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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정부의 '권력기관 사유화' 매우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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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명박정부의 '권력기관 사유화' 매우 심각"

[인터뷰] 정연주 전 KBS 사장

정연주 전 한국방송(KBS) 사장은 지난해 8월 이명박 정부에 의해 강제 해임된 이후 침묵을 지켜왔다. 그의 침묵은 자신을 향한 정권의 공격이 얼마나 부당한지를 드러내는 효과적인 공격 수단이었다. 지난달 19일 법원은 검찰의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하며 정 전 사장의 배임 혐의에 무죄판결을 내렸다.

정연주 전 사장은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1년간 이명박 정부의 권력기관 사유화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자신의 사건뿐 아니라 MBC <PD수첩>, 용산 참사, 최근의 노무현,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까지 이러한 민주주의 파괴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 그는 "이들 사건이 이명박 정부의 성격을 규정한다"고 말했다.

정 전 사장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KBS를 NHK나 BBC처럼 만들고 싶다'고 공언하는 것을 두고 "NHK와 BBC가 전혀 다른 공영방송 모델임을 몰라서 하는 소리"라며 "KBS를 NHK처럼 저널리즘 기능이 거세된 조직으로 만들고 MBC를 오락성 중심의 민영방송으로 만들고 싶은 것 아니냐"고 꼬집기도 했다.

그는 이병순 체제의 KBS를 놓고도 "지금의 KBS 구성원들이 해결해야 할 몫"이라고 말을 아끼면서도 "영향력, 신뢰도가 하락한 그 결과로 평가해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엄기영 문화방송(MBC) 사장에게 "끝까지 버티시라"는 공개 편지를 쓴 그는 MBC 구성원들에게 "현실적인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다음은 지난 4일 청운동의 카페에서 진행한 인터뷰 전문.

▲ 정연주 전 KBS 사장. ⓒ프레시안

"최시중 BBC-NHK 예찬론? 몰라서 하는 소리"

프레시안 : 지난 1년 여간 이명박 정부 언론 장악 논란의 가장 핵심에 있었던 당사자로서 이명박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정연주 : 어떤 정권이든 그 자신을 규정하는 상징적인 사건이 있다. 지난 1년간 이명박 정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미네르바 사건, MBC <PD수첩> 사건, 용산 참사,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사망과 같은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넷에 익명으로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고 해서 구속하고, <PD수첩> 작가의 이메일을 적나라하게 공개할 수 있는가. 얼마나 인격 파괴적인가. 인간의 권리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지키는 민주주의를 찾아볼 수 있는가.

내 사건도 포함해 이러한 사건들에서 경찰, 검찰, 감사원, 국가정보원, 기무사 등 모든 권력기관들이 권력의 사유물이 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권력기관들은 선출된 권력이 아니라 제도에 의해 보장되는 기관이기 때문에 중립성과 독립성이 더욱 절실한데도 사실상 민주적 통제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 사실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준 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아닌가.

내 사건에서도 검찰의 기소가 얼마나 말이 안되면 법원에서 10가지 조항을 들어 조목조목 다 반박했겠나. 감사원도 온갖 무례한 망나니짓은 다했다. KBS 외주사 7군데를 조사해서 몇 개는 망하기까지 했다. 방송통신위원회와 교육과학기술부는 온갖 장난해서 신태섭 이사를 쫓아냈고 KBS 이사회는 경찰의 비호 아래 졸속 절차를 거쳐 차기 사장을 임명했다. 이러한 과정의 문제가 신태섭 교수 해임 무효 확인으로 불법성이 확인되지 않았나. 이러한 사건들이 이명박 정권의 성격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 "만약 참여정부때 방송위원장이 지금 최시중 방통위원장처럼 행동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겠나." ⓒ프레시안
프레시안 :
지난번 <오마이뉴스>에 올린 '엄기영 사장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을 '망나니가 떠오른다'며 강하게 비판했던데.

