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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아베 총리의 '국제적 거짓말'이 불길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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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아베 총리의 '국제적 거짓말'이 불길한 이유

[편집국에서]죄의식은 물론 수치심마저 벗어던진 일본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7일 2020년 올림픽 개최지를 결정하는 국제올림픽(IOC) 총회에서 경쟁국들을 물리치고 주최국으로 선정되기 위한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최대의 약점으로 꼽혔던 '후쿠시마 사태'에 대해 결정적인 거짓말을 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오염수는 항만 내부 0.3k㎡(제곱 킬로미터) 범위 안에서 완전히 통제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 올림픽이 열려도 방사능 문제에 대해 걱정할 게 전혀 없다는 뜻이다.

개최국 후보의 최고지도자가 국제무대에서 이렇게 단호하게 현재의 상황을 규정했다면 둘 중의 하나다. 방사능 유출을 의심한 다른 나라들이 일본에 사과할 일이 생긴 것이거나, 일본은 '상종 못할' 나라다.
▲ 2020년 도쿄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아베 신조 총리가 10일 각료회의에서 경과 보고를 하고 있다. ⓒAP=연합

'수치심의 나라' 일본의 총리, 왜 '국제적 거짓말' 했나

아베 총리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최근 후쿠시마에서 방사능 오염수가 바다로 흘러들어가고 있다면서 후쿠시마 일대 수산물을 전면 수입금지시킨 한국은 "과학적 근거가 없는 조치"라는 일본의 항의에 대해 할 말이 없게 된다.

하지만 고민할 일이 아니었다. 며칠 뒤인 10일 후쿠시마 원전 관리업체 도쿄전력은 양심선언을 했다. "방사능 물질인 삼중수소가 항만 밖으로 새어나가고 있다는 것이 도쿄전력의 공식 입장"이라는 것이다.

사실상 정부의 통제를 받는 도쿄전력이 과거는 공기업이지만 지금은 형식적으로 민간업체라고 해서 총리의 주장을 부정하는 근거로 '격'이 떨어진다면 멀리 갈 것도 없다.

지난 4일 일본 정부 기구인 원자력규제위원회의 다나카 순이치 위원장의 외신 기자 회견 내용을 보면 된다. 다나카 위원장은 "방사성 물질 농도를 낮춰 오염수를 바다로 방류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바로 전날 도쿄전력은 "오염수 저장 탱크 바닥에서 시간당 최대 2200밀리시버트(3시간 노출시 사망)의 방사선량이 측정됐으며, 5일 핵발전소 인근 지하수도 샘플 조사 결과 1리터(ℓ)당 650베크렐의 방사능에 오염된 사실을 처음으로 밝힌 데 이어 총리의 '거짓말'이 알려진 뒤인 9일 또다시 지하수 샘플 검사에서 1리터 당 훨씬 더 강한 3200베크렐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바다로 오염수가 흘러가고 있다는 것은 물론, 차단이 불가능한 지하수 오염까지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의미다.

게다가 이미 다나카 위원장은 방사능 오염수 처리와 관련해, 국가 차원에서 새로 지원한 최강의 정화장치를 동원하면 62종류의 방사성 물질을 제거할 수 있지만, 이 장치로도 제거되지 않는 삼중수소는 희석해서 방류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일본 국민 스스로도 총리의 발언을 믿지 않는다. <아사히신문>이 지난 7~8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방사능 오염수 문제에 대해 일본 국민의 95%가 "심각하다"고 답변했다. "방사능 오염수 문제가 어느 정도 심각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72%가 "매우 심각하다", 23%가 "어느 정도 심각하다""고 답한 것이다.

방사능 오염수 문제에 대해 "국가가 전면에 더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국가가 나서야 한다"는 답변이 89%에 달했다.

이쯤되면 아베 총리의 발언은 '거짓말'로 단정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궁금해지는 점이 있다. 아무리 올림픽 유치가 중요하다고 해도 한 나라의 최고지도자가 어떻게 국제올림픽 총회라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대놓고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것인가?

