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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한반도 상황 관리자에서 분쟁 당사자로 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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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한반도 상황 관리자에서 분쟁 당사자로 전락"

[이종석-조승수 대담] "이대로라면 北 붕괴해도 통일 주도 어려워"

김대중 정부에서 시작된 햇볕정책과 진보신당 통일 정책의 공통점은? 지금 외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대북정책의 기조였던 대북 포용정책(engagement)은 현 정권 들어 정부 여당의 공공연한 비난 대상이 되기 일쑤다. 한나라당은 틈만 나면 '천안함, 연평도는 햇볕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진보신당은 통일·외교·안보 담론에서 거의 배제돼 있었다. 조승수 대표가 국회 '연평도 포격 규탄 결의안'에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져 마치 TV 드라마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음에도 불구하고 진보신당 지지자들조차 이 당의 통일 정책이 어떤 건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햇볕정책도 진보신당도 그간 통일 논의에서 이래저래 '주류'에 외면당해온 셈이다.

지난 4일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이종석 한반도평화포럼 상임이사와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한반도 문제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는 상황에서 포용정책을 집행했던 대표적 인사와 '평화와 복지'를 주창하는 진보 야당의 대표가 자리를 함께 한 것이다. 이들의 의견은 많은 부분 일치했지만 온도차가 느껴지는 대목도 없지 않았다.


이 전 장관과 조 대표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으로 인해 과거 한반도 '상황 관리자'였던 한국이 '분쟁 당사자'가 된 현실을 한 목소리로 개탄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설령 붕괴한다고 해도 현재 남한 정부의 역량으로는 흡수통일조차 이룰 수 없다고 말했다.

대담자들은 북한이 붕괴하기만 한다면 남한 주도의 흡수통일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는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들은 입을 모아 현재 단계에서는 북한 주민들 사이에 남한의 영향력이 미약하며 오히려 중국에 의존하고자 하는 경향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가 사회를 맡아 진행한 대담 전문이다. <편집자>


▲ 지난 4일 프레시안 편집국에서 진행된 대담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MB정부 연평도 대응, 한국 외교의 재앙"…"날치기 무마 등 국내정치용"

프레시안 : 연평도 사태부터 얘기해 보자. 당시 북한의 포격 뿐 아니라 남한 정부의 대응도 논란이 됐다. 청와대에서 사건 발생 초기에 나온 메시지와 이후 설명이 맞지 않는 등의 모습이 보였는데.

이종석 : 정부의 대응은 잘못된 면이 있다. 연평도 포격 도발은 단순히 북방한계선(NLL)과 관련된 문제로 국한될 사안이 아니다. NLL자체는 국제법적으로 논란이 될 수 있지만, 연평도는 정전협정상으로도 남한 영토로 돼 있다. 따라서 북한의 포격은 명백히 정전협정을 위반해 남한 영토에 포격을 가한 것이다.

정부가 외교적 대응을 하는데 있어 이런 북한의 분명한 잘못을 지적함으로써 중국·러시아를 설득해 동참시켜야 했는데 그걸 잘못했다. 굳이 그 시점에서(12월 20일) 사격훈련을 했어야 하느냐도 논란이 있지 않았나. 연평도 포격 문제가 NLL 논란으로 넘어가 버린 것은, 중국·러시아에 명확히 남한의 입장에 대한 동조를 구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갖지 않고 사격훈련을 강행하면서 명분을 잃어버린 외교적 미숙이자 무능력의 전형이었다.

조승수 : 지난해 11월 23일 북한의 포격 이후 정부는 미국 항공모함까지 동원한 전례없는 사격훈련까지 실시했다. 이런 흐름은 포가 어떤 방향을 겨누었는가와는 관계없이 '국내정치용'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외신 보도를 보면, 처음에는 북한의 포격 도발 그 자체가 중심이었다가 12월로 넘어와서는 한미 합동훈련을 다루면서 남한 정부가 더 공격적이고 호전적이라는 기사들이 주를 이루는 모습을 보였다. 정부가 훈련 강행을 통해 얻고자 한 것은 남한 내 보수세력의 지지와 국회 예산안 날치기 통과 정국을 무마하려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프레시안 : 연평도 사태 이후 이제 6자회담 얘기까지 다시 나오고 있다. 긴장 상태를 풀어 가려는 남측 정부의 노력이나 태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고 있는지.

