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가 발간하는 <한반도포커스> 7호(2010년 5·6월호)를 전재합니다.
<한반도포커스>는 극동문제연구소의 교수진과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한반도 문제 관련 정책소식지입니다. 이번 7호는 '천안함과 6자회담 : 전망과 과제'를 주제로 5편의 글이 실렸습니다. 5월 첫째 주 동안 매일 1편씩 소개됩니다.(☞제7호 전체 내려받기)
1972년 설립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는 북한ㆍ통일 문제에 관한 연구와 정책 제안 활동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는 최고의 민간 연구기관입니다. <편집자>
천안함 사건으로 인해 한반도 정세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 천안함이 침몰한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고 이른바 '북한개입설'이 확인된다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물론이고 6자회담 등도 잠정적으로 중단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침몰원인을 명확하게 밝혀내지 못한 채 '북한공격설'을 확신하는 경우도 한국 정치의 동학 때문에 상당한 기간 동안 긴장상태가 유지될 것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는 일정한 냉각기를 거치면 이익의 균형(balance of interest)을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접촉이 나타날 것이다. 그 계기의 하나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이고 또 다른 하나는 5월에 개최될 미·중간 '전략과 경제 대화'이다. 즉 천안함 사건에 대한 고도의 군사정보와 정치정보를 가지고 있는 미국과 중국이 남북한과 정책을 조율하면서 새로운 환경을 모색할 가능성이 크다.
천안함과 중국의 시선
중국은 국가행사를 앞두고 재난이 발생하는 징크스가 있다. 이번에도 5월 상하이 엑스포를 앞두고 칭하이 지진 참사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후진타오 주석은 해외일정을 단축하여 귀국했고, 원자바오 총리의 해외순방도 취소되었다. 중국지도부는 이러한 국내정치의 불안정성을 주목하는 한편 주변지역의 안정화를 통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해왔다. 천안함 사건도 후진타오체제의 정치적 결산을 앞둔 시점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촉각을 세우고 있고,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반영한 이 사건이 주변국가의 공동이익이 걸린 북핵문제 해결에 부정적인 여파가 미치지 않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 사건에 대한 중국의 공식입장은 '불행한 사고'이고 "한국이 사고원인에 대해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조사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을 주시하고 있다"는 원론적이고 객관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 "유관당사국이 함께 노력하고 대화와 접촉을 강화해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에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는 침몰원인이 밝혀지지 전까지는 6자회담을 유보하겠다는 미국의 입장과는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중국은 천안함 사건이 미칠 국제정치적 파장을 충분히 인식하면서 향후 전개될 모든 경우의 수를 점검하고 있다. 다양한 통로를 통해 미국과 정보를 교환하고 있고, 북한으로부터도 핵심정보를 들으면서 한반도에 나타난 매우 복잡한 방정식을 풀고 있는 중이다. 왜냐하면 섣부른 정책은 힘들게 회복한 북·중관계는 물론이고, 미·중관계, 그리고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는 한중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과의 공조를 통해 이 상황을 관리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로서는 5월에 개최될 제2차 미·중간 '전략과 경제 대화'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지난해 워싱턴에서 열린 제1차 '전략과 경제 대화'에서 북핵문제가 심도 있게 논의된 것에 비추어 보면 천안함 사건 이후 한반도 문제를 다룰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정일 위원장 방중 논리
천안함 사건 이후 한반도 정세에 영향을 미치는 또 하나의 변수는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이다. 만약 조기에 김 위원장의 방중이 성사된다면 천안함 사건에 대해 북·중 양국의 의견조율이 이루어지고 중국이 어떤 형태로든 '중재자적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그리고 천안함 사건이 북한과 직접 연계되었다고 하더라도 중국은 2006년 북핵 실험 이후 보여준 강력하고 신속한 대북한 비판과는 다른 행동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그 동안의 북·중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겪은 학습효과 때문이다.
중국은 2009년 2차 북핵 실험 이후 북한의 후계체제와 개혁·개방을 둘러싼 내부논쟁에서 북한과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강조한 전통파가 북한을 정상국가로 만들고자 하는 전략파를 지배했고, 중국지도부도 북한문제와 북핵문제를 이원적으로 접근하면서 새로운 북·중관계의 틀을 구축했다. 이것은 대체적으로 2009년 7월 공산당 외사영도소조(조장 후진타오), 재외공관장 회의 등을 거치면서 구체화되었다.
