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이 발전기금을 모금하는 행동(사진전)을, 유인촌 장관은 공금을 횡령했다며 부정했습니다. 총장이 국회에서 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사진을 촬영했다고, 유인촌 장관은 '근무지를 이탈했다'며 부풀렸습니다. 총장이 주말에 자기 비용으로 외국을 다녀오면서 장관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유인촌 장관은 규정도 모르고 예의 없음을 비난했습니다. 총장이 학교현안으로 늦은 시각까지 일하다가 인근에 사는 보직교수들과 멕시칸바베큐치킨에서 3년간 30여 차례에 나눠서 마신 맥주 한 잔을, 유인촌 장관은 룸싸롱에서 280만원을 유용했다는 뉘앙스로 언론에 흘렸습니다."
학생들의 격앙된 어투가 다소 섞여있다 치더라도, 3년간 맥주 값으로 280만원을 유용했다는 것은 참으로 치밀한 변태가 아니고서야 해내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문광부의 정략은 너무 투명하고, 그 집착은 너무 병적이다. 예술가 이전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 참 낯이 뜨거워진다. 이러한 정부의 졸렬한 행태에 대해서는 많이 회자되고 있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조금 더 깊은 문제에 대해 살펴보려한다. 표적은 황지우 총장에게 국한되지 않고, 몇 명의 교수들과 그 교수들이 속한 이론과로 향해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한국예술종합학교의 분해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이론과 실기'라는 옛날이야기
황지우 '시인'은 사퇴의 변에 이렇게 썼다.
"이론과를 폐지하고 실기교육을 강화하는 등 한예종 구조 전반에 대한 리모델링을 해당 국/실에서 추진하겠다"는 문화부 감사관 발언에 나는 경악을 금치 못한다. 예산집행이나 행정절차에 대한 감사 지적은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매우 섬세하고 특수한 예술교육분야에서 아카데믹 시스템이나 교육 프로그램을 행정관료들이 손보려 하다니, 나는 거기서 파생될 우리 문화의 전반적인 반달리즘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문광부 감사관들이 두 달이 가깝게 감사한 결과 얻어낸 핵심 결론이 이론과 폐지, 축소라고 한다. 서사창작과와 협동과정은 아예 폐지하고, 영상이론과를 위시한 각 원의 이론과정을 폐지 또는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문광부가 이론과 실기의 관계에 대해 어떤 심오한 연구를 한 결과가 아니라, '문화미래포럼' 등의 우익단체에서 '좌파'로 지목해온 몇 명의 교수들을 잘라내겠다는 '공작'이다.
'문화미래포럼'과 문광부에서 특정 교수들을 '좌파'로 본다고 해도,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념이나 정견이 다르다고 멀쩡한 교수를 잘라낼 권한은 대학 바깥에 있을 수 없다. 그래서 기껏 꼼수를 낸 것이, 이론 전공이 비대하다느니, 영재교육으로 가야한다느니, '기초예술'교육을 해야 한다느니 하는 참 보기에도 딱한 구실을 찾는 것이다. 더욱 한심한 것은 예술교육을 한다는 이들조차 이에 동조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앞장서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문화미래포럼'이 주최한 한 심포지엄에서 동국대학교 정재형 교수는 한예종의 구조조정안을 내 놓았는데, 그 1단계가 각 원에 있는 이론과 및 협동과정을 폐지한다는 내용이다. 2단계는 기존 예술대학과 중복되는 전공은 폐지해 단일하고 축소된 형태의 영재조기교육학교로 남긴다는 것이다. 다른 학교 교수가 타 대학 구조조정안을 발표하는 사실 자체도 희한하지만, 그 1단계 작전을 매뉴얼 삼아 신속하게 진행하는 문광부는 또 뭔가?
그런데 이런 구실을 단순히 구실로 보기에는 뭔가 더욱 불길한 것이 있다. 이론교육과 통합교육 폄하는 그들이 미워하는 교수 몇 명을 해임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한 것 같지만, 그러나 동시에 단순히 구실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정색하고 돌아보건대, 극우문화단체와 문광부는 정말로, 예술이론이 예술교육에서 중요하지 않다든가, 또는 별개라고 실제로 깊이 믿고 있을 수 있다. 순간 나는 내가 다녔던 미술대학의 종갓집 제삿날 같은 분위기, 오직 '작품으로 말하라'는 저 오래된 한국적 예술교육의 몽매주의의 냄새를 맡는다. 평론가와 작가의 유치한 권력다툼, 이론과 실기의 철저한 분리, 예술 장르 사이의 답답한 장벽이 수 십 년 동안 우리 예술계, 예술교육을 지배해왔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 한예종 강의실 문에 붙어 있는 학생들이 '유인촌의 상상력을 반대한다'는 제목으로 낸 성명, ⓒ프레시안 |
'영상기술'을 모르는 백남준을 생각할 수 있나?