▲ 이종석 한반도평화포럼 상임이사 ⓒ프레시안(최형락)
이종석
: 한국 정부는 포격 도발 현장에서 사격훈련을 강행하면서 긴장 고조를 불사하고 강공 드라이브를 걸었다. 현장에서의 대응이 실패했다면 다음에는 실패하지 않도록 보강·강화하는 것이 중요한데 안보 무능력을 감추기 위해 과시적 대응으로 나갔다. 이로 인해 여론, 특히 강경대응을 원하는 쪽의 여론에 감성적인 만족감을 줬을지는 모르지만 외교안보적으로는 굉장히 많은 것을 잃었다.

연평도 포격은 분명 북한이 가해자다. 그런데 국제사회에서는 남측의 훈련 시작 직전 러시아가 남한에 사격훈련 자제를 요청하면서 이 문제를 유엔 안보리로 끌고 갔고. 중국과 러시아는 한국에 자제를 호소했고 북한은 슬쩍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태도를 취했다. 마치 가해자인 북한이 오히려 상황을 관리하는 꼴이 된 거다. 남한은 또 '안보리 결정이라면 존중하겠다'는 태도를 보인 게 아니라 '우리 주권사항이다, 당신들이 뭐라든 우리는 한다'고 이미 선언했다. 국제사회에서는 호전세력처럼 비춰진 면이 크다.

연평도 사태를 통해 한국 정부의 국제적 영향력이 많이 감소했다. 노태우 정부 이후 연평도 사태 이전까지 20년 간은, 잘했냐 못했냐는 논란은 있었지만 남한이 한반도 상황의 핵심적인 '관리자'인 것처럼 보였고 적어도 북한과 치고받고 싸우는 입장은 아니었다. 그런데 2011년 1월의 대한민국은 관리자 지위가 아니라 북한과 치킨게임이나 하고 있는 문제 당사자 중 하나의 위치로 전락했다. 한국 정부가 하는 말에 '말발'이 안 서게 된 것이고, '북한과 똑같은 놈' 취급을 받게 된 것이다. 한국 외교의 재앙이다.

조승수 : 연평도 사태에 대한 대응은 이른바 '한미동맹의 외줄타기' 전략을 고수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총체적 외교안보 실패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형성해야 할 중국·러시아를 북한 편에 서게 만들었다.

또 북핵 문제를 보면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로 인해 비확산이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핵 확산을 막기 위해서라도 북한과 대화할 수밖에 없다. 남한 정부가 이를 준비하지 않으면 주도권을 잃게 되고 '통미봉남'으로 발언권조차 없어지는 상황이 예상된다. 연평도 포격이 있었던 그 달에 우라늄 농축시설이 공개된 상황은 이런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이런 현실은 보지 않고 국내정치적으로만 풀려고 하는 근시안적인 정책이 낳은 실패다.

"MB 대북정책? 일관성이 있어야 평가라도 하지"

프레시안 : 이제 3년차를 맞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평가한다면?

이종석 : 평가할 만한 전략적 일관성 자체가 없다. 정권 출범 초기부터 강경하게 말하면서도 대화를 언급하는 등 종잡을 수 없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 대북정책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비합리적이라고 보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어떤 위상을 가질 것인지, 어떤 비전을 보여줄 것인지 전략적 틀이 부재한 상태에서 즉흥적으로 끌어온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조승수 : 역사적으로 보면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 남북관계에서 전환의 계기가 된 해는 1991년이다. 그때까지는 양쪽에서 정부 수립 이후 체제경쟁이 중심적인 이슈였다. 그러다가 1990년을 경과하면서 군사력·경제력 등을 포함해 모든 면에서 남한이 우위를 보이면서 체제 경쟁이 끝났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1991년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이고, 노태우 정부가 체결했던 남북기본합의서다. 그런 면에서 1991년은 상징적인 해다.

