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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백성은 죽어나가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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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백성은 죽어나가게 생겼다

[김민웅 칼럼]<35> 함석헌, 그리운 스승의 목소리가 듣고 싶구나

아가리를 벌리자

EBS에서 3년 가량 진행했던 <김민웅의 월드 센터> 마지막 방송의 초대 손님에는 홍세화 선생을 모셨었다. 그것도 벌써 2년 전의 일이다. 그때 홍세화 선생이 스튜디오에 가지고 나오신 화두는 "아가리를 벌리자"였다. 이 무슨 난데없는 아가리 타령이신가, 했는데 권력의 모순과 위선에 대해 여기저기서 힘차게 떠들지 않으면 세상은 변할 수 없다는 주장이셨다. 더군다나 지식인이 아가리를 다문 세상은 암담해진다는 질타는 시간이 지난 지금, 더더욱 절실하다.

"아가리"는 입의 순수한 우리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그만 어느새 천대받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민중의 입은 아가리고, 권력자의 입은 말씀이 되었기 때문이다. 때로 입은 조곤조곤 이야기할 수 있어도 아가리를 활짝 열면 상황이 달라진다. 홍세화 선생이 할 말은 분명히 해야 한다며 아가리 만개론(滿開論)을 주창하신 이야기에 내가 이어 붙인 우스개는 "아, 그리스의 아고라 어원이 아마 아가리였던 모양입니다."였다. 아고라는 아가리를 다물지 않고 공동체의 공적 가치에 대한 치열한 논쟁을 했던 현장이다. 그러니 아가리 없이 아고라 없고, 아고라 없이 민주주의 없다.

이 당연한 이치가 짓밟히고 있는 나라가 이 나라다. 아가리를 닥치라는 것이 권력의 주문이기 때문이다. 권력만 아가리를 마음껏 벌릴 자유가 있는 나라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면서 권력은 백성들의 생각을 탄압하고 사상을 벌하며 성찰의 능력을 유린한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데, 생각하는 백성은 죽어나가게 생겼다. 정신의 진화는 봉쇄되고 물질의 진화는 소수에게 독점되고 있다. 근본은 은폐되고 진실은 묵살당하며 지쳐버린 백성들은 희망을 선택하는 용기보다 체념의 습관에 익숙해지고 있다. 심장을 뛰게 할 웅대한 목소리는 외면하고 현실의 긴장을 망각하게 해줄 사탕발림을 사먹는다. 이는 썩어가고 혀는 미각을 잃어가며 마음은 갈팡질팡이다.

참 스승이 그리운 시대

이런 때에 스승이 있어야 한다. 참 스승이 아쉽다. 스승 없는 사회는 제멋대로 가면서도 잘 가고 있는 줄 안다. 성찰 없는 행동을 하면서도 우쭐한다. 진흙탕으로 들어가는 길인데 탄탄대로인 줄로 착각한다. 야단도 맞아가며 커야 정신을 차리는데 버릇만 자꾸 없어지고 자본과 권력이 짜놓은 욕망의 덫에 스스로 걸려든다. 그런 이 시대에, 마구 가던 길을 멈추고 번쩍 눈이 뜨이게 하는 소리가 듣고 싶다. 아가리 한번 제대로 여셨던 존재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진다.

함석헌, 그 이름 석자가 가슴에 파고든다. 돌아가신 지 올해로 어느새 딱 20년이다. 백발을 휘날리며 단어 하나하나에 힘과 정성을 기울여 이야기하시던 모습이 선하다. 그를 보면 역사가 보이고, 그를 만나면 인류의 정신사가 가슴에 흐르게 된다. 그의 육성을 들으면 시대가 격동하고 그의 눈빛과 마주하면 경건해진다. 그의 걸음걸이를 뒤따르면 용기가 생기고 그의 손을 잡으면 부드러운 강함이 무엇인기 깨우친다. 그의 글을 읽으면 들판에 바람이 휘몰아치고 갑자기 산을 오르게 되며 바다가 출렁인다. 그러다가 꽃 한 송이를 본다. 생명의 소리를 듣게 된다.

그는 말한다. 우리 현대사의 그 누구보다 일찍 눈뜬 생명사상이었다.

"생명은 기운입니다. 그 기운은 한없이 부드러운 것입니다. 굳은 바위를 녹여 그 속에서 꽃이 나오고 노래가 나오게 하는 것은 이 부드러운 기운입니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 "함석헌, 그는 단호했고 악과 정면으로 맞서 무찌르는 투사였으며, 지식의 넓고 깊기가 간단치 않으며 동과 서를 넘나들며 인류적 사고를 창의적으로 닦아나간 스승이었다."
만물을 짓고 뜻을 이루어가는 것은 힘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했던 함석헌은 그러나 유약한 선비 아니었고 추상적인 종교인 또한 아니었으며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면서 양비론이나 양시론을 슬쩍 들먹이며 애매한 자세를 취한 이 아니었다. 그는 단호했고 악과 정면으로 맞서 무찌르는 투사였으며, 지식의 넓고 깊기가 간단치 않으며 동과 서를 넘나들며 인류적 사고를 창의적으로 닦아나간 스승이었다.

