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군의 후퇴는 이들이 상대적으로 카다피군에 비해 무기와 장비에서 열세에 있다는 것과, 이들의 진격이 많은 부분 서방의 공습에 힘입은 것임을 보여준다. 이날 서방의 공습은 시르테와 빈 자와드 등 격전지가 아니라 수도 트리폴리와 미수라타 등 주로 서부 지역에 집중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날 런던에서는 서방 주요국과 유엔, 아랍연맹, 아프리카연합 등 국제기구 대표들이 모여 향후 리비아 사태를 전담할 국제 협의체 '리비아 연락 그룹'(contact group)을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이들은 카다피 정권이 합법성을 상실했기 때문에 즉각 퇴진해야 한다면서 '카다피 이후'를 논의하는 등 정권 교체가 이들의 목표임을 명백히 보여줬다. 이는 '개입의 목적을 카다피 정권의 교체로 확대하는 것은 실수가 될 것'이라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전날 발언과 모순되는 행보다.
평화운동가이며 칼럼니스트인 릭 로조프는 지난 25일 진보적 웹사이트 '글로벌리서치'에 기고한 글을 통해 리비아에 대한 서방의 군사 개입은 '인도주의적' 목적에서 이뤄진 것이 아니라 3개의 대륙과 면해 있는 지중해의 전략적 중요성과 리비아의 석유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로조프는 미국 해군은 그 기원 자체가 지중해 지역과 연관돼 있다는 역사적 우연을 지적하며 지난 2007년 미군 아프리카 사령부(AFRICOM) 창설 등 전 세계 미군의 재배치 전략이 이번 리비아 군사개입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았다.
즉 미국은 리비아 전쟁을 통해 지중해 지역의 지배권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로조프의 글이 주목되는 이유는 실제로 그가 지적한 대로 지중해에서 시작해 팔레스타인, 발칸 반도,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등 중앙·남부아시아 지역, 한반도에 이르기까지 전 유라시아 대륙에 미군이 배치돼 있으며 이 중 많은 지역은 이미 전쟁터가 됐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카다피가 악랄한 독재자이긴 하지만 만약 그가 서방에 고분고분한 인물이었다면 내전은 피할 수 없었을지 몰라도 서방의 공습이 가해지지는 않았을지 모른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로조프는 미국과 나토에 비협조적인 국가들은 지금 거의 대부분 불행한 처지에 놓여 있다며 레바논, 시리아, 수단, 짐바브웨 등의 정권도 서방으로부터 위협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 국가들에 리비아의 뒤를 이어 또다른 '오디세이 여명' 작전이 펼쳐질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한편 앞서 리비아 공습에서 프랑스가 가장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정치적 위기 탈출 전략이라는 분석이 제기된 데 이어(☞관련기사 보기), 로조프는 프랑스의 적극성을 '지중해 연합'을 창설하려 했던 사르코지의 야심과 연관지어 봐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다음은 이 글의 주요 내용이다. (☞원문 보기) <편집자>
▲ 29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린 리비아 관련 국제엔 회의에 참석한 각국 대표들. 앞줄 가운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아네르센 포그 라스무센 나토 사무총장(반 총장 왼쪽)의 모습이 보인다. 이날 회의에는 아랍연맹, 아프리카연맹 대표도 참석했다. ⓒAP=연합뉴스 |
2007년 니콜라 사르코지가 프랑스의 대통령에 당선됐다. 같은해 프랑스가 유럽연합(EU)의 순회의장국을 맡으면서 사르코지는 27개 EU 회원국과 지중해에 면해 있는 비EU 국가 17개국 정상을 파리로 초청해 '지중해 연합'을 창설하려 했다.
2008년 1월 13일 개최된 '지중해 연합'의 다음 회의와 관련해 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지는 "사르코지의 원대한 구상은 고대 로마 제국이 세계의 중심이었다는 것을 이용해 44개국 8억 명을 단합하려는 것"이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는 이 구상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카다피는 이 구상이 아프리카와 아랍 세계 모두를 둘로 (지중해 연안국과 그렇지 않은 국가로) 분리하려 한다며 "이는 또 하나의 로마 제국을 만들려는 제국주의적 구상이다. (아프리카의 반듯한 국경선에 빗대) 우리는 이미 '제국주의적인 지도'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다시 한 번 되살릴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고 <데일리 텔레그래프>가 2008년 7월 10일자로 보도했다.
신문은 14일자 기사에서는 카다피의 "이 전례없는 정상회의는 유럽의 전략적 목표를 중동, 북아프리카, 발칸 반도 지방으로 옮기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는 발언을 소개했다.
그로부터 채 3년이 지나기 전에 사르코지가 보낸 프랑스 공군의 미라지와 라팔 전투기가 리비아 정부 건물을 공격했다. 공격을 주도한 프랑스와 미국, 영국군을 세계 언론은 '연합군'이라 불렀다. 12개 나토(NATO) 회원국과 왕정 국가 카타르는 카다피 정권을 몰아내고 좀더 고분고분한 정권을 세우려 하고 있다.
