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은 묘했다. 새누리당은 안 후보에 대해 '너부터 잘 하라'는 식의 공격을 가하면서도 정작 내용에 대해서는 '좋은 말이다', '그럴 듯하다'(이상일 대변인)라고 호평했다. 반면 민주당과 진보세력, 진보개혁 성향 학자들은 비판에 나섰다.
<프레시안>은 '인하대 발언' 이후 도서출판 '후마니타스'의 박상훈 대표(정치학 박사)와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의 긴급 좌담을 마련했다. "안철수 후보가 주장해야할 방향은 정치를 '활성화'하자는 것이어야지, 정치를 '구조조정해서 정리해고'하자는 것은 아니다"는 게 이날 좌담의 핵심 문제의식이었다. 다음은 24일 오전 진행된 좌담을 내용에 따라 재정리한 것이다. 이 좌담은 전홍기혜 부국장이 진행했다. <편집자>
▲24일 오전 진행된 좌담에서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왼쪽)와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의 인하대 강연 내용에 대해 논의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安 신념이면 더 큰일…생각 바꾸길 강력히 권고"
프레시안 : 안철수 후보가 인하대 강연을 하면서 3가지 구체적인 안을 내놨다. 정치개혁을 주장해 왔던 야권, 진보 쪽 입장에서는 상당히 당혹스런 부분이 많다. 안 후보가 '새 정치'를 얘기했는데 이 방향이 정말 바람직한 새 정치가 맞나 짚어볼 필요가 있다. 야권 후보단일화에서도 정치개혁 방향이 중요한데 이 방향으로 후보단일화를 이끌어내는 게 바람직할까? 우선 총평부터 들려달라.
박상훈 : 일단 출마한 지 한 달 된 후보, '충분히 준비돼 있지 않은 후보'라는 사례를 보여준 것 같다. 안 후보가 빨리 성장한 면이 있어서 그 점에서 정치참여가 큰 교육적 효과 있다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발견했는데, 이번에 나온 정치개혁 안이라는 것은 민주주의 기준에서 말한다면 동의하기 어려운 내용 담고 있다.
본인의 신념이 아니라 무소속이라는 위치 때문에 즉흥적으로 선택한 것이어서 수정하기를 기대한다. 본인의 장점이 잘못된 것을 빨리 수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듯이, 조속히 수정해서 한국 정치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해나갔으면 한다. 생각을 바꾸기를 강력히 권고하고 싶다.
이철희 : 정치를 바꿔야겠다는 안 후보의 선의는 이해하는데, 그 선의가 정치에 대한 이해 부족, 무지 때문에 왜곡돼 나타난 거라 생각한다. 이런 식의 해법이 아주 새로운 것도 아니고, 그간 이렇게 해왔을 때 정치의 질이 좋아졌느냐, 아니다. 정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선의만 갖고 얘기한 게 아닐까?
이게 (안 후보) 본인의 소신이나 방향으로 설정되면 위험하다고 본다. 저는 '특권을 내려놓자'는 차원의 문제제기라고 보고, 하나하나가 다 양보할 수 없는 정책 대안이라고 보고 싶지는 않다. 안 후보 주변의 정치학자들에게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본다. 이런 대안을 주변에서 제시했다면 실망스럽다.
프레시안 : 안 후보 캠프에 참여하고 있는 정치학자들의 평소 생각과 전혀 다른 게 나와서, 안 후보의 의중이 반영된 게 아닐까 하는 분석도 있다. 이와 관련해 안 후보의 리더십이 민주적이지 않은 게 아니냐, 캠프 내의 포럼들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느냐, 이런 우려가 있을 수 있다.
박상훈 : 안 후보에게 사람들이 좋은 평가를 했던 것은, 정당이라는 위치 때문에 갖는 전략적 편협함을 벗어나서 본인이 '상식'이라 부르는 합리적 내용을 말한 것 때문이었다. 반면 이번 개혁안은 상당수가 이성적으로 고개를 끄덕거릴 만한 대안이 아니라 너무 즉흥적으로 나왔다.