그때부터 냉전 질서가 화해 무드로 돌아가는 상황이었는데 이 정부는 지난 3년 동안 이미 끝났던 냉전적 질서를 다시 복귀시키는 것 같은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비핵·개방·3000'이다. 예를 들어 박왕자 씨 피살 사건을 보면, 이 사건은 분명히 있어서는 안 될 일이고 사과받아야 할 일이지만, 지난 정부 때는 예상치 못했던 우발적인 사건이 있어도 저쪽에서 사과를 받아내고 하면서 슬기롭게 넘어갔다. 그런데 이 사건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경색 일변도로 옮아간 것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자체가 그런 기조로 흘러갔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정권이 신냉전 질서를 끌어온 것이 아닌가 한다.

프레시안 : 남북관계에서 핵심이 되는 것 중 하나가 핵 문제다. 지금 남북관계는 최악이고 북한 핵능력은 강화됐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 ⓒ프레시안(최형락)
조승수
: 남북관계와 통일 문제는 권투 경기가 아니다. 한 쪽이 쓰러지면 남은 한 쪽이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쓰러진 쪽의 부담을 남은 쪽이 떠안아야 하는 2인3각 경주와 같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하는 관점이 필요하다. 북한의 최대 관심사는 체제보장·안정화다. 그 측면에서 보자면 우라늄 농축시설을 공개한 것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부시 행정부 말기까지만 해도 '북핵 문제는 미국에는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 않고 언제든지 대화와 주고받기를 통해 풀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우라늄 농축시설은 기존의 플루토늄과는 성격이 다르다. 조악한 수준의 북한 핵무기 자체는 미국에 별 위협이 안 되지만 이 무기가 테러리스트 등 미국을 직접 위해할 수 있는 세력에게 넘어간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게다가 공개된 것 이상의 추가 (우라늄 농측)시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은 북한과 어떤 식으로라도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려는 시도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이명박 정부가 해왔던 식의 정책은 미국에게도 외면받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남한은 주도권을 잃을 뿐만 아니라 고립될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변화된 현재 조건을 정확히 파악하고, 자신의 정체성이나 선호도와는 별개로 국익을 고려한 차원에서 판단을 다시 해야 한다. 그 시점은 바로 지금이며 특히 미중 정상회담 전에 미리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이종석 : 미국은 비핵화를 얘기하면서도 '전략적 인내'라면서 지금까지 북한 핵을 2년 가까이 방치해 왔다. 미국의 대북정책이 북한의 핵보유는 인정하고 확산만 막는 쪽으로 전환된다면 우리 입장에서는 우려할 수밖에 없다. 지금 북한은 우라늄 농축시설을 통해 얼마든지 핵물질을 확대 재생산할 수 있다는 점을 과시했고 그런 면에서 비확산이라는 마지막 안전판마저 뒤흔들었다고 본다. 미국 입장에서도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에 대해 반응을 하지 않기는 어렵다.

미국 내에 반북 혐오 정서와 '북한과는 대화해 봐야 소용없다'는 인식이 공고하게 자리잡고 있지만,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가 받아온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복귀를 허용하고 연료봉을 판매하겠다는 양보안은 그 자체로 획기적인 내용이 되긴 어려워도 6자회담 재개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또 북한이 가해자이면서도 관리자처럼 비춰짐으로써 미국 내 협상 움직임에 자극을 준 면이 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중국이 진정하고 상황을 관리하자고 했을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한 달도 안 돼서 다시 대화를 운운하는 등 종잡을 수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미국이 한국에 '대북정책 아웃소싱'을 계속 맡길지도 모르겠다. 이제부터라도 6자 회담을 통해 북핵을 폐기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북한이 붕괴한다 한들 남한 주도 흡수통일이 되겠나"

프레시안 :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전문에 실린 정부 고위당국자의 발언이나 최근 대통령의 말을 보면 북한에 대한 적대감, 북한이 붕괴할 거라는 믿음이 깔려있다. 북한붕괴론이 현실성이 있는 것일까.

