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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맞이한 한미관계? 맞지만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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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맞이한 한미관계? 맞지만 슬프다

[정욱식의 '오, 평화'] MB와 오바마, 그리고 한반도

"모든 것이 한국에 달려 있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가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신문은 6일자 인터넷판 기사에서 "때때로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의 팔을 비틀었던 과거와는 달리, 오바마 행정부 관료들은 한국이 가고자 하는 곳을 미국은 따라갈 것"이라고 말한다고 보도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일본을 거쳐 한국을 방문한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7일 "한반도 정세의 진전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남북관계의 진전"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앞선 6일 도쿄에서는 "한국과 가장 긴밀한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한국과 협력하는 것을 최우선시하고 있다"며 "우리는 많은 부분에 있어서 한미관계가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특히 캠벨은 전성기를 맞이한 한미관계의 배경에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미국 정부의 호의적인 평가가 자리잡고 있다며 "현재의 환경에서 한국은 아주 유능한 이명박 대통령이 이끌고 있기 때문에 (…) 우리는 기본적으로 이 대통령의 판단을 신뢰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캠벨의 발언에서도 나타난 것처럼, 오바마 행정부는 적어도 대북정책과 관련해서는 '한국의 판단을 지켜보고 한국이 가고자 하는 곳을 따라가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를 두고 <워싱턴포스트>는 "지켜보고 따라가기 정책(wait-and-follow policy)"이라고 표현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북미 대화와 6자회담 재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남북관계의 진전이고, 남북관계의 진전 여부에 대한 판단은 이명박 정부에게 달려 있다고 보는 것이다. 캠벨이 "천안함 사건에 대한 북한의 사과가 6자회담의 전제조건인가"라는 질문에 "근본적인 것은 한국 정부의 결정에 달려있다"고 답한 것도 이러한 기류를 잘 보여주고 있다.

▲ 미국은 한국의 입장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던 개혁진보 진영은 이제 '한국에 개의치 말고 미국 뜻대로 하라'는 요구를 해야 할 판이다. 한미관계의 서글픈 '르네상스'다. ⓒ청와대

한미관계가 '르네상스'를 맞이한 이유

한미 양국 정부가 한미관계를 칭송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한미관계는 '르네상스'라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급속도로 밀착되어왔고, 그 만큼 공고해지고 있다. 대개 정부 관료들의 공식적인 발언 뒤에 숨어 있는 불만이나 이견도 거의 들리지 않고 있고, 양국의 대다수 전문가들도 한미관계가 역사상 최고라는 점에 이견을 달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이명박-오바마 시대의 한미관계'를 전면적으로 재평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실 오바마 행정부 출범을 전후해 한국의 개혁진보 진영 내에서는 한미관계의 '엇박자'를 예상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터프하고 직접적인 외교"를 천명한 오바마의 대북정책은 대북강경책으로 일관했던 이명박 정부의 노선과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MB 정부가 희망한 전시작전권 전환 연기도 "동맹국 방어는 스스로 하라"는 오바마의 군사전략 기조와도 상반된 것이었다.

그러나 2년 가까이 시간이 지나면서 초기의 전망은 완전히 빗나갔다. 대북정책과 관련해 오바마 행정부는 이명박 정부에게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를 보내면서 한국의 주도권을 인정하고 있다. 전시작전권 전환 연기도 '군사 논리'를 앞세운 펜타곤 일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백악관과 국무부가 나서 '정치적 판단'에 기초해 이명박 정부의 요구를 수용했다. 이러한 결과를 놓고 볼 때, 필자를 포함한 개혁·진보 진영은 이명박 정부를 과소평가했거나 오바마 행정부를 과대평가한 오류를 범한 셈이다.

그렇다면 한미관계가, 그것도 MB와 오바마 시대에 '르네상스'에 비유될 정도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북한이라는 '공동의 적'에 대한 인식의 수렴이다. 취임 초기인 2009년 2월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의 핵 폐기 준비시 평화협정 체결, 관계정상화, 대규모의 경제지원에 나서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대북 특사 파견을 추진했다. MB 정부는 오바마 행정부의 이러한 움직임에 불편한 기색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이 미국의 특사 파견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4월 로켓 발사를 강행하자, 오바마 행정부도 강경기조로 돌아서 유엔 안보리 대북 규탄 성명 채택을 주도했다. 이에 반발해 북한이 2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미국 내에서는 '협상무용론'이 득세했다. 이에 따라 한편으로는 강도 높은 유엔 안보리 제재결의안(1874호) 채택을 주도하는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이명박 정부의 요구를 수용해 강력한 대북 대응 기조를 마련했다. 대응 기조의 핵심은 "강력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북한의 패턴을 종식시키겠다"는 것이었고, 이러한 기조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강해졌다.

취임 초기 적극적 포용(engagement) 시도가 "북한의 도발"에 의해 배신당했다고 판단한 오바마 행정부는 대북 강경기조로 일관해온 MB 정부의 주도권을 인정한 셈이다. 이러한 한미 양국의 대북정책 수렴 현상과 MB 정부의 주도권 발휘는 3월 발생한 천안함 침몰의 원인을 북한의 공격에 의한 것이라고 결론지으면서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둘째, '비핵화'를 전면에 앞세운 MB의 대북정책도 한미관계 강화의 큰 배경으로 작용했다. '비핵·개방 3000'이라는 대북정책의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MB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를 대북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면서 남북경협과 인도적 지원까지도 핵문제와 철저하게 연계시켰다. 국내 개혁·진보 진영은 물론이고 일부 보수적 전문가들까지도 비판을 하고 나섰지만, 미국은 적극 환영·지지했다.

