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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미국, '지옥으로 가는 문'을 열었다"

반전평화연대 준비위원회의 9.11 10주년 릴레이 기고를 시작합니다. 반전평화연대(준)는 2003~04년 이라크 파병 반대 시위를 이끌었던 전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이 결성한 모임입니다.

반전평화연대(준)는 5회의 연속 기고를 통해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한 이유, 10년간의 전쟁이 가져온 결과, 한국의 파병 문제 등을 파헤칠 예정입니다. 아울러 오는 21~23일 영화제, 사진전, 토론회 등을 개최해 한국의 반전·평화 운동이 나아갈 길을 모색합니다. <편집자>


▲ '테러와의 전쟁'과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 문제는 한국의 반전 운동을 결집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2005년 당시 '파병반대 국민행동'의 활동 모습 ⓒ연합뉴스

"저는 9.11 테러 피해자 단체의 창립 회원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이 전쟁[이라크 전쟁]이 저희들의 이름으로 치러져서는 안 됩니다. 저는 그날 제 동생을 잃었기 때문에 여기 왔습니다. 우리는 전쟁에 반대해 더 자주 행진해야 합니다."

9.11 테러가 일어난 다음해인 2002년 유럽사회포럼 피렌체 행진 때 9.11 희생자 가족 중 한 명이었던 컬린 켈리의 인터뷰 내용이다.

미국은 쌍둥이 빌딩이 잿더미가 된지 한 달도 안 된 10월 7일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항구적 자유'라는 작전명으로 토마호크 미사일 50기와 B-1, B-2 폭격기들이 세계에서 가장 메마른 땅을 공격하는데 동원됐다.

그러나 잘 알려진 바대로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9.11 테러와는 무관했다. 도널드 럼즈펠드 전 미 국방장관은 자서전 <알려진 것들과 알려지지 않은 것들>(Known and Unknown)이라는 책에서 9.11 테러 전부터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계획했다고 고백했다.

'새로운 중동'이라는 프로젝트는 동유럽 몰락 이후 미국 지배층의 중요한 전략이었다. 새로운 중동 개념에는 옛 소련의 텃밭이었던 중앙아시아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하루하루 연명하는 초강대국"이었지만,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막강한 군사력으로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소국들을 상대로 "연극적인 군사주의"를 펼쳐야 하는 상황이었다. 약화되는 경제력을 군사력으로 떠받친다는 전략에 따라 1990년대 동안 아버지 부시 정부와 빌 클린턴 정부는 갈수록 군사력에 의존해 이라크, 소말리아, 보스니아, 코소보 등 곳곳의 위기를 해결하려 했다.

이런 전략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미국의 정치 엘리트들에게 9.11 테러는 울고 싶은데 뺨 때린 격이었다. 미 국가안보 지령 54호에 담긴 글귀이기도 한 "페르시아 만의 석유에 대한 접근권과 그 지역의 주요 우방국들의 안전은 미국의 국가 안보에 사활적인 이익"을 위해 아프가니스탄 공격은 중요한 준비운동이 될 만했다. 네오콘 단체인 '미국의 신세기 프로젝트'(PNAC)의 창립 회원이자 미국 석유회사 유노칼의 자문이었던 잘마이 칼릴자드도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뒤에 아프가니스탄 특사로 급파됐다.

럼즈펠드가 고백한 이 "연극적인 군사주의" 프로젝트에는 2003년 이라크 침공뿐 아니라 2006년 반미 성향의 저항 세력 헤즈볼라를 제거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을 지원했던 것도 포함돼 있다. 이 계획을 성공시켜 미국 지배층은 초강대국 미국의 위치를 경쟁하는 열강들에게 재확인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레바논에서는 헤즈볼라가 승리했고, 이란의 영향력이 되레 강화됐다.

이라크와 '아프팍'

이라크는 어떤가. 아프가니스탄만큼 완패는 아니라 할지라도 이라크에서 미국은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미국은 고전적 식민주의 전략을 이용해 이라크 대중을 이간질시켜 서로 싸우게 만들었다. 쿠르드족을 이용해 수니파와 싸우게 만들고 더 나아가 시아파와도 싸우게 만드는 것이 침략 계획 자체에 포함돼 있었다.

미군 점령 치하에서 수립된 초기 꼭두각시 정부도 '서로 이간질시켜 각개격파하는' 전략에 따라 구성됐다. 그러나 미국이 촉발한 이라크 대중 간 반목은 미국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났다.

