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폭풍' 이틀째, 여야는 각각 윤석열 여주지청장과 정권·검찰 수뇌부를 과녁으로 삼아 공세를 이어 갔다. 새누리당은 이번 사태를 '검찰 집안싸움'으로 규정하고 검찰 조직의 기강을 탓한 반면, 민주당은 '수사 외압'에 초점을 두면서 검찰 지휘부에서 법무부 장관과 대통령까지 거슬러 올라가 책임을 묻겠다며 강공을 걸었다.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는 22일 오전 국정감사 점검 회의에서 "작금의 검찰 행태를 보면 국가와 사회의 기강 확립은커녕 자신들의 조직 기강조차 땅에 떨어진 (것이) 현 주소"라며 "검사의 기본적 집무집행 원칙인 '검사동일체 원칙'의 명백한 위배, 특수라인과 공안라인의 갈등을 넘어 수사기밀이 특정 세력에게 흘러갔다는 의혹까지 제기된다"고 말했다.
최 원내대표는 "국감에서 보인 검찰의 행태는 국민들에게 실망을 넘어 분노케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국정원 의혹 수사 결과를 발표한들 어느 누가 곧이곧대로 받아 들이겠느냐"고 했다. 그는 "검찰 스스로 자성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흡사 이날자 <조선일보>의 논조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발언이었다.
김기현 정책위의장과 김재원 전략기획본부장도 나서 '상부'의 명령에 따르지 않은 윤 지청장을 탓했다. 김 의장은 "검찰은 법원과 달리 상명하복의 조직이며 책임자의 결재가 최종 판단이 되도록 하는 구조"라며 "이번 사태에서 나타난 검찰 내부 하극상의 행태는 이런 법 원리를 무시하고 개인판단이 옳고 조직 책임자의 지휘를 따를 필요 없다는 독점적 사고"라고 했다.
김 본부장은 "수사 지휘권이란, 경찰과 검찰의 의견이 다를 때 검사의 판단을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검찰 내에서도) 상사와 수사검사의 의견이 다를 때는 상사 의견에 따라야 한다"고 했다. 그는 윤 지청장을 겨냥해 "조직의 기본 원칙을 망각하고 스스로 정의로운 검사의 표본인 양 말할 때는 국법 질서가 무너진다"고 간접 비난하고, 윤 지청장의 '표범이 사냥하듯이 수사해야 한다'는 발언에 대해 "물어뜯기는 사슴이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민주 "朴대통령 사과하고, 남재준·황교안·박승춘·조영곤 물러나야"
민주당은 국정감사 기간 중임에도 긴급 의원총회와 '국정원 선거개입 검찰수사 외압 및 축소 은폐 규탄대회'를 잇달아 국회에서 여는 등 당 차원의 대응에 본격 나섰다. 민주당은 규탄대회에서 "박근혜 정권은 검찰에 대한 부당한 압력 행사와 수사 방해를 즉각 중단하라"면서 정부에 대한 5대 요구사항을 발표했다.
민주당의 요구는 △남재준 국정원장 해임, △황교안 법무장관 해임,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해임,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 자진사퇴, △윤석열 지청장의 수사팀장 복귀 및 수사권 보장 등이다. 민주당은 남 원장에 대해서는 "국정농단 진실은폐", 황 장관은 "검찰수사 부당압력", 박 처장은 "관권선거 국기문란", 조 지검장은 "직권남용 수사방해"라고 각각 물러나야 할 이유를 댔다.
규탄대회에 앞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김한길 대표는 "윤 지청장의 증언으로 진실의 상당부분이 국민 앞에 드러났다"며 "이 정권이 죽기살기로 진실을 덮기 위해 채동욱 검찰총장 '찍어내기' 후 '수사팀 갈아치우기' 수순에 들어갈 것이라는 예측이 틀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국정원장의 격노에 긴급체포해 온 피의자들을 풀어주고 압수물을 돌려준 검찰, 진실을 밝히는 것보다 야당을 돕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검찰 지휘부, 피의자인 (국정원) 요원들에게 진술 거부를 지시한 국정원장 모두 정상적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의원총회에서 박영선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은 전날 국정감사 상황을 보고하며 "(법사위 국감은)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은 선거 기획사이자, 박근혜 캠프의 온라인 선거팀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며 "지금까지 밝혀진 수사는 빙산의 일각이다. 앞으로 더 규명해야 될 것이 있다면, 포털사이트 부분과 '십알단'과의 관계"라고 했다.
박 위원장은 "(국정원이 올린) 5만6000회의 트위터 글들 가운데 상당 부분이 '십알단'과 동시에 리트윗(재전송)됐다는 정황이 발견되고 있다"며 "한마디로 이제는 신(新) 관권 부정선거라고 규정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민주당 격앙, 왜?
전날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윤 지청장에게 "(국정원 직원 아이디인) '누들누들'과 십알단이 서로 동일한 내용을 가지고 리트윗을 사이좋게 주고받은 것이 이 수사의 본질"이라며 "십알단이 쓴 트위터 계정과 국정원 연관 10개 계정이 같은 글을 놓고 리트윗한 정황이 발견됐느냐?"고 질의했고, 윤 지청장은 "그렇게 보고받았다"고 답했다. '십알단'은 박근혜 캠프 SNS본부장이었던 윤정훈 목사가 불법 운영한 댓글팀이며, 법원은 지난 8월 항소심에서도 윤 목사에 대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판결을 유지했다.
국정원 직원들이 올린 5만여 건의 트위터 글에 이어 이같은 정황이 추가로 발견되자 민주당은 격앙된 분위기다. 박영선 법사위원장의 발언 전날 정세균 상임고문은 자신의 트위터 계정(@sk0926)에 올린 글에서 "18대 대선은 국정원과 군이 개입된 명백한 부정선거"라며 "박 대통령은 국민 행복을 위해서 대통령에 도전한 것이 아니다. 새마을운동과 유신의 부활이 목적"이라고 원색 비난했다.
정 고문은 "박근혜 정부는 민주주의 파괴세력, 신 매국세력, 국기문란사범 이 3개의 악의 축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일신의 영달을 위해 대한민국을 숙주로 삼아 기생하고 국정을 농단하고 있다"며 "민주당은 국감이 끝나는 즉시 행동하는 양심, 깨어있는 시민, 자신을 민주주의자라고 생각하는 국민들을 대규모로 조직하고 부정선거 규탄,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고강도 2차 투쟁에 돌입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온화한 성품인 정 고문으로서는 이례적인 강성 입장표명이다.
새누리당은 정 고문의 발언에 대해 "지금이 어느 시대이고 어떤 국민들인데 부정선거 운운하는지 황당하기 짝이 없다"(김기현 정책위의장)라고 일축하려 했으나, 정 고문과 박영선 위원장이 잇달아 '부정선거', '관권선거'를 언급한 배경은 간단치 않다. 국정원 직원의 대선개입에 대한 막대한 양의 추가증거가 발견됐고, 국정원장과 검찰 지휘부는 이를 덮으려 했으며, 군 사이버사령부와 국가보훈처 등 다른 국가기관들도 조직적으로 대선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끝이다. 지난 대선 직후의 '개표 부정' 음모론과는 질적으로 다른 상황인 것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