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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대학 총장의 '쇼'와 김연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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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대학 총장의 '쇼'와 김연아 (3)

[기고] '서울대 폐지론'은 유효한가

돌아보건대, 지난 2년간 교우회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1907년 고대교우회가 창립된 지 정확하게 한 세기만에 교우 출신의 대통령이 배출되는 경사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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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일부 언론에서는 '고소영'이니 '고대민국'이니 하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세계적인 대공황 속에서 희망의 메시지보다는 어두운 전망을 내놓은 기사가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 고대인은 이런 분위기에 좌우되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우리의 길을 걷되, 다만 전 국민의 단결과 화합을 위해서라면 항상 더욱 몸을 낮추고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천신일씨가 3월 30일 고대 교우회장에 재선된 뒤 웹사이트에 올린 '인사말'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가까운 친구라는 천신일 세중나모여행사 회장은 요즘 이런 저런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언론에 가장 많이 오르는 사람이다. 그는 탈세와 수상한 주식 거래뿐 아니라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 이명박 후보를 위해 거액의 자금을 동원했다는 혐의를 받는가 하면 태광실업 박연차 전 회장과의 '뒷거래'의혹까지 받고 있다. 사법처리 여부는 검찰이 수사를 마치고 결정하겠지만, 이렇게 법적, 도덕적 시비에 휘말려 있는 인물이 '28만 교우 여러분'을 향해 '고소영'이나 '고대민국' 같은 세간의 용어들이 부당하다고 말하는 것은 설득력이 별로 없다. 지난 늦겨울에 1천여명이 회원이라는 고대민주동문회가 근래 고려대 경영진과 교우회 일부 간부들의 행태를 준열하게 비판한 것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고소영과 고대민국이라는 말이 뿌리 없이 나왔을 리는 없다. 이명박 정부가 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출신을 도에 넘게 중용하면서 사회 지도자로서 도덕성이 만신창이가 된 사람 대다수를 끝까지 옹호하는 행태를 지적한 것이다. 그런데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는 이런 말들을 '일부 언론의 신조어'라고 단정하면서 "우리 고대인은 이런 분위기에 좌우되지 말고 전 국민의 단결과 화합을 위해서라면 더욱 몸을 낮추고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 주장하니 그 진정성을 누가 인정하겠는가?

고려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국민과 사회를 향해 이런 강변을 하지 말고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래 그 학교가 저지른 독선과 오만, 특권층을 위한 교육적 편향 같은 것을 사과하고 시정하는 것이다. 2008년 입시에서 외국어고 학생들을 우대하는 등 사실상 고교등급제를 적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2006년에 출교 조치를 당했다가 법원의 판결에 따라 복학한 학생 7명을 다시 무기정학 시키는 비교육적이고 감정적인 처사를 태연히 해치우고, 재학생 정 아무개씨가 등록금을 내지 못해 지난 3월 자살하자 가장 높은 등록금을 받는 학교 중 하나이니 등록금을 많이 낮추라는 여론이 일어나도 요지부동인 고려대 경영진.

'호가호위'(狐假虎威)라는 말이 있다. 사전에 나오는 뜻은 '남의 권세를 빌려 위세를 부림'인데,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호기를 부리는 것을 비유로 나타낸 말이다. 지금 고려대 경영진과 교우회 회장은 이 말을 어떻게 생각할는지 궁금하다. 특히 관훈포럼에서 고려대 이 총장과 똑같이 '약학대 신설 계획'을 밝힌 연세대 김 총장은 '안암골 호랑이'의 등에 타려는 '신촌골 독수리'라는 지적이 나온다면 무엇이라고 응답할까?

'고대민국'이라는 말은 곧 '서울대의 나라'를 연상시킨다. 지금은 고려대 출신이 대통령이라서 그렇게 말하는 듯한데, 1990년대 중반에는 서울대를 나온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지배한다는 뜻으로 '서울대의 나라'를 썼다. 내가 일하던 신문의 1996년 2월 9일치에 '서울대 폐교론'이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쓴 기억이 난다. 지금도 그렇지만 '서울대 하나가 온 대학과 교육정책을 좌지우지하는 현실'을 개혁하지 않고서는 국가도 가정도 청소년들도 건강을 지킬 수 없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런 글을 썼다.

