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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골수분자들', 3년 만에 등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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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골수분자들', 3년 만에 등돌렸다"

[고성르포·上] 금강산 관광 중단 3년, 명파리에서 만난 사람들

빗방울까지 떨어지기 시작했다. 진부령을 넘는 길목에 선 커다란 입간판에는 '금강산의 관문 고성'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고성군 주민들은 굳게 문이 닫힌 '관문' 건너편에 버려진 백성들과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권철수(53) 씨의 얼굴에도 그늘이 드리웠다. 권 씨는 금강산 육로관광의 길목인 고성군 현내면 명파리에서 작은 건어물 가게를 하고 있지만, 어차피 장사는 되지 않고 감자 농사가 더 중요할 지경이다.

권 씨는 가게가 잘 되냐는 물음을 받자 기가 차다는 듯 "개점휴업 상태"라고 입을 열었다. 그는 원래 이 마을 토박이가 아니었다. 2003년 금강산 육로관광이 시작되면서부터 명파리로 들어왔다. 지금의 상황과 당시를 비교해 달라고 하자 그는 "그때는 잘 벌었는데, 지금은 그때 벌어놓은 것을 3년 만에 다 까먹었다. 육로관광 하나만 바라보고 이사 왔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 '금강산의 관문, 고성'으로 가는 길에 먹구름이 가득하다. ⓒ프레시안(곽재훈)

육로 관광 길이 뚫렸을 당시 권 씨의 가게는 하루 평균 50~60만원의 매상을 올렸다. 그는 "많이 팔 때는 더 나갈 때도 있었다"며 "2~3년 동안은 장사가 괜찮았는데, 관광 길이 닫힌 후부터는 현상 유지도 안 된다"고 호소했다.

그는 "친한 버스 기사들이 있어서 일부러 손님들을 데리고 와서 팔아주기도 했는데, 지금은 관광버스 기사들과 가족들이 다 어떻게 먹고사는지 모르겠다"며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걱정했다.

"평일에는 아예 손님이 없어요. 혹시나 해서 문을 열어놓은 것 뿐이고. 주말에도 통일전망대 가는 사람들이 어쩌다 몇 팀씩 오지만 온다고 다 사는 것도 아니고, 마이너스에요. 벌었던 것 다 까먹는데 2년밖에 안 걸렸습니다."

원래 고향은 부산이라고 밝힌 권 씨는 "이제는 (다른 데로) 옮길 수도 없다"며 "전세금이고 뭐고 다 털어먹었다"고 한숨지었다.

▲ 권철수 씨는 감자가 비를 맞으면 쉬이 썩는다며 창고로 옮기기에 여념이 없다. ⓒ프레시안(곽재훈)

마을을 떠나는 사람들

명파리는 민통선 바로 아래 있는 최북단 마을이다. 이장 김영복(53) 씨에 따르면 이 마을 인구는 185호 360명 정도다. 김 이장은 "농사짓는 100여 가구는 관광 중단에 별로 지장을 받은 것이 없지만 식당이나 건어물 가게 하시는 분들이 타격이 컸다"고 설명했다.

▲ 명파리 이장 김영복 씨는 "젊은 부부들이 와서 (장사를) 하다가 많이들 나갔다"며 한숨지었다. ⓒ프레시안(곽재훈)
김 이장은 "금강산 관광을 하고 나오다가 버스가 가게에 서면, 한 차만 해도 40명이니까 수입이 상당했는데 지금은 그걸 못한다"며 "그나마 자기 건물이라면 눌러서 버티겠지만 남의 건물을 빌려서 식당이나 가게를 하던 사람들은 임대료가 안 나오니까 (마을을) 나가게 됐다"며 담배를 빼물었다.

그는 손가락을 꼽으며 "(관광 중단 이후) 식당 3군데, 건어물상 3군데가 문을 닫고 철수했다"며 "여기 옆의 식당 한 군데는 불과 한 달, 아니 열흘 전에 식당 문을 닫고 속초로 떠났다"고 덧붙였다. 다른 마을 주민은 "파산한 주민도 있다"며 "공과금, 휴대폰 요금도 못 내시는 분들도 있다. 우리 집도 공과금이 밀리고 있다"고 말을 보탰다.