미국의 이러한 태도의 배경에는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북한의 핵개발에도 불구하고 남북경협과 대북 지원을 지속했다는 비판론이 깔려 있다. 동시에 미국의 입장에서는 한반도 비핵화 달성이 남·북한의 화해·협력이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보다 훨씬 상위의 목표를 차지하는데, MB의 비핵·개방 3000은 미국의 이러한 전략적 우선순위와 잘 부합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셋째, MB의 '한미동맹 강화론'과 오바마의 '동맹 중시론'이 조우한 것도 주효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한미동맹이 무너졌다는 정치 공세를 폈던 MB 정부는 한미동맹 강화를 최우선적인 외교·안보 목표로 설정하고 한미 전략동맹을 추구했다. 전략동맹이 미국의 세계전략, 즉 핵문제 대처, '테러와의 전쟁',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확산, 중국 견제, 기후변화 대처 등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을 한 미국도 적극 호응했다. 또한 오바마는 부시의 동맹 무시형 일방주의를 강력히 비판하면서 동맹 관계 복원 및 동맹국의 입장 존중을 대외정책의 기본 원칙으로 삼았다.

넷째, 이러한 맥락에서 MB 정부가 미국 주도의 세계체제 건설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것 역시 한미관계 강화의 중요한 배경이다. 경제적으로는 미국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타개하고자 정상회의 차원으로 확대·재편한 'G20'에 적극 참여하는 한편, 아시아 국가들 가운데 최초로 G20 정상회의를 유치했다. 외교·안보적으로는 미국 주도의 '테러와의 전쟁' 및 핵비확산 외교에도 적극 동참하고 있는데, 아프가니스탄 재파병,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 참여, 제2회 핵안보 정상회의(2012년 예정) 유치, 미국 주도의 대이란 제제 동참 등이 이에 해당된다.

오바마는 부시 행정부를 거치면서 추락한 미국의 지도력을 재건해 전환기의 세계질서를 미국 주도로 재편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그러나 동맹·우방국들을 포함해 많은 나라들이 미국에 줄서는 것에 주저했다. 최근 관계가 복원되었다고 하지만, 미국 세계전략의 아시아 축이라고 할 수 있는 미일동맹도 민주당 집권 이후 순탄치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MB 정부가 미국의 세계 전략에 적극 동참하고 나선 것은 오바마 행정부에게 '가뭄 속에 단비'와도 같은 것이었다.

한국의 위상 강화가 슬픈 이유

물론 이러한 한미관계 강화 기류는 분명 비판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MB가 이끌고 오바마가 따라가는 형태의 대북강경책은 한미관계를 돈독히 하는 측면도 있지만, 남북관계의 발전 및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근본적이고 절박한 과제를 도외시하는 결과도 초래하고 있다.

또한 MB 정부는 비핵화를 전면에 앞세우고 있지만, MB의 임기 전반기 동안 비핵화는 오히려 후퇴를 거듭했을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도 크게 악화되어왔다. MB 정부가 비핵화를 앞세워 김대중·노무현 정부보다 북핵 해결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은 '이미지'를 만드는 데에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빈 수레'가 요란했던 셈이다.

미국의 세계전략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 것 역시 이를 통해 미국 주도의 세계체제에서 한국의 지분을 높이는 측면이 있지만, 동시에 한국의 대전략을 미국의 범위에 가둬두는 결과도 초래하고 있다. 특히 한미동맹 강화론은 북한은 물론이고 급격히 부상하는 중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 르네상스를 맞이했다는, 그것도 대북정책에 있어서는 한국이 주도권을 잡고 있다는 한미관계의 현실이 유독 슬프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다. 오바마가 MB의 정책 주도권을 인정한 것은 아마도 김대중-클린턴 시기 막바지였던 1999~2000년을 제외하곤 역사상 처음일 것이다. 그만큼 한국의 위상도 높아졌고, 또 한반도 문제를 한국 주도로 풀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MB 정권은 한반도의 시계를 냉전 시대로 돌려놓고 말았다.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신호들이 포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이웨이'를 고집하고 있다.

오랜 세월, 특히 '부시 8년간' 한반도의 대전환을 시도했던 많은 노력들은 번번이 미국의 반대와 방해로 무산되곤 했다. 뜻은 있었지만 힘이 없는 한국의 현실이 서글프게 느껴질 때도 많았다. 그것이 집회든 면담이든 글쓰기를 통해서든 한국의 개혁·진보 진영은 미국 행정부에게 한국 정부의 입장을 존중해 대북 포용정책에 나설 것을 설득하고 압박했다. 그런데 MB-오바마 시대에는 더 이상 이런 요구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오히려 오바마 행정부에게 MB 정부의 입장에 개의치 말고 북미대화와 6자회담에 나서달라고 요구해야 할 판이다. 미국에게 MB 정부를 설득·압박해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달라고 간청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한쪽 귀로만 조언을 듣고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보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운 까닭이 아닐 수 없다. 조금만 생각을 달리하면 되는데, 그것이 정녕 그토록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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