즉흥성의 원인은 무소속 후보라서 기존 정치를 공격하는 게 유리하다는 전략적 발상이 아닐까 한다. 그러다 보니 캠프 안에 있는 사람들의 의견조차 깊이 귀 기울여 진지한 결론으로 나오지 못한게 아닌가. 유리한 담론효과를 위해 다양한 의견 충분히 검토하지 못하고 발언하게 되는 문제를 낳지는 않았을까?
이게 (안 후보의) 신념이라면 정말 생각해 봐야 한다. 그렇다고 한다면 '안철수 현상'으로 인한 충격의 귀결이 한국정치 발전에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 신념이라고 한다면 (안 후보가 지향하는 정치 개혁이) '보수적·신자유주의 개혁'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이철희 : 출마한 지 얼마 안 되기 때문에, 또 문재인 후보와 지지율 싸움을 하는 것도 이해하지만, 후보는 개인적 정체성보다 지지층이 누군지에 따른 집단적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그러려면 내부에서 소통·토론돼야지, 결론은 항상 후보가 내리고 주변은 들러리 서는 건 개인적 정체성이다. 그건 온당하지 않은 것 같다.
특히 안철수 후보 측은 정당도 아니라 캠프다. 집권했을 때 갖는 위험성이 검토되고 걸러지는 게 필요한데 준비 안 된 것을 성급하게 내는 건 아닌 것 같다. 본인이 소통, 공감, 수평적 리더십을 내걸었다면 캠프 내에서부터 보여야 한다. 그러지 않고 본인 생각에 맞는 소수의 의견을 채택해 과감하게 질러버리는 스타일이라면 민주적 리더십이라고 보기 힘들다.
안 후보가 한 달을 숨가쁘게 달려왔는데, 차제에 잠시 멈추고 어디로 갈 건지 하루 이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기왕 내뱉은 말이니 어쩔 수 없다. 합리화하자' 이렇게 가면 진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거다. 지금 멈춰서야 한다.
박상훈 : 안 후보의 민주주의관(觀)이 '아웃풋 데모크라시'(결과물 중심주의)의 편향 같다. 민주주의는 '인풋 오리엔티드' 돼야(의사가 정치에 투입되는 과정에 초점이 맞춰져야 : 편집자) 한다. 대표되지 않은 목소리를 '인풋'하는 게 안 후보의 긍정적 기능이었는데, 갑자기 '대안을 내놓으라'는 요구에 쫒기면서 뭔가 내놓는 쪽으로 한다. 매번 정책발표를 하는데 좋지 않다. 기본방향에 충실하기만 해도 한국정치에 기여할 텐데 설익은 걸 시리즈로 발표하면서 '준비 잘 돼 있다'고 과시하려 하는 건 안 좋은 것 같다. 우리가 그걸 기대하지도 않고.
이철희 : 가장 위험한 캠페인이 그거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려다 보면 이상한 사람이 돼있는 거다. 안 후보는 '대표되지 않았던 목소리를 끊임없이 대변해 여기 (정치에) 집어넣겠다. 그걸 통해 변화를 모색하겠다' 이게 기본 스탠스인데, 정책을 그렇게 이것저것 성급하게 꺼내는 것 자체가 '안철수의 맛'이 없어지는, 안철수답지 않은, 차별성이 없어지게 스스로 만드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 ⓒ프레시안(최형락) |
"의원 수 줄이자고? 오히려 늘려야 한다"
프레시안 : 내용을 하나하나 짚어보자. 의원 수 줄이자는 것부터 보면, 안 후보가 이유로 든 건 '의원들이 많은데 하는 일은 없다'는 것이고 세비 절약이라는 논리까지 나왔다. 의원 1인당 대표하는 인구가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적다고도 했다.
박상훈 : 정치는, 인간이 갖고 있는 한계 때문에, 공동체의 좋은 질서를 만들기 위해 감당하는 비용과 같은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때 적절한 비용 치르지 않고 얻을 수 없듯이 민주주의의 비용이 있다. 그것을 기득권이나 쓸데없는 것으로 보는 것은, 세상의 어떤 정치학 이론도 그런 방법으로 운영된다 생각할 수 없다.