마을 한가운데를 지나는 도로변에서 '금강산슈퍼'를 하는 조순남(60) 씨도 "여름에 해수욕 오는 그때만 지나면 손님이 없다"며 "특히 겨울에 1월에서 4월까지는 아예 장사를 쉬다시피 한다"고 말했다.

조 씨는 "옛날엔 하루에 10만 원은 팔았는데 지금은 반의 반도 안 된다"며 "관광객이 들어가야 껌이라도 한 통 사가는데…. 어떡하나"라며 한숨지었다.

▲ "아이고, 이런 촌 할매를 뭣 한다고 사진을 찍어"라며 손을 내젓던 조순남 씨 ⓒ프레시안(곽재훈)

"마을에 미래가 없다. 발전이 없다"

면소재지까지 내려와도 한적함은 여전했다. 면사무소에서 근무하는 박상학(44) 씨(주사) 만났다. 현내면에서만 7년째 근무한다는 박 씨는 마을에 활력이 없어진 점이 가장 안타깝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육로 관광이 되면서 생활력 있고 젊은 사람들이 내려와서 살아보려 했는데 지금은 거의 다 문을 닫은 상태고, 젊은 사람들이 많이 떠났어요. 생활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고기라도 잘 잡히면 모르겠는데 고기도 안 잡히고."

박 씨는 "아이들을 맡겨놓고 부부들은 다 타지로 나가 있다"며 "아이하고 할머니만 있는 집이 많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인구가 많이 빠져나갔다. 엄청나게 줄었다"며 "여기 옆의 대진초등학교는 지금 전교생이 100명도 안 된다. 한 학년에 15~16명 정도"라고 설명했다.

현내면사무소에 따르면, 2008년 7월 11일 고(故) 박왕자 씨 피격 사망 사건으로 관광이 중단된 이래 올해 6월말 현재까지 모두 250명이 주민이 떠나갔다. 그러나 주민등록은 옮기지 않고 몸만 빠져나가 있는 사람들까지 합치면 인구 유출은 이보다 더 많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수입 감소와 인구 유출은 인심마저 사납게 했다. 박 씨는 "(관광 중단) 피해액을 조사하라고 해서 나가 보면 주민들이 욕부터 한다"며 "관광이 중단되고 나서 마을 분위기가 많이 살벌해졌다"고 우려했다.

그는 "사람들이 북적여야 하는데 퇴근하면서 보면 동네가 너무 삭막하다"면서 "육로 관광 때는 집집이 민박도 치고 사람들이 사계절 수시로 왔다갔다 했는데 지금은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어렵더라도 농사 짓는 분들은 농사 짓고, 고기 잡는 분들은 고기 안 잡히면 노가다라도 해서 버티는데 거기서 더 이상의 진전은 없는 거죠. 그날 그날 벌어서 사는 데서 유지되고 있고, 그 이상이 없어요."

기업체도 자영업자도 지자체도 함께 비를 맞는다

명파리에서 고개 하나만 올라가면 의외로 제법 큰 규모의 콘도가 있었다. 이름하여 '금강산콘도'. 객실 수는 225실이며 1997년 처음 문을 열었다.

콘도 관계자는 "육로 관광이 되면서 단체손님을 받을 때는 매상이 괜찮았다"며 "여기서 자고 다음날 아침 일찍 (금강산으로) 들어가는 손님 비율이 꽤 됐다"고 말했다. 그는 "그때와 비교하면 연매출이 4~5억 정도 줄었다"며 "학생들 단체관광도 없어져 객실이나 식당이나 매출이 많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기자가 들른 7일 콘도 객실은 30~40실 정도가 찼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2008년 7월 당시에는 두 배 정도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금강산 관광 성수기는 여름보다는 가을 쪽인데 중단 이후 가을 매출이 많이 떨어졌다"며 "여기도 바로 타격을 받은 셈"이라고 말했다.

▲ 언니 내외의 가게를 보고 있는 백인자 씨는 딸 등록금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털어놓았다. ⓒ프레시안(곽재훈)
콘도가 있는 언덕 바로 아래에 있는 건어물 가게에서 만난 백인자(53) 씨는 걱정이 태산 같았다. 딸이 대학에 복학해야 하는데 등록금 마련할 생각에 잠이 안 온다는 것이다.