정연주 : 모든 정책이 나오는 근원이 대통령이라면 이를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이 있는 법인데,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그야말로 '방송 대통령'의 행세를 해왔다. 만약 지난 참여정부에서 방송위원장이 이렇게 했다고 생각해보라. 지금 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민주당 몫인 이경자, 이병기 위원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어서 독주 체제로 이뤄지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에서 KBS 사장을 뽑는게 아니고, MBC-EBS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지 않나. 당연히 많은 비판과 지적이 있어야 한다.

프레시안 : 최시중 위원장은 자주 KBS를 BBC-NHK처럼 만들고 싶다고 강조한다. 이에 대한 생각은?

정연주 : 그만큼 공영방송을 모른다는 이야기이다. BBC와 NHK는 결코 같은 성격의 공영방송이 아니다. BBC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영국 정부의 파병 정책에 강력하게 비판하는 프로그램과 뉴스를 만들었다. 과연 이것이 최시중 위원장이 말하는 색깔 없는 방송인가. 반면 NHK는 예산을 국회에서 승인하기 때문에 언론의 비판적 기능은 없다. 한마디로 거세된 조직이다.

과연 최시중 위원장이 BBC와 같은 콘텐츠 생산 능력과 자율성을 바탕으로 한 비판적 기능까지를 공영성으로 보고 있을까. 최시중 위원장은 NHK를 모델로 보기 때문에 정연주의 KBS를 인정 못하고 지금의 MBC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KBS는 공영성이라는 이름 아래 무색무취의 방송으로 만들겠다는 것이고 MBC는 '민영화', '이윤 극대화' 논리를 통해 자율성을 축소하고 오락 중심의 방송으로 만들려는 것 아닌가.

"방만 경영-무능 경영 이야기하던 이들, 방송 경쟁력 깎아 먹은 셈"

프레시안 : 사퇴 이후 이병순 체제의 KBS에 대한 비판이 많다. 특히 내부에서는 조직이 경직화되고 있다는 비판이 많은데.

정연주 : 사실 지금 KBS에 대한 내 생각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지금의 KBS 구성원들이 해결해야할 문제이고 중요한 것은 나타난 결과를 어떻게 평가할 것이냐의 문제다. 나는 재임 당시 가장 힘을 기울였던 것은 '상명하복'의 관료적 조직을 헐고 자율의 폭을 넓히자는 것이었다. 이를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팀제를 도입했고 자율을 확대해 기자, PD, 기술, 행정 할 것 없이 일선 직원들이 최대한 창의력을 키울수 있도록 자율성을 확대하려 했다. 나는 일정 부분 달성했다고 보고, 그 결과로 나온 것이 영향력 1위, 신뢰도 1위였다.

일부 거대 신문 들은 '무능 경영', '방만 경영'을 이야기하지만 사적 이윤을 극대화해야할 사기업도 아니고 언론기관으로서 영향력 1위, 신뢰도 1위 이상의 성과가 있을 수 있나. 사실 언론이 권력에 비판적 기능을 하면 신뢰도가 올라간다. KBS 탐사보도팀이 생기자마자 제일 먼저 한 것이 고위공직자 검증이었다. 당시 노무현 정권의 정책 담당자들이 80%였지만 했다. 사장이라면 자율적인 공간 안에서 사원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창의력을 발휘하는 것을 믿어야 한다. 아마 엄청난 자긍심과 보람 등으로 이뤄놨던 것들이 1년 만에 후퇴한 것에 대한 상실감이 KBS 후배들이 더 심할 것으로 생각된다.

▲ "이병순 사장이 게이트키핑을 강화해서 나타난 결과는 결국 영향력, 신뢰도 저하 아니었나." ⓒ프레시안

프레시안 : 이병순 사장이 강조하는 사전 게이트키핑과 공정성, 공익성 간의 관계가 있을까?

