존도 개념의 출처를 모르겠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국제통계를 많이 살피는 필자도 국제기구 자료에서 이 개념이나 지표를 본 적이 없다. 지표가 지나치게 조잡하기 때문일 것이다.
* 무역 의존도(퍼센트)=(무역액/GDP)×100
* 무역 의존도(퍼센트)=[(수출액+수입액)/GDP]×100
('GDP=부가 가치 총액'이라 가정)
이 개념이 얼마나 조잡한 것인지 알아보려면 한 기업체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면 된다. 기업 A가 중국으로부터 1억 달러의 중간재(서비스 포함)를 수입하고, 국내로부터 역시 1억 달러의 중간재(서비스 포함)를 매입하여, 완제품을 만든 후 중국에 다시 1억2500만 달러를 수출하고, 국내에서도 역시 1억2500만 달러의 매출을 달성했다 하자. 이 기업의 무역 의존도는 얼마일까.
A 기업의 무역 의존도=(무역액/부가 가치 총액)×100
=(2억2500만 달러/5000만 달러)×100
=450퍼센트
이 공식에서 부가 가치액이란 매출액에서 매입액을 뺀 나머지를 말한다. 이 사례에서는 매출액이 2억5000만 달러이고 매입액이 2억 달러이므로 부가가치액은 5000만 달러가 된다.
경제 관료의 무역 의존도 개념에 따르면 이 기업의 무역 의존도는 450퍼센트가 된다. 과연 A기업 임원도 이 기업의 무역 의존도가 450퍼센트라고 떠들고 다녔을까. 그럴 가능성은 0.1퍼센트도 없다. 이 기업의 임원은 자신들 기업의 수출의존도가 50퍼센트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다녔을 것이다. 매출액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50퍼센트이기 때문이다.
무역 의존도가 조잡하기 짝이 없는 것이라면 수출의 경제 성장 기여도는 어떤 방식으로 산출할 수 있을까. 한국무역협회 소속 무역연구원은 이에 대해 매우 적절한 공식을 제공하고 있다.
● 무역연구원의 3대 수요 경제 성장 기여율 산출식
* 소비의 경제 성장 기여율=(소비 증가액/ 3대 수요 증가액)×100
* 투자의 경제 성장 기여율=(투자 증가액/ 3대 수요 증가액)×100
* 수출의 경제 성장 기여율=(수출 증가액/ 3대 수요 증가액)×100
무역연구원에 따르면 수출의 경제 성장 기여율은 소비, 투자, 수출이라는 3대 수요가 증가할 때 이에 수출이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를 나타낸다. 그리고 무역연구원에 따르면 2006년 수출의 경제 성장 기여율은 48.3퍼센트, 상품 수출의 경제 성장 기여율은 43퍼센트로 나타난다.
그러나 무역연구원의 이 공식 또한 완벽한 것이 아니다.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산업별 경제성장 기여율이라는 공식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 한국은행의 산업별 경제 성장 기여율
=산업별 부가 가치 증가액/ 전산업 부가 가치 증가액
한국은행의 산업별 경제 성장 기여율 공식에 따르면 2006년 제조업의 경제 성장 기여율은 43.3퍼센트로 나타난다. 무역연구원 공식에 따르면 상품 수출의 기여율이 43퍼센트였는데, 제조업의 기여율이 43.3퍼센트라니. 내수 제조업의 기여율이 0퍼센트에 가깝단 말인가. 이런 납득하기 어려운 수치들이 나타나는 것은 두 공식 중 하나, 혹은 두 공식 모두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 문제를 속 시원하게 풀어 줄 수 있는 것은 내수 제조업과 수출 제조업의 비중일 터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것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없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는 한국은행과 무역연구원의 공식과 자료를 통해서 2006년 수출의 경제 성장 기여율이 43퍼센트 미만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내수 제조업과 수출 제조업의 비중이 2대 8이라면 그것은 34.4퍼센트로 떨어질 것이고, 3대 7이라면 30.1퍼센트로 떨어질 것이며, 4대 6이라면 25.8퍼센트로 떨어질 것이다.