현재 지중해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전장을 대신해 세계의 최전선이 됐으며 세 번째 밀레니엄의 제국이 세워지고 있다. 이 제국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세계 유일의 군사적 초강대국'이라고 부른 미국의 것이다. 미국은 이미 지중해로 전력 배치를 마쳤으며 지중해는 미국의 '우리 바다'(마레 노스트룸. mare nostrum, 지중해 전역을 지배했던 고대 로마 제국이 지중해를 이렇게 불렀다. : 옮긴이)가 됐다.
나토와 미국에 비협조적인 국가의 불행한 운명
리비아에 대한 공격은 또한 지중해 동부의 섬나라인 키프로스가 나토의 평화 유지 프로그램에 동참한 지 3주 후에 이뤄졌다. 키프로스의 동참으로 인해, 초소형 국가인 모나코 공국을 제외하면 단 세 개의 지중해 지역 국가만이 나토와 무관한 셈이다. 그 세 나라는 레바논, 시리아, 그리고 리비아다.
나토와 동반자적 관계(partnership)를 맺거나 회원국으로 가입하게 되면 그 나라는 자국 영토에 미군을 들여야 할 의무가 생긴다. 예를 들어 몬테네그로는 독립한 지 1년도 안 돼 나토와 동반자적 관계를 맺었고 해리 울리히 당시 미 유럽함대 제독과 잠수함 모함 에모리 S.랜드호(號)가 이 나라를 방문했다. 이들의 방문 목적은 "몬테네그로 해군에 훈련과 도움을 제공하며 두 나라 해군의 유대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2007년 5월 미군 유럽사령부가 밝혔다. 그 다음 달에는 미 핵항공모함 루즈벨트 호를 포함한 4척의 나토군 군함이 몬테네그로 티바트 항에 입항했다.
시리아에도 '리비아 모델'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레바논은 이미 2006년부터 나토 군함에 의해 해상 봉쇄를 받고 있는데, 지중해 건너편 리비아 해안도 곧 이같이 될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지중해 전역은 완벽히 나토와, 그 주도 국가인 미국의 통제 하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키프로스가 과거 나토에 가입하지 않은 유일한 유럽 국가이자 EU회원국이었던 것처럼, 리비아는 나토의 '지중해 대화'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유일한 아프리카 국가다. 또 리비아는 아프리카 54개국 중 미군 아프리카 사령부(AFRICOM)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단 다섯 나라 중 하나다. (혹자는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종속됐다'고 말하기도 한다.) 리비아 외의 4개국은 수단, 코트디부아르, 에리트레아, 짐바브웨다.
다른 네 나라들의 사정은? 수단은 곧 리비아처럼 분열될(balkanized) 것으로 보인다. 코트디부아르는 익히 알려진 대로 내전과 같은 혼란스런 상황을 겪고 있다. 서방 측은 로랑 그바그보 현 대통령에 맞서고 있는 알라산 와타라 당선자의 무장 그룹을 지지하고 있다. 코트디부아르 역시 외국의 군사개입 위협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미군 아프리카 사령부와 나토의 지원을 받는 아프리카연합에서 군사행동을 할 수도 있고 서방이 직접 개입할 가능성도 있다.
에리트레아는 미군과 프랑스군 5000명이 배치돼 있는 지부티 공화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지부티와 에리트레아의 국경 분쟁에서 프랑스군은 3년 전부터 지부티 편에 서서 개입하고 있다. 짐바브웨 역시 미국과 나토가 또 한번의 '오디세이 여명' 작전을 펼 유력한 후보지다.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은 30년째 장기 집권하고 있다. 짐바브웨는 2002년부터 미국과 EU의 경제 제재를 받고 있으며 최근 리비아 내전에서 카다피군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옮긴이)
▲ 29일 런던 회의에 참석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그의 눈빛이 '리비아'를 응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프레시안 |
미국과 지중해, 역사적 관계
지중해는 역사적으로 매우 큰 전략적 중요성을 지녔다. 이 해역은 3개 대륙과 면해 있는 유일한 바다다. 역사적으로 페르시아, 알렉산더의 마케도니아, 카르타고, 로마, 비잔틴, 오스만 투르크, 스페인, 영국, 나폴레옹의 프랑스, 무솔리니의 이탈리아, 히틀러의 독일 등 많은 제국들이 지중해의 제해권을 놓고 다툼을 벌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중해의 군사적 지배권은 미국에 넘어갔다. 1946년 창설된 미국의 지중해 함대는 1950넌 미 해군 6함대로 개칭됐으며 함대 사령부는 이탈리아 나폴리에 있다.
사실 미 해군의 탄생 자체가 지중해와 연관돼 있다. 미 해군은 1794년 '해군법'(Naval Act)이 제정되면서 창설됐는데, 이는 북아프리카 지역의 미국 상선 납치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1801~05년의 바르바리 전쟁(트리폴리타니아 전쟁) 와중에 미 해군의 지중해 전대(Squadron)와 해군기지가 설립됐고 1801년 미 해군의 첫 전투도 이 전쟁에서 치러졌다. 당시 전장이었던 트리폴리타니아는 바로 수도 트리폴리를 중심으로 하는 지금의 리비아 북서부다.
