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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전쟁의 언어 그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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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미국은 전쟁의 언어 그쳐라"

[김재명의 월드 포커스]<80> 이란이 오바마에 띄우는 주문

이슬람 혁명 30년을 맞이한 이란 현지취재과정에서 인상적으로 다가온 점 하나. 그곳 사람들이 "미국이 언젠가는 이란을 침공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다.

테헤란 거리의 보통사람들은 물론, 대학교수나 싱크 탱크의 지식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미국이 이란에 대해 그동안 보여주었던 적대행위가 결국에는 △2003년의 이라크처럼 이란에 대한 무력공격 또는 △지난 1953년 미국 중앙정보부(CIA)가 뒤에서 개입한 쿠데타처럼 강제적 체제변화를 꾀할 가능성을 꼽았다.
▲ 1979년 이슬람혁명 뒤 일어난 이란 대학생들의 점거사태로 폐쇄된 미 대사관. 자유의 여신상이 흉한 모습으로 그려진 벽화는 미-이란 사이의 긴장관계를 상징한다. ⓒ김재명

미 유대인 네오콘의 이란 침공론

이란 사람들의 미국침공 걱정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지자, 워싱턴의 네오콘(신보수주의자) 강경파들은 "내친 김에 이란을 치자"고 진공나팔을 불어댔었다.

네오콘들의 한 근거지인 미국기업협회(AEI) 상임 연구원이자 유대인 출신인 마이클 레딘(Michael Ledeen)이 한 보기다. 그는 AEI를 주도하는 유대인 네오콘 리처드 펄(마찬가지로 유대인인 헨리 키신저의 측근으로 부시 행정부에서 펜타곤 국방위원장을 지낸 인물)과 가까운 사이다.

레딘은 부시 행정부 시절 칼 로브 백악관 비서실장의 측근으로서 미국의 일방주의 대외정책에 영향력을 끼쳐왔다. 2001년 이란 바깥에 머물고 있는 반체제 인사들과 손을 잡고 '이란민주연합'이란 조직의 깃발을 올리는 데도 관여했다.

레딘의 책 『테러 전문가들과의 전쟁』(2002년)은 이른바 '민주화 도미노' 이론에 바탕, 이라크뿐 아니라 이란, 시리아를 비롯한 이슬람권 국가들의 체제변혁을 주장한다. 이렇듯 지금 미국 안에는 레딘처럼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뿐 아니라 이란 정권붕괴론을 펴는 이들이 많다.
▲ "미국 오바마 새행정부는 '전쟁의 언어'를 버리고 '평화의 언어'로 이란을 대해야 한다" IPIS 부설 아시아연구센터 잘랄 칼란타리 소장 ⓒ김재명

"이란 아니라 미국이 바뀔 때"

테헤란의 싱크 탱크인 정치국제문제연구소(Institute of Political and International Studies, 약칭 IPIS) 부설기관인 아시아연구센터의 잘랄 칼란타리 소장도 마찬가지로 미국의 대이란 강공책을 비난한다.

그는 "미국은 지난 30년 동안 '전쟁의 언어'(language of war)로 이란을 상대해왔다. 부시행정부 때는 '악의 축'이라고까지 막말을 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그런 전쟁의 언어를 버리고 '평화의 언어'로 이란을 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필리핀대사(2003-2007년)을 지냈고 한국을 방문한 적도 있다는 그는 미국과 이란의 관계가 오바마 새행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진전을 보길 바라는 마음을 비쳤다.

"미국은 지난 30년 동안 이란을 자주독립국으로 놓아두려 하지 않고 끊임없이 압박해왔지만, 이란은 잘 견뎌왔다. 미국은 이란의 정치체제와 자존심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란 사람들이 미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실상을 알아야 한다. 그동안 미국은 이란을 바꾸려 했지만, 이제는 그런 미국이 바뀔 때가 왔다. 미국의 새대통령 오바마는 대선 후보 때부터 이란 지도자들과 조건 없는 만남을 언급해온 만큼 긍정적인 쪽으로의 변화를 기대한다"

"미국은 책임 있는 슈퍼파워 돼야"
▲ "전세계적으로 반미감정이 왜 그렇게 높은지를 미국인들은 곰곰 생각해봐야 한다" 라반드(Ravand) 경제국제문제 연구소 마지드 레시니아 선임연구원 ⓒ김재명

이란의 국제경제 관련 싱크탱크인 라반드(Ravand) 경제국제문제 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인 마지드 레시니아도 지난날 미국 정권에 비판적이다. "20세기의 이란은 다른 나라를 침공한 적이 없지만, 미국은 여러 곳에서 침략전쟁을 벌이거나 침략자를 뒤에서 지원함으로써 지구촌 평화를 어지럽혔다"고 주장했다.

'침략자를 뒤에서 지원'한 경우는 이란-이라크전쟁(1980-88년)을 가리킨다. 레시니아는 "그 전쟁에서 미국은 사담 후세인에게 화학무기를 대줌으로써 5만명에 이르는 이란 젊은이들이 화학무기로 죽었고,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그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외교관 출신인 그는 미국뿐 아니라 다른 강대국들의 행태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20세기 초에 일본이 한국에 대해 저질렀던 짓이나, 프랑스가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벨기에가 아프리카 콩고와 르완다에서, 영국이 우리 이란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한 짓들은 인류사에 부끄러운 범죄기록들이다. 강대국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약소국들을 괴롭혀왔는데, 그런 점에서 지금 미국이 단연 으뜸이다. 전세계적으로 반미감정이 왜 그렇게 높은지를 미국인들은 곰곰 생각해봐야 한다."

