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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가난한 이들이 박근혜를 더 지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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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가난한 이들이 박근혜를 더 지지하는가?

[이철희 칼럼] 민주당,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 때 아니다

'지성의 비관주의, 의지의 낙관주의.' 안토니오 그람시의 말로 알려져 있다. 원래는 그의 석방운동에 참여했던 프랑스 문학가 로맹 롤랑이 썼다고 한다. 그람시가 동생에게 쓴 편지에서 롤랭의 이 말을 차용했다고 하는데, 영어 번역문은 이렇다. "나는 지성 때문에 비관주의자가 되고, 의지 때문에 낙관주의자가 된다." (I'm a pessimist because of intelligence, but an optimist because of will) 이렇게 보면 뜻이 좀 더 명확해 진다. 우리는 지성으로 약점과 한계를 찾아내야 하고, 그걸 이겨낼 의지를 가질 때 그나마 낙관적 전망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넓은 개념으로 진보 진영은 그람시의 통찰과 거꾸로 가고 있다. 패배를 이해하는 데 의지를 사용하고, 패배를 받아들이는 데 지성을 사용하고 있다. 이러저러한 점에서 진 것이 아니라고 하는 진단은 견강부회다. 누가 뭐래도 진 건 진 것이다. 여기에 굳이 어떤 변명을 덧붙이는 데에 지성을 쓰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패배를 조목조목 아프게 받아들이는 데 지성을 써야 새로운 반전의 의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 '진 것도 이긴 것도 아니다'라는 말을 누가 했는지 기억해보라. 작년 10월의 재·보궐선거 후 당시 여당 대표가 말했다.

사실관계로 보면 그의 말이 과히 틀린 것도 아니었다. 서울시장 선거를 빼놓고선 대부분의 선거에서 여권이 승리했다. 그럼에도 그의 말은 당시 한나라당의 안일한 판단과 둔감한 인식을 드러내주는 것으로 들렸다. 그 때 그들이 보였던 한심한 몽니를 이번에는 진보진영에서 보이고 있으니 한심할 따름이다. 내친 걸음에 그람시의 지적을 하나 더 꺼내놓는다. "자만심을 강화하거나 구체적 사실보다 자만심을 더 좋아하는 자는 분명 진지하게 대할 가치가 없는 자이다."

이번 선거결과에서 패배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데이터 중 하나가 20~40대의 야당 지지율이다. 방송3사 출구조사에 의하면, 20대는 2010년의 지방선거에서 56.7%, 2011년 10월의 서울시장 재선거에서 69.3%의 야당 지지율을 보였다. 날로 지지강도가 늘어난 셈이다. 그런데 이번의 총선에서는 47.9%로 내려앉았다. 30대는 64.2% → 75.8% → 53.5%의 궤적을 보였다. 40대는 54.2% → 66.8% → 46.1%의 흐름을 나타냈다. 여론조사를 숫자로 읽는 것은 잘못이다. 추세로 읽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20~40대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는 추세만큼은 틀림없다.

또 하나, 투표율이 던지는 메시지다. 이번의 투표율은 54.3%이다. 2년 전 지방선거의 투표율은 54.5%였다. 1998년 이후의 선거에서 지방선거 투표율에 비해 총선 투표율이 낮았던 경우는 한 번이다. 2008년에 있었던 18대 총선이다. 그 때 투표율이 46.1%였다. 그 이전의 2006년 지방선거 투표율은 51.6%였다. 그 이전 시기, 즉 2002년 지방선거는 48.9%이고 2004년 총선은 60.6%였다. 1998년의 지방선거는 52.7%, 2000년의 총선은 57.2%였다. 과거의 경험에 비춰보면, 이번 총선에서의 투표율은 매우 낮은 것이다. 직전의 지방선거가 54.5%였다면, 이번에는 60%를 넘겼어야 했다. 이런 투표율은 곧 민주통합당을 비롯한 야권이 20~30대의 투표율을 끌어올리는 데 실패했다는 것을 뜻한다.

우울한 대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국리서치의 선거 후 조사에 따르면, 저소득층은 압도적으로 정당투표에서 새누리당을 지지했다. 새누리당 대 민주통합당의 지지율이 소득 100만 원 이하에선 76.2% 대 12.7%, 101~200만 원에서는 49.7% 대 28.1%, 201~300만 원에서는 48.6% 대 28.9%로 나타났다. 500만 원 이상 고소득층에서는 당연히 45.1% 대 34.8%로 새누리당이 우세했다. 민주통합당이 진보 쪽으로 움직였다고 하고 1%의 부자가 아니라 99%의 서민을 대변한다고 하는데, 정작 그들의 지지를 못 받고 있는 것이다.

