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이번에는 가자지구다. 내가 만약 가자지구가 아름답다고 하면 사람들은 믿지 않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언제나 언론에서 가자지구는 폭격, 가난, 죽음, 눈물로 비쳐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가자지구는 아름답다. 푸른 하늘과 출렁이는 바다, 활기찬 시장 사람들과 외국인이 사진 찍는다고 몰려들던 학생들… 그런데 지금은 그들의 모습이 결코 아름다울 수 없는 '가자지구 폭격'이라는 말과 함께 다가온다.
▲ 가자시티의 한 시장에서 게를 팔고 있는 상인 ⓒ미니 |
▲ 라파의 거리에서 딸기를 팔던 사람들 ⓒ미니 |
낯선 사람이 길을 지나는 것을 보고 뭐라도 먹고 가라고 나를 붙잡던 사람들이 머물던 라파, 한국인들이 미국 대사관 앞에서 집회하는 것을 TV에서 봤다며 잘 했다고 응원을 해 주던 사람들이 거닐던 라파의 거리가 지금은 온통 부서진 채 내 눈 앞에 다가온다. 나와 함께 웃고, 얘기하고, 악수를 하던 그 사람들은 지금 살아는 있는지.
한국에 와 있으면서 고향인 가자로 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마나르와 알라딘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가자지구 폭격이라는 말에 나보다 100배는 더 많은 분노와 울분이 쌓이고, 나보다 천배는 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겠지. 왜 우리는 가자지구를 아름답게만 기억하면 안 되는 걸까. 왜 그들은 우리가 가자지구를 아름답게 기억할 권리를 빼앗는 것일까.
테러리스트를 잡겠다?
이스라엘 외무장관이 인터뷰 하는 내용을 보니 자신들은 테러리스트와 하마스만을 공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민간인들의 희생은 불행한 일이라고 한다.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면서 잘 써 먹었던 '부수적 피해'와 같은 논리다.
가자지구는 150여 만 명이 북적대며 살고 있는 좁은 지역이다. 그런데 수 십 대의 전투기를 동원해 100톤이 넘는 폭탄을 퍼붓는데 과연 어떤 피해가 부수적이란 말인가? 한 집안에서 5명의 아이들이 몰살을 당했는데 이것이 부수적이란 말인가?
▲ 가자지구 한 난민촌의 어린이와 청소년들 ⓒ미니 |
오히려 2006년 1월 총선에서 집권한 하마스 정부를 향해 쿠데타를 일으킨 것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지원하는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대통령과 파타의 지도부였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온건한'이라는 머리말을 달고 다닌다. 사실 그들은 미국과 이스라엘에게 '온순'할 뿐이며, 그 온순의 대가로 부와 권력을 쌓고 있다.
▲ 우리 할머니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무사하신지. ⓒ미니 |
하마스가 휴전 중단을 선언한 것은 휴전이 무의미했기 때문이다. 쿠데타 실패 이후 2007년 6월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장악하자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대한 봉쇄를 강화했다. 두들겨 패도 안 되니깐 이제는 굶겨서 길들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식량·석유·의약품 등이 바닥난 팔레스타인인들은 휴전을 해서라도 뭔가 상황이 나아지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봉쇄는 풀리지 않았고, 사람들은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죽어 나갔다. 이런 상황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이대로 죽느니 차라리 싸우자'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들이 좋아서 투쟁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 봐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니 또 다른 선택으로 내몰린 것뿐이다.
▲ 팔레스타인인들이 탄 버스를 검문검색하는 이스라엘 군인 ⓒ미니 |
2005년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를 떠났다고는 하지만 이집트와의 국경에 있는 검문소에는 이스라엘이 여전히 감시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누가 움직이는지를 지켜보고 있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라파 국경을 공동 관리하고 있던 유럽연합(EU)은 이스라엘의 편을 들며 수시로 국경을 닫아걸었다.
이렇게 먹을 것도 떨어지고, 의약품도 바닥나고, 옴짝달싹 할 수 없이 가자지구라는 감옥에 갇힌 팔레스타인인들이 도대체 무슨 좋은 말을 할 거라고 기대하는가?
지금 이스라엘이 때려잡고 있는 것은 하마스도 테러리스트도 아니다. 흔히 하마스라고 하면 우리와는 특별히 다른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일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가 만나본 하마스 사람들과 하마스 지지자들은 그냥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테러리스트여서 이스라엘과 미국이 때려잡겠다는 것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인들을 때려잡을 명분이 필요하니깐 하마스와 팔레스타인인들을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는 것이다.
다시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오늘은 경계를넘어, 나눔문화, 다함께, 팔레스타인평화연대 등 16개 단체의 공동주최로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 학살을 중단하라'라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몇 해 동안 100번도 넘게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집회도 하고 1인 시위도 하고 캠페인도 하고 노래도 했었는데 그 가운데 오늘은 가장 많은 100여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사회당도 오고, 일제고사 문제로 해직된 최혜원·김윤주 선생님도 오시고, 방글라데시 난민 로넬 씨와 버마 난민 마웅저 씨도 오시고, 팔레스타인 문제를 연구하시는 홍미정 교수도 오시고, 아직은 한국말이 서툰 재미교포 미셸 리 씨도 오셨다. 우리는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연설도 하고, 이스라엘 대사관을 향해 함성도 지르고, 핏빛 얼룩진 이스라엘 깃발을 짓밟기도 했다.
