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종락 외교통상부 차관이 3일 국회에서 이 대변인의 브리핑이 잘못됐음을 시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김은혜 청와대 부대변인이 권 차관의 말을 뒤집었다.
이처럼 '대통령의 입'인 청와대 정·부대변인과 고위 외교 당국자의 오락가락 해명이 계속되자 국민들의 국정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미국의 대한(對韓) 불신감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이동관 대변인과 김은혜 부대변인 ⓒ연합뉴스 |
외교차관 "브리핑 없었다"…청와대 부대변인 "한국만 공개"
사태의 발단은 이동관 대변인의 '뻥튀기' 브리핑이었다. 이 대변인은 지난 2일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면서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의 로켓 발사에 대비해) 유엔 안보리의 제재 결의안을 준비 중에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상회담 후 나온 백악관 보도자료와 미 행정부 고위관계자의 배경설명에는 오바마 대통령이 그런 말을 했다고 되어 있지 않았다.
이에 <프레시안>은 3일 그러한 사실을 보도한 뒤 이명박 대통령의 영국 방문을 수행하지 않고 서울에 남아 있는 청와대 고위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설명을 요청했다.
외교안보 문제를 담당하는 이 관계자는 이날 오후 통화에서 "'유엔에서의 단호한 대응'이란 곧 새로운 대북제재 결의안의 추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유추해석'하면서, '오바마 대통령이 제재 결의안이라는 말을 했냐'는 질문에 대해선 즉답을 피했다.
그로부터 1~2시간 후 권종락 외교부 1차관은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이동관 대변인의 브리핑이 잘못된 것임을 보다 분명히 했다.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의 질의에 대해 권 차관은 "(오바마의 발언에) 새 결의안, 어떤 결의안이라는 표현은 있는데 제재 결의안이라는 표현은…"이라고 말끝을 흐려 브리핑이 허위였음을 사실상 시인한 것이다.
권 차관은 이어 "브리핑이 잘못 된 것인지, 언론 보도가 잘못 된 건지는…"이라며 책임을 언론에 미루기도 했으나, 오바마 대통령이 '제재 결의안'이란 말을 쓰지 않았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잠시 후 민주당 박상천 의원으로부터 유사한 질의를 받은 권 차관은 자신의 이전 답변을 뒤집는 동시에 사실과 명백히 다른 말을 하면서 갈팡질팡했다.
권 차관은 "지금 확인해보니 우리는 브리핑을 그렇게 한 적이 없는데 언론이 부정확하게 보도한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 대변인이 했던 문제의 발언은 청와대 취재지원시스템인 'e춘추관'에 그대로 남아 있어 권 차관은 결국 '허위진술'을 한 셈이 됐다.
그 즈음 런던에 있던 김은혜 청와대 부대변인도 뒤죽박죽 해명 릴레이에 가세했다. <한겨레>는 4일자 사설에서 김 부대변인이 "미국은 브리핑을 하지 않은 것이고 우리는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고 전했다. 오바마의 발언은 실제로 있었는데 한국만 공개한 것일 뿐이라는 말이었다.
김 부대변인의 해명은 여기저기와 충돌한다. 우선 <프레시안>과 통화한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유추적 해석'과도 맞지 않다. 또한 '제재 결의안'이란 표현은 없었다는 권 차관의 전반부 답변을 뒤집는 것이고, '브리핑은 없었다'는 후반부 답변과도 모순된다.
이동관 대변인, 작년에도 부시 발언 '작문'
이동관 대변인은 작년 8월 한미 정상회담 때에도 조지 부시 당시 대통령의 발언을 허위로 지어내 외교결례 논란을 일으켰던 적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한반도 지도에 그려진 독도를 가리키며 "이것이 독도입니다(This is Tokdo island)"라고 하고 부시 대통령이 "알겠습니다(I know)"라고 하자, 두 사람의 말을 함쳐 "부시 대통령이 '나는 독도를 안다(I know Tokdo island)'고 말했다"고 소개한 것이다. (☞관련 기사 : 부시는 '독도'를 입에 담지 않았다. 그런데…)
청와대 대변인이 정상회담에 참석한 상대국 정상의 말을 지어 낸다는 것, 그것도 두 번씩이나 그렇게 했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다.
특히 이번 '제재 결의안' 허위 브리핑 파동은 단순 '외교결례'를 넘어 북한의 로켓 발사 이후 미국의 구상을 흔들어 놓고 향후 한미공조에도 파열음을 낼 수 있는 엄중한 사건이라는 평가다.
또한 당국자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듯 각기 다른 해명을 내 놓는 것은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함은 물론, 외교·안보 사안이 전일적으로 관리·통제되지 않고 있음을 외부에 노출시키는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한편, 이동관 대변인이 이처럼 거짓 브리핑까지 하며 무리수를 둔 것은 보수 여론을 의식한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북한의 로켓을 요격하지 않겠다는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의 발언(3월 29일)과 '로켓에 대한 군사대응을 반대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30일)이 나온 후 쏟아진 보수언론들이 불만을 무마하기 위한 '당근'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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