주택 소유를 기준으로 부자 동네보다 서민 동네가 야권을 더 지지한 것에 비춰 볼 때, 저소득층의 지지를 견인하는 데 실패한 것은 정말 뼈아픈 대목이다. 이것은 민주통합당이 아직 중산층이나 화이트칼라의 지지를 동원하는 데에만 성공할 뿐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게는 설득력 있는 대안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어느 나라든 먹고 살기 힘든 계층이 저절로 깨달아서 진보세력을 지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진보세력이나 정당이 프레임과 정책을 통해 그들의 삶을 바꿔낼 수 있는 대안으로 인식될 때 비로소 계급투표가 가능해진다. 민주통합당이나 야권 연대는 이번 총선에서 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이코노미스트>가 지난 4월 7~12일 자에서 지적한 평가는 적절해 보인다. "유권자들이 일자리와 복지를 고민하고 있고, 이에 대한 관심을 표명해 온 통합민주당이 불법사찰 문제에 매달린 것은 의외다." 비리와 부정부패 따위의 쟁점으로 유권자를 동원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앞선 선거에서 이런 것에 대한 심판론이 여러 차례 작동했다면 심판의 대상을 경제적 차원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필요했다. 이에 대해 민주통합당은 무기력했다.

선거 패배의 요인은 간명하다. 민주통합당의 무능이다. 총선 직전인 지난 3월 29일부터 30일까지 실시된 선거학회 조사에서 야당으로서의 정권교체를 바라는 응답이 52.5%, 새누리당 재집권이 33.3%였다. 5:3의 구도면 얼마나 좋은 것인가. 그런데도 졌다. 앞서 언급한 한국리서치 조사에서 총선 결과에 대해 기대했던 결과라는 응답은 42.7%에 불과하고, 기대와 다른 것이라는 응답은 50.9%였다. 이런 결과는 민주통합당의 실력이 모자랐다고 밖에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민주통합당은 지금까지 MB를 악마로 묘사했다. 만악의 근원으로 규정했다. 이런 세팅은 여권의 주인이 MB일 때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MB 정부 출범 이후 야권이 여러 선거에서 이길 수 있었던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MB가 주변으로 밀려나고, 다른 사람이 여권의 얼굴로 등장하면 사정이 일변하게 된다. 게다가 그 인물이 여러 사안에서 MB와 맞섰던 사람이면 그 효과는 배가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통합당은 박근혜까지 악마 내지 그 동조자로 포지셔닝하는 전략을 취했다. '이명박근혜'라는 말이 이를 말해준다. 한국리서치 조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박근혜의 책임이 있다는 여론이 51.2%, 그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 39.7%로 나타나 이 전략이 나름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이 전략에는 약점이 있다. 박근혜를 주 타깃으로 삼으면 본의 아니게 MB가 사라지게 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번 선거 내내 MB는 뒤에 숨어서 나타나지 않았다. 아니 민주통합당이 끌어내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적절한 표현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뉴시스

또 다른 문제점은 단순히 책임이 있다는 지적만으로는 야권 지지로 전향시킬 수 없다는 사실이다. 자영업 중에서 박근혜 책임론에 공감하는 여론은 59.8%이고, 그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은 37.2%였다. 그런데 이들은 정당 투표에서 새누리당에게 51.3%, 민주통합당에게 28.3%의 지지를 보냈다. 새누리당을 지지한 응답자의 31.0%가 박근혜 책임론에 공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근혜에게 동반책임이 있다는 것과 이번 선거의 성격을 박근혜 심판으로 인식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따라서 MB를 집중 공격하고, 반MB의 내용을 민주 대 반민주가 아니라 부자 대 서민의 틀로 몰아갔다면 박근혜 등장의 효과도 대폭 반감됐을 것이다. 이 프레임에서는 박근혜의 운신 폭도 훨씬 좁았을 것이다.

시험 못 본 학생이 할 일은 다음 시험에 대비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다. 특히 많이 틀린 과목이나 약점을 드러낸 부분을 메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 운이 없었다면서 으레 하던 대로 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민주통합당이 할 일은 참 많다. 패배를 통렬하게 아파하는 모습이 있어야 한다. 또 섣부르게 대선후보 경쟁 국면으로 들어갈 것이 아니라 당을 바로 세우는 작업에 매진해야 한다. 지금 당장 인물 프레임으로 가는 건 실익이 없다. 우선은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간에 무엇이 다르고, 어떻게 다른지를 분명하게 재정립하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통합당이 진보의 대표성, 반MB의 구심체, 복지한국의 견인차로서 자리 잡을 때 대선 승리의 전망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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