나는 현실적으로 서울대를 없애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전제를 하고 서울대가 우리나라의 교육을 병들게 하는 현상을 제거하자는 뜻으로 폐교론을 주장했다.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는 대학의 피라밋 체제가 다른 대학들의 열등의식을 갈수록 심하게 만들고, 서울대 출신의 국가 권력 과점현상이 민주화에 장애가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서울대를 그 정점에서 떼어내기 위해 대학원대학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 칼럼에 대한 반응은 다양했다. '과격하다' '현실을 외면한 이상론이다''늦었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서울대를 나온 사람이 어떻게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는가. 당신은 애교심도 없나'등이었다. 가장 한심한 질문은 "당신 아이가 서울대에 못 가서 그러는 것 아닌가"였다. 나는 그냥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얼마 뒤에 서울대 본부 기획실에서 전화가 왔다. '서울대 발전 계획에 관한 토론회'가 열리는데 '서울대 폐지론'을 주장한 내가 참석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묘한 느낌을 받았지만 그 토론회에 나갔다. 그 모임에 참여한 이들은 대부분 서울대를 졸업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분야에서 크게 '성공'한 명사들이었다. 서울대 폐지론자는 나 하나였고, 대구· 경북지방의 국립대 총장이 서울대 중심의 발전계획을 적극 반대했다. 토론 진행자가 나한테 "왜 모교를 없애자고 주장했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칼럼에 쓴 내용을 풀어서 설명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 토론을 방청한 학생들 다수가 자기네 학교 문을 닫자는 말을 아주 진지하게 듣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토론이 끝날 무렵 지방 국립대 총장이 손을 번쩍 들고 발언 신청을 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서울대 형님들, 제발 우리 지방대학들 좀 살려 주이소. 그렇잖아도 우수한 아이들이 서울대만 가려고 해서 우리는 쭉정이들을 받는 처지인데 서울대가 이번에 이렇게 거창한 발전계획을 세우고 나라 예산까지 싹 쓸어가버리면 우리는 어찌 살란 말입니까?"그의 몸짓이 하도 희극배우 같아서 처음에는 까르르 웃던 청중이 나중에는 숙연해졌다.

그것은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정부'가 1998년 2월 25일에 들어선 뒤에도 사정은 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해 5월 26일치 같은 신문에 '서울대 서울대 서울대'라는 제목으로 다시 폐교론을 주장했다.

"얼마 전에는 서울대가 예년보다 특차모집 정원을 크게 늘린다고 발표하자 다른 대학들이 그야말로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서 수를 크게 줄이게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런 진흙탕 싸움은 서울대만의 잘못도 아니고 '점수가 얽어 놓은 학교 순위'의 사다리 위에서 피해의식과 자기방어에 가위눌려 지내는 다른 대학들의 탓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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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서울대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정부 상층부와 고위관료체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나라를 두드러지게 발전시키기는커녕 마침내 국제통화기금 신탁통치를 불러왔다. 그것은 무능한 어느 대통령이나 경제각료들만의 책임이 아니다.

1996년 늦봄부터'서울대 망국론'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서울대의 폐해와 교육 죽이기, 서울대 출신들의 권력 독과점이 빚어내는 모순을 끈질기게 고발하면서 그해 6월에 '서울대의 나라'라는 책을 낸 사람은 전북대 신문방송학과의 강준만 교수였다. 그는 이 책에서 서울대 패권주의, 이 전쟁을 언제까지 할 것인가, 학연주의 망국론, 학벌주의 망국론, 서울대특별법?, 서울대는 부끄러움을 모르는가, 언론이 달라져야 한다는 주제로 논리를 전개함으로써 서울대를 중심으로 한국의 정치· 사회 · 문화· 지역차별을 연구하는 작업을 사회과학의 새로운 분야로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했다.

내가 고려대와 연세대 총장이 벌인 '약학대 신설'이라는 '호가호위'류의 쇼를 소재로 글을 쓰다가 마지막 대목에서 서울대를 거론하는 까닭은 이 세 학교 모두가 우리나라 교육의 병폐와 모순을 치유할 의지를 굳히기 보다는 그것을 확대재생산 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교육은 인간이 우주 만물에 대한 지식을 바르게 갖고 진리를 터득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기르도록 함으로써 인류가 자유와 평화와 번영을 함께 누리도록 하는 일이라고 믿는다. 그런 교육을 제대로 받은 사람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나라일수록 삶의 질이 뛰어나고, 사회 구성원들이 느끼는 행복지수도 아주 높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렇게 바람직한 교육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삶의 질과 행복지수가 세계 200여개 나라 중에서 뒤로부터 세는 것이 빨라지는 것이다.

영국의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2006년 8월 1일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나라는 덴마크'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영국의 레스터대학이 세계 178개 나라를 대상으로 해서 100건의 전 지구적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한 '행복지도'의 내용을 보도한 것인데, 보건복지와 교육이 잘 되어 있는 나라들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1위 덴마크에 이어 스위스, 오스트리아, 아이슬랜드(2008년 후반기에 신자유주의의 파산으로 국가 부도가 나기 전의 조사 결과임), 바하마제도, 핀란드, 스웨덴, 부탄, 브루네이, 캐나다가 10위까지의 순서였다.

