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그는 정치권 입문과 동시에 4월 총선에서 당 전략기획위원장을 맡았었다. 기존의 민주당, 한국노총, 시민통합당이 합쳐지면서 탄생한 민주통합당 나름의 '안배' 차원이기도 했지만.
김 당선자는 18일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왜 전략기획위원장이 대표의 측근이 해야 하는지 깨달았다"며 정치인으로서 나름의 '신고식'이 결코 쉽지 않았음을 털어놓았다. 선거 결과 배지를 달았지만 총선 패배를 책임져야 하기에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총선 패배의 원인에 대해서 꼼꼼이 살펴봐야할 일이지만, 당장 8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선 준비도 여유 부릴 때가 아니다. 특히 이번 총선에서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였던 문재인 민주당 상임고문이 크게 상처를 입었다.
시민통합당 출신으로 문 고문과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김 당선자는 이번 총선 과정에서 보여준 문 고문의 '한계'에 대해 두 가지를 지적했다. 첫째, 대권주자로서의 좀더 선명한 인식과 행보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과 친노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특히 노무현 정부의 과오를 털고 이를 뛰어넘지 못하는 한 문 고문과 민주당의 모두 미래가 어둡다는 게 김 당선자의 생각이다.
또 김 당선자는 야권의 대선후보 선출과 관련해 자신이 주장했던 '빅텐트론'을 재강조했다. 범야권 전체의 대선후보를 '단일리그' 경선을 통해 선출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는 효율적인 경선을 위해서는 하나의 당이라는 '텐트' 안으로 모두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운동가'에서 '정치인'이라는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김 당선자는 '초선 의원'으로서 포부도 밝혔다. "의정활동을 정말 열심히 하겠다"는 것. 김 당선자는 또 '통합은 성공했지만 혁신은 성공하지 못한' 현 민주당의 문제를 맞서 이학영(군포), 남윤인순(비례), 송호창(의왕과천), 홍종학(비례) 당선자 등 시민사회 출신 인사들이 주축이 되는 '정책의견그룹'을 구성하겠다는 구상도 있다. 총선 패배 이후 김진표 원내대표 등을 중심으로 "중도노선을 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에 대해 "세계 정당사를 봐도 중도에 서서 좌우를 통합해 집권한 사례는 없다"며 "좌면 좌, 우면 우, 포지션을 잡고 중원으로 나가 통합시키는 것이지 스스로 중도에 포지션을 잡는 건 자살행위"라고 비판했다.다음은 이날 인터뷰의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 민주통합당 김기식 당선자 ⓒ프레시안(최형락) |
"민주당, 노무현 정부 오류 끌어안고는 못 간다"
프레시안 : 당선을 축하드린다. 본인이 전략기획위원장을 맡아 치러낸 선거다. 결과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하고 있는가 궁금하다.
김기식 : 국민의 마음을 충분히 얻지 못했다. 정권교체 열망이 있었고, 민주당 단독으로는 어려워도 야권연대를 통해 과반을 넘길 수 있는 정치환경이 조성돼 있었다. 그런데 그걸 못했다. 민주당으로서나 야권연대로서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이다. 가장 큰 책임은 민주당이 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원인에 대해서는 나눠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전통적 지지층의 기대를 유지시킬 혁신 동력이나 정권교체·총선승리 열망을 충족시킬 확고한 대여전선을 만들지 못했다. 전통적 지지층이 실망해 투표를 안 하는 등의 형태로 나타난 측면이 있다.
중간층에 대해서는 민생 대안을 충분히 부각시키지 못했다. 정권심판이라 해도 심판의 핵심은 민생파탄이고 대안도 민생이어야 했다. 반값등록금이나 기초노령연금제 등이 이슈화되긴 했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제주해군기지 이슈도 중간층에게는 마이너스가 됐다.
프레시안 : 정책 면에서도 새누리당과 뚜렷이 차별화가 안 된 것은 아닌가?
