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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명칭도, 노동'조합' 이름도 바뀌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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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명칭도, 노동'조합' 이름도 바뀌어야

[소준섭의 正名論] <3>

'주식(株式)', 한자어만 봐서는 해석을 도저히 할 수 없는 단어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주식(株式)'이라는 단어는 일본이 서구의 상법을 도입하면서 자기 식으로 새로 만든 신조어이기 때문이다.

'주식'이라는 용어는 '좌(座)'나 '조(組)'라는 일본 고유의 옛 상업제도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상인이 영업지역을 한정하여 영업 기간이나 매매 상품 등을 정하여 영업을 하는 시좌(市座)가 생겼으며, 14-5세기에 이르러 이러한 좌(座)의 수가 급증하자 이를 상속이나 매매 등의 대상으로 한 것이 오늘날의 주식의 기원이다. 그리고 1898년 일본의 구(舊) 상법이 이 '주식'이라는 단어를 법률용어로서 수용하였다.

그런데 이 '주식'이라는 용어는 비록 한자로 표기되고는 있지만 음독(音讀)되지 않고 훈독(訓讀)되고 있는 순수 일본어로서 우리가 알고 있는 '주식(株式)'이라는 한자와 관련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 이처럼 일본의 옛 상업제도에서 비롯되었고, 순수 일본어인 '주식'이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참고로 중국에서는 '주식(株式)'이라는 말 대신 '股分'을 사용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1905년 경 '股本'이라는 말을 사용하였었다.

또한 '회사(會社)'라는 용어는 일본 상법이 서구의 회사제도를 도입하면서 '회(會)'라는 글자와 '사(社)'라는 글자를 합성하여 '회사(會社)'라는 용어를 새로 만든 것이다. 일본은 서양어의 전문용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동일한 글자를 거꾸로 사용하여 동의어나 반대어를 많이 만들었다. 일본은 영어 'society'라는 용어에 대하여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의미하는 '사(社)' 자를 기초로 하여 '사회(社會)'라는 단어를 만들고 이것을 다시 도치(倒置)시켜 회사(會社)라는 단어를 만든 것이다. 지나치게 편의적이고 자의적이다. 이러한 예로는 '결의'와 '의결', '합병'과 '병합', '증서'와 '서증' 등이 있다. 중국에서는 '회사(會社)'라는 용어 대신 '공사(公司)'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한편 노동조합이라는 말 중 '조합(組合)'은 독일민법상의 'Gesellschaft'를 일본 민법에서 '조합(組合)'이라는 단어로 번역하여 차용한 것이다. 그런데 '조합(組合)'이라는 단어는 비록 한자어로 표기하고는 있지만 표기만 한자로 하고 읽기는 일본 고유어로 읽는 '훈독(訓讀)'에 의하여 사용하는 순수 일본어이다. 사실 '組合'이라는 한자만 보고는 무슨 의미인지 도대체 해석할 수가 없다. 중국에서는 노동조합을 '공회(工會)'라고 표기하고 있다.