(안 후보의 안은) 신자유주의 정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갖는 생각, 또는 재벌 연구소에서 내놓은 것, 보수언론에서 정치에 주문했던 것들, 보수적 정치학자들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가져와 '정치를 축소하고 정치의 권능을 줄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제도개혁안에 비춘 게 아닌가 한다.
현재 정치가 실망을 주고 잘못돼 있지만, 그걸 바꾸는 방법은 정치를 줄이고 없애는 게 아니라 제대로 기능하기 바라는 것이어야 한다. 마치 예산을 잘못 쓰는 것이 문제라고 해서 감세를 주장하지 않듯, 또 공기업이 방만하다고 민영화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운영하는 게 대안이듯, 정치 쇄신 방향도 달리 봐야 한다. 안 후보가 정치를 바라보는 기본 관념 때문에 만들어진 잘못된 방향설정이라고 지적하고 싶다.
의원 수가 많다고 했는데, 현재 민주주의를 하고 있는 다른 나라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 의원수는 400명까지는 늘어도 좋다. 제대로 기능하기만 한다면 정치의 효용은 다른 어떤 것보다 좋다는 생각이 든다. 의원은 시민을 대표하는 건데, 안 후보가 예로 든 일본과 미국은 대표 범위가 좁다. 양원제 국가고 거기서도 하원만 센 것도 문제가 된다.
또 일본은 지방자치가 발달해 있고, 미국은 연방제 국가인 데다 시민들이 검찰총장도 뽑고 1년 내내 선거를 할 만큼 우리와 다르다. 인구와 의원 수에 대해서는 정치학자들 간에 합의가 있다. '큐브 로'(cube law, 혹은 cube rule : 편집자)라고 하는데, 거기에 맞추면 한국은 400석 정도로 늘어나도 된다. 민주주의 국가 전체와 비교하면 우리는 의원 수가 굉장히 적은 거다. 더 직능대표 분화를 해야 한다.
대표성에도 문제가 있다. 비례대표까지 늘리면 지역구 의원 1명이 대표하는 사람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는데, (바람직한 대의제 모델은) '근접성의 원리'라고 대표와 대표되는 사람 간에는 거리가 가까워야 한다. 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도 얘기했으면 한다. 법을 바꾸는 문제니 국회가 해야 한다. (국회에서) 이전투구하는 모양을 만들어서 정치의 권위를 시장바닥처럼 만드는 것밖에 안 되는데, 바람직하지 않다. 그걸 의원들이 어떻게 할 거냐?
이철희 : 의원 숫자를 줄이자는 얘기를 누가 제일 좋아하나? 언론, 재벌, 관료다. 이들은 오히려 개혁을 하는데 싸워야할 대상이다.
박상훈 : 안 후보가 새정치를 말한다면 '의원 수를 늘리되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하자'고 했으면 더 새로운 길을 열 수 있었을 텐데, 보수의 관점에서 늘 해왔던 얘기를 새로운 것처럼 했다. 신중히 검토한 게 아니라 즉흥적이거나, 사람들이 표면적으로 좋아할 것 같은 걸 무비판적으로 한 게 아닌가 한다.
비례대표를 늘리는 게 기본이라면 과감히 의원 수를 늘리자고 해라. 목적이나 가치가 바람직하다고 하면 규모를 늘리는 것을 학계나 노동계에서도 이제는 반대하지 않는다. 반대는 기득권 '파워 엘리트'만 하지, 시민들의 다수는 충분히 민주주의 위해 비용을 낼 준비가 돼 있다고 본다. 의원 늘리면서 비례대표를 강화하는 게 오히려 맞는 대안이다.
정치는 기득권이 아니라는 것을 좀더 강조하고 싶다. 안 후보 강연은 포퓰리즘적인 면이 있다. 정치를 공격하는 것은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즐겨 활용하는 방법인데, 정치를 줄이면 민주주의도 준다. 정치가 활력 있어야 민중주권이 생긴다. 정치 '다운사이징'(규모 축소)이 아니라 '액티베이션'(활성화)이 필요하다. 정치를 구조조정해서 정리해고 하는 게 (유권자가) 바라는 게 아니다.