필자는 대략 내수 제조업과 수출 제조업의 비중을 3대 7 정도로 보고 있으며 이에 따라 수출 제조업의 경제 성장 기여율을 30퍼센트 내외로 보고 있다. 무역 의존도라는 조잡한 수치를 유포하며 수출의 경제 성장 기여율이 70~80퍼센트나 되는 것처럼 국민들을 현혹하는 일부 경제 관료의 주장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너트 크래커에 낀 호두'라는 코미디
한미 FTA를 추진하면서 경제 관료는 '너트 크래커(nut cracker, 호두를 양면에서 눌러 까는 기계)에 낀 호두'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했다. 당시 우리나라 신세가 미국과 일본같은 선진국에 기술과 품질에서 밀리고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등 개발도상국에는 가격 면에서 뒤지고 있어 너트 크래커에 낀 호두같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동서고금의 모든 나라가 다 '너트 크래커에 낀 호두' 신세다. 경쟁 대열에 끼어있다는 것 자체가 너트 크래커에 끼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건국 이래 우리나라가 '너트 크래커에 낀 호두' 신세에서 벗어난 적이 있었던가.
문제는 2005년과 2006년 상황이 점진적인 개방론에서 급진적인 개방론으로 방향을 급선회할 만큼 그렇게 다급한 상황이었느냐다. 노무현 정부 초기의 FTA 로드맵은 기술력에서 우리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은 국가들과 먼저 FTA를 체결하여 경제 체질을 강화하고 경제의 외연을 확대한 후, 추후에 EU, 마지막으로 미국과 진검 승부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2005년 9월 어느 날 갑자기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 순서를 뒤집어버렸다. 한미 FTA를 추진하려는 일부 관료의 끈질긴 협박, 즉 '너트 크래커에 낀 호두' 신세론이 대통령에게 먹혔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들의 협박은 근거가 있는 것이었을까. 당시 필자는 이들의 주장을 검증해 보기 위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무역 통계를 모아 분석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들의 협박이 매우 심각하게 과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아시아 주요국의 미국 시장 점유율 (퍼센트). ⓒ홍헌호 |
필자가 OECD 무역통계들을 분석한 바에 따르면 1992년과 2004년 사이 일본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18.10퍼센트에서 8.74퍼센트로 급락한 반면, 중국의 점유율은 4.96퍼센트에서 13.80퍼센트로 급등했다.
우리나라와 대만은 어떠했을까. 같은 기간 대만의 점유율이 4.66퍼센트에서 2.37퍼센트로 급락한 반면, 우리나라는 3.13퍼센트 내외 수준을 그대로 유지했다. 당시 경제 관료들이 유포한 '너트 크래커에 낀 호두'론이 얼마나 근거 없는 유언비어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물론 놀라운 속도로 치고 올라오는 중국에 대한 경계심을 가지고 각오를 새롭게 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명확한 현실을 왜곡해서는 안 되며, 또 그것을 근거로 국민들을 협박해서도 안 된다.
초라한 진보 진영, 여전히 큰 인물이 없다
필자는 가끔씩 이런 부질없는 생각을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이 아닌 2007년, 혹은 2012년에 당선되었더라면 어떠했을까. 진보 진영의 역사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의 재임 기간에는 그도, 그의 오랜 친구도, 그와 별다른 인연이 없는 필자도 많이 부족했고 미숙했다. 역사는 원래 그렇게 냉혹한 법이다.
불행히도 그의 주변에는 그를 진심으로 보좌하는 경제 전문가들이 많지 않았다. 그나마 그들마저 경제 관료와의 권력 투쟁에서 너무 이른 시기에 밀려났다.
그를 보좌했던 그의 오랜 친구도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경제 관료들이 풍부한 정보력과 인력을 동원하여 화려하고 깔끔한 프레젠테이션을 제작하고 이를 무기로 대통령을 매료시키고 있을 때, 그들은 정보 부족, 인력 부족, 자금 부족에 허덕이며 대통령 뒷바라지 하느라 깊이 있는 보고서 하나 제대로 읽기 힘들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정치를 경멸하면서도 정치인들을 통해 자신들의 꿈을 실현하고자 한다. 따라서 좋은 정치인은 국민들의 꿈을 대신 실현해 줄만한 자질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지금 우리 진보 진영 정치권에는 국민이 기댈 만한 인물이 없다. 노 전 대통령의 공과(功過)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지만 그에 비견할 만한 크기의 인물도 없다.
큰 인물이란 사사로운 이익이나 권위에 매달리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그 권위가 빛나는 인물이다. 그런 인물로 성장할 만한 젊은 정치인이 민주당 외곽과 진보정당 등지에서 두세 명 눈에 띄기도 하지만 그들이 얼마나 성장할지는 오리무중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