미 해군의 유럽-아프리카 함대는 6함대에 배속돼 미군 유럽사령부, 아프리카 사령부에 함선을 제공하고 있다. 유럽-아프리카 함대의 사령관은 새뮤얼 J. 로클리어 3세 제독(해군 대장)인데, 그는 나폴리에 있는 나토 연합군 합동작전사령관을 겸임하고 있다. 로클리어 제독은 미군 6함대의 기함인 핵항공모함 마운트 휘트니호에서 리비아에 대한 공습과 미사일 공격, 즉 '오디세이 여명' 작전을 지휘해 왔다.
게리 러프헤드 미 해군참모총장은 이달 초 미군은 항상 지중해에 배치돼 있고 따라서 "이미 리비아 작전 태세에 들어가 있다"고 말했다. 미 국방부가 '오디세이 여명' 작전을 19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이로 인한 것이다. 러프헤드 총장은 "(해군 전력이) 이미 작전 위치에 있다"며 "예를 들어 토마호크 미사일 공격의 경우, 발사 함정은 이미 위치를 확보하고 있고 미사일은 발사 준비돼 있다. 쏴야 한다는 판단이 들면 바로 쏠 수 있다"고 말했다. 23일 미 국방부도 "전지구적 해군을 갖고 있다는 것은, 우리는 이미 그 지역에 가 있고 언제나 전투작전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카터 햄 미군 아프리카 사령관(육군 대장)은 22일 독일 람슈타인 공군기지를 방문해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의 공군 지휘관들과 만나 리비아 공습 작전을 평가했다. 햄 사령관은 나토의 협력을 치하하며 "미리 준비하지 않고서는 14개 국가가 힘을 모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고 미공군 유럽사령부가 다음날 밝혔다. 또 햄 사령관이 독일에 있는 동안, 로버트 게이트 미 국방장관은 이집트에서 최고 군사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는 모하메드 후세인 탄타위 국방장관을 만나 리비아 작전을 협의했다.
23일 미 국방부 홈페이지에 따르면 '오디세이 여명' 작전의 전투기 출격 회수(소티)는 336회에 달한다. 이중 108회의 출격이 실제 공습 임무를 위한 것이었다. 전체 336회 중 미 공군은 212회를 출격했다. '오디세이 여명'은 또한 162회의 토마호크 미사일 공격을 포함한다. 러프헤드 해군 총장은 "작전을 계속 수행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사용된 토마호크 미사일을 대체할 재고는 3200기나 있다. 리비아를 쑥대밭으로 만들고도 다음 전쟁까지 치르기에도 충분한 양이다.
미국의 의도는 '지중해 장악'마저 넘어 저 멀리?
직접적인 방법이든 대리인을 통해서든 미군이 승리하고 리비아를 접수한다면 미국과 나토는 지중해 지역의 핵심적인 전초기지를 장악하게 될 것이다. 북아프리카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확고화될 것이며 이는 단지 지역적인 영향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중대한 사건이다.
미군 아프리카 사령부 창설 직후인 2007년 2월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다음과 같은 칼럼을 실었다.
미국은 튀니지, 모로코, 알제리와 다른 아프리카 국가에 십여 개의 해외 전진기지를 세워 전 아프리카 대륙을 자신들의 군사 네트워크로 뒤덮으려 하고 있다. 이는 이 지역에 항공모함을 배치하기 위한 준비다. (…)
나토와 미국은 2006년 서아프리카의 섬나라인 카보베르데 공화국에서 대규모의 군사훈련을 했다. 이는 하늘과 바다를 통한 원유 수송 통로를 통제한다는 단 하나의 목적만을 위한 것이다. (…)
미군 아프리카 사령부는 미군의 해외 배치 계획에서 핵심적인 요소다. 현재 유럽에 주둔 중인 미군은 무게중심을 동쪽으로 옮겨 동유럽에 새로운 기지를 마련하고 있다. (…)
현재 미군의 전지구적 재배치는 체첸 지방에서 중앙·남부아시아, 한반도로 이어지는 '불안정성의 초승달(arc)'을 중심으로 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프리카 대륙은 미군의 세계전략을 지탱하는 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
따라서 미군 아프리카 사령부의 존재는 미국의 아프리카로의 진출을 용이하게 할 것이며, 유라시아 대륙 전체의 통제권을 쥐게 하고, 세계 전체의 조타수 역할을 하게 할 것이다. (<인민일보>, 2007년 2월 26일자)
그러므로 리비아에 대한 전쟁의 목적은 단지 아프리카의 막대한 석유 자원을 노리는 것 이상이다. 또 아직 미국의 손아귀 안에 들어오지 않은 다른 북아프리카 국가들을 굴복시키는 것보다도, 심지어 지중해 전역의 지배권을 확보하는 것보다도 더 큰 목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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