이철희 : 정치 불신이란 것은 정치인들 책임이 크고, 특히 진보와 개혁을 표방하는 당들이 못해서 그런 게 맞다. 그런데 결국 작용하는 것은 정치를 통해 자기 삶을 바꿔야 하는 '없는 사람'들에게 나타난다.
복지가 안 될수록 정치 불신이 깊다고도 하는데, 해소하는 방향이 정치 자체를 축소시키고 영역을 제한하는 해법일까? 아닌 것 같다. 우리처럼 양극화가 심해져 있는 상황에서 정치를 약화시키면 없는 사람들은 당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면 길거리로 나가는 수밖에 없다.
정치를 통하지 않고 올바르게 국정을 할 수 있을까? 노무현 정부 때의 당정분리 실패 경험도 있고, 이명박 정부의 밀어붙이기의 폐해도 목도하고 있는데, 이를 행정·관료중심 과도국가 모델로 풀 수 있을까 굉장히 회의적이다.
'CEO'로서 너무 효율성·생산성을 앞세운 논리에 함몰된 게 아닌가 한다. 정치는 그 논리가 아니다. 생산성 효율성의 논리로 보면 정치는 불필요한 거 아닌가. 그렇게 봐서는 안 된다. 정치 이해를 새롭게 해야 할 것 같다.
정치의 기능이 뭔지 생각해야 본인이 말한 개혁과제도 풀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개혁을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아무 것도 남는 것 없이, 없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정치가 다가가지 못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선의가 더 참혹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보좌관 늘린다는 건 구차한 논리…대통령이 광화문에서 깃발 들 건가?"
프레시안 : 안철수 후보 측에서는 '의원 숫자를 줄인다는 게 반드시 의회 기능의 축소는 아니다. 의원을 줄이는 대신 그 세비를 가지고 남은 의원들에게 정책보좌관을 늘리는 식의 방향도 생각해볼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더라.
박상훈 : 그렇게 사안을 보면 구차해 보인다는 느낌이다. 정치를 이해하는, 정치가 한 공동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관점에 대한 변화 없이, 문제제기를 한 것에 대해 효용성의 논리를 가지고 대응하는 것 아닌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과감하게 정치를 이해하는 방법에서 진지한 검토를 해야 한다.
두 번째로 과연 우리나라 정치가 얼마나 문제인가도 따져봐야 한다. 우리나라 엘리트들의 평균 수준에서 보면 정치 엘리트들이 비교적 낫다. 대학 같은 지식 엘리트들 문제가 훨씬 더 크고, 기업조차도 노사관계 등 여러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언론 엘리트들이 좋은 것도 아니다.
평균적 수준을 보면 우리나라 정치 엘리트들이 도덕성, 능력, 성실함, 책임감에서 나쁘지 않다. 그러나 왜 정치에 대한 더 큰 불만이 있느냐, 민주주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다른 데랑 달리 기준이 높고 엄격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거지, 다른 데보다 형편없이 못해서 그런 건 아니다. 그런 건 이건희 씨가 말하는 식의 논리밖에 안 된다.
그럼 왜 (안 후보는) 정치를 그렇게 보느냐, 현실을 그렇게 보는 게 아니라 정치를 그렇게 비판해야 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밖에 설명이 안 된다. 정치인이 제 역할을 하게 길을 열어주는 게 대선후보로 나선 지도자의 역할이다. 기존 정치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해석이나 이데올로기를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접근은 재고해야 한다.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 지역구를 줄이고 비례 늘리면서 전체 의석수를 줄인다는 것은 누가 봐도 할 수 없는 얘기다. 현실이 될수 없는 얘기를 하면서 얼마나 노력하는가 말하는 것은 즉흥적 결정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이철희 : 박 대표가 이론적인 면을 얘기하셨는데, 선거게임이라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국회의원을 줄인다고 하면 민주당 의원 127명 중 누가 안 후보를 돕겠나? 자기 지역구 날아갈지도 모르는데. 기득권이 없어지면 당연히 가진 사람은 저항한다? 그렇게 비난하면 난망하다.