한마디로 그는 오바마 새행정부가 21세기의 미국을 '책임 있는 슈퍼파워'(responsible superpower)로서 거듭나도록 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미-이란 수교가 이뤄진다면

이렇듯 이란 지식인들은 미국의 대외정책에 비판적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란은 9.11 뒤 벌어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2001년)과 이라크 침공(2003년)에서 나름의 반사이익을 챙겼다고 볼 수도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은 이란과 사이가 불편했고,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8년에 걸친 이란-이라크 전쟁(1980-88년)으로 공적 1호로 꼽혔다.

사담 후세인이 교수형에 처해지자, 일부 이란 사람들은 미국의 침공에 희생되는 후세인의 죽음에서 이슬람 형제애와 슬픔을 느꼈지만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고 한다.

국제정치학에서는 "나의 적(敵)과 싸우는 적은 나의 친구"라 한다. 이란과 미국의 관계에 관한 한 이 말은 적용되지 않는 듯하다. 이란의 적인 이라크 후세인 정권과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린 미국은 지금껏 이란과 친구 사이가 되지 못했다. 미국-이스라엘의 강고한 동맹은 이란으로선 가장 경계해야할 대상으로 꼽힌다. 거꾸로 미국도 이란 핵개발 의혹을 제기하면서 금융제재를 강화해왔다.

이란은 그런 금융제재로 말미암아 오히려 최근 국제금융시장의 위기에서 비롯된 악영향에서 비껴나 있는 모습이다. 지난 수년 동안의 고유가로 오일머니를 축적한데다, 미국의 금융제재로 주요 서방 은행들이 이란과의 거래를 끊어 대외 차입이 거의 없는 상태로 알려진다. (이란이 걱정하는 것은 유가하락에서 비롯된 재정적자이지, 우리 한국처럼 금융위기는 아니다).

그럼에도 미국-이란 사이엔 변화의 기운이 돈다. 올 들어 미국 오바마 새행정부의 출범이 계기다. 세계 제2위의 에너지 자원(석유매장량 2위, 가스생산량 2위)을 지닌 만큼, 중동지역에서 이란이 갖는 비중은 크다. 따라서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이란과의 새 외교관계 설정문제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가까운 시일 안에 미-이란 수교가 이뤄질 일은 물론 아니겠지만, 큰 흐름은 화해 쪽이다. 이란핵개발 의혹 등 미-이란 관계개선을 막아선 여러 현안들이 풀려 두 나라가 화해무드로 나아간다면, 석유와 가스 등 이란의 개발 잠재력으로 미뤄 외국인들의 투자가 크게 늘어날 게 뻔하다.
▲ 지난 30년 동안 굳게 문이 닫힌 테헤란 미 대사관 건물. 미국 오바마 새행정부의 출범을 계기로 미-이란 대화 통로가 열릴 조짐이지만, 이란 핵개발의혹 문제 등 아직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김재명

주 이란 한국 대사 "투자 생각해볼 때다"

우리 한국과 이란 사이는 어떨까. 알고 보면, 한국-이란 사이의 교역은 제법 활발하다.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10%쯤은 이란에서 들여온다. 이란에서는 기아자동차의 프라이드를 너무나 자주 만날 수 있다. 프라이드의 이란형 모델인 사바(SABA)까지 합치면 200만대가 넘는다. 이란 자동차 3대 가운데 1대가 프라이드다. "프라이드는 이란의 국민차"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TV, 냉장고, 에어콘 등 가전제품의 75%가 '메이드 인 코리아'다. 그러나 직접투자는 미국의 눈치를 무시하기 어려운 탓일까, 아주 낮은 편이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바뀔 조짐이다. 이란과 미국이 관계를 복원하는 쪽으로 간다면, 지금껏 제한돼온 외국인 투자도 활성화될 것이다. 테헤란에서 만난 김영목 주이란대사는 신중한 어조로 "한국기업들이 이란에 투자를 한다면, 이란과 미국의 수교가 이뤄지기 이전에 하는 것이 그 뒤에 하는 것보다 계약조건 면에서 훨씬 낫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우리의 국가이익이란 차원에서 보더라도 맞는 얘기다.

미국과의 갈등 속에서도 이란은 미국과의 외교관계 정상화를 바라고 있다. 그럼으로써 지난 30년 동안 미국이 이란에 가해온 경제제재를 비롯해 여러 불이익을 떨쳐내려는 희망을 품고 있다.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이란은 북한과 닮았다. 세계 제2의 석유대국 이란의 평화는 중동평화, 나아가 우리 한국이 절실하게 바라는 유가안정과 맞물린다. 이슬람 혁명 30년을 맞은 이란 땅에 평화와 안정이 깃들길 바라며 테헤란 공항을 떠났다.

필자 이메일 kimspho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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