이종석 : 북한 붕괴와 관련된 전망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적어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붕괴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대단히 낮다는 것이다. 또 김 위원장의 건강에 대해서 많은 추측이 있지만 최근 그를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업무를 못 볼 정도는 아니라고 얘기한다. 단기적으로 사망을 점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이명박 정권 하에서 북한 붕괴가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이 정부는 붕괴 얘기를 공공연히 하고 있는데 이러면 안 된다. 물론 단 1%의 가능성만 있다 해도 정부는 마땅히 대응책을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설득과 협력을 통해 정상적으로 통일을 준비하는 과정을 공개적으로 준비한다면, 만약을 대비한 준비는 비공개적으로 해야 한다. 그런 준비는 이 정권 전에도 해왔지만 이게 전면에 나와서 마치 대북정책의 전부인 것처럼 보이는 지금 상황은 문제다. 앞으로는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고 말하면서 뒷마당에서는 관(棺)을 짜는 것을 보여주면 북한이 가만있겠나. 또 중국과 러시아도 반발할 것이다.

또 북한 붕괴 가능성이 단기적으로 낮지만, 만약 붕괴한다면 남한이 흡수통일을 할 수는 있나? 아무 대책 없는 낙관적 희망주의일 뿐이다. 북한 정권이 무너지더라도 110만이 넘는 북한 군대가 있고 이들이 손에 쥔 무기가 있다. 북한 내에서 새 지도부가 구성되든 여러 집단이 난립하든 이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한국군이나 미군이 북한에 들어갈 수는 없다.

비록 가정이지만 북한이 붕괴했을 때 우리가 북한을 관리할 수 있는 조건은 북한 주민들이나 지도부가 남한에 의존 심리를 가지는 것이다. 이는 남북관계가 개선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지금처럼 대북 강경책을 쓰면 설령 북한이 망해도 새로운 지도부나 주민들이 중국에 대한 의존 심화를 통해 자체적으로 살아나갈 길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흡수통일의 뉘앙스를 풍기는 정책을 공공연히 내세운 것 자체도 잘못이지만, 사실은 정말 흡수통일을 원한다 해도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북한 민심을 얻어야 한다.

조승수 : 만약에 북한이 붕괴한다면 1차적으로 남북한 모두에게 엄청난 재앙이 될 것이다. 지금 독일이 통일 20년째를 바라보고 있는데, 엄청난 경제력을 가진 독일조차 아직도 통일로 인한 갈등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다. 예를 들어 동독 국민들이 2등 국민화되는 문제, 동독 지역의 경제 부흥을 위해 쏟아부은 돈 때문에 휘청이는 경제의 문제, 이런 것들이 남아 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경제력과 시스템으로 북한 붕괴 상황을 관리할 수 있나? 못할 것이다. 김 위원장의 고령화와 김정은 후계 구도로 넘어가는 부분 때문에 다소 불안정성이 높아 보이는 것은 맞지만 이것이 바로 붕괴로 이어진다고 볼만한 근거도 없다. 중국은 지난 2009년 공산당 내에서 격론을 벌여 대북정책을 정리했는데, '북한 체제 안정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급변사태가 나더라도 지금 상황에서 남한이 북한에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은 한정적이다. 반면 중국은 대북 영향력을 유지하면서 차후 개입 능력을 자꾸 높여가려 하고 있다.