김기식 : 새누리당의 승리 요인은 두 가지다. 첫째는 누가 봐도 명확한 차기 대선주자를 내세운 선거전략이 먹힌 것이고, 둘째는 이미지 정치의 승리다. 당명과 색깔을 바꾸고 김종인 박사와 이상돈 교수를 비대위원으로 영입해 그 이미지 효과를 120% 활용해냈다. 경제민주화나 보편적 복지 관련 공약은 하나도 없는데 레토릭(언술)에서 잘해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문제는 새누리당과 명확히 차별화하면서 '진짜-가짜 논쟁'을 벌여 저쪽의 허구성과 이쪽의 진정성을 부각시켜내는 부분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전략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국민들이 보기에는 '누가 그 말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신뢰 가는 대선 주자가 전면에 나서 메시지를 던지지 않아 우리의 얘기가 대중의 마음에 다가서지 못한 면이 있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얘기하는 '미래'가 내용은 전혀 미래지향적이지 않은데도 '미래권력'이라는 의미에서 국민에 받아들여진 면이 있다.
민주당은 참여정부의 오류와 한계를 끌어안고는 못 간다. 국민은 굉장히 냉정하고 집단적으로는 굉장히 현명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서거로 인해 그를 추모하는 애틋한 마음은 있으나, 그게 참여정부에서 있었던 모든 일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건 아니다. 공은 승계하고 한계는 극복하겠다고 하면서, 오류를 인정해야 미래를 얘기할 때 신뢰가 생긴다. 잘못한 게 있으면 명확히 잘못했다고 털고 가야 한다. 이는 대선 과정에서도 반드시 직면할 문제다. 거기서 애매한 태도를 취하면 안 된다.
"문재인, 친노 프레임 깨지 않는 한 미래는 없다"
프레시안 : 대선주자 문재인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김기식 : 문재인 이사장은 인품도 훌륭하고 공인으로서의 검증도 끝난 분이다. 국민적 신망을 얻을 수 잇는 진정성도 평가받고 있다. 좋은 리더의 자격을 갖춘 분이다. 다만 두 가지 점은 극복해야 한다.
첫째, 스스로가 대선주자답게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총선 내내 부산에 계셨던 건 잘못했다고 본다. 선대본부에서는 문 이사장 등 대선주자들이 전면에 나서서 전국 선거를 진두지휘해 달라 요청했는데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국민들이 다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로 생각하고 있는데 본인 스스로는 겸손하게 '낙동강 전선 지키겠다'는 자세였다. 일반적으로는 미덕일 수 있지만 문 이사장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는 리더로서의 정치적 한계를 보여준 측면이 있다. 스스로 유력한 주자임을 인정하고 그에 맞는 정치적 처신과 행보를 해줘야 한다. 문 이사장이 대선주자답게, 당의 '간판'답게 선거를 진두지휘했다면 긍정적 역할을 했을 것이라 본다. 스스로 극복해줘야 하는 문제다.
둘째, 친노 프레임(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친노 프레임 안에서는 결코 대선에서 이길 수 없다. 민주당, 나아가 야권 전체의 대권후보, 국민의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면 어떤 세력만을 대표해서는 안 된다. 친노 프레임을 깨고 거기서 벗어나 정치적으로 더 넓게 아우를 수 있어야만 한다.
프레시안 : 대선까지 8개월 남은 상황에서 '문재인 당선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라는 것 외에 고유의 스토리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관련기사 보기)
김기식 : 문 이사장이 변해온 속도를 보면 못할 것도 없다. 지난해 여름까지만 해도 본인이 직접 정치에 나설 것인가 주저하던 양반이다. 그런데 통합운동의 전면에 나섰고 4개월만에 사실상 출마 선언을 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있고, 거기서 주어진 것을 소명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 있다고 본다. 무섭게 자기를 변화시키는 모습을 보여 왔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이 있다.
