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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일본의 선거혁명과 '새로운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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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2009년 일본의 선거혁명과 '새로운 일본'

하토야마 시대 일본과 동아시아, 전망과 제언 <1> 일본 정국 전망

코리아연구원(www.knsi.org)과 <프레시안>은 8월 30일 치러진 일본 중의원 선거에 대해 평가하고, 일본의 새 정부와 미국, 중국 그리고 한반도 관계에 대해 전망하고 제언하는 기획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코리아연구원은 통일외교안보 및 사회통합 문제에 대한 정책대안 제시를 목적으로 설립된 네트워크형 싱크탱크다. <편집자>

1. 선거혁명

일본에 드디어 '선거혁명'이 일어났다. 하토야마 민주당 대표가 내걸은 이번 선거의 키워드는 '혁명'이었다. 그리고 선거결과는 '혁명적'이었다. 민주당은 2009년 8월 30일 중의원 선거에서 과반수인 240석을 훨씬 뛰어넘는 308석을 획득했고, 정책차원에서 연립과 제휴가 가능한 사민당, 국민당 등의 의석을 합치면 절대과반수 의석(2/3)인 320석을 넘는 322석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54년만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8월 29일 도쿄 이케부쿠로에서 마지막 유세를 했던 하토야마 대표는 "혁명적인 파도를 느꼈다. 메이지 유신 이후 가장 큰 변혁을 스스로 이루어내겠다는 큰 태동을 강하게 느꼈다"고 감격적인 소감을 드러냈다.

한편, 자민당은 1955년 창당 이후 처음으로 역사적인 대패를 경험했다. 선거 전 300석이던 중의원 의석은 선거 후 119석(소선거구 64석, 비례대표 55석)으로 줄어들었고 전임 수상, 당간부, 파벌영수 등도 대거 낙선했다.

지금까지 자민당이 경험했던 기록적인 대패는 1993년이었다. 선거전에 하타(羽田孜), 오자와(小沢一郎)가 탈당하여 자민당이 분열되면서 비자민 8당파에 의한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기록적 패배였던 93년조차 자민당의 중의원 의석은 223석이었다.

이번의 정권교체는 오랜 시간동안 준비되어 왔다. 보수색이 강한 하토야마와 시민운동가 출신의 칸 나오토(菅直人) 대표대행은 1996년 정권교체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민주당을 창당했고, 98년에는 오카다 간사장 등을 영입하여 지금의 민주당으로 발전했고 2003년에는 오자와 전 대표가 합류했다.

2006년 오자와 대표를 중심으로 지금의 트로이카 체제로 당의 결속력을 높인 후 2007년 참의원에서 제1당이 되어 여야당 역전을 이루었고 2009년 8월 30일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하여 대망의 정권교체를 실현시켰다.

▲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대표가 총선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2. 정권교체

이번 선거는 버블경제 붕괴 이후 계속되는 최악의 경제침체, 5.7%에 달하는 높은 실업률, 급증하는 국가채무, 급속도로 진행되는 고령화 사회에 대한 대응능력의 부족, 관료주도 사회에 대한 피로와 불만, 고이즈미식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후유증으로 나타난 빈부격차의 심화, 자민당의 부정부패와 무능 등에 대한 복합적인 심판이었다.

결과적으로 고이즈미의 개혁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2005년 총선에서 고이즈미(小泉純一郞) 당시 총리는 우정(郵政) 민영화 등 각종 개혁 조치를 내걸면서 여당이 3분의 2 이상 의석을 확보하는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이 같은 자민당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빈부격차를 확대시켰고 서민들의 상실감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게다가 작년 가을 이후 세계경제를 강타한 미국발 금융위기가 회복조짐을 보이던 일본경제에 다시 충격을 가한 것도 이번 선거 패배의 한 원인이다.

3. 체제 변화

이번 선거는 체제 변화의 의미도 지닌다. 자민당 체제는 쇼와 시대(昭和-히로히토 일왕이 재위한 1926-1989년까지의 시대)를 이끌어 왔고, 이번의 선거는 자민당체제와 쇼와세대의 퇴장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번 선거는 '혁명적'이다.