흡수통일이나 북한 급변사태라는 것은 한국 극우세력이나 국민들 중 일부가 체제경쟁에서 승리했다고 감정적으로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사태는 현실성이 높지 않을 뿐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햇볕정책, 논란 되는 것 자체가 유감"…"평화 복지로 발전시켜야"

▲ 조승수 대표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연평도 사태 이후 햇볕정책을 논란거리로 삼는 경우가 있다. '현재 위기가 햇볕정책 때문이다', '아니다. 햇볕정책을 폐기했기 때문이다' 등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조승수 : 크게 보면 김대중 정부 시절 당시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6.15 공동선언을 이뤄내고 교류가 확대된 것은 역사적인 사건으로 평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한반도 평화를 공고히 만들었고 통일이 우리 시대에 실현 가능한 상황이 됐다. 통일이 가시권에 들어온 것이다. 그런 점에서 햇볕정책이 가진 영향력은 지속되고 있다. 햇볕정책이 위기를 불러왔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다만 개인적으로 기존 햇볕정책에서 접근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다고 본다. 장기적으로는 '평화 복지'를 얘기해야 하지 않나 하는 것이고, 이는 곧 군축의 문제다. 물론 당장은 남북 교류를 확대하고 신뢰를 쌓는 것이 1차적인 목표이고 경제협력 등 단계적 과정을 거쳐야 하겠지만, 항구적인 평화는 북핵을 포함한 군축 없이는 불가능하다. 군축은 평화를 이루는 수단인 동시에 이를 통해 복지 재원을 마련할 수 있기도 하다. 군축을 매개로 한 평화 복지가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종석 : 나는 이 시점에서 햇볕정책이 논란이 되는 것 자체가 극우 언론의 프레임(틀)에 갇힌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감스럽다. 필요한 시점에 햇볕정책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기 위해서라면 몰라도 지금 이런 방식으로 논란이 되는 것은 대단히 정치적이고 의도를 의심받을 만하다고 본다.

조 대표의 지적에는 동감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햇볕정책에서 평화 군축을 말하지 않은 것은 아니며 말할 수 있는 단계가 됐으면 했을 것이다. 모든 정책은 시대 상황에 따라 변화해야 한다. 한 정부의 정책이 모든 구체적인 지침을 포괄할 수는 없다. 원칙을 제시하고 정세의 발전단계에 맞는 구제적인 과제들이 제시되는 것이 상식이다. 햇볕정책으로 남북관계가 더 발전하게 되면 당연히 평화군축을 심도있게 논하는 때가 올 것이다.

최근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프레시안> 인터뷰에서 '햇볕정책 추진 과정에서 국민적 컨센서스가 부족했다'고 평가한 것을 봤는데, 사실 한나라당에서 끊임없이 햇볕정책을 정치공세 대상으로 삼아 쟁점화한 면이 있다. 이런 정략적 공략이 있는 한 컨센서스를 끌어낸다는 것은 매우 힘들고 한계가 있다. 국민적 컨센서스는 매우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지만 그것이 쉽지 않았던 국내 정치지형을 감안하면서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 햇볕정책이 민족감정에 의존했다는 비판도 있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두 개의 국가를 유지하다가 화해협력이 실질적으로 됐을 때 성과를 보면서 단계적으로 통일을 준비하자는 것인데 그게 어떻게 지나치게 민족주의적인가.

"미국, 한국 정부에 한반도 정책 '아웃소싱'"

▲ 이종석 전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연평도 사태 등 한반도 문제에 대한 미국의 반응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국과의 공조로 상황을 관리해야 한다는 의견도 미국 내에서 나왔지만 실제로는 서해에 항모를 들여보내는 등 무력을 과시한 측면도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종석 : 미국이 그런 식으로 나온 이유가 중요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08년 대선 과정에서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부시 8년 간 동맹국들과의 우호·협력 관계를 다 깨트렸다고 비판했다. 그 중 하나가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남북관계를 개선하려는 의지를 깔봤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된 후 '한국과의 동맹관계를 중시한다'는 대전략은 이미 짜놓은 상태에서 오바마 정부와 성향이 맞지 않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다. 게다가 오바마 대통령도 국내 정치와 아프가니스탄 문제 등에 발목이 잡혀 한반도 문제는 거의 한국에 '아웃소싱'하는 식으로 나갔다. 그러니 미국 대북정책도 한국과 거의 일치한 것이다.

