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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매직', 울산·창원·거제 '진보벨트' 풀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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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매직', 울산·창원·거제 '진보벨트' 풀었나?

[분석] 노동자들이 진보정당을 버렸나, 그 반대인가

최초의 진보정당 출신 지역구 국회의원을 배출한 경남 울산·창원은 '진보정치 1번지'로 불렸다. 이는 역설적이게도 박정희 정권의 유산이다. 대단위 산업단지로 개발된 남동 임해권은 진보정치의 토양이 된 대규모 노동계급의 존재를 만들어냈다. 이 토양 위에서 성장한 과거의 현대그룹노조총연맹(현총련)과 금속연맹 등은 민주노총의 주축이 됐고 민주노동당 등 진보정당의 기반을 이뤘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창원을(현 창원성산) 지역구 후보로 국회 입성에 도전했던 권영길 당시 민주노동당 대표의 도전은 좌절됐다. 하지만 이후 2004년 17대 총선에는 창원을에서 권영길 의원이, 울산 북구에서 조승수 의원이 원내진입에 성공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의 말대로 '근대화'를 이룬 그의 아버지 박정희는 근대의 산물인 자본과 노동의 대립 구도 역시 만들어냈다.

그러나 19대 총선에서는 '진보정치 1번지' 창원과 울산 등 경남 전역에서 진보정당은 씨가 말랐다. 통합진보당의 김창현(울산 북구), 이은주(울산 동구), 김진석(울산 남을), 이선호(울산 울주), 문성현(창원의창), 손석형(창원성산) 후보들은 모두 낙선했다. 녹색당 창당 이전까지 진보정당 계보를 양분했던 진보신당의 김창근(창원성산), 김한주(거제) 후보도 고배를 마셨다.

이유가 뭘까. 노동자들이 진보정당을 외면한 것일까?

▲울산 북구와 경남 창원성산 지역구에서 당선됐던 통합진보당 조승수·권영길 의원(왼쪽부터). 19대 국회에서는 더 이상 이들의 모습을 볼 수 없다. 지역구에서 이들의 뒤를 이을 진보정당 출신 국회의원도 배출되지 않았다. 4.11 총선에서 울산 북구와 경남 창원성산에서는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됐다. ⓒ뉴시스

선거전략 실패, 진보정당의 자만

먼저 상황을 안이하게 판단한 진보정당 지도부의 전략적 오류가 지적될 수 있다. 우위영 통합진보당 대변인은 11일 밤 선거 판세가 나온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결과로 보면 전통적 지지기반인 노동자들의 투표를 결집하지 못한데서 부족한 측면이 없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며 "긴장감이 이완된 측면"을 언급했다.

'이완된 긴장감'의 한 측면은 통합진보당 지도부의 언급에서도 나타난다.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인 조준호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는 지난달 28일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울산북구와 창원의창 지역구에 대해 "어떻게 해도 우세인 지역"이라며 "시작하면서부터 앞서 나가는 곳으로 큰 실수를 하지 않으면 안정적으로 가지 않을까 한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선거 결과 이는 '근자감'(근거없는 자신감)으로 결론났다.

후보를 내는 과정에서의 오류가 가장 컸다. 17, 18대에서 권영길 의원의 지역구였던 창원성산에서는 진보정당들끼리의 단일화를 이루는 데도 실패했다. 이 지역구의 최종 개표 결과는 새누리당(49.04%), 통합진보당(43.83%), 진보신당(7.12%) 순이었다. 두 진보정당의 표를 합치면 새누리당 후보가 얻은 표보다 1.9%포인트(약 2000표) 많다.

이수봉 민주노총 사무부총장은 진보정당의 영남 전멸 원인으로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이 분열된 것이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일부 지역의 분열된 흐름들이 다른 쪽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는 것. '권영길 지역구'였던 창원성산 지역의 분열이 다른 선거구의 표심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창원성산에서 진보신당이 끝까지 단일화에 반대한 이유는 통합진보당 손석형 후보가 도의원직을 내팽개치고 출마했다는 점에서 '풀뿌리 민주주의를 배신하고 여의도 입성에 목을 멨다'는 명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울산 동구에 출마한 이은주 후보도 시의원 자리를 버리고 나왔다.