"안철수 민주당에 들어오라는 건 당에도 安에도 도움 안 돼"
프레시안 : 총선 직후 정치권이나 언론은 바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소환했다. 김 당선자도 안 원장과 가까운 것으로 아는데, 어찌 보나?
김기식 : 안 원장은 미국 스탠포드대에서 안식년을 보낼 때 같이 있었다. 좋은 분이고 존경할 만한 분이다. 그 분이 정치적으로 어떻게 나설지는 지금으로선 확실치 않지만 제가 그 분을 아는 한에서는, '6월 등판'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 적어도 이번 학기가 지나기 전에 정치적 결정을 하고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다. 서울시장 선거 때 보여준 것처럼, 안 원장은 넓은 범위에서의 민주개혁세력 범위 안에 자리하고 있다고 본다. 대선에서도 그런 범위에서 안 원장의 역할을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김기식 당선자 ⓒ프레시안 자료사진 |
물론 안 원장에게 마음을 닫아둘 필요는 없으나 아직 본인이 하겠다고 나선 것도 아닌데 그 문제로 당을 흔드는 것은 국민들에게 설득력이 없다. 그 이전에 민주당이 혁신의 내용과 메시지를 분명히 제시하고, 그럼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하고, 그 기반 위에서 대선 주자가 선출돼야 수권에 다가가는 것이다. 어떻게 정권교체를 개인이 하나. 국민에게 신뢰받는 수권 '세력'이 형성돼야 한다. 혁신으로 국민 신뢰를 얻는 노력을 중시해야지, 줄서기하는 것처럼 안 원장이 출마선언하고 민주당에 들어오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것인양 하는 것은 본말전도다. 그런 당에는 안 원장이 들어오지도 않을 것이다.
프레시안 : 대선에서도 야권은 선거연대를 할 것으로 보인다. 시너지(상승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하지 않겠나.
김기식 : 기존대로 각 당 후보를 뽑고 여론조사 단일화하는 방식으로 국민에게 감동을 주면서 승리할 수 있을지 지극히 회의적이다. 제가 '빅텐트'(big tent) 얘기를 계속했던 것은(☞관련기사 보기), 강력한 지지기반을 가진 보수의 대선후보 박근혜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구조와 과정 속에서 승리의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단일 리그' 안에서 감동적인 국민경선을 하면서 후보를 만들어낼 때 승리가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라도 그 경선에서 뽑힌 후보라면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현실적으로 경선이 하나의 정당 안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대선에서도 '빅텐트'가 필요하다.
프레시안 : 10.26 재보선 서울시장 선거 때는 당적이 다른 후보들 간에도 단일화가 가능했지 않은가?
김기식 : 그건 단 한 번 '원 포인트'로 한 것이다. 대선에서는 몇 달 동안 전국을 순회하면서 해야 하는데 당이 다른 조건에서는 쉽지 않다. 방식은 여러 가지를 고민해 봐야 한다. 이대로 가면 어찌될지 빤히 보이고 국민들도 다 예상하는데, 그래 가지고 무슨 시너지가 나겠나.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건 야전사령관…'관리형 리더십'으론 당 망한다"
프레시안 : 민주당은 곧 새로운 지도부를 구성하게 된다. 새 지도부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뭘까?
김기식 : 두 달 반 동안 당에 있어보니 세 가지는 아주 명확하다. 첫째, 지금 시기에 '관리형 리더십'은 당 대표든 원내대표든 안 된다. 선거에서 야당이 야당답지 못했다. 선거를 너무 '관리'하려 했고 야당다운 승부수를 구사해보지 못한 점이 굉장히 아쉽다. 야당다운 승부수에는 정치적 리스크를 감수하는 결단·실행력·돌파력이 중요한데 관리형 리더십으론 한계가 있다. 당을 추스르고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도 관리형으로는 안 된다. 당이 대회전을 앞두고 있다. 사령관이 필요하다.