프랑스는 62위, 세계 제2의 경제대국 일본은 90위였는데, 한국은 100위 안에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이 조사가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경제대국이 '행복대국'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나는 꼭 이런 조사 결과 때문만이 아니라 가능한 한 많은 국민의 행복감과 공동체 의식을 높여 삶의 즐거움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서 한국은 덴마크를 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덴마크를 잘 모른다. 그래서 백과사전 식 지식에만 기댈 수밖에 없었는데 근자에 인터넷에서 김영희씨라는 여성이 쓴 글을 여러 편 보고서야 '아, 그래서 한국이 그 나라를 스승으로 삼아야 하는구나'라고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경기도 과천시에 사는 나이 지긋한 그 분은 가족과 함께 세계 여러 나라에서 생활했는데 덴마크에 가장 오래 머물면서 교육, 문화, 정치, 경제, 환경은 물론이고 국민들의 삶을 생생하게 보고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김영희씨는 '한국에서 살아보니'라는 제목으로 <프레시안>에 자주 글을 올리고 있는데, 지난 7일에 나온 '사교육 광풍 대책 정말 모르시는가요'는 우리나라 대통령부터 교육과학부 장관과 각료, 대학 총장, 학부모, 학생, 교수와 교사, 언론인까지 모두가 읽어 보고 깨우침을 얻어야 할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덴마크의 교육제도는 기본적으로 아이마다 능력이 다르다는 생각에 기초한다. 예를 들어 공부 못하는 아이는, 공부를 못한다기보다 능력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부 잘하는 아이라고 특별히 칭찬하는 일도 없고, 못하는 아이라고 무시하는 일도 없다. 공부라는 한 가지 잣대로 아이를 평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8학년까지는 시험도 없다. 평가라고 하면 담임선생님이 아이에 대해서 다각도로 세밀하게 관찰한 것을 수치가 아니라 말로 기록한 것이 평가다. 우열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름이 있을 뿐이라는 이 생각의 근본은 인간에 대한 평등 정신이다. 북구 특유의 복지제도는 바로 이 평등 정신의 소산이다."

덴마크에서는 교사가 학생들에게 지식을 주입하지 않고 학생들이 알려고 하는 것을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능력을 심어주는 것이 훨씬 실질적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교사의 절대 다수와는 정반대이다. 그리고 덴마크에는 우열을 가리는 평가나 줄 세우기가 없어서 그 누구도 사교육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사교육이 있다면 일주일에 한 번 악기나 특별한 취미를 배우는 정도인데 비용도 비교적 저렴하고 아이 스스로 원해서 하기 때문에 우리 식의 사교육과는 다른 분위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올해 사교육비로 20조원 이상이 들어갈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연평균 국민소득이 6만 달러가 넘는 덴마크에서는 사교육비를 거의 쓰지 않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로 돌리고 있으니 이대로 가면 한국과 덴마크의 소득 격차는 갈수록 벌어질 것이 분명하다.

"다른 유럽 국가들도 그렇듯, 덴마크에서는 대학이 우리처럼 서열화 되어 있지 않다. 어느 대학이 어느 분야에서 뛰어나다는 평가는 있어도 우리처럼 획일적인 서열이 있는 것은 아니다. 졸업 후에 어느 대학을 나왔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아니 대학을 나왔냐 아니냐 자체보다 어느 정도의 전문가인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교육이 이런 평등사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니 교육 수준이 높은 의사 못지 않게 벽돌을 잘 쌓는 전문가를 존경한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들으면 꿈 같은 소리이다. 그리고 워낙 고율의 누진세 때문에 세금을 제하면 의사와 벽돌공, 페인트공과 변호사의 수입이 비슷하다. 이런 사회에서 누가 굳이 '내 아이는 고위 관료, 판사, 검사, 변호사, 의사 말고는 안 시키겠다'고 고집하겠는가.

김영희씨는 덴마크를 거울 삼아 "요즘 세상의 국가 경쟁력은 학생들의 시험성적에서가 아니라 창의력에서 나온다고 봐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구구절절이 동의할 수밖에 없는 말들이다.

나는 2008년 3월부터 지금까지 수도권의 한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중고등학교가 시험성적을 올리는 데만 온 힘을 쓰다 보니 창의력 기르기는 완전히 포기한 상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교육행정 당국은 물론이고, 점수만으로 응시생의 우열을 가리는 것을 최고의 평가방법이라고 굳게 믿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의 총장들과 전국의 대학 운영자들이 이제부터라도 덴마크의 평등사상과 창의력 중심의 교육제도를 본받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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