부총리 "나치 수법을 배우자"

아베 총리의 거짓말 사건뿐이 아니라, 요즘 일본 사회에서 목격되는 언행을 보면 이해하기 힘든 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올림릭 유치를 위해 일정 기간 자제하던 일본 극우세력들은 올림픽 유치가 확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8일 곧바로 "조선인들을 모두 죽여라"며 반한시위를 벌였다.

일본의 극우세력이 군국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현상도 심상치 않다. 지난 8월15일 A급 전범들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신사 주변에는 일본 우익 보수단체들이 태평양전쟁 당시의 군복을 입고 일본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기를 흔들며 "대동아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니다"고 외쳤으며, 심지어 독일 나치군을 상징하는 하켄크로이츠(갈고리 십자가)를 어깨에 새긴 제복을 입은 무리도 있었다.

정권의 2인자라고 할 아소 다로 부총리는 "독일 나치 정권의 헌법 무력화 수법을 배우자"는 말로 파문을 일으켰다. 정권의 1인자 아베 총리는 항공자위대를 방문해 생체실험으로 악명 높은 731부대를 연상케 하는 전투훈련기에 탑승해 물의를 일으켰다. 또한 히로시마 원폭 투하일인 8월6일 진수한 항모급 호위함의 이름은 일제 때 중국 상하이를 포격했던 기함과 같은 '이즈모'다.

군국주의 발호, 후쿠시마 사태, 올림픽 유치의 연결고리

일각에서는 2020년 도쿄올림픽이 1936년 나치 정권이 정치적으로 악용한 베를린올림픽의 재판이 될 것이라는 경고도 하고 있다. 당시 히틀러는 게르만족의 우월성을 세계에 과시하는 이벤트로 올림픽을 철저하게 이용하고 결국 전쟁을 일으켰다.

최고지도자가 거짓말을 해서라도 올림픽을 유치한 배경은 20년에 걸친 장기불황과 후쿠시마 원전 사태 등으로 우울해진 일본 사회가 현재 집단적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으며, 극우세력이 발호하고 군국주의적 성향이 노골화되는 과정이 이와 연결돼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일본은 섬나라로서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력침공을 서슴지 않은 역사를 갖고 있다. 내부의 문제나 외세에 대한 대응으로 무력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지금 일본은 장기불황에 각종 재난으로 내부의 민심이 흉흉하며, 중국 등과의 경쟁에 뒤처지는 초조감에 빠져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기회만 되면 과거사에 대한 사죄는커녕 전쟁으로 향하는 도발을 해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아베 정권은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를 막고 있는 평화헌법 9조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이란 '동맹국이 제3국의 공격을 받았을 때 자국이 공격당한 것으로 간주해 상대국에 반격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유엔의 규정에 따라 모든 국가가 이 권리를 가질 수 있지만 일본은 2차 세계대전 패전의 산물인 평화헌법에 따라 이 권리에서 제외돼 있다.

그런데 최근 일본에서는 법 해석을 담당하는 법제국이 그동안 평화헌법에 따라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을 보유하고 있지만 행사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는데, 이를 포기했다.

아베 총리는 법제국의 해석을 고수하려는 법제국장을 전격 경질하고 "헌법 해석 변경 여부는 법제국이 아니라 내각이 최종 결정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인물을 법제국장에 임명했다.

미국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가 일본 사람들은 집단적 문화가 강해 '수치심'이 의식을 지배한다고 분석한 이후 일본인들은 '수치심'은 있지만, 개인주의 문화가 발달한 사회에서 두드러진 '죄의식'은 잘 느끼지 못한다는 인식이 퍼졌다. 수치심은 집단의 시선을 강하게 의식하는 심리다. 일본인은 잘못을 저지르고 태연히 있다가 드러나면 '할복'까지 할 정도다.

하지만 수치심은 집단 전체가 잘못하는 길로 갈 때는 작동하지 않는 약점이 있다. 일본이 집단적으로 자신들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국제적인 피해를 주는 일을 해야 한다면 '수치심'마저 작동하지 않는 방향으로 치달을 수 있다. 아베 총리의 '방사능 오염수 완전 차단'이라는 거짓말 발언은 그런 의미에서 불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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