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중동‧북아프리카 지방 등 이른바 '아랍 세계'의 반응은 사뭇 복잡하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이끄는 정파 파타는 환영의 뜻을 밝혔지만, 가자지구를 통치하고 있는 하마스와 이집트의 최대 야권 세력인 무슬림형제단 등은 실망감을 표했다.
물론 이들이 반발하는 이유는 이스라엘이나 미 공화당과는 전혀 다르다. 예루살렘 분할 문제, 난민 문제 등은 '추후에 논의될 것'이라고 미뤄 놓고, 팔레스타인 국가의 비무장화를 지지하는 등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에 따르면, 사미 아부 주리 하마스 대변인은 "오바마 대통령의 오늘 연설에 많이 기대했지만, 아무런 새로운 것도 내놓지 않았다"면서 "그에게 필요한 것은 말을 보태는 것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민중과 아랍 민족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구체적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하마스는 또 "오바마는 (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 점령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며 "어떤 조건 하에서라도 이스라엘의 점령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또 중동 민주화에 대한 내용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평가가 나왔다.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의 고위간부 에삼 알에리안은 <알자지라>에 "실망스러운 연설"이라며 "새로울 게 없다"고 말했다.
알에리안은 "미국의 전략은 그대로 유지됐다"면서 "미국은 독재자들을 감싸고 있고 시리아, 예멘, 바레인 문제(에 대한 미온적 태도)도 그대로"라고 지적했다. 그는 "아마도 (오바마의 연설 중) 가장 강경한 부분은 리비아에 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샤디 하미드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은 "아랍 지도자(독재자)들은 오바마의 연설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지만, 개혁을 바라는 아랍인들 역시 그럴 것"이라며 "이게 오바마의 스타일이다. 모든 사람에게 호소하려다 결국 모든 이들을 실망시킨다"고 본인의 트위터 계정에 적었다. 하미드 연구원은 "오바마는 미국의 핵심 이익이 아랍 민중의 희망과 일치한다고 말했지만, 그럼 지난 50년 간은 왜 일치하지 않았나?"라고 비꼬았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의 중동 전문기자 로버트 피스크 역시 이런 입장에서 오바마의 이번 연설을 비판했다. 피스크는 20일자 칼럼을 통해 이스라엘 국경 문제에 대한 오바마의 입장에 대해서는 다소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면서도 이를 "소심한 언급"이라고 깎아내렸다.
피스크는 20일로 예정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오바마 대통령 간의 회담을 지켜봐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 그러나 자신은 이 대화에서 이스라엘의 기존 입장이 강행될 것으로 본다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한편 그는 오바마가 "미국의 새로운 역할이 무엇이 될 것인지"에 대해 얘기했지만, "아랍인들이 미국에 역할을 맡아주기를 바라는지 어떤지는 듣지 못했다"면서 미국의 중동 문제 개입 자체에 대해 근본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다음은 피스크의 칼럼 주요내용이다. (☞원문 보기) <편집자>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미 국무부 청사에서 중동정책 관련 연설을 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은 이스라엘과 하마스·무슬림형제단 양 측으로부터 모두 비판받고 있다. ⓒAP=연합뉴스 |
"말만 많았지, 별 도움이 안 되는 연설"
똑같은 낡은 이야기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독자적인'(viable) 국가를 가질 수 있으며 이스라엘은 '안전'(secure)해야 한다거나, 팔레스타인은 9월 유엔(UN) 총회에서 독자 국가 승인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거나, 평화는 한 쪽만의 책임이 아니다 등등. 오바마 대통령의 19일 연설은 오는 주말 친(親)이스라엘 로비스트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도 통할 것이다.
그리고 물론 팔레스타인 국가는 스스로를 방어할 무기도 가져서는 안 된다고 할 것이다. '독자적'이라는 말이 이런 뜻인가?
오바마의 연설은 일종의 '재탕'이다. 이집트 정부가 이를 지지하고 나온다면 중동에는 또다른 분열이 나타날 것이다. 오바마의 연설은 자신이 전혀 도움을 주지 않은 아랍 혁명에 대한 듣기 좋은 말로 가득 차 있다. 그 중 일부는 망상이다. 그는 "우리는 탈레반의 힘을 꺾었다"고 말했는데, 정말 그런가?
연설에서는 리비아, 시리아, 이란 등 단골로 비난하는 대상들(usual suspect)에 대한 말도 넘쳐났다. 용기, 평화, 존엄, 민주주의 같은 말도 있었다. 아마도 외계인이 그 연설을 들었다면, 오바마가 중동의 혁명을 적극적으로 도운 줄 알 것이다. 사실 그는 독재자가 살아남기를 바랐는데도 말이다.
또 연설에는 바레인에 대한 비판은 있었지만,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해선 한 마디도 없었다. 아마 사우디 국왕도 며칠 내로 오바마로부터 전화를 받을 것으로 보이는데 말이다. [민주화 시위를 탄압한 국가 지도자들에게 오바마 대통령이 전화를 걸었던 사실을 들어, 사우디에도 민주화 시위가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한 것으로 보인다 : 옮긴이]
다만 우리는 "이스라엘의 정착촌 건설"에 대한 소심한 언급을 듣긴 했다. 또 하마스와, 튀니지 혁명의 도화선이 된 과일 행상 모하메드 부아지지에 대해서도 언급이 있었다. (벤 알리 정권 축출 이전까지 튀니지는 오바마가 언급한 적도 없는 나라다.)
팔레스타인 영토 점령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말과,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 군의 포격으로 세 명의 딸을 잃은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얘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 팔레스타인은 딸을 '잃었'을 뿐이다. 오바마는 누가 그의 딸들을 '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오바마는 아랍 혁명을 미국 독립혁명에 비겼지만, 그는 많은 아랍인들이 미국인들처럼 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미국으로부터 놓여나기 위해 싸웠고 또 죽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우리는 새로운 중동에서 미국의 역할이 무엇이 될 것인지에 대해 들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는 아랍인들이 미국이 역할을 맡기를 바라는지 어떤지는 듣지 못했다. 거기에 대해서는 오바마의 말만을 들었을 뿐이다.
이번 주말은 아마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바쳐질 것이다. [20일 백악관에서 열릴 오바마와 네타냐후의 중동 평화협상 논의에서 이스라엘의 입장이 관철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 옮긴이] 이스라엘 정착촌 문제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흘러갈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오바마가 이스라엘에 대한 영원한 충성 맹세를 한다면, 아랍인들은 오바마의 전날 연설은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오바마의 연설 중 "유대인 국가"라는 말이 나왔는데 이는 네타냐후를 기쁘게 해주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지난번 필자가 이스라엘에 갔을 때, 이스라엘 국적을 가진 수십만의 아랍인들이 그곳에 살고 있었다. 내가 꿈이라도 꾼 것이거나, 아니면 오바마가 그들을 무시한 것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