우리는 지난 수년간 이라크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한 폭탄테러 사건을 접해왔다. 이 사건들의 대부분은 이라크 전쟁 이후 미국이 부추긴 종파간 갈등 때문에 벌어진 것이다. 전쟁 전에는 이라크에 존재하지 않았던 알카에다가 활동하고 있으며, 위키리크스에 따르면 미군의 학살과 만행, 점령군이 부추긴 종파 간 갈등을 기록한 육군 보고서에 40만 건의 테러 조직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보고서 날짜는 2004년 1월부터 2010년 1월에 걸쳐 있고 이 문서들은 경찰, 군인, 교도관, 국경수비대가 저지른 고문들도 기록하고 있다.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 고문 사건은 밝혀진 사건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이라크가 그나마 상대적인 안정을 찾아간 까닭은 미국이 정치권력을 친(親)이란계 시아파 이슬람주의 정당에 넘긴 정치적 타협 덕분이었다. 미국에게 이것은 엄청난 지정학적 후퇴였다. 왜냐하면 미국이 애당초 이라크를 침략한 목적은 중동의 강국 이란의 영향력 강화에 대항할 안정적 근거지를 확보하는 것이었는데 이라크 전쟁이 되레 이란의 영향력 강화를 도운 꼴이 됐으니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훨씬 많았다. 아니 얻은 게 없다. '모양 빠지지 않게' 영구적인 미군 기지를 만들고 빠져 나오려 하지만 그조차 쉽지 않은 상태이다.

한편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은 자신의 역사에서 가장 긴 전쟁을 치르고 있다. 2년 전 브루킹스 연구소의 자료를 인용한다 해도 바그람과 카불을 제외한 지역은 거의 대부분이 탈레반 완전 장악 또는 대부분 장악 지역으로 표기돼 있다. 미군과 나토군의 탈레반 지역 소탕 작전은 항상 '풍선효과'로 이어졌다. 점령군대의 소탕 작전 지역의 탈레반 세력은 다른 지역으로 새로운 거처를 찾아 떠났고, 더 새로운 근거지를 확보하면서 미군과 나토군대의 관할 지역을 빼앗았다.

위키리크스를 통해 폭로된 것처럼 민간인 학살 등은 아프가니스탄 점령 군대에 대한 증오를 파키스탄으로까지 확산시켰다. 파키스탄 일간지 <더 뉴스>에 따르면 지금껏 무인폭격기의 60번 폭격 중 10번 만이 목표에 명중해 저항 세력 지도자 14명을 죽였다. 그러나 이 공격의 가장 큰 피해자는 민간인들이다. 수천 명이 살해당했고, 최대 5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앰네스티 인터내셔널)

아프팍(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전쟁을 통해 미국은 윈스턴 처칠이 말했던 것처럼 "지옥으로 가는 문"으로 들어갔다. 1897년 "말라칸드의 야전군 이야기"에서 처칠은 아프가니스탄을 이렇게 묘사했다. "변변한 도로 하나 전략 요충지 하나 없는 후진적인 나라, 이곳에서 현대적 총과 기동성으로 잘 무장한 적이 게릴라 전술을 쓰면(…) 정규군은 원하는 곳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으나 적군은 결코 잡을 수 없다."

미군은 지금 영국의 전철을 밟고 있다.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할 당시에는 소련군 최대 15만 명이 아프가니스탄군 13만 2000명과 함께 힘을 합쳐 저항 세력을 억눌렀지만 89년에 철군해야 했다. 미국은 이제 구 소련의 전철도 밟고 있다.

미국이 두 전쟁에서 패배한 효과는 매우 국제적이었다. '유일 초강대국'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레바논에서 패배하는 장면을 목도한 중동의 평범한 사람들의 혁명으로 '대테러전쟁'의 주요 지지자였던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은 물러나야 했다. 팔레스타인을 봉쇄하고, 주변국가로부터 반감을 사면서도 이스라엘에 천연가스까지 판매하는 중동의 소중했던 친미 고리가 풀린 것이다.

