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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대재앙, 미국과 국제사회가 책임져라"

[해외시각] "경제파탄·정치불안 씨 뿌린 외세, 긴급구호 만으론 부족해"

대지진으로 최대 수십 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것으로 보이는 아이티에 대한 국제사회의 구호 노력이 발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미국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의 해외 순방 일정까지 취소하며 아이티 구호에 팔을 걷어붙였다. 클린턴 장관의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유엔의 아이티 담당 특사로 활동하고 있다.

최악의 재난을 당한 나라에 구원의 손길을 뻗는 것은 숭고한 일이다. 그러나 아이티라는 나라의 역사를 되짚어 볼 때,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마음씀씀이가 혹여 '악어의 눈물'이 아니냐는 시선이 존재한다.

아이티는 1804년 노예혁명으로 독립을 쟁취한 중남미 최초의 독립국가라는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졌다. 비옥한 토지와 풍부한 자원 덕분에 한때 카리브해의 부국(富國)으로 꼽히기도 했다.

그러나 독립 전 아이티를 지배했던 프랑스와 1915년부터 20년 동안 이 나라를 또 다시 식민 지배했던 미국이 개입이 계속되면서 만성화된 정치 불안과 잇단 자연 재해로 '서반구의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흑인 인구가 중남미에서 가장 높은 비중(90% 이상)을 차지한다는 사실은 아이티의 고통에 대한 주변국들의 무관심을 설명하는 하나의 요소다.

이에 더해 1970년대 이후 불어 닥친 신자유주의 바람 때문에 아이티의 사탕산업은 해외 자본의 손에 넘어갔다. 그 과정에서 농촌에서 도시로 쫓겨난 농민들은 슬럼가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이번 지진으로 초토화된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이재민 다수는 그렇게 도시로 유입된 빈민들이다.

영국의 <가디언>이 13일자 칼럼에서 이번 재앙을 국제사회에 의한 인재(人災)라고 규정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칼럼은 "1915년 미국이 아이티를 침공해 점령한 이후부터 절대적 빈곤 상황에서 탈출하려는 아이티 민중들의 노력은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 의해 폭력적이고 계획적으로 봉쇄됐다"며 "국제사회는 아이티가 겪고 있는 고통만큼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이 칼럼의 주요 내용이다. (
☞원문보기)

한편, 한국 정부는 지진 구호를 위해 인력 35명과 긴급 인도적 지원금 100만 달러(약 11억 원)를 현지로 보내기로 했다. 이에 대해 '글로벌 코리아'를 지향하고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나라가 최악의 피해를 당한 나라에 쓰는 돈 치고는 너무 인색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 ⓒ로이터=뉴시스

아이티의 고통 앞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

12일 오후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를 강타한 규모의 지진이라면 세계 어느 대도시든 커다란 피해를 입기 마련이지만, 포르토프랭스처럼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상황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티에서 일어난 이 끔찍한 재앙은 그 나라의 길고 처절했던 역사가 낳은 인재로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아이티 사람들은 그간 유난히 많은 재앙을 겪어 왔다. 포르토프랭스에서는 1770년 6월 지진으로 수백 명이 사망했고, 1842년 5월 대지진 때는 북부 도시 캡 아이티안에서만 1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허리케인은 거의 정기적으로 아이티를 파괴한다. 최근에는 2004년과 2008년에 허리케인으로 인한 피해가 컸다. 특히 2008년 9월 허리케인으로 고나이브시가 물에 잠겼고, 그나마 있는 기반시설들은 떠내려갔으며, 10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내고 수천 채의 집이 파괴됐다.

아이티는 흔히 '서반구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라고 불린다. 아이티의 빈곤은 인류 역사에서 아마도 가장 무지막지했을 식민지 착취 구조에서 직접적으로 유래한 것이며, 식민지에서 벗어난 후 수십 년 동안 이어져 온 조직적인 억압구조가 더해져 초래된 것이다.

앞 다퉈 아이티 구호에 나서고 있는 저 숭고한 '국제사회'는 그 나라가 겪고 있는 고통만큼의 책임이 있다. 1915년 미국이 아이티를 침공해 점령한 이후부터 "절대적 빈곤 상황에서 탈출하려는"(from absolute misery to a dignified poverty) 아이티 민중들의 노력은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 의해 폭력적으로, 그리고 계획적으로 봉쇄됐다.

가장 최근 사례로는,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대통령 정부(75%의 지지로 당선)가 외세의 개입에 의해 무너졌던 일이다. 아리스티드 정부는 2004년 국제적으로 지원을 받은 쿠데타에 의해 붕괴됐다. 쿠데타 세력은 수천 명의 주민들을 살해했다. 그 후 유엔은 (2004년부터) 매우 비싼 비용을 들이며 평화유지군을 주둔시키고 있다.

아이티의 인구 약 75%는 하루 2달러 이하의 돈으로, 56%는 1달러 이하로 살아가고 있다. 수십 년간 진행된 신자유주의 정책(adjustment)과 신식민주의적 개입으로 인해 아이티 정부는 국민들을 위해 자금을 투자하고 자국의 경제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상당 부분 상실했다. 국제 무역과 금융 체제는 아이티 정부의 그러한 빈곤과 무능력을 구조적인 것으로 남겨 놓을 것이다.

포르토프랭스의 지진 피해도 그렇게 설명된다. 1970년대 후반 이래 아이티의 농업은 신자유주의의 가차 없는 공세에 밀렸다. 그에 따라 수만 명의 영세농들은 인구가 밀집된 도시 슬럼가로 쫓겨 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유입된 포르토프랭스 주민 수만 명은 현재 집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곳에 살고 있다.

'아이티 정의·평화연구소'의 브라이언 컨캐넌 소장은 이렇게 말한다. "도시 빈민들은 농촌지역에서 계획적으로 밀려난 사람들인데, 도시 빈민의 인구를 늘려 착취가 쉬운 노동력을 창출해 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원조·무역 정책에 의해 도시로 오게 됐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지진에도 견딜 수 있는 집을 지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다."

2004년 쿠데타 이후 국제사회는 아이티를 실질적으로 다스려왔다. 그러나 이번 지진 피해에 대해 긴급 구호를 해주려고 발 빠르게 움직이는 바로 그 나라들은 유엔의 신탁통치 기간을 연장하는 문제에 대해 지난 5년 동안 늘 반대표를 던져 왔다.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고 농업을 개발하는 쪽으로 투자를 돌려야 한다는 제안들은 늘 반대에 부딪혔다.

2008년 아이티를 강타한 허리케인은 쿠바에도 상륙했지만 거기서는 단 4명의 사망자 밖에 나오지 않았다. 쿠바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으로부터 빗겨나 있었고 쿠바 정부는 재난으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가 이번 사태를 통해 아이티를 돕는 문제에 대해 진지하고 생각하고자 한다면 쿠바와 아이티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비교해 봐야 한다. 우리는 구호의 손길을 긴급하게 보내기도 해야겠지만, 아이티 국민들과 공공 기관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어야 한다.

진정으로 그들을 돕고자 한다면 우리는 아이티 정부를 통제하려고 한다거나, 주민들의 열망을 억누르려 한다거나, 그 나라의 경제를 착취하려는 시도를 그만 두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이미 저질러 놓은 상처를 치유하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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