문화부가 중단하라고 지시한 '통섭교육'은 통합교육을 발전시킨 개념이기도 하지만, 특히 르네상스 이래 과거의 우수한 문화예술의 산물이, 이미 통섭의 결과라는 발견에서 온 것이다. 보들레르 없는 마네를, 부르통 없는 초현실주의를, 그린버그 없는 잭슨 폴락을, '카이에 뒤 시네마(Cahiers du Cinéma)' 없는 누벨 버그 영화를, 영상기술에 문외한인 백남준을, 과학과 정보에 무관심한 미디어 작가를, 보들리야르를 읽지 않은 포스트-모더니즘 예술가들을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바로 이것이 종합예술대학이 필요한 이유이자, 이론-비평 수업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일반 종합대학과는 달리 문화부 산하에 '종합'해둔 것은, 애초부터 통합교육의 중요성에 따라 세워진 해외 유수의 예술대학을 모델로 했기 때문이다. 예술종합대학의 경우, 일반종합대학의 커리큘럼은 물론, 제도와 행정, 심지어 교수의 자질까지 전면 다를 수밖에 없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자. 내가 알고 지내는 학생 중에 하나는 미술원 조형예술과를 다녔지만, 비디오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 그는 다큐멘터리 안에 애니메이션을 많기 쓰기 때문에 애니메이션을 부전공으로 했다. 졸업 후에는 방송영상 전문사과정(석사과정)에 입학했다. 조형예술과에서는 아방가르드 예술이론과 비평언어에 큰 흥미를 가졌고, 다른 한편으로는 현대미술이 한계를 지니고 있는 대중성을 애니메이션과 영상을 통해 극복하고자 했다. 이 학생의 작업은 이미 미술이론, 영상제작과 기획, 창작에 이르는 과정을 꿰뚫어가며 매우 특이한 융합을 이뤄냈고, 미술계와 영화계에서 이미 작은 수상경력을 지니고 있다. 이 학생에게 '스스로 통섭교육'은 이미 체질화되어 있고, 자연스러운 것이며, 심지어 분과교육이 거추장스러울 정도이다.
물론, 전공 분과교육이 무의미하다거나 이론과 실기가 같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예술대학들이 앞 다투어 벤치마킹했던 캘리포니아 예술대학(California Institute of Arts)의 90년대 요강에는 심지어 이런 표현까지 등장한다. "학교의 모든 자원들이 모든 학생들에게 개방되어 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경계, 전제와 목표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게 하는 일종의 제도화된 마찰을 일으킬 수 있다." 심지어 '제도화된 마찰'을 일으키는 것이 장려된다는 말이다. 이러한 장르와 장르, 이론과 실기, 예술과 과학 사이의 통합, 연계, 협동교육은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예술범주에 의문을 갖고 새로운 예술에 대한 관심을 늘여갈 수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각 범주 자체의 심화와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가 미술이나 음악을 단지 효과적인 툴로 삼는다면 영화 자체가 발전하지 않으며, 화가가 사진을 포함한 복제 매체를 이해하지 못하면 현대회화의 가치를 다할 수 없다는 말과도 같다.
이제 2000년대도 10년이 지나가고 있다. MIT 미디어 랩이나 스탠포드대학의 Arts Initiative 등 매우 야심찬 융합교육이 이미 유수의 대학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문제는 그동안 조사하고 연구해온 사람들에게 맡겨놓을 일이지, 공무원이나 구식 예술교육에 익숙한 사람들이 외부에서 왈가왈부할 일이 아닌 것이다. 나는 솔직히 이런 말을 좋아하진 않지만, 때로는 정말 안 할 수가 없다.
"너나 잘하세요."
장관은 공적인 '욕지거리'를 하고, 시인을 능욕한다
현 정부의 문화관은 때로 너무 창조적인데, 그 창조성의 핵심은 엉뚱하다는 데 있다. 문화부에서 강조하며 한예종의 새 정체성으로 몰아가려고 하는 2단계 작전 키워드인, '영재조기교육'도 그렇다. 때로 고전음악의 연주나 무용과 같은 분야에서 영재는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대예술에서 영재란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라는 말 그대로의 의미를 넘지 않는다. 선대의 예술 체험, 이해와 삶의 절대적인 경험이 없이 어떤 훌륭한 미술작품이나 연극, 영상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예술영재를 신경조직이 특별히 발달한 기계로 취급하는 나라는 아마 북한 밖에 없을 것 같다. 북한에서는 '조선화'를 어른 못지않게 잘 그리는 아이들이 많이 있는데, 아주 끔찍한 일이다. 반공주의에 철저한 극우세력이 이런 북한의 예술(교육)론을 신봉한다는 것은 언뜻 봐서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조금 더 들여다보면, 남한의 극우세력이 북한에 대한 하나의 거울상이라고 보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어쨌든 교권과 예술의 자율성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일종의 문화적 바보가 영재를 가르치는 학교를 만들겠다는 것은, 듣는 영재가 민망할 일이다.