이와 같이 비록 한자로 표기는 되지만 음독되지 않고 훈독되는 일본어를 우리말로 사용하는 경우는 수없이 많다. 가출(家出), 시장(市場), 거소(居所), 입구(入口), 후불(後拂), 입회(入會), 색안경(色眼鏡), 내역(內譯), 유모차(乳母車), 매상(賣上), 추월(追越), 선발(選拔), 수취(受取), 익사(溺死), 격하(格下), 음지(陰地), 대절(貸切), 대부(貸付), 편도(片道), 고목(枯木), 기합(氣合), 생약(生藥), 절하(切下), 절상(切上), 조립(組立), 소매(小賣), 소포(小包), 선취(先取), 선불(先拂), 차입(借入), 부지(敷地), 지불(支拂), 하청(下請), 품절(品切), 수당(手當), 수타(手打), 수배(手配), 취소(取消), 생방송(生放送), 엽서(葉書), 화대(花代), 선적(船積), 견적(見積), 견습(見習), 지분(持分), 행방(行方), 호출(呼出), 할인(割引) 등은 모두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이들 '고유 일본어'는 한자로 표기되면서도 본래부터 한자어가 아니기 때문에 한자음으로 읽히지 않고 뜻으로만 읽힌다. 이러한 일본어들을 우리가 차용(借用)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현재 중국에서도 번역 용어의 타당성에 대한 논의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ideology'를 중국에서는 '의식형태(意識形態)'라고 번역하여 사용한다. 'ideology'는 원래 그리스어 'ιδεα'(사상, 관념)과 'λογοσ'(이성, 학설)의 합성어로서 '사상학' 혹은 '관념학'의 뜻이다. 그리고 '의식형태'란 용어 역시 처음에는 일본에서 만든 번역용어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도 '의식형태'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게 되었고 (현재의 우리처럼) 대신 음역(音譯)하여 표기하게 되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곽말약(郭沫若)이 1938년 일본에 망명 중 마르크스와 엥겔스의『Die deutsche Ideologie』를『독일 의식형태(獨逸 意識形態)』로 번역, 출판하면서 전해져 '의식형태'라는 용어가 중국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현재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인만큼 이 '의식형태'라는 용어를 대단히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번역어는 우선 'logy'에 '형태'라는 의미가 전혀 없다는 측면에서 번역어로서 부적절하다. 또한 'ideology'라는 용어는 기실 현재 "어떤 상황의 진실성에 대한 의식적인 혹은 무의식적인 위장"이라는 이미지를 지니면서 주로 반대 측을 비난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중국에서 '의식형태'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실제로 사람들은 '의식'에 중점을 둘 뿐 '형태'라는 의미에는 주목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결국 'ideology'라는 용어가 지니고 있는 '좋지 않은 의미'는 사라지고 만다.

이러한 상황에서 볼 때, '의식형태'라는 용어는 'ideology'가 지니는 의미를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하고 있고, 따라서 현재 중국도 중국식의 조어를 통하여 적절한 용어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가장 심각한 사실은 일본어에 대한 종속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점

근대화 시기 서구 문명에 대한 수용 정도와 지식층의 양적· 질적 수준에서 한국이나 중국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월등히 우세한 상황에 있었던 일본이 서방 세계로부터 유입된 용어를 '자신들의 눈에 의하여' 정립해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문명개화의 기치 하에 적극적으로 서양의 과학문화기술의 수용에 나섰고, 이때 새로운 용어가 우후죽순처럼 만들어졌다. 반면 한국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도 이러한 방면에서 매우 소극적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용어의 창출은 매우 적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이 서양을 '번역'하여 만든 이른바 '화제한어(和制漢語)' 혹은 '일제한어(日制漢語)'가 한국과 중국의 언어에 깊숙이 침투하게 되었고 마침내 석권하게 된 것이다.

그나마 중국은 이후 상당수의 용어를 자체적으로 재검토하여 정립시키는 과정을 거쳤고, 현재도 계속 그러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비하여 한국은 일제 식민지시기를 겪은 이래 조국 분단과 동족상잔 그리고 급속한 근대화 과정에서 이러한 '청산' 작업을 전혀 수행하지 못한 채 오늘날까지 일본이 만들어 놓은 거의 모든 용어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실정이다. 언어의 사회성이라는 측면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가 아직 일제 식민지시대를 정신적으로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상징적인 징표가 아닐 수 없다. 실로 민족문화란 말, 즉 언어를 바탕으로 하여 이룩되는 것이며, 말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고서는 민족문화와 민족정신이 제대로 설 수 없다.

'저돌적(猪突的)'이라는 말 역시 일본식 조어로서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용어이다. 그런데 이 '저(猪)'란 멧돼지로서 일본에서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상징'으로서 존숭을 받는 동물이다. 그래서 일본의 많은 성씨 중에는 猪木, 猪谷, 猪口 등 '저(猪)' 자가 포함되어 있을 정도이다. 같은 돼지라도 '돈(豚)'은 일반 식용 돼지로서 일본에서 그 이미지는 '저(猪)'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비만이나 게으름 혹은 더러움이다. 이렇게 우리와 다른 문화적 배경에서 만들어진 '저돌적'이라는 말은 그리하여 우리에게 생경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이렇듯 생경한 용어를 사용하게 되면 그것을 사용하는 사회 곳곳에서 정확하지 못한 여러 가지 왜곡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이러한 생경함과 왜곡은 이를테면 기념식수에서도 나타난다. 이전에 기념식수 하면 섬잣나무를 많이 심었다. 나이든 분들은 기념식수 하면 으레 그 나무를 심는 것으로 알았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어릴 적부터 계속 일본 사람들이나 고관들이 섬잣나무를 기념 식수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으며 또 그것이 관행처럼 굳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섬잣나무는 일본나무이다. 특히 이 나무를 정부 기관 관공서에 '기념으로' 많이 심었는데,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국회에도 이 나무의 기념식수가 많다).