정연주 : 이병순 사장이 게이트키핑을 강화해서 나타난 결과가 무엇인가. 영향력, 신뢰도 다 하락하는 게이트키핑 강화, 자율성 축소가 무엇을 위한 것인가. 통제를 강화한다면 과연 무엇을 위한 통제인가. 실제로 KBS에는 다층적인 감시체제가 있다. KBS 이사회와 독립된 감사실, 감사원의 감사, 국회의 예산 결산, 국정 감사, 외부 인사들이 독립적으로 수행햐는 경영 평가 등이다. 이러한 다층적 감시체제에서 통제 불가능한 자율의 문제가 생길 수 있는가. 이는 <미디어포커스>, <시사투나잇>, 등의 프로그램에 대한 정치적-이념적 평가의 문제다. 만약 정연주 시절 KBS가 정말 편향적이었다면 어떻게 신뢰도 1위를 받을수 있었겠나.

프레시안 : 정연주 사장 해직 이후 노동조합을 비롯해 KBS 구성원들이 보수적이라는 비판과 갈등이 많았다.

정연주 : KBS도 그렇고 MBC도 마찬가지고 공영방송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지키는 데는 일단 사장이 중심을 잡고 외풍을 막아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고 그 다음은 사내 핵심 권력인 노동조합이다. 그런데 KBS의 구성 자체가 직접 제작을 담당하는 기자, PD보다는 비제작, 지원 부서 숫자가 더 많다. 그렇다보니 좋은 프로그램을 통한 사회 봉사, 사회 발전보다는 내 개인의 경제적 안위를 더 일차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숫자가 훨씬 많다. 한국 사회에는 약 40% 가량의 강고한 보수집단이 있다면 KBS는 그보다 조금 더 많다.

프레시안 : 2006년 사장 연임 당시 쌓였던 갈등이 해임 사태 당시 빌미가 된 것도 사실이다.

정연주 : 당시 수많은 비판이 일었던 것은 알고 있었다. 당시 나로서는 가장 쉬운 선택은 개인 명예를 생각해 그만 두는 것이었다. 당시 각종 프로그램이 전성기이기도 했고 '박수칠 때 떠나라'의 모습으로 그만둘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그만두면 지난 임기동안 온갖 욕을 먹으며 만들어둔 팀제가 당장 없어질 것이 뻔히 보였고 역사의 흐름 속에서 어떤 것이 더 중요한가를 판단했다. 지금도 그 선택에 후회는 없다. 특히 지난해 떠나기 전 마지막까지 버티면서 정권의 폭력성, 야만성을 노출시키는 계기가 됐는데 그런 역할도 했기 때문에 (연임 선택은) 옳지 않았나 생각한다.

▲ "지난해 떠나기전 마지막까지 버티면서 정권의 야만성, 폭력성을 노출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자평한다." ⓒ프레시안

"MBC 구성원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혜와 용기"

프레시안 : 지난 언론악법 무효 서명운동에도 얼굴을 알아보고 찾아와 악수하는 시민들이 많던데.

정연주 : 주로 '그동안 고생이 많았다'. '이번에 엄기영 사장에게 보낸 글 잘 읽었다', '힘내시라'는 격려가 많았다. 지난달 무죄 판결을 받던 날 복잡한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는데 한 젊은 청년이 지나가다 보더니 손을 흔들며 악수를 하고 축하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외롭지 않구나' 하고 느꼈다. 사실 한창 험한 꼴 당할 때도 촛불 시민들로부터 격려를 많이 받았다. 중풍으로 오른손을 쓰지 못하는 리영희 선생도 삐뚤삐뚤한 글씨로 "당신 지금 배가 12척 밖에 남지 않은 이순신 입장이다. 싸워 남아 이겨라"고 쓴 팩스를 보냈고 백낙청 선생도 전화해서 "장렬하게 전사하시오"라고 말하기도 했다. DJ는 인편으로 간접적으로 "당신 의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고 격려해줬다. 이런 격려들이 참 많은 도움이 된다. 이번에 '엄기영 사장에게 보내는 글'을 쓴 것도 이런 경험에서 개인적으로 격려하기보다 공개적으로 하는 게 힘을 보탤 수 있겠다 싶은 생각에서였다.

