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이규진 부장판사)는 이날 "업무상 배임의 고의를 가지고 세무 소송 중단에 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이같이 판결했다. 이런 법원의 판결은 현재 진행 중인 해고 무효 소송에도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 검찰 기소 내용 조목조목 반박
이날 재판부는 검찰 기소 내용을 10가지 쟁점으로 분류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재판부는 △조정의 특성 △조세 소송의 승소 가능성 △KBS가 조정에 임하게 된 경위 △조정의 합리성 발휘 여부 △전문가 의견 반영 여부 △노조의 퇴진 압박의 영향력 등 10가지 판단 기준을 내세워 "정 전 사장이 고의를 가지고 임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특히 법원의 조정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행위를 놓고 업무상 배임의 죄책을 부담시키는 문제는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소송의 승패와 관련해 어느 누구도 판결이 선고되기 전까지는 특정 소송의 결과를 '확실하게' 예측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검찰은 '상급심에서 승소 가능성이 매우 높아' 등의 표현을 사용하나 납세 의무자인 공사의 입장에서 과연 최종적으로 승소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더 많다고 인식할 수 있었는지 여부에 의문이 들 뿐 아니라 객관적으로도 공사 승소 가능성이 50%를 넘는다고 단정 내지 확신할 수 없다"면서 "승소 가능성의 문제와 업무상 배임의 논리적 연관성 인정 자체가 부당하다"고 반박했다.
또 재판부는 "검사는 KBS 사장이 냈어야 하는 공사에 가장 유리하면서도 합리적인 조정안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기재하지 않았다"면서 "공사의 재정 상태 및 경영 상태를 호전시키는 것은 공사 사장으로서의 당연한 임무"라고 지적했다.
▲ 정연주 전 KBS 사장이 배임 혐의 무죄 선고를 받은 직후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프레시안 |
재판부 "정치적 판단을 배제한 법리적 판결" 이례적 강조
한편, 이날 재판부는 선고 직전 이번 판결이 정치적 의미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법리적인 판단에 따른 것임을 이례적으로 강조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언론 장악' 논란의 핵심으로 떠오른 KBS 사태를 다루는 데 따른 부담감을 드러낸 것.
재판부는 "소송 과정에서 변호인단은 이 사건을 현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관계에서 야기된 정치적인 사건임을 주장해왔으나 재판부는 정치적 의미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법리적으로만 판단했음을 밝힌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재판부 역시 최근 미디어법 통과 과정과 맞물려 정치적 의미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으나 순전히 법리적 판단으로 결정을 내렸다"면서 "이후 보도 등을 통해 이 재판이 알려질 때 정치적 성격은 배제한 채 법리적 판단에 따른 것으로 알려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실제로 이번 사건의 중요성을 방증하듯 이날 선고 공판이 열린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2부 505호에는 KBS 관계자, 취재진, 정 전 사장의 지인 등으로 가득찼다. 이들 중 일부는 재판관이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히자 환호성을 지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일찍 재판장에 나타난 정 전 사장은 여유있는 태도로 일부 지인들과 악수를 나눴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전해지자 "알고 있느냐"며 황망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검찰 기소를 조목조목 반박해준 재판부에 감사"
정연주 전 KBS 사장은 판결 이후 기자들의 질문에 "나의 개인적인 소회보다는 이번 판결의 법적 의미와 파장을 설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모든 의견 개진은 변호인에게 맡기고 오늘은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고 의견을 밝히지 않았다.
정 전 사장의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동서파트너스의 김기중 변호사는 "검찰의 기소에 조목조목 반박해 주신 재판부에 감사하다"면서 "이 사건은 법리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기소이고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기소된 사건"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법리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기소를 했다는 것 자체가 기소 자체를 위한 기소라는 것을 드러낸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기중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현재 진행 중인 해임 무효 소송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KBS 이사회 해임 제청의 근거가 된) 감사원의 처분의 중요 이유 중 하나가 '조세 소송의 부당한 처리'였기 때문에 해임 처분의 정당성 다툼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 전 사장의 KBS 사장직 복귀 가능성은 낮다. 김기중 변호사도 "잔여 임기 내라면 검토해볼 수 있으나 임기 후라면 아무래도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며 회의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김 변호사는 검찰의 항소 여부에 "검찰이 항소하지 않아야 할 정도로 부당함을 밝혔기 때문에 아니기를 기대한다"며 "그러나 항소한다면 어쩔 수 없이 법리로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검찰은 "무죄 판결을 납득할 수 없다"며 항소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정 전 사장은 지난 2005년 6월 국세청을 상대로 낸 법인세 부과취소 소송 1심에서 이기고도 항소심 진행 중 법원의 조정 권고에 따라 556억 원을 환급받기로 하고 소송을 취하해 KBS에 1892 억 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기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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