가장 심각한 점은 우리나라에서 일본식 용어를 사용하는 현상이 이전 일제 식민지 시대의 유산일 뿐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에 있다. 지금도 각 분야에서 새로운 용어를 우리 스스로 창조해내는 경우가 매우 적다. 이를테면 '파출부(派出婦)'라든가 '원조교제(援助交際)', '폭주족(暴走族)', 또는 일본 언론이 만들고 우리가 그대로 베껴 쓰고 있는 국적 불명의 '재테크(財-tech)' 등의 용어들과 '보험회사'의 상호 이름을 '생명(生命)'처럼 내거는 등 일본에서 현재 사용되고 있고 또 유행하는 용어를 그대로 직수입하여 가져다가 버젓이 우리말인 것처럼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매우 많다.

일본어는 본래 한자어를 부분적으로 떼어내 자신들의 문자를 만들고, 이를테면 우리의 '이두' 방식이 보편화되면서 일본 언어가 탄생되었다. 예를 들어 '加'라는 한자어에서 일본 문자 'カ'를 만들고, 한자 '宇'에서 일본 문자 'ウ'를 만들었으며, 한자 '久'에서 'ク'의 일본 문자를 만들었다. 또한 한자 '安'의 초서체로부터 일본문자 'あ'이 만들어졌고, '奈'라는 한자어 초서체에서 'な'라는 일본 문자가 만들어졌으며, 한자'世'의 초서체로부터 'せ', '奴' 초서체로부터 'ぬ'의 일본문자가 생겼다. 이렇듯 문자의 탄생 자체가 임의성과 편의성을 추구하고 있는데, 이른바 '일제한어(日制漢語)'의 조어방식이 일본 언어를 풍부하게 살찌우고 다양화하는 데 기여한 측면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임의성과 편의성의 추구가 한자어가 본래 지니고 있던 의미와 어법을 지키지 않은 측면 역시 지적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한자어 본래의 체계를 상당 부분 벗어난 것으로서 특히 우리의 경우와 같이 기존의 한자어에 기반을 둔 사회에서는 그 의미와 어법상 혼란과 왜곡이 상당한 문제로 부각될 수밖에 없게 된다. 다른 시각에서 이해해보자면, 이러한 현상은 일본 사회에서 사회 구성원인 일본 대중들 간에 일종의 '합의'와 '계약'에 의하여 진행되고 있는 경향으로 이해될 수 있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사회 구성원 사이에 전혀 '합의'나 '계약'의 과정도 없이 그 '일본식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우리의 경우이다. 설사 백번 양보하여 일제 식민지시기에 있어 그러한 경향은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고 할지라도,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현상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우리 언어의 정체성, 나아가 민족 정체성에 있어서 대단히 심각한 문제이다.

물론 일본식 언어라고 하여 그것들을 모두 배척하자는 것이 아니고 또 그렇게 할 수도 없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늦었다고 탄식만 할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그리고 정책적으로 이러한 왜곡된 현상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 사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지리적 근접성으로 인하여 언어의 접촉과 간섭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서 어느 정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와 일본의 관계는 식민지시기를 거쳐 지금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제반 분야에서 나타나는 심각한 종속성이 문제가 되는 국가 관계로서 결코 프랑스와 독일의 관계와 같은 평등한 국가관계의 차원과 동일하게 인식할 수는 없다.

언어가 인간과 사회에 총체적으로 미치는 지배력과 영향력을 상기한다면, 언어의 종속성이란 원칙에 맞지 않는 조어 방식으로 말미암아 언어생활의 혼란과 왜곡을 초래하게 된다. 이는 언어의 위기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이는 필연적으로 정신과 문화적인 측면을 포함하는 전 민족의 삶의 총체에서 나타나는 종속화, 즉 민족정신과 민족의식을 취약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언어는 개념을 만들고, 언어생활은 사고를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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