▲이철희 소장 ⓒ프레시안(최형락) |
문재인 후보가 의원 300명으로 하되 비례를 100명까지 늘리겠다는 안을 내놨는데 그걸 툭 쳐버린 것 아닌가. '그게 아니고요, 200명까지 의원 정수를 줄여야 합니다' 이렇게 가 버린 것이니 그것도 대립점이 만들어져 버렸다. 이렇게 차이점만 드러내기 시작하면, 물론 단일화가 온당하냐 그르냐 가치판단 다르겠지만 필요하다고 본다면,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국회에서 보면, 대통령이 뭐 하나 통과시켜 달라고 하면 날치기를 해야 하는데 그러면 몸싸움이 벌어지지 않나. 대통령이 국회를 못나게 보이게 하려고 의도적으로 그런다는 생각도 든다. 국회에 대한 여론을 안 좋게 만들어야 대통령이 사는 길이니까, 국회가 약화되야 대통령 권위가 산다는 것이다. 기관 간의 권력투쟁 성격도 있는 것 같다.
대통령이라면 제도적 특성상 누구나 국회를 무시하고 싶은 생각을 가질 텐데, 아예 그걸 신념화하고 제도화해서 대통령 우위, 행정 우위로 만들겠다, 이건 개혁을 하는데도 온당치 않은 것 같다. (개혁에 필요한) 대중의 힘을 어떻게 모을 건가? 대통령이 광화문 와서 깃발 들 건가?
어차피 청와대 들어가면 관료들에 포위된다. 청와대에서 행정을 하면 여론을 알 방법이 없다. 여론조사, 언론, 관료들이 올리는 보고서 세 가지밖에 없다. 그밖에 정당이라는 유력한 기제가 있는데 이 통로를 안 쓰면 갇힌다. 민의를 받아들이는 중요한 통로인데 그걸 줄이겠다면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잘못됐다. 결국 관료국가, 행정국가 만들겠다는 게 아닌가?
박상훈 : 민중주권의 요체는 의회에 있고 재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게 국회 청문회다. 대통령도 의회에서 견책받는 걸 두려워한다 그게 민주주의의 힘인데, 강한 대통령제는 스스로 의회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보수언론이나 주류학계, 재벌들도 가능하면 민중주권의 요체인 의회의 힘을 약화시키려 하고 관료들도 심심하면 국회 때문에 일 못하겠다고 하지 않나.
그런 태도가 보여주듯이, 물론 의원들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현재는 (의회가) 민주적 권능의 요체로서 더 활성화되고 제대로 할 수 있는 걸 (하도록) 하는 게 개혁의 길이 돼야 하지 않나. 그걸 줄인다면 강해지는 건 경제권력, 행정권력, 지식인들의 이데올로기 권력일 수밖에 없다. 그게 냉정한 현실이다.
안 후보 측의 말들을 보면 정치를 기득권, 특혜로 본다. '정치권'이라는 말로 사회로부터 소외시켜서 비판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정치권이라고 하지만 (그 '권'은) 시민사회 등에 반쯤 걸쳐져 있는 민주적 대표의 영역이다. 이를 사회로부터 분리시키는 언어는 보수언론이나 재벌들이 즐겨 쓰던 것이다. 제발 그 언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치가 시민사회 속에서 활력 있게 움직이는 것이 목표고, 민중주권이 강화되는 것이 목표여야 한다. 정치를 사회 밖에 있는 어떤 곳으로 몰아놓고 특혜 줄여라, 기득권 줄여라 말하는 건 곤란하다. 그렇게 되면 좋은 것은 사회 기득권이다. 정치가 시민사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때문이다. 안 후보가 정치를 이해하는 방법을 보면, 신자유주의적·경영자적 태도도 있지만 정치를 사회에서 분리시키려는 어법도 있는 것 같다.