백 씨는 "건어물 가게이다 보니 냉장고 등 전기세만 월 200만 원이 나가는데 본전도 안 된다"고 한탄했다. 백 씨는 언니 내외가 운영하는 이 가게를 칠순에 가까운 형부와 함께 지키고 있었다. 백 씨의 언니는 바다에 물질을 나갔다고 했다.

부질없는 질문인 줄 알면서도 하루 매상을 묻자 "어제도 한 축 팔았다. 1만5000원"이라며 "물건이 거의 안 나간다. 하루에 한 2명 장사를 할까 말까 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있는 사람들은 관광이 돼도 그만, 안 돼도 그만이지만 우리같이 없는 사람들은 다르다"고 말했다.

백 씨의 가게 바로 옆에 있는 식당은 문이 닫혀 있었다. 이웃 주민들을 떠올리는 백 씨의 얼굴에는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그는 "1000석 규모의 식당이었는데 결국 닫았다. 김치도 직접 담그고 참 깨끗하고 좋은 식당이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는 "육로 관광이 될 때는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10명 정도 있었다"며 "식당 손님들이 우리 가게에서 물건을 많이 사 가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형제 분들이 같이 하는 식당이었는데 지금은 다 발가벗겨졌다"며 "일하던 사람들도 뿔뿔이 흩어지고 어디서 청소 일 나간다는 얘기도 들었다"며 떠난 이웃들을 추억했다.

▲ 문을 닫은 식당. 이웃 주민인 백인자 씨의 말에 따르면 이 식당은 형제간에 돈을 모아 문을 열었지만 지금은 뿔뿔이 흩어졌다고 한다. ⓒ프레시안(곽재훈)

고성군청 관계자는 "음식점 수입이 떨어지고 고용 인력이 감소해 실업자 수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공공요금, 장비 임대료, 전기세 등을 합치면 식당이나 건어물상 같은 곳은 월 200만원 정도 비용이 드는데 이를 감당할 재간이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자연히 지방세도 연체되고 있다"며 고성군이 걷어야 할 지방세가 2010년말 기준 38억5300만원이 체납돼 있다고 밝혔다.

어려운 사정은 대기업이라고 다르지 않다. 금강산 관광의 남측 사업자이자 최대 투자자인 현대아산은 관광 중단으로 지난해 말 기준 3900억 원의 매출 손실을 봤다고 10일 밝혔다.

수 차례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현대아산의 직원 수도 관광 중단 전(1000여 명)과 비교해 70% 가량 줄었들었다. 현대아산 협력업체들 가운데 상당수도 사실상 파산상태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식당의 정문이다. 사람의 왕래가 끊긴 '금강산 가는 길' 앞에 풀이 무성하다. ⓒ프레시안(곽재훈)

'정치에 무관심하지만 정치가 문제'라는 주민들

2007년까지 연간 700만 명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었던 고성군 내 관광객 수는 2008년 610만으로 감소했다가 2009년에는 500만 명까지 줄었다. 최삼경 강원도청 홍보위원은 "관광객 감소로 한 달에 29~30억씩 손해가 난다"는 조사 결과를 전했다.

명파리 주민들의 말을 들으면 강원도에서는 남북관계와 정치 문제가 바로 생활과 맞닿아 있음을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백인자 씨는 "여기는 무슨 일이 나면 바로 느낀다"며 "적자도 적자지만, 지난해 연평도 사태가 났을 때는 전방지대라 아예 열흘 간 사람이 안 다녀 장사를 쉬었다"고 회상했다.

김영복 이장은 "이명박 대통령 잘못인지, 김정일이 고집을 피워서 그런지는 모른다"면서도 "하지만 주민들, 특히 명파리 사람들은 관광이 재개되기를 매우 기다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옛날에는 시골에선 무조건 여당이었는데 요즘은 그렇지도 않다"고 덧붙였다.

부산 출신인 권철수 씨도 "이 동네 사람들이나 저나 다 한나라당 골수분자들이었는데 지금은 다 바뀌었다"며 서운함에 정부·여당에 등을 돌린 민심을 전했다. 어느새 떨어지던 빗방울은 폭우로 변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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