또 오바마 행정부 들어와서 있었던 장거리 로켓 발사와 2차 핵실험 등으로 북한의 이미지가 극도로 나빠진 탓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백악관 참모들이나 국무부 관료들 중 아무도 북한 문제를 대화로 풀자고 총대를 메고 나선 사람도 없다. 이 시점까지 놓고 보면 미국도 대북정책을 한국 정부에 '외줄 아웃소싱'한 관성이 작용하는 것 같다. 다만 이번 미중 정상회담이 지나고 나서도 이 '한국 외주형' 정책이 계속될지는 모른다.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 등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조승수 : 이번 사태에 대한 미국의 대응에서는 이명박 정부와의 한미동맹이 굳건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정도의 의미가 있다. 흔들림 없는 동맹이라는 전략적 관계를 드러내 보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해상에 미국 항공모함이 들어오면 중국을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한 것은 지난해 꼬였던 미중관계를 드러낸 것이 아닌가 한다. 또한 미국이 쇠락해 가긴 하지만 세계 경찰로서 미국의 무력은 여전하다는 것을 드러낸 의미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방식의 대응을 통해 미국이 뭘 얻을 수 있냐는 것이다. 한미동맹은 기존에도 인정돼 왔던 것이고 특별히 더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서해에 항모가 들어온 것도 미중관계에서 어떤 이익이 될 만한지 회의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오히려 한반도 주변이 분쟁지역화된다는 의미를 심어준 사건이었고 이를 통해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없을 것이라고 본다.

프레시안 : 연평도 사태 후 중국이 긴급 6자회담 수석대표 회담을 제의한 적이 있다. 한국에서는 이 제안은 무시되다시피 했고 미국 항공모함을 파견한 것을 두고는 '역시 미국은 우리 편이다'라고 높이 평가하는 듯한 모습도 보였는데.

이종석 : 굉장히 우려스럽다. 연평도 사태는 동북아 국제정치에서 한미동맹 대 북중동맹의 갈등구도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한국의 대중 수출은 총 무역 수출액의 25%에 달한다. 이는 한국의 대미 수출, 대일 수출, 대EU 수출을 모두 합한 수준이다. 거의 대부분의 무역 흑자도 중국에서 보고 있다. 반면 중국의 우리에 대한 수출은 5번째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한중 간 무역은 비대칭적이며 한국은 중국과의 무역에서 무척 예민한 영향을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을 북한 쪽으로 밀어낸다면 한국에 어떤 영향이 오겠나. 2009년까지만 해도 한중일 3국이 함께 '동아시아 공동체' 논의까지 했다. 그런데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태를 거치면서 '신냉전'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동북아에서 양강 구도가 형성되고 양대 진영이 힘의 대결을 벌이게 된다면 한국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을 것이다.

조승수 : 물론 중국도 북한에 못마땅한 점이 있을 것이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한반도에서 위기가 고조되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은 전략적 목표를 두고 유지해 나가는 정책을 쓰고 있다. 우리도 국익을 위해 장기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도움이 될지 판단해야 한다.

이를테면 남한 정부는 이후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4대 강국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할 필요가 있다. 경제면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막대한데도 눈 앞의 대응에만 신경을 쓰고 있으면 안 된다. 이명박 정부의 특징으로 '안보 보수'보다 '시장 보수'적인 측면이 강하다는 평가가 있었는데 이번 사태를 거치면서 결국 이 둘은 동전의 양면일 뿐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이종석 : 그렇다. '시장 보수'라면 개성공단이 이 지경이 되도록 그냥 놔뒀겠나. 이명박 정부는 아무래도 북한에 대해 맹목적 불신이 너무 큰 것 같다. 시장친화적인 보수라고 보기에는 극우적인 정책들이 아닌가 싶다.