둘째, 명확한 정치적 메시지와 내용을 전달할 수 있는 혁신의 리더십이어야 한다. 당이 통합에는 성공했지만, 혁신을 제대로 해내고 메시지와 내용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 문제다. 혁신 동력이 당 내에서 살아나야 하고 그 내용에 가장 적합한 리더십이 서야한다.
셋째, 계파를 뛰어넘는 리더십이 나와야 한다. 친노연합과 비(非)친노연합의 대립으로 간다면 당도 망하고 대선도 망친다. 당 대표, 원내대표, 차기 대권주자라는 3개의 포스트(지점)에서 전체 당의 동력을 최대화할 수 있는 리더십을 구성해야 한다.
프레시안 : 민주통합당이 '통합은 성공했지만 혁신은 실패했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나?
김기식 : 지나치게 정당 내적 혁신에 함몰된 면이 있다. 물론 정당혁신도 중요하다. 그러나 국민들에게 '그건 니들 문제'다. 국민이 필요한 건 삶의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대안과 비전이다. 그런 대국민적 혁신이 훨씬 중요한데 정당 내적 혁신 문제로 경도돼 있었다. 공천 과정에서 모바일 경선같은 절차적 혁신 프로그램을 도입했지만 성공적이지도 못했을 뿐더러 그게 국민들에게 무슨 희망을 주나.
프레시안 : 계파를 뛰어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공천 과정에서나 총선 이후에나 당내 주류 중 하나가 486(40대, 80년대 학번, 6월항쟁 세대)이란 지적도 있다.
김기식 : 486이라는 정치적 실체가 없다고 본다. 486이라는 동질적 집단은 민주당 내에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적 성향과 노선도 이미 다르고, 계보도 이 계보 저 계보 섞여있다. 그룹으로서의 공통성이 없다. 허상이다. 다만 그 세대가 연령적으로 중추이니 역할을 많이 맡을 것이다. 80년대 학생운동 세대들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본다.
프레시안 : 총선 이후 19대 국회에서 야당의 전략은 어떻게 가야 할까?
김기식 : 첫 국회에서부터 명확한 미래비전과 관련된 의제를 형성해내지 못하면 대선에서 지지부진한 양상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지난 2월까지 민주당의 모습은 야당이라기엔 너무 굼뜨고 명확한 자기 의제도 대여 투쟁력도 없었다. 야당다운 야당의 모습, 그러면서도 구체적 의제와 내용으로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모습. 이 두 가지를 19대 국회 초반기에 명확히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위장된 한나라당'인 새누리당 박근혜와의 차별성이 드러나면서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초기 원내대표가 너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관리형의 무난한 원내대표는 안 된다. 당이 망하는 길이다.
"민주당 진보로 가야…'중원' 포지션은 자살행위"
프레시안 : 이번 총선에서나 이후 19대 국회, 또 대선까지 이어진 국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야권연대다.
김기식 : 총선에서 야권연대의 성과와 한계가 다 드러났다. 수도권 승리에는 긍정적 역할을 해낸 반면 수도권 외 지역에서는 전혀 승리를 담보하지 못했다. 새누리당과의 1대1 구도를 명확히 해주고 젊은 유권자들의 결속을 만들어냈지만 중간층으로 가면 전체 승리의 관점에서 부담된 면도 있다. 굉장히 큰 숙제를 안게 된 것이다.
새누리당이 선거 막바지 3일 동안 일관되게 얘기한 것은, 야권연대가 과반이 되면 국정이 불안해진다는 것이었다. 그게 중간층에 먹힌다는 계산을 한 거고 우리가 봐도 먹힌 면이 있다. 수도권에서는 방어하면서 승리했지만 다른 지역은 다 무너졌다. 경기동부 문제를 중심으로 한 이념공세도 중간층에 일부 먹혔다. 우리도 분위기가 싸늘해진 것을 이미 느끼고 있었지만 상대 당의 문제라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한 면도 있고 사실 우리(민주당)가 더 큰 책임을 안고 있는 면에서 할 얘기도 아니었다.