유인촌 장관은 황지우 총장을 면담하는 중에 통섭교육을 중단하고 '기초예술'에 전념하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기초예술'이란 말을 들고 나오며 영상원 등을 표적으로 한예종을 분해, 축소하려는 것도 역시, 듣는 '기초예술가'로서 엉뚱하게 느껴진다. 국내에서 '기초예술'이란 말은, '순수예술'을 대체하면서 문화산업으로 문화예술 관심도가 집중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한 개념으로 등장했다. 즉 이윤동기로 움직이는 문화산업에 경쟁하기위한 개념으로 문학이나 미술 동네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런 면에서는 어느 정도 유용한 것이었지만, 일단 개념 자체가 '회화는 영화의 기초이다'라는 식의 단선적인 사고를 조장한다. 거꾸로 소설이나 회화작품의 기초가 방송이나 영화가 되는 경우도 수없이 존재한다. 신디 셔먼 작품의 기초는 히치콕의 영화이고, 앤디 워홀의 실크스크린에는 마릴린 몬로의 입술이 수 백 번 반복된다.
▲ 지난해 국정감사장에서 유인촌 장관이 기자들에게 욕설을 하던 장면. ⓒ프레시안 |
마치 '나치'와 같이, 자멸에 이르는 길
미술가인 나로서는 그동안 문광부에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참고 또 참았다. 그래도 선거로 만들어진 정부니까 잘 해주기를 바라기도 했고, 예술 이전에 나라 전체가 흉흉한 것이 더 중요하고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광부는 이제 어떤 선을 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를 죽음으로 몰아가더니, 반성은커녕 오히려 상중에 그들의 '숙원사업'을 몰아치는 놀라운 윤리의식을 과시했다.
이제 국립 예술대학인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수장이 뉴라이트 문화계의 대표적인 인물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지난해 국감에서 최문순 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정진수 교수는, "한예종은 문화예술분야의 좌파 엘리트 집단의 온상으로 새 정부가 들어선 마당에 전면적인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러한 인식 자체가 문화예술과는 거리가 먼 거의 순수하게 정치적인 것이다. 이것은 거의 1930년대에 독일 바우하우스-기술산업과 예술을 '통섭'하려고 했던-를 해체하던 나치스를 연상시킨다.
다음의 인용문은 1933년 베를린의 비밀경찰국이 당시 바우하우스의 교장이었던 미스 반 데어 로에에게 보낸 편지이다. 국가사회주의자(나치)들은 바우하우스의 중요 교수들을 축출하기 위해 그들에게 공산주의자라는 낙인을 찍었다. 바우하우스는 독일에서 결국 해체되었고, 망명한 일부 교수들에 의해 시카고에서 다시 시작되어 지금까지 그 자산을 광범위하게 남기고 있다. 반면 나치는 자멸했다. 현 정부를 나치와 동일시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라고, 나도 믿고 싶다.
※극비 국가 비밀 경찰 베를린 S.W. 1933년 7월 21일 프린츠 알브레히트가 8 미스 반 데어 로에 교수 바우하우스 베를린 슈테글리츠에 관하여: 바우하우스 베를린 슈테글리츠의 재개는 몇 가지 난점의 제거 여하에 달려 있다는 것을 프로시아 주 과학 예술 교육장관과 합의 1)루트비히 힐베르자이머와 바실리 칸딘스키는 더 이상 교단에 서서는 안된다. 그 들의 자리는 국가 사회주의 사상의 원칙을 확실히 지지하는 자들이 차지해야한다. 2)지금까지 시행되어 오던 교육 과정은 우리 국가의 내부 구조를 확립하려는 새 국가의 요구를 충족시키기에는 불충분하다. 그러므로 적절히 수정된 교육 과정이 프러시아 주 문화장관에게 제출되어야한다. 3)교수단은 시 공무원법의 요건을 충족시키게끔 질문서를 완성해서 제출해야한다. 바우하우스의 존속과 재개에 관한 결정은 이와같은 문제점의 극각적인 제거와 상기조건의 이행 여하에 따라 이루어질 것이다. 명령에 의하여:페헤박사(서명) 입회인(알아볼 수 없음) 법원 직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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