조승수 : 한국 정부 입장에서 미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긴 안목 하에서 다른 나라들과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쌓아 나가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그동안 축적한 것도 오히려 흐트러트리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를 무시하고 배제하는 정책을 가지고는 한반도 문제를 잘 풀어나갈 수가 없는데 뭘 하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이런 혼선은 한반도에서 위험을 높이는 데만 일조했을 뿐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한미동맹 내에서도 미국과 한국의 이해관계가 다른 점이 드러났다. 미국은 주로 비확산 문제에 더 관심이 있지만 한국 입장에서는 북한 핵보유 자체가 1992년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에 대한 위반일 뿐더러 위협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 보면 북핵은 통일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 입장에서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북핵 폐기가 시급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으로는 미국이 정책 전환을 고민하는 상황 속에서 외교적으로 고립될 것이며 기존 입장만 고수한다면 정부로서 무능·무책임한 것이다.

"그랜드바겐은 됐고! 제대로 된 일괄타결안 필요"

프레시안 : 긴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하다. 마지막으로 정부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라든지, 지면을 빌어 <프레시안>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조승수 :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2년 남았다. 이제라도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 등 변화된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데 이명박 정부는 '그랜드 바겐' 등 일괄타결이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전제조건을 달고 있다. 현 단계에서는 이보다는 '제대로 된 일괄타결'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기존의 논의 구조는 단계론적인 접근이었다. 합의 단계가 너무 길어지다 보니 각국 간 해석의 문제도 있었고 중간에 정권이 바뀌거나 하면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므로 단계론이 아닌 제대로 된 신 일괄타결 해법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2.13 합의 같은 경우도 9.19 공동성명을 이행하기 위한 1단계 조치였다. 최종목표를 분명히 정하고 그에 이르기 위한 과정까지 한꺼번에 상정하지 않으면 6자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상황에서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이번에 리처드슨 주지사를 통해 IAEA 사찰단 복귀를 허용하기로 했는데 여기 상응해서 화력발전소나 대체에너지를 지원한다든지 하면서 최종적으로는 핵무기를 러시아 등 제3국으로 이전해서 폐기하는 쪽으로 가는 것과 평화협정, 북미수교 및 대북제재 해제 등을 동시에 상정하고 진행하지 않으면 또다시 중간 단계에서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라고 본다.

또 2008년 말에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남북의 접촉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지금이라도 교착 국면을 해소하기 위해 정상회담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 선행 조치로서 남북 국회 회담 같은 것을 초당적으로 협력해서 할 필요가 있다.오는 5월 정도에 평양에서 예비회담을 개최한다든지 해서 연내에 평화를 가져오는 대반전의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이종석 : 지난달 20일 연평도에서 사격훈련을 실시했던 때가 한반도에서 전쟁 위기가 가장 높아졌던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북한에 본때를 보여야 한다'고 말하던 사람들조차 가슴 한편에 불안감을 가졌을 만큼 위험했고, 평화를 바랐던 많은 사람들은 거의 좌절 수준으로 착잡했던 날이다.

지금 상황은 위기가 관리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지만 전쟁의 가능성을 없애는 쪽으로는 나가고 있지 못하다. 북한을 관리해서 한반도 상황을 안정화시켰어야 하는데 지금 정부는 북한에 '너희가 호전적이라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나가고 있다. 관리할 비전도 의지도 없이 '앙갚음 게임' 구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상황은 아직도 대단히 불안하다.

한국 정부가 정책을 바꿀 가능성은 낮아 보이고, 미국 정부가 한국에 얼마나 상황 관리를 촉구할지가 하나의 변수다. 예를 들면 연평도 사격훈련 직전에 월터 샤프 주한미군사령관과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대사가 청와대를 방문했는데, 왜 방문했는가에 대해 미국 측에서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또 한국 내에서 국민들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판돈으로 걸고 위험한 도박을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확고한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2012년 대선에서 심지어 한나라당 후보조차 이 정부의 대북정책을 계승하겠다고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국민의 힘으로 이 시기를 버텨야 한다. 분위기를 평화로 몰아가는 국민적인 힘, 여기에 기대를 걸어 본다.

조승수 : 동감한다. 연평도에 포격 도발이 있었던 위기 속에서도 생필품 사재기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고 주가지수도 비교적 안정된 모습을 보인 것은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국민들 의지의 반영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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