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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법, 머리 맞대고 이렇게 한 번 만들어보자"

[기고] '미디어법 관련 사회적 논의기구 이렇게 구성돼야'

국회가 5일 '미디어 발전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언론 관계법을 논의할 '사회적 논의 기구'의 구성을 합의했다. 이를 두고 '허울 뿐인 논의 기구'라는 비판이 일고 있는 가운데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가 5일 사회적 논의기구의 구성 방향을 지적했다. 이 연구소의 "미디어법 관련 사회적 논의기구 이렇게 구성되어야"라는 글을 연구소의 허락을 받아 전문 게재한다. <편집자>

3월 2일 여야는 미디어법에 대해서 "사회적 논의기구에서 100일간 여론을 수렴한 후 표결처리"를 합의하였다. 이 합의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여기에서는 사회적 논의기구의 성격과 구성, 여론수렴절차 등에 대한 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사회적 논의기구는 민주주의의 새로운 추세

사회적 논의기구에 대해서 한나라당은 단순 참고를 위한 자문기구라고 규정하였고,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는 위헌적 발상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거버넌스에 대한 이해의 부재에서 비롯된 잘못된 해석이다.

거버넌스는 사회가 다양하고 다원화되면서, 이해관계와 이를 조정하기 위한 절차와 수단도 복잡해진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대의기구인 국회를 무시하는 위헌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대의기구의 의사결정을 보다 권위있게 하기 위한 방안인 것이다.

지금 이명박 정부의 각종 위원회도 바로 이런 거버넌스 기구이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참여정부를 위원회 공화국이라고 비난하였지만 이 정부조차도 거버넌스형 위원회의 효용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 결과 미래기획위원회, 국가경쟁력위원회, 녹색성장위원회 등을 신설하기도 하고,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등 이전부터 존재하던 위원회도 상당수 존치시키고 있다.

또한, 이러한 사회적 논의기구는 이 정부 들어 와서도 역할을 하기도 했다. 비록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노사민정 논의기구를 통해 현재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각 경제주체의 고통분담을 합의한 바 있다.

이렇게 사회적 논의기구는 핵심적인 쟁점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의 틀로 기능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새로운 추세에 맞는 의사결정 방식이다. 이를 지나치게 격하시킬 이유는 없다.

사회적 논의기구는 자문기구+합의기구

사회적 논의기구가 단순하게 다양한 의견을 듣기 위한 자문기구의 성격이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자문기구라면 사회적 논의기구의 역할은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 논의기구는 일반적으로 사회적 갈등과 이견이 큰 정치‧사회적 쟁점에 대해 토론과 검증, 여론조사나 공론조사와 같은 심층적인 의견수렴 등의 과정을 통해 쟁점을 도출하고 이에 대한 합리적 해법을 만들어 내는 기구를 의미한다. 사회적 논의기구는 단순하게 의견을 듣는 청문기구에다가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합의기구의 성격을 둘 다 갖는 것이 정확한 해석이다.

여당은 사회적 논의기구를 청문기구 정도로 사고하고 있지만 이는 사회적 논의기구의 성격을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정부‧여당이 사회적 논의기구의 핵심적 기능을 부정하고 100일간의 시간이 지나면 표결처리 할 수 있다는 것에만 집착한다면 사회적 논의는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왜 국회는 이 문제를 합의하지 못했는가?', '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가?'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

이미 언론노조 등 미디어법의 가장 큰 이해당사자는 사회적 논의기구가 자문기구로 전락된다면 이 기구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사회적 논의기구의 구성이 직접적인 이해관계자, 전문가, 상식적 시민이 합리적으로 논의하고 결정하기 위한 것이라면 언론노조가 불참해서는 그 권위를 인정받기 어렵다. 가장 큰 당사자를 제외하고 논의가 진행되고 이 결과가 국회에서 수용되어 법안이 통과된다면 강력한 저항과 반발에 부딪히게 될 것은 자명하다. 사회적 논의기구의 구성이 불필요한 사회적 논란과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이라면 자문기구만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당사자들이 수긍하고 납득할 만한 권위와 의견수렴 절차, 의사결정이 필요하다. 그 핵심이 합의기구로 사회적 논의기구의 위상을 세우는 것에 있다.