또 울산 북구에서는 이 지역구 출신으로 '현역 프리미엄'을 기대할 만했던 조승수 의원이 울산 남갑으로 자리를 옮겼고 대신 김창현 후보가 출마했다. 조 의원은 이후 민주당과의 단일화 경선에서, 김 후보는 본선에서 각각 패했다.

적합성에서나 경쟁력에서나 후보 선정에 철저하지 못했다는 점은 우 대변인이 언급한 '부족한 측면'의 하나로 지적된다. 이수봉 부총장은 "노동자들이 신명나지 않고 시너지 효과가 안 생기는, (후보들이) 다 마음에 안 드니까 태도가 소극적으로 돼 버린 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면서 "후보들이 노동자 출신이 아닌 데서 느끼는 거리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조합원들을 멀어지게 만든 부분들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흔들린 정체성'…진보 내에서 실종된 노동
▲ 4.11 총선 통합진보당 TV 광고. ⓒ통합진보당

좀더 근본적인 부분도 지적된다. 통합진보당은 통합 과정에서 "대중적 진보정당"을 표방하며 건설됐지만 진보진영 및 노동계 한편에서는 이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았다. 통합 자체에 대한 반대라기보다는, 이 과정에서 진보·노동의 정체성이 퇴색될지 모른다는 걱정이었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명단은 이들의 걱정이 기우가 아니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선된 1~6번의 비례의원들이 각각 대표하는 분야는 농민, 진보정당, 청년, 교육, 환경, 시민사회다. 게다가 노동계 출신 후보가 진보정당에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19대 총선 이슈와 정책 자체가 '좌클릭'한 영향으로 민주당이 낸 노동자 후보들도 있었다. 노동자들이 더 이상 '믿을 곳은 진보정당 뿐'이라고 느낄 절박성이 없어진 것.

또 통합진보당의 경우 '선명한 진보'의 색깔이 옅어진 것은 "대중적"이 되는 데는 기여했을지 몰라도 노동자들의 정서를 온전히 담아내기에는 오히려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비판도 있다. 통합진보당이 숙원이던 수도권 진입에는 성공했지만 경남의 '노동자 벨트'에서 전멸한 것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대표적인 비판자가 손호철 서강대 교수다. 손 교수는 통합진보당이 이번 총선 과정에서 "진보를 버리는 탈(脫)진보의 우경화된 노선"을 보였다면서 "우경화됐으면 표라도 얻거나 아니면 이념이라도 지켰어야 하는데 (표를) 못 얻었다"고 혹평했다. 2004년 총선에서 얻은 13%에서 오히려 3%포인트 가량 후퇴한 정당지지율에 대한 지적이다.

통합진보당의 총선전술에 대해 "부르주아적," "대중에 야합하는 정치형태" 등 날선 비판들을 쏟아낸 손 교수는 "단추 자체가 잘못 꿰어졌다"며 통합진보당이 총선 이후 진보신당 등과 함께 진보정치의 '새 판 짜기'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분야 전문가인 윤효원 ICEM 컨설턴트는 영남 전멸에 대해 "노동자 중심성 약화가 가장 큰 이유"라고 꼬집었다. 그는 "2004~08년 총선과 비교할 때, 울산과 창원의 노동자들이 통합진보당을 자기 정당으로 여기지 않았다"면서 "이념 지향과 인적 구성에서 노동자 중심성이 약화되고, 중도 계급연합 정당으로서의 성격이 강해졌다"고 지적했다.

윤 컨설턴트는 "'이정희의 눈물' 같은 도덕적·윤리적·감성적 전략으로 일관함으로써 노동자를 위한 정당이라는 차별성을 보여주는 데 실패했다"면서 "2011년 참여당과 합당했고 2012년에는 민주당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공약을 보여줬지만 결과는 2004년 노동자 중심성과 독자성을 전면에 내걸었을 때보다 못하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실패한 선거전략과 흔들린 정체성의 문제가 '진보정치 1번지' 노동자들의 진보정당 지지세에 균열을 냈고, 이 틈으로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영향력이 스며들었다. 현총련의 기반 울산, 금속노조의 근거지 창원, 대표적 노동집약 산업인 조선소가 위치한 거제, 부산 영도 등마저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에 거셌던 박근혜 바람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은 박 위원장의 영향력 자체보다는 그 힘이 작용할 '틈'을 내준 진보진영의 실책이라는 분석이다. 진보정당의 '영남 전멸'이 결코 '박근혜 매직' 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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