쇼와세대 일본은 일본제국주의, 패전, 전후의 경제기적을 경험한 세대였고, 자민당은 이들 세대를 기반으로 패전한 일본을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만들었고, 일본은 1980년대 세계 최대의 채권국이 되어 미국 패권을 넘보는 위치에까지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자민당은 성장위주의 정책을 펼쳤고, 우수한 관료조직을 기반으로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했다. 보호주의적인 국내정책은 많은 이익단체를 자민당의 외곽조직으로 만들었고 보호받는 농민, 소상인들은 자민당의 득표기계가 되어주었다.

그러나 1989년 히로히토의 서거와 함께 쇼와시대 자민당 체제는 사실상 끝났다. 일본경제는 버블 붕괴로 위기를 맞이했고, 한때 4만선이었던 닛케이종합주가지수는 6000선까지도 폭락했다. 자민당과 관료의 통치모델은 한계에 봉착했다. 자민당의 정치지도자들은 거듭되는 실책과 무능으로 경제는 살리지 못하고 세계최대의 국가채무만을 남겨놓았다. 고이즈미 개혁이 마지막 기회였지만, 고이즈미 정권의 개혁과 경쟁정책은 무한경쟁의 피로감과 빈부격차만을 심화시켰다.

민주당의 압승은 헤이세이(平成) 세대와 새로운 체제의 등장을 의미한다. 지금 일왕의 연호에서 유래하는 '헤이세이'는 일본의 전후 세대를 의미한다. 하토야마(鳩山由紀夫·62) 민주당 대표,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56)도 대표적인 헤이세이 세대이다. 이들은 일본제국주의와 침략전쟁을 모르고 전후 고도성장을 경험한 세대이다.

민주당 의원 가운데 세습의원 비율은 10% 안팎에 불과하다. 40-50대의 헤이세이 세대 유권자들도 성장 중심의 자민당 모델에 피로감을 느끼면서 '국민생활' 중심의 민주당의 공약에 공감하는 세대이다. '출산수당 55만 엔, 아동수당 매년 31만 엔, 고령자 연금수당 7만 엔'과 같은 공약들은 헤이세이 세대의 청년층과 중년층, 그리고 소외된 쇼와세대인 노인층 모두에게 어필했다.

4. 정책변화

민주당은 수출 주도의 경제구조를 개혁하고 내수시장을 확대하려고 할 것이다. 7월 27일 발표된 민주당의 선거공약도 내수 확대와 관련이 있다. 중학생 이하 어린이에게 한 명당 월 2만6,000엔(약 34만 원)의 어린이 수당을 지급하고 농어민에 대한 소득보상제, 고속도로 무료화 등의 항목에 2010년도부터 4년간 총 16조8,000억 엔을 투입하겠다는 것, 최저연금제(7만 엔) 실시, 중소기업 법인세율 인하, 직업훈련생 수당(월 10만 엔) 등도 모두 생활경제와 내수 확대를 위한 정책으로 해석된다.

이를 위한 재원조달은 댐 건설 중지 등 불필요한 공공사업 지출 삭감(1조3,000억 엔), 국가공무원 인건비 20% 감축(1조1,000억 엔), 각종 보조금 삭감(6조1,000억 엔), 소득공제 폐지 및 조세특별조치법 재검토(2조7,000억 엔) 등을 통해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4년간 세금인상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부족한 세수는 기업에 대한 과세 확충과 우정성의 주식 공개 등을 통해서도 보충하려 할 것이다.