▲ 30일 열린 집회 장면 |
우리는 집회를 하기 위해 집회를 하는 것도 아니고, 큰 소리를 외치기 위해서 외치는 것도 아니다. 하룻밤 눈 뜨고 나면 200명에서 300명, 400명으로 늘어만 가는 저 죽음의 행렬을 보면서 도무지 참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거리로 나선 것이다. 미래에 죽어갈 그 누군가의 목숨을 하나라도 더 살려 보자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여러분만 아무도 모른 채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400만 가량 밖에 되지 않는 팔레스타인 사람 가운데 2000년 9월부터 지금까지 이미 5000명 정도가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죽었다. 심지어 그 5천명 가운데 1/4 가량은 18세 이하의 어린이와 청소년이었다. 이스라엘이 테러리스트이고 학살자가 아니라면 도대체 이 세상에 누가 테러리스트이고 학살자란 말인가.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죽어야 된단 말인가. 이건 아니다. 사람의 탈을 쓰고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이스라엘은 지금 당장 학살을 멈추어야 한다. 내일이 아니라 지금 당장!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학살과 봉쇄를 중단하라 이스라엘은 2008년 12월27일부터 12월29일까지 100여 톤이 넘는 폭탄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퍼부음으로써 팔레스타인인 345명을 살해하고, 1,450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또 정부 시설은 물론 대학·TV 방송국·이슬람 사원 등을 파괴하였고, 이것도 모자라 탱크와 군 병력을 동원해 전면전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이스라엘은 1967년에 있었던 전쟁으로 가자지구를 점령한 이후 가자지구 주민들에 대한 살인·구금·고문·폭행 등의 범죄를 저질러 왔다. 특히 지난 2006년 1월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하마스가 집권을 하자, 같은 해 6월부터는 여름비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가자지구를 공격하여 수 백 명의 팔레스타인인을 살해하였다. 하지만 군사공격으로도 하마스를 무너뜨릴 수 없었던 이스라엘과 미국은 팔레스타인 내부 쿠데타를 부추겼지만 이마저도 실패하고, 오히려 2007년 6월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장악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대한 봉쇄를 강화하였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에 대한 봉쇄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생존권을 무참히 짓밟는 것이었다. 석유 공급이 중단됨으로써 발전소가 멈추고 차량은 이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집트와 이스라엘 지역으로 가서 치료를 받던 환자들은 병원에 갈 수 없게 됨으로써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었고, 환자들에게 공급되어야 할 의약품도 바닥을 드러냈다. 식량 공급이 제한됨으로써 식량 가격은 오르고 수 십 만 명이 외부 구호단체의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잔인한 봉쇄가 계속되자 세계 곳곳에서 봉쇄를 중단하라는 저항의 목소리도 계속되었다. 2008년 1월에는 가자지구 주민들이 가자지구와 이집트 국경 사이에 설치되어 있던 장벽을 무너뜨리고 이집트 지역으로 넘어가 식량과 의약품을 구해 오기도 했고, 8월에는 국제 인권활동가들이 가자지구 어린이들에게 나눠줄 보청기 등을 배에 싣고 바다를 건너 가자지구로 들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외침과 저항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봉쇄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기다렸다는 듯이 가자지구에 대한 대규모 공습을 시작했다. 이번 공습은 저항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을 굴복시키고, 2009년 2월에 있을 이스라엘 총선을 앞두고 현 집권당이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강공책을 펼침으로써 선거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무고한 팔레스타인인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번 공습의 책임이 마치 하마스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있는 것처럼 거짓말을 하고 있다. 현재 가자지구에는 150여 만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외부와 고립된 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전투기, 헬리콥터, 탱크 등을 동원하여 가자지구를 생지옥으로 만들고 있다. 이스라엘은 지금 당장 가자지구에 대한 학살과 봉쇄를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미국은 학살자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행동을 그만 두어야 한다. 이스라엘에게 학살을 중단하라는 국제사회의 외침은 이집트, 요르단, 레바논, 터키, 미국, 영국 등 전 세계에서 크게 울려 퍼지고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많은 시민과 사회단체·정당들이 이스라엘의 학살과 봉쇄 중단을 요구하며,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기 위한 행동에 나서고 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에 대한 학살과 봉쇄가 계속되는 한 팔레스타인의 정의와 평화를 위한 우리의 행동도 계속될 것이다. □ 우리의 요구 □ -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공습과 학살을 즉각 중단하라! -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가지지구에 대한 봉쇄를 즉각 중단하라! - 미국은 이스라엘에 대한 모든 정치적·군사적 지원을 즉각 중단하라! 2008년 12월 30일 참가단체 일동 개척자들, 경계를넘어, 국제민주연대, 나눔문화, 노동자의힘, 다함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국제연대위, 민주노동당, 보건의료단체연합, 사회당, 사회진보연대,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이주인권연대, 인권교육센터 들, 인권실천시민연대, 인권운동사랑방,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북비쥬얼립싱크노가바노래패 질러,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전쟁없는세상, 진보신당,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피자매연대, 한국진보연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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