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중국과 북한 양국 간 행보가 심상치 않다. 지난 1월 9일부터 12일까지 후정웨(胡正躍)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급)가 북한을 방문해 박의춘 외무상과 양국 간 협력 강화 방침을 확인한 데 이어, 21일부터 24일까지 방북한 왕자루이(王家瑞)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은 김영일 내각총리와 최태복 노동당 비서를 잇달아 면담한 후, 김정일 위원장에게 후진타오(胡錦濤)의 친서를 전달함으로써 북·중 우호협력관계를 대내외에 과시하였다.
특히, 왕 부장과 김 위원장의 면담은 대남 전면대결을 공언한 북한 군 총참모부 대변인의 성명(1.17)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취임(1.20) 직후에 이루어졌다는 점, 작년 8월 김정일의 건강 이상설이 제기된 이후 최초의 외빈접견이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게다가 중국 관영 언론에서 이번 면담 내용을 예년과 달리 비교적 자세히 보도했다는 점, 김정일이 후진타오의 방중 요청을 수락한 점, 양국이 수교 60주년인 2009년을 '우호의 해'로 정하고 강조한 점 등을 통해 볼 때, 양국의 우호협력관계는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북한은 이번 면담을 통해 김정일과 그의 통치력이 건재함을 과시하는 한편, 비핵화 의지, 한반도 정세의 긴장 불원, 6자회담의 진전을 천명함으로써 새로 출범한 오바마 행정부에 대해 '6자회담의 틀 속에서 북미관계 개선을 통한 비핵화를 실현하겠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평가된다. 즉, 북한은 중국의 경제적·외교적 지원과 협조를 얻어 최소한의 안전판을 확보한 뒤 미국과의 협상에 나서려는 '통중통미(通中通美)'의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의도는 무엇인가? 다시 말해 국제사회에서 최빈국 중 하나이자 핵 개발로 인해 문제아로 전락한 북한과의 협력을 강화해서 얻을 수 있는 중국의 전략적 이익은 무엇인가? 이는 다음 세 가지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다.
첫째, 동북아 차원이다. 2020년 '전면적 샤오캉(小康)사회' 건설을 국가목표로 설정하고 있는 중국은 경제발전을 위해 안정적인 주변 환경과 국제협력을 중시해왔다. 특히, 국제금융위기로 인해 동북아지역에 내재하고 있는 안보질서의 유동성 및 불확실성이 더욱 증대할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중국은 국제금융위기의 국내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데 유리한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지역질서의 유지·창출에 전략적 목적을 두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입장에서 북한 핵을 포함한 북한문제는 안정적인 관리 대상이 된다.
다른 한편 중국은 경제위기 극복과 경제성장의 지속적 유지를 위해 미국의 협조가 필요한 바, 미국과의 대화와 협력 그리고 다자기구를 통한 국제사회의 책임과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자국의 역내 위상과 영향력을 증대시킬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하고자 한다. 그런 점에서 6자회담은 중국에 유용한 수단이 된다. 따라서 중국이 북한과의 우호협력관계를 대외에 과시한 것은 새로 출범한 오바마 정부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가치를 제고시킴으로써, 6자회담의 의장국으로서 향후 대미관계를 유리하게 전개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한반도 차원이다. 중국의 한반도 정책 목표는 한반도의 평화·안정 유지 및 영향력 확대로 집약된다. 이의 일환으로 그동안 중국은 남북한과의 동시 발전을 추구해왔다. 중국은 한·미동맹 및 한·미·일 협력관계와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한국과의 전략적 협력관계를 추진하는 한편, 북한과의 우호협력관계 강화를 통해 한·미(일) 협력관계에 대응함으로써 영향력을 유지하고자 한다.
물론 중국은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북한보다 한국과의 실리협력 관계를 중시할 것이지만, 동시에 북한의 생존에 필요한 경제협력과 지원도 확대할 것이다. 현 단계 남북관계 경색국면의 책임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있다는 북한의 주장에 암묵적으로 동조하고 있는 중국은 대북 압박 및 붕괴유도 정책에 반대하고 있다. 다만,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국익에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긴장고조 행위에도 반대하고 있다.
이는 결국 한반도의 현상유지가 경제위기 극복에 주력해야 할 중국의 국익에 가장 부합하게 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중국은 외교적 고립과 경제적 위기에 처한 북한을 지원함으로써 최적의 상황을 유지하고자 할 것이다.
셋째, 대북차원 즉, 북·중 양자관계 차원이다. 김정일 와병설 이후 최초의 외빈 접견 인사로서 중국이 선택되었다는 점에서, 왕자루이와 김정일의 면담은 북·중관계의 긴밀함과 중국의 대북 영향력을 재평가 받는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북·중 우호협력조약, 북한경제의 대중 의존도, 양국 간 인적 유대관계 등 정책수단 면에서 중국의 대북한 영향력은 어느 나라보다도 큰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중국은 주권 존중, 내정불간섭을 표방해온 바, 북한의 내정 및 정책결정에 개입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핵 실험과 같은 북한의 사활적 이익에 해당하는 경우에 그 영향력은 더욱 제한적이다.
따라서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 강화를 통해 영향력을 유지·확대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사실, 중국은 북미관계 개선이 북한의 평화와 안정,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한다고 보고 이를 공식적으로 지지하고 있지만, 내심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상실되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갖고 있다. 중국이 북한과의 우호협력관계를 지속적으로 확대·강화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요컨대 중국이 북한과의 우호협력관계를 강화하는 전략적 의도는 다차원적이고 복합적이며, 북·미관계, 남북관계 등 동북아 질서와도 중첩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중국이 추진하려는 전략적 의도가 모두 실현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북·중 협력관계가 전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한반도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영향과 비중도 점차 증대될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도 중국의 전략적 의도와 행보를 예의주시하면서 다차원적이고 복합적인 접근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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