제대로 된 논의기구는 사회적 갈등을 치유한다

이미 우리는 사회적 논의기구를 통해 사회적 쟁점과 혼란을 극복한 사례가 있다. 지금은 비록 유명무실해 졌지만 노사정위원회가 대표적이다. 노사정위원회는 IMF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98년 1월에 발족했고,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사회협약을 채택하는 등 사회적 논의와 합의를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하는데 기여했다. 물론, 현재 상황에서 노사정위원회가 유명무실해 졌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이는 상설 사회적 논의기구가 갖는 근본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노사정위원회라는 사회적 논의기구가 없었다면 IMF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심각한 사회적 갈등과 혼란이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1998년 발족된 방송개혁위원회는 좋은 참고사례가 될 것이다. 사회 각계 명망가들과 방송사 및 방송 관련 단체, 관련 정부 부처 등에서 위원들이 뽑혔다. 법학자 및 종교인, 예술인까지 참여한 방개위는 독립적인 논의기구로 기능하며 권력과 국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방송개혁안을 만들었다. 이 안은 국회에서의 논의를 통해 대부분 반영되었다. 물론, 언론노조 및 방송관계자는 최초에 이 위원회에 대해서 '권력의 방송장악 시나리오에 들러리를 서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초리도 있었지만 이 위원회는 가장 모범적인 위원회로 기능했다. 실제 가동 기간도 그리 길지 않았다. 98년 12월에 출범해 99년 2월까지 채 3개월이 안되는 기간 동안에 합의를 이끌어 낸 것이다. 이에 비하면 100일은 충분한 시간이다. 문제는 사회적 논의기구의 성격을 표결처리를 위한 요식행위로 볼 것인가? 실질적인 합의기구로 만들 것인가에 달려 있다. 방개위에서의 합의와 이를 반영한 통합방송법이 통과된 이후 사회적 갈등이 커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제대로 된 사회적 논의기구가 사회적 갈등을 치유한 모범적인 사례이다.

미국의 경우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신문과 방송의 겸영 허용 문제를 풀기 위해 2006년 6월부터 1년 5개월 간의 논의를 거쳐 2007년 11월에야 정책을 확정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의 투명한 공개는 물론, 순회 공청회 등의 광범위한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확정했다. 이 안은 다시 상원에서 약 6개월간 논의를 통해 부결되었다. 논의를 시작해 상원에서 부결되기까지 2년이 걸린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2일 엘리제궁에 신문사 노사와 언론 전문가들을 초청해 신문의 위기를 다룰 '국민대표자회의'의 개막을 선언했다. 이 회의는 전문가 외에도 독자와 시민들을 합쳐 152명이 참여해 2개월간 진행되었고 이는 TV와 인터넷에 생중계되었다.

왜 미국과 프랑스는, 보수주의 대통령인 부시와 사르코지는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국민적 토론을 진행했을까? 다른 이유가 아니다. 언론의 문제는 정권의 문제, 특정 이해관계자의 문제가 아닌 민주주의 일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국회의 표결처리만 주장하는 것은 바보들의 민주주의

국회는 국민의 대의기구로 주권자의 민의를 수렴해 표결하는 헌법기관이다. 국민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의원의 개인적 견해나, 당론만을 쫒아 표결에 임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헌법정신과 대의기구인 국회의 권위를 침해하는 행위이다.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이지 선출된 이후에 백지위임을 받는 존재가 아니다. 국민의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법안일수록 지역구 주민과의 소통을 통해서 의견을 수렴해야 하고 이 의견을 국회의원을 대표해야 한다.

또한, 국회는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통합하는 곳이지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고 덮어두는 곳은 아니다. 정부‧여당이 주장하는 미디어법의 산업적 측면이 있다면, 언론으로서의 공익적 측면도 부정할 수 없다. 산업적 측면과 공공성이 화해불가능한 적대적인 것이라면 토론이 불가능하겠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정부‧여당은 오로지 산업적 측면만을 앵무새처럼 주장하고 있다. 그것도 신뢰할 수 없는 통계와 전망을 들이대면서 말이다. 이런 과정에서 불신의 골은 더 커지게 되었다. 머리를 맞대고 차분하게 논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이다. 사회적 논의의 부재가 갖는 불신과 이로 인한 갈등의 격화는 사회적 낭비를 만들어 낸다. 국회는 이런 갈등과 사회적 낭비를 최소화해야 할 임무가 있다.

국회법의 절차에 따라, 선거에 의해 형성된 의석수에 따라 다수결의 원칙으로 처리하면 된다는 한나라당의 주장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모르는 황당한 주장이다. 국회가 민의를 무시한 채, 사회적 갈등을 키우는 방향으로 표결처리하면서 민주주의의 절차를 얘기하는 것은 바보들의 민주주의일 뿐이다.

정부여당은 사회적 논의기구에 권위를 부여해야

사회적 논의기구의 구성이 미디어법에 대한 사회적 합의수준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 권위를 높여 주는 것이 필요하다. 또 하나, 정치적 논쟁의 장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고 차분하게 검증하고 합의하는 합리적 토론장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왜 미디어산업의 개편이 필요한지', '미디어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산업적 측면을 강조하면서 발생할 미디어의 공공성 위기는 무엇인지', '또, 이것은 어떻게 조정할 수 있는지', '미디어가 권력과 시장으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등등을 두고 차분하게 앉아서 사실과 구체적인 전망에 기초해서 토론하고 이를 합의해야 한다.

이런 조건이 충족된다면 방개위의 성공과 같이 우리 사회의 합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한나라당의 태도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논의기구를 단순 자문기구로 전락시키거나 100일만 버티면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이 논의기구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겠다는 적극적 자세 전환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이 사회적 논의기구는 더 큰 갈등을 만드는 뇌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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