그러나 성적이 나온 상황에서 정권교체라는 과제를 공유한다면 평가를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정파적 이해를 넘어 대화하고 고민해야 한다. 중간층 공략, 불안심리 자극을 허용한 측면을 어떻게 상쇄하거나 최소화할 것인지 전략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민주당뿐 아니라 통합진보당과 시민사회도 함께 고민해줘야 하는 문제다.
프레시안 : 그 고민이 '민주당이 더 보수화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지 않나?
김기식 : 또 하나의 편향으로 가서는 안 된다. 당이 '좌클릭'해 선거에서 마이너스가 나왔으니 다시 중도로 가야 한다는 것은 역편향이다. 중도로 가면 진보성향이 강한 젊은 층의 지지가 빠진다. 진보개혁이라도 확실히 했으면 20~40대 투표율을 확 끌어올려서 근접한 승부를 했을 텐데 그것도 못 했고, 중간층 전략도 제대로 못 했다.
우왕좌왕하지 말고 자기 중심을 가지면서 가야 한다. 세계 정당사를 봐도 중도에 서서 좌우를 통합해 집권한 사례는 없다. 좌면 좌, 우면 우, 포지션을 잡고 중원으로 나가 통합시키는 것이지 스스로 중도에 포지션을 잡는 건 자살행위다. 정체성을 명확히 하되, 지나치게 이념화되지 않으면서 중간층에 수용될 민생전략을 적절히 구사해 지지를 얻어야 한다.
ⓒ프레시안 자료사진 |
'정치인 김기식'의 앞날은?
프레시안 : 국회의원으로서의 계획은?
김기식 : 원내 활동에 주력하려 한다. 중앙당은 말 그대로 권력정치 무대여서 심리적으로 굉장히 힘들었다. 역대 전략기획위원장이 왜 다 대표 측근인지가 이해되더라. 그런데 저는 한명숙 당시 대표 측근이 아니니까 (웃음) 한계가 있었다.
개별 의원으로서는 의정활동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정치의 불행 중 하나는 초선의원이 권력정치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이다. 권력정치는 아무리 잘해도 때가 묻는다. 초선의원은 의정활동에 전념하는 게 우선이고, 본인 역량이 되고 요구가 있으면 추가로 역할을 할 수는 있겠지만 경중이 전도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새롭게 들어온 초선의원들 가운데 권력정치에 줄서기 하지 않고 '가치 정치'를 지향하는 분들이 당과 정치의 혁신을 위한 노선·정책 중심 의견그룹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진보그룹, 중도진보그룹, 중도그룹 등 여러 의견그룹이 형성되는 게 정당발전을 위해 중요하다.
프레시안 : 김 당선자 본인을 포함해 이번 총선에서 시민사회세력이 정치권에 많이 들어왔다. 여러 성과도 있고 비판도 있는데, 본인의 평가는 어떤가?
김기식 : 최근 10년 간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가장 많은 인력이 정치에 진입했다. 그것도 과거처럼 개별 영입이 아니라 세력을 형성하고 주도적·주체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가지고 들어왔다. 영입된 인물들처럼 영입한 세력에 종속되는 일은 없게 됐다. 국가영역에 직접 개입해 운동에서 추구한 가치와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최소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반면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현실정치에서 시민사회의 문제의식을 현실화해 주류로 만드는 데는 명백히 한계를 보였다. 다만 한 번에 평가하기는 어렵고, 참여연대를 처음 만들 때처럼 정치에서도 10년을 보고 승부하려 한다. 원칙과 소신을 지킬 수 있고, 눈앞의 이해관계에 빠지지 않고 정치적 손해를 감수할 수 있고, 기존 질서에 타협하거나 흡수되지 않으면서 계속 도전할 수 있는 힘은 '긴 호흡'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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