오늘의 젊은 세대는 함석헌을 알까? 아니, 그를 읽고 알아가면서 흥분하고 감격하면서 배움이 자라날까? 꽃보다 남자고 문자를 파고드는 성찰보다는 이미지의 감각에 보다 충실한 세대가 역사의 웅장한 맥을 짚으면서도 인간의 세밀한 마음을 더듬어나가는 전시대의 인물에 얼마나 관심을 가질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는 그와 함께 더불어 살아왔던 세대조차 망각해버린 이름을 다시 떠올리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함석헌 저작집의 출간

이런 비관적인 마음을 단번에 날려버리듯, 한길사가 <함석헌 저작집 30권>을 일거에 내놓았다. 여기서 "일거"라는 말을 쓴 까닭은, 제대로 된 책 하나 알아보고 읽으려 들지 않는 시대에 무슨 변괴가 아닌가 싶을 정도의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씩 내놓으면서 방향을 천천히 트는 것이 아니라, 단도직입적으로 저작집 30권을 출간한 한길사 김언호 사장의 용기가 자못 충격적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 저작집 출간에 그와 한길사 식구들이 온통 매달려 쏟은 정성은 감사와 존경을 금치 못하게 한다. 오늘의 시대에 함석헌을 다시 읽자는 그 진심이 없다면 이 저작집 탄생은 불가능하다. 사진작가 김중만의 작품이 표지를 이룬 것도 멋지다. 빛바래고 낡은 서책인줄로 알아왔던 함석헌이 산뜻하게 옷을 입었다.

함석헌은 기독교에서 시작했지만 기독교에 머물지 않았고, 동양의 고전을 파고들었지만 옛것에 충성을 바치는 훈구적 취미에 매몰되지 않았다. 조선 사람임을 자랑스러워했지만 조선 사람으로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세계인이 되고자 했고 지식인이었지만 서재에만 갇혀 있지 않았다. 그가 거리를 누비면 역사가 함성을 질렀고, 그가 감옥에 갇히면 역사가 진전했다. 그 어디에 있어도 그는 시대를 뒤쫓지 않고 선두에 섰다. 그러나 선두에 서고자 선두에 선 것이 아니라 그냥 그가 있는 자리가 곧 선두였기 때문이었다. 함석헌은 철학을 하고 정치논설을 쓰고 고전강의를 했으며 열변을 토했지만 시를 쓰는 시인이었고 꽃과 나무를 가꾸는 정원사였다. 그래서 그는 끝까지 생명의 사람이었다.

<함석헌 저작집> 목록만 봐도 가슴이 울린다. <들사람 얼>, <인간혁명>, <민중이 정부를 다스려야 한다>,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씨알의 옛글 풀이>, <바가바드 기타>, <간디 자서전>, <인생의 시>, <펜들힐의 명상> 등 그 다루어진 분야와 외침이 있던 자리가 그야말로 다양하다. 문화를 논하면서 인간의 본질에 육박해 들어가고, 정치를 비평하며 행동의 심장을 움켜쥔다. 동양의 영혼에 들어가서 서양의 끝을 보게 하고 서양의 마음속에 잠겨 들어가 동양의 빛을 드러낸다. 그런 까닭에 함석헌은 우리 사상사의 기념비적 존재다. 사상과 문화의 발전을 위한 세계적 호흡의 근거지다. <함석헌 저작집> 출간은 그런 연유로 기념비적 작업이다.

번역서와 가벼운 읽을거리로 가득 차다시피 한 출판문화에서 한길사의 김언호 사장의 이러한 노력은 너무나 고맙다. 시대가 바뀌어도 달라지고 있지 않은 본질에 힘차게 다가서게 하는 함석헌 선생의 글을 이렇게 종합선물 세트로 만나게 해주니 기쁘기 짝이 없기에 그렇다. 함석헌의 글을 하나하나 읽어가면서 가슴이 떨리는 것은, 오늘날 이처럼 권력과 자본이 흉포하게 구는 때에, 그의 진지하고 뜻이 깊은 육성이 주는 울림이 다시 용기를 주고 생각의 줄거리를 반듯하게 세워주기 때문이다. 상한 갈대도 꺾지 않고 꺼져가는 등불도 함부로 끄지 않는 마음을 새롭게 일으켜 주기 때문이다. 그건 구름에 뜬 관념 아니요, 그림자만 보이는 추상 아니며 현실의 실천이다.

널리 알려지긴 했으나, 이 힘겹고 고독한 시대에 그의 시 한편이 우리를 위로하고 낙담과 절망에 빠진 현실의 뭇 마음을 크게 격려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인용한다. 제목은 <그 사람을 가졌는가>이다.

만릿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 가졌는가

온 세상이 찬성보다는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 가졌는가

가졌거든 그대는 행복이니다
그도 행복이니라
그 둘을 가지는 이 세상도 행복이니라
그러나 없거든 거친 들에 부끄럼뿐이니라.


부끄럽지 않은 우리 시대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한 사람 서로 되는 그런 감격 아닐까 싶다. 이기적인 욕망과, 좌절에 더하여 상처투성이로 흔들려버린 생각을 모두 접고 다시 힘을 내었으면 하는 거다. 생각이 뚜렷해지고 마음이 힘을 얻고 생명의 기운이 그 영혼을 채우면 역사는 다시 제 갈 길을 바로 갈 것이다. 저 스스로 다물어졌거나 닥치라는 고함에 놀라 다물고 만 무수한 아가리들은 비로소 거침없이 열리고, 권력의 허위는 벗겨지며 생명의 기운은 소생한다. 그렇지 않아도 화사하게 핀 꽃소식이 산과 들판을 가로지른다.

함석헌, 산맥처럼 웅장하나 꽃처럼 섬세한 그이를 가진 우리는 부끄럽지 않다. 우린 아직도 희망을 품을 이유가 많이 남아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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