프레시안 : 정당 국고보조금 축소 주장은 어떻게 보나?
박상훈 : 그건 그럴 수 있다고 본다. (다만) 국고보조금을 줄이는 데 초점을 둔 접근이 아니라 원칙이 방점이었으면 한다. 저는 개인적으로 국고보조금은 좀 줄여도 좋다고 본다. 독일처럼 당비와 보조금이 균형을 맞추는 것도 좋겠다. 하지만 구체적 방법의 문제는 아니고, 정당이나 국회를 이해하는 방법이 정치를 바라보는 것과 유사하게 정치 기능을 자꾸 줄이고 전문가의 역할을 늘리려 해서 해결하려 하는 것은 민주주의와 충돌하는 게 있다.
이철희 : 보조금이 제대로 안 쓰이니 그런 불만이 있을 수 있고, 정당이라는 게 국고에 의존하는 것도 웃기긴 하다. 그러나 지금 정당이 대중에게 다가가 정당이 왜 필요한지 보여줄 수 있게 해줘야 사람들이 당비를 낼 거 아닌가? 지금처럼 벽을 쌓아놓으면 대중이 정당 정치를 발견할 기회가 없는데 돈을 왜 내나. 먼저 열어주고 그 다음에 국고보조금을 줄이는 게 순서다. 이렇게 되면 돈 없는 사람은 정치 못한다. 그러면 이익대표가 더 심하게 왜곡될 수 있다.
"연방국 미국식 정당 모델을 한국에 적용하겠다?"
프레시안 : 안 후보는 중앙당 폐지도 얘기했다. 안 후보의 정당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것 같다는 지적도 나오는데?
박상훈 : 한국 민주주의가 어느 방향으로 갈 거냐? 미국식의, 중앙당이 약한 모델을 지향할 수도 있고, 유럽처럼 이념적·계층적 대표성이 강한 것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미국은 예외라고 봐야 한다. 한 나라라고 불수 없는 대륙급의 국가에 맞는 민주주의 모델을 한국처럼 응집적이고 동질적인 나라에서 수용한다는 것은 좀 부적절하다.
▲박상훈 대표. ⓒ프레시안(최형락) |
여기서 생각이 드러난다. '연구로는 충분치 않다. 지도자의 결단도 필요하고 타협이나 양보도 필요하고, 최상의 방법을 몰라 실수를 통해 배우기도 하고 학습하는 게 정치다' 이런 관념이 아니라 '누군가 사심 없이 비정치적으로 연구해서 결론을 내면 모두에게 최선'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
그건 관료·경영인 등 전문적 관리인들이 정치영역을 대신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고, 이는 민주주의에서 가장 위험한 발상이다. 민주주의는 가난한 보통사람들에게 정치에 대한 참여가 가져다주는 선한 효과에 기초한 것이다. 그게 아닌 전문가, 관리자주의는 현대판 귀족주의다. 중앙당 폐지 그 자체보다 거기 숨어 있는 정당관이 더 문제라고 본다.
이철희 : 과거의 정치개혁에서 지구당을 없애면서도 깨끗한 정치, 돈 안 드는 정치를 강조했는데 그런 점에서 효과는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구당이 없으니 지역 유권자들이 정치인을 만날 채널이 없어져 버렸다. 지역으로 가보면 당과 유권자의 거리가 굉장히 멀다. 지구당 없앤 것도 그런 폐해가 나오니 부활하자는 얘기가 나오지 않나.
중앙당마저 없애면 시도당만 남게 되는데, 한때 지역당 활성화 얘기도 나왔지만 그렇게 될지 모르겠다. 중앙당이 없으면 당이라는 존재가 대중에게 안 보이게 될 것이다. 시도당이 할 수 있는 건 없을 것이니 사실상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면 대중이 자기 이해를 전달할 통로가 뭘까? 공무원 만나러 줄 서야 하나? 현실적으로 대중이 정치를 만날 기회를 없앤다는 점에서 중앙당 폐지는 실익이 없다.