프레시안 : 현재 MBC를 두고도 지난해 KBS와 같은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 MBC 구성원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정연주 : 두 가지로 압축하면 지혜와 용기다. MBC를 지키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측면에서 지혜로운 접근을 해야 한다고 본다. 중점을 둬야할 것은 엄기영 사장에 대한 기대치가 아니라 밖에서 몰아쳐오는 힘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의 문제다. 만약 엄 사장이 나가고 나면 그 다음에 어떤 사람이 올 것인지는 뻔한 일이다. 외부의 압력에는 단호하게 막아서고 현 경영진에 대해서는 유연성도 가지면서 대처해야한다. 그리고 이를 막아낼 용기가 있는가, MBC라는 공영방송 체제를 지키기 위해 어느정도 용기를 가지고 있는가를 스스로 냉혹하게 판단해야할 것이다.

"구체적인 행동,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아야할 때"

프레시안 : 우연치 않게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무죄 판결 당일 돌아가셨는데 심정이 어땠나.

정연주 : 재판이 2시였는데 1시 43분에 돌아가셨다. 재판정에 앉아있는데 한 동아투위 선배가 알려줘서 알았다. 어떻게 이렇게 석달 만에 두 분이 돌아가시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돌아가신 것은 권력과 언론의 무자비한 가해 때문이었고 김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본인의 반이 무너졌다고 했다. 결국 전체가 무너져 버린 것이다. 어떻게 석 달만에 이런 비극이 잇달아 일어나는지, 머리가 하얗더라.

프레시안 : 소위 민주개혁세력의 위기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다.

▲ 정연주 전 사장은 품속에서 무브온의 '당신의 나라를 사랑하는 50가지 방법'이 적힌 종이를 꺼내들어 자세히 설명했다. ⓒ프레시안
정연주 :
요즘 '깨어있는 양심'이 되어 행동하는 시민으로 참여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요즘 <프레시안>, <한겨레>, <경향신문>, <오마이뉴스>와 같이 열린 사회를 지향하는 진보매체들이 어려운 것처럼 우리의 언론 환경은 수구 기득권 세력이 압도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요즘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 40% 나온다는 것을 두고 일부 논란도 있는데 지난 20년 간의 여론조사를 보면 한국사회에는 늘 한나라당의 가치, 조중동의 주장을 떠받쳐주는 '37~38%+α'의 강고한 세력이 있다.

결국은 이들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을 묶어내는 연대가 핵심이다. 미국 무브온의 '당신의 나라를 사랑하는 50가지 방법'처럼 우리 사회에 맞는 구체적인 행동 지침이 필요하다. MBC나 YTN에 격려를 보내고 조·중·동을 비판하는 것부터가 참여다. 그리고 크게는 지난 10년간의 집권 경험을 복기해보면서 구체적이고 정교한 정책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특히 당시 정부를 주도했던 관료들이나 여당에서 정책 개발에 참여했던 이들이 자료를 공개해 공개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좋은 정책은 보존할 방법을 찾고 한계는 그를 뛰어넘을 방법을 찾아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제는 추상적인 담론으로 연대를 이뤄낼 시기는 지났다.

프레시안 : 향후 행보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앞으로 정치를 할 생각이 있는지?

정연주 : 나는 글쟁이다. 나는 말의 힘, 글의 힘을 믿는 사람이다. 글로써 그리고 가지고 있는 지식으로서 시민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할 것이다. 그러나 정치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번에 시민주권모임 운영위원에 이름을 올려서 일부 오해하는 이들이 있으나 단지 외연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고자 참여했을 뿐이다. 사실 밖에서 규정하는 것에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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