필자는 2008년 이집트 카이로 국제반전회의 당시 가자지구와의 접경 지대였던 이집트 라파에서 어떻게 팔레스타인인들을 지원했는지를 자랑스럽게 말하면서 가자지구에 대한 공격과 '대테러전쟁'과의 연관성을 말하던 이집트인들을 지금도 떠올린다. 그들 모두가 이번 혁명의 주인공이었으리라.

중남미에서도 미국은 좌파 정부가 들어서는 것에 대처할 여력이 없었다. 누구나 인정하듯 차베스의 운신 폭이 넓어진 것은 중동 민중의 저항 덕분이었다. 사실 차베스는 1973년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정부 이래 미국이 중남미에서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는데 가장 심각한 위협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아직까지 미국의 대응은 아옌데에 대한 그것과는 다르다. 말로는 위협하더라도 당장 혼란 조성 계획을 실행하거나 반군을 조직하고 있지는 않다. 미국이 두 개의 전선에서 동시에 전투를 벌이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 반전운동도 본격화

'대테러전쟁'의 미 국내적 효과는 어땠는가. 평범한 미국인들은 사람을 죽이는 전쟁에 막대한 돈을 쓰느라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해 돈을 쓰지 못한다는 쓰디쓴 진실을 곱씹고 있다. 전 세계은행 부총재 조셉 스티글리츠는 <3조 달러 전쟁>을 통해 이라크 전쟁이 세계 경제와 미국 사회보장제도에 끼친 영향을 분석했다. 그는 2017년까지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에 투여될 금액 3조 달러는 앞으로 50년 동안 미국의 사회보장제도를 강화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액수라며 이 돈이면 800만 채의 주택을 무상으로 공급하거나 공립학교 교사 1500만 명을 신규 채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스티글리츠는 그 돈으로 5억 3000만 명의 어린이들이 건강보험을 적용 받거나 4300만 명의 고교 졸업생들이 4년제 대학 학사 자격을 취득하도록 지원할 수 있다며 미국 정부가 이 돈을 전쟁 비용으로 쓰는 바람에 경제위기가 더 깊어지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이라크 전쟁이 초래한 불안정 때문에 전쟁 전에 25달러였던 유가가 100달러 넘게 급등했다. 또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는 전쟁이 미국 경제에 끼치는 부정적 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해 금리를 낮췄고, 이것은 서브프라임 위기를 낳은 배경이 됐다. 게다가 미국 정부는 매달 220억 달러를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쏟아 붓느라 경기부양책도 제대로 쓰지 못했다.(<3조 달러 전쟁> 165쪽)

2011년 10년 동안의 '대테러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패배한 전장에서 아직 점령군대는 완전 철수하지 못했다. 미국은 어느 정도 안정화 수준을 이뤄 놓는 출구전략을 구사하고자 하지만 그조차 쉽지 않다.

그러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여전히 점령군대가 남아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패배한 전장에서 철수한 부대가 다시 아시아로 재배치되고 있다는 것 또한 중요하게 살펴야 한다. 7년 만에 수정된 2011년 미 국가군사전략(National Military Strategy) 보고서에 따르면 "아·태지역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한국, 일본, 호주 등 전통 우방과 협력을 지속하면서 필리핀, 태국, 말레이지상,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와도 군사안보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되어있다. "유럽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미사일 방어시스템이 갖춰지면서 미군 지상병력의 수요가 줄었기 때문에 미군 병력의 '재분배(redistribution)'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중국의 부상에 대해 '협력과 경계'의 이중 접근 방침"(미 군사전략 보고서) 때문이다. 제주도 해군기지가 이 이중 접근 방침의 일환이라는 사실도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대테러'전쟁으로 약화된 미국의 패권과 중국의 부상은 전 세계의 불안정과 군사적 위협을 더 확장시켜 놓았다. 더군다나 경제위기는 군사주의를 약화시키는커녕 더 강화시키고 있다. 불안정한 경제력을 군사력을 만회하고자 하는 유혹은 미국만의 것이 아님이 여기저기에서 드러나고 있다. 남사군도에서의 위기는 가장 최근의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 한국의 반전운동은 2003~04년 '잘 나갔던' 한 때의 일로 치부될 수 없다. 생활의 짐에 짓눌려가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피가 끓고 있는 이 시대의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누릴 수도 있는 보편적 복지 대신에 전쟁과 무기 구입에 막대한 돈을 쓰는 미친 정부들을 대면하고 있다. 이 미친 체제에 마침표를 찍어야 할 임무는 우리 모두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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