대외정책면에서도 변화가 예상된다. 민주당 정권도 미일동맹을 일본외교의 기저에 놓고 있다는 점에서는 자민당과 마찬가지이지만 미국과의 '대등외교'를 주장하면서 중국, 한국 등 아시아 국가와의 관계개선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주일 미군의 지위에 관한 협정(SOFA)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또 민주당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 미국이 요구하는 지역에 대한 군사지원을 재검토하고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도 앞당길 예정이다. 또 아프간전에 참가하는 미군에 대한 해상원유 공급은 시한이 만료되는 내년 이후 연장하지 않을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민주당은 중국과 한국 등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에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하토야마 대표는 한국과 중국이 반대한다면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하토야마 대표는 '아세안, 일본, 중국(홍콩 포함), 한국, 대만은 전세계 경제의 4분의1을 차지하고 있다. 중장기적인 아시아 통화 통합을 위해서는 여기에 필수적인 항구적인 안보 틀 구축에도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5. 정국전망

집권 이후 민주당의 목표는 '93년 호소카와 정권'의 전철을 밟지 않는 것이다. 오자와의 말대로 정권교체는 목표가 아니라 시작이다. 하지만 민주당 정권의 앞날에는 어려운 과제가 산적해있다. 첫째, 그 중에서도 특히 정권공약을 실현하기 위한 재원을 어떻게 확보하여 실행에 옮길 것인가가 관건이다.

둘째, 자민당의 도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도 큰 과제이다. 자민당은 국정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민주당의 각종 정책, 특히 자민당의 주류인 극우파 의원을 중심으로 민주당의 대미외교, 대아시아 외교, 대북정책 등 외교·안보 분야에 대한 강도 높은 공격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민주당이 참의원 단독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한 만큼 사민당, 국민신당 등 연립 또는 공조해야 할 야당과의 관계설정도 변수가 될 것이다. 보다 진보적인 사민당은 민주당과 대립할 가능성도 있다. 내년 7월 예정된 참의원 선거에서 단독 과반수를 확보할 때까지는 다른 소수 정당과의 연립, 공조가 중요하다.

6. 이념충돌

하지만 민주당의 아시아 '우애' 외교에는 보다 더 근본적인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부활하고 있는 민족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첫째, 헤이세이 세대는 전쟁과 군국주의의 공포를 기억하는 세대가 아니다. 이들은 일본의 기적적인 경제성장을 보고 들으면서 그 과실을 향유해온 젊은 세대이다. 이들은 강한 자신감과 자존심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일본이 세계와 아시아에 기여한 만큼은 인정을 받아야 하고 일본은 그런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만약 헤이세이 세대의 인정(recognition) 욕구가 좌절되면 이들은 민주당의 아시아 우애외교에서 등을 돌리고 고립적 민족주의, 일국중심주의로 되돌아갈지도 모른다.

두 번째 도전은 오랜 기간 지속되고 있는 경제침체이다. 장기화된 경제침체는 일본인들에게 심리적 영향을 크게 미치고 있다. 오랜 경제침체를 경험한 오늘의 일본국민들 중에는 미래의 삶의 질이 현재보다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숫자가 늘어가고 있다. 이 때 민족주의는 일본인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고 경제개혁의 추진력을 제공해준다. 만약 민주당 정권이 경제회복의 자신감을 일본국민에게 제공할 수 없다면 일본은 다시 자민당 시절의 보수주의와 일국번영주의로 회귀할지도 모른다.

세 번째 도전은 중국의 급부상이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이면서 세계 최대의 외환보유국가가 되었다. 중국은 국방예산을 2003년 기준으로 과거 14년 동안 계속해서 두 자리 숫자로 늘려오면서 야스쿠니 신사참배, 센카쿠 열도 문제 등으로 일본과 때때로 긴장과 대립의 관계를 연출하였다. 중국의 잠재적 안보위협 혹은 중국과의 지역패권 경쟁의식은 일본의 민족주의에 좋은 자양분이 될 것이다. 중국이 계속해서 일본에게 위협으로 인식된다면 민주당의 아시아 협력외교는 큰 국내적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네 번째 도전은 북한 변수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 납치문제는 일본의 안전보장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키고 일본의 재무장과 보수우경화의 배경이 되어왔다. 따라서 민주당 정권이 만약 납치문제에서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아시아 우애외교를 국민에게 설득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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