그 결과 '피로 맺은 (양국)관계'라는 표현이 다시 등장했고, 북·중관계의 발전은 '중국 당·정의 확고부동한 방침'이라는 입장이 공식적으로 천명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김 위원장 취임 이후 다섯 번째 방중 논의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2010년 2월 11일 왕자루이 대외연락부장이 김 위원장을 면담하며 후진타오 주석의 친서를 전달했고, 2월 23일에는 북한의 김영일 국제부장이 후진타오 주석을 면담하고 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면서 그 가능성이 보다 높아졌다. 중국 정부도 북한 지도자의 중국 방문은 일상적이며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보였는데, 이는 시기문제만 남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천안함 사건 이후에도 북한 선발대가 이미 베이징을 다녀가는 등 김 위원장의 방중을 준비하는 징후가 다양하게 포착되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김 위원장의 방중 자체가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양국의 입장이 정리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6자회담을 둘러싼 동상이몽
그러나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6자회담 복귀를 반드시 전제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김 위원장의 방중이 현안을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만능의 열쇠는 더더욱 아니다. 왜냐하면 정리해야 할 의제가 많고 추구하는 목표도 다르기 때문이다. 6자회담만 해도 중국이 북한을 불러내는 것까지는 가능하지만, 소기의 협상결과를 예측하기는 매우 어렵다. 사실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이 수차례 연기된 것도 상황적 요인 보다는 이러한 구조적 요인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은 북한을 6자회담에 복귀시키기 위해 오랫동안 공을 들였다. 2009년 8월 우다웨이 부부장의 방북 당시 북한은 북·미 직접대화를 기반으로 다자대화, 협상 메카니즘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것은 중국과 대화하지 않겠다는 그 동안의 북한의 태도에 비추어 보면 새로운 변화였다. 9월에는 중국외교의 컨트롤 타워라 할 수 있는 따이빙궈 국무위원이 방북하여 김정일을 면담한 이후 북한은 "양자 또는 다자대화에 나올 수 있다"는 보다 진전된 입장을 표명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10월 원자바오 총리가 평양에서 열린 북·중관계 60주년 폐막식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북한은 "조건부로 6자회담에 복귀할 것"이라고 명시적으로 화답했다.
이처럼 중국은 북한을 6자회담에 복귀시키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설정해왔다. 왜냐하면 6자회담은 후진타오 주석의 외교적 성과로 강조되어 왔다는 점에서 그 모멘텀을 살리는 것이 중요했고, 북핵문제 보다 북한체제의 불안정이 중국의 국가이익을 현저히 침해할 것이라고 보았으며,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따른 북한위협론이 대중국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의 빌미를 제공하는 것을 막을 필요가 있었고, 국제사회에서 6자회담의 의장국으로서의 '중국역할론'을 보다 분명하게 부각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북한도 국제적 압력이 고조되고 있는 상태에서 전통적 우방인 중국과의 협력을 통해 위기를 관리할 필요가 있었고, 김정일 체제의 불안정성과 북한 급변사태 논의를 잠재우면서 체제 공고화의 시간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으며, 무엇보다 화폐개혁 이후 경제난을 중국과의 경제협력, 외자유치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북·중간 이익균형과 중국의 대규모 경제협력에 대한 답례로 북한이 6자회담 복귀를 적극적으로 검토할 수는 있다. 그러나 대북제재의 해제문제, 북한의 핵보유국 인정문제, 한반도 평화체제와 비핵화를 동시에 논의하는 문제, 비핵화 방식 등을 둘러싸고 이견이 팽팽하다. 따라서 어느 일방의 '통 큰' 결단이나 전략적 판단이 없는 한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비록 북한이 중국의 등에 떠밀려 6자회담에 참여하더라도 6자회담의 동력을 유지해 나가기 어렵고, 오히려 관련 당사국 모두가 정치적 부담을 져야하는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다.
전망과 함의
천안함 사건은 일단 6자회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한국 정부가 천안함 사건을 다자간 협의인 6자회담과 연계시킬 가능성이 분명한 상황에서 이를 반전시킬 수 있는 뚜렷한 카드가 없다. 또한 한·미 양국은 북·중 양국이 '사실상 핵무기 보유를 전제로 한 6자회담 복귀'를 내밀하게 합의했다는 우려가 있고, 한국 여론도 북한공격설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한 다자간 문제인 북핵문제와 남북한 문제인 천안함을 크게 구분하여 접근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불확실성이 부분적으로 제거되면, 천안함 사건 처리를 포함한 다자간 협의를 시작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는 북한의 6자회담 복귀와 6자회담 이전에 북·미간 양자대화를 중재하는 중국의 절충안도 포함된다. 더구나 5월의 미·중간 '전략과 경제 대화', G-20 정상회담의 서울 개최를 앞두고 한반도의 긴장을 방치할 수 없는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현실적으로도 중국의 협력 없이는 대북제재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점을 이미 확인했을 뿐 아니라, 중국이 북핵문제와 북한문제를 분리하여 처리하는 원칙에서 천안함 사건을 다룰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에게 대북제재를 엄격히 요구하거나 천안함 사건의 원인이 밝혀지지 전까지는 김 위원장의 방중을 유보시켜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현재의 대북제재에 또 다른 제재를 가한다 하더라도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천안함 사건이 6자회담과 심각한 북핵문제 해결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점에서 한반도의 위기를 외교적 자산으로 활용하는 전략적 자세가 필요하다. 현재는 진실한 정보를 가진 국가가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잡아가는 전략적 국면에서 매우 실용적인 태도를 고려할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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