프레시안 : 안철수 후보 측에서는 '공천권이 정당에 있으니 정치인들이 국민을 안보고 정당만 본다'는 것이다. 공천권을 국민에게 주자는 차원이라고 한다.
이철희 : 공천권 없는 정당이 정당인가? 공천이 사천(私薦)으로 되는 건 문제다. 그걸 명실공히 공천으로 만드는 건 필요하다. '국민에게 돌려주자'는 건 레토릭(수사법)으론 좋지만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누구에게 유리하고 편리해지는지 생각해보면 정말 어리석은 짓이다.
박상훈 : 정당이 대표해야 할 사회적 기반을 더 넓고 깊게 가져가는 방향이 정당을 더 좋게 만드는 거지, 역할을 줄이는 게 아니다. 정당이 풀뿌리 기반과 만나는 지구당을 부패 혐의 있다고 없앴는데 지금 없나? 이름만 지구당이 아닐 뿐이지 당협이 있다. 기능은 그대로 있는데 형식만 없앤 꼴이 된 게 우리나라 정치개혁이다. 눈에만 안보이게 하는….
중앙당은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대안도 만들고 정책도 지원할 수 있는 그런 역할이 커져야 한다. 줄이는 게 능사가 아니라 시민사회를 계층적·직능적으로 대변할 수 있는 조직으로 해야 한다. 그걸 기득권, 특혜, 돈 먹는 조직으로 치부하면 안 된다.
공천권을 시민에게 돌려준다는 건 어느 시민도 원하지 않는다. 시민이 원하는 건 정당이 공직후보를 책임있게 뽑아내라는 것이고 시민은 그걸 제대로 하나 보고 책임을 묻겠다는 거다. 그걸 시민한테 넘기면 정당이 왜 필요한가?
완전국민경선제도 완전히 반대한다. 민주주의에 맞지 않는다. 미국처럼 사이즈가 너무 크거나 할 때 하는 특별하고 예외적인 제도이지 그게 최선의 제도로 이해되는 건 곤란하다. 정당의 공천은 정당이 시민사회를 대표해 싸울 자신들의 '장수'를 보내는 일인데 사람들한테 '뽑아주세요' 하는 건 곤란하다.
현대 정치에서의 시민권은 집단적으로 파당적으로 투표할 수 있어야 한다. 규모가 작으면 직접민주주의를 할 수 있지만, 현대는 기능적으로 분화돼 있고 하나의 세력이 국가를 운영하는 일원적 모델을 허용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노동자로서, 자영업자로서, 한미FTA를 반대하는 사람으로서 투표할 수 있어야 하고, 동시에 '예산을 증액해 복지 늘리자' 하는 파당적 입장에서 투표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걸 국민에게 준다는 것은 국민을 무정형적인 개인으로 흩어 놓는다는 얘기다. 그럼 개인들은 집단으로 파당적으로 투표할 수 있는 기초에서 떨어져 나가고 버튼만 누르는 '버튼 데모크라시', 국민경선 문자 보내는 것밖에 할 수 없다. 그걸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는 없다.
▲이철희 소장. ⓒ프레시안(최형락) |
"직접민주제 못해서 하는게 아니라 대의제가 더 우월한 제도"
프레시안 : 안 후보 측에서는 직접민주주의의 경로를 늘리는 게 민주주의 발전이라고 하고 있고, 기존의 정당구조를 튼튼히 하는 것은 낡은 것이며 좀더 빠르게 유권자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모바일 기술 등을 활용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상훈 : 민주주의에서 정치과정은 시민의 선호가 형성되는 과정이다. 공적 토론과 숙의를 통해 선호가 형성되는 게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의견 수렴을 더 잘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고 해서 선호 형성 과정을 빼고 민주적 참여를 테크놀로지로 대신한다는 건 너무 위험하다.
완전국민경선이든 뭐든 그 테크놀로지를 잘못 신뢰해서 통진당도 민주당도 위기를 겪었는데, 그 사람들은 기술적 보완만 하면 된다고 하지만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된다면 그게 더 위험하다. 참여를 기술로 대체하는 것을 누구도 원치 않는다.
시민의 선호형성 과정은 한 세력에게 독점적으로 대표될 수 없다. 때문에 몇 개 의견을 가진 집단이 의견을 형성하고 다른 의견과 경쟁하면서 공익이 뭔지를 전 사회적으로 발견하고 찾아가는 과정이어야 하는데, 시민과 공익적 결정 사이에 오로지 기술적으로 잘 반영하는 것만 있다고 하면 민주주의가 아니다. 괴롭지만 인간의 불완전성 때문이다.
또 선호가 형성되고 그에 대해 책임지는 메커니즘이 있어야 정당에 책임추궁도 하는 것인데, 그게 안 되고 뉴 테크놀로지 민주주의를 한다고 하면 책임성도 없고, 시민은 무정형적으로 흩어져버리고, 대표가 누구를 대표하는지도 불확정적이 되고, 그러면 민주주의란 과정은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구조 위에 떠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민주주의, 나아가 정치의 기능이 붕괴된다.
정치는 완벽하다고 좋은 게 아니라 인간의 한계에 맞게 실수도 하고 교정도 하는 인간의 정치여야지, 테크놀로지에 기대서는 안 된다. 정당은 민주주의의 기반이고 헌법이 뒷받침하는 유일한 정치조직이다 정당 없는 민주주의는 일당지배국가이거나 비민주주의적인 전체적인 국가다.
(건강관리를 할 때) 우리가 무슨 비타민도 먹어야 하고 유산소 운동도 해야 하고 이런 거 다 좋지만 삼시 세 끼 기본은 먹어야 섭생이 되듯이, 정당은 '기본'이다. 정당의 형태 변화는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벗어나자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테크놀로지는 그 보조 장치여야 하는데 정당을 없애고 직접민주주의를 하겠다, 이건 낭만적이라든가 순진하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거꾸로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
집단적·파당적 매개 없이 개인인 시민과 공적 결정이 직접 연결되는 것은 정치가 발전되는 게 아니라 정치를 위험에 빠트린다. 많은 사람들이 '직접민주주의가 좋은데 어쩔 수 없이 하는 게 대의민주주의'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 대의제가 더 진보적이다. 어떻게 발전시킬까가 목표여야지 그걸 넘어서는 직접성, 이런 건 민주주의와 맞지 않는 얘기다.
프레시안 : 마무리 발언 부탁드린다.
박상훈 : 어떻게 보면 안 후보가 말한 상당 부분은 과거에 열린우리당에서 말한 게 많다. 그 때는 그 쪽이 당내 비주류였기 때문에 당시 주류였던 동교동계 등을 공격적으로 비판했었는데, 지금 보면 문재인 후보는 오히려 갑자기 정당주의자가 됐다.
안 후보는 가장 약점이 캠프 운영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많겠다는 생각이 든다. 문재인 캠프는 상상력의 범위가 '노무현의 유산'으로 제한되는 반면, 안 후보는 한 달 만에 만든 저 캠프를 잘 운영할 수 있을까가 갈등 지점이 되지 않을까.
이번 사례가 여러 사람들이나 포럼, 전문가들의 충분한 검토에 의해 내려진 결정이 아니라면 이런 것이 캠프 내부를 갈등하게 만들 거다. 캠프를 잘 운영하는 것도 굉장한 실력이다. 내부에서 어떻게 토론과 합의의 기초를 만들어 가면서 국가운영 비전을 발전시켜 갈까, 그게 이번 사례에서 숙제로 남겨진 몫이 아닐까 한다.
이철희 : 저는 안 후보가 철인왕(哲人王) 프레임을 벗어주길 바란다. 본인이 뭔가를 결론낼 수 있고 해결할 수 있다고 과도하게 욕심내선 안 된다. 정치학자들의 상당 부분이 반대하는 길이라는 건 만만하지 않다.
박상훈 : 맞다. 정치 안의 한 플레이어가 되겠다고 해야지, 위에서 전반적으로 내려다보며 '정치를 이 방향으로 계도할 수